60세 아이로 태어난 사람아이야날 좀 봐다오아이야날 좀 보고 웃어주렴아이야내 손을 좀 잡아다오아이야그래 잠자는 널 보면 세상 시름 다 잊게 되고 허망 같은 삶도 꽃피는 춘삼월같이 밝기만 하구나안녕하세요. 세상 모든 분들에게 잘지내시는지 안부를 묻고 싶은 날들입니다. 모두 잘지내십니까? 저는 어쩌다 네팔말이 되어 네팔사람과 결혼도 하고 이런저런 벅찬 활동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에는 네팔에 막내 처제 결혼식이 있어 네팔에 갔다 왔습니다. 4박 5일 짧은 일정임에도 네팔국영방송 인터뷰 요청이 와서 지난 201
아이가 잔다평화가 깃든 아이의 얼굴에는수많은 답이 보인다그냥 그대로 두어야할 세상도 보이고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을 세상도 있다가끔은 슬피우는 새가끔은 멈출 줄 모르는 격정아이가 자고 아이가 운다아이가 준 아빠라는 이름과아이가 준 엄마라는 이름에부부는 더없이 감사하며벅찬 일상의 축복이 고맙다아이가 꽃피우는 밤우리 부부는 야근을 함께하는 동료가 되어 노동의 즐거움에 빠진다세상과 우주를 품고 웃는 아이따라세상과 우주를 다시 품는 법을 익히는 철지난 부모의 제 때 같은 날들이우리 부부를 웃게 한다고맙구나 아이야네가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
아내가 낳은 아빠 어둠 깊은 저물녘처럼삶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는 날눈 덮인 산을 이고 태어난 아내는숱한 어둠의 끝을 헤집고 헤치며 비로소 어머니로 태어났다그때 아들 김주형이 태어났고김주형을 낳아준 아내 덕에나는 아빠로 태어났다애지중지한 시간 속 268일우리는 서로 서로 각각 태어났다 엄마로 태어나고 아빠로 태어나고 아들로 태어났고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족과 이웃 세상과 만나며 각각 태어났다거기 아내가 품은 268일의 기도가 있다268일의 소망이 있다 이제 아들과 엄마 이제 아들과 아빠는 같은 길에서아이와 함께귀한 소리를 듣고
삶 그리고 과거와 미래- 2세를 기다리며 오래된 기억 속에서부터나는 오고 있었고나는 가고 있었다가장 최근에도 나는 오고 있었고나는 가고 있었다지나온 날 속으로다가올 미래로나는 오고 있었고나는 가고 있었다나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나는 그곳으로쉬지 않고 가고 있었다어제로부터 오고어제로부터 가고오늘도 나는 오고오늘도 나는 가고나를 통해 오는 또 다른 나를나를 통해 오는 또 다른 나를 그렇게 기다리고 그렇게 오고그렇게 우리네 삶은 둥그러지고 있었다네팔인 아내 먼주 구릉과한국인 남편 김형효는오고 있었고 그렇게 가고 있었다오늘 김주형金主炯
귀가 열린 세상김형효 완전체 귀무슨 소리를 들었을까?동화를 읽으며 나도 아이가 되는 시간이다.아내와 동네한바퀴 참으로 귀하고 귀한 일상이다.환갑을 넘기고도 귀를 막고 사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 처음 듣는 소리처음 들리는 소리는어떤 소리여야할까?얼마전 식당을 찾은 무슬림 의사에게 물었다.당신은 어머니에 자식당신들은 여성의 자식그런데 왜 그리 모질고 모질기만 한가?오늘 나는 이 시대를 주도하는이 땅에 사는 이에게 묻고 싶다.당신도 사람의 자식당신도 반도에서 살아온 반도의 자식그런데 왜?이 반도를 저주하고이 반도를 더럽히는가?
낭떠러지 조국 김형효 촌스럽게 영어도 잘하고 대통령 혼자 일류란다낯선 길이 일상인 처지인 사람들이 있지소시민 노동자 농민 그래 학생도 지금은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나라가 되었지OECD국가라고 G8이라고더 많은 하부가 흉물로 전락해가는 나라꿈을 잃은 청춘들이 넘쳐나는 나라어디로 갈까헝클어진 낭떠러지라니 대체 어쩌라고멀고 먼 조국에 낭떠러지 같던 절망스런 길을 걷던 사람들이 있지길을 가느라 낭떠러지도 마다 않고 가던 그들은지금 저 멀리 딴 세상에 살고그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길을 따른다는 사람들은헝클어진 낭떠리지 위에서 방황하고 있지도화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경험하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주의 질서를 존중하며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내듯, 다가오는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과 깊은 어둠의 밤을 지나듯, 낳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자신도 또 다른 생명의 끈을 잇고 또 잇는다. 원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있듯 우리 부부는 세 번의 유산을 경험했고 세 번을 기뻐 울고 슬퍼 울었다. 이제 울음도 남지 않은 듯 했던 아이가 오고 있음에 하루 하루 경이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낳기 전의 일상은 두려움과 행복이 반반이다. 이 소중한 생명을 꼭 받아안고 개벽의
태평양을 건너다 김형효 그대 건너 보았는가습자지 한 장 위에 드러누운 채저 광활한 푸른 창공에 점 하나로 우주를 삼키는 태양을 보았는가나는 습자지 위에 누운 채태평양을 건너 보았다네아니 습자지 위에 누워 러시아로 가서다시 출렁출렁거리는 거친 파도와 함께 놀며대양 깊숙이 무엇이 있는지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누운 채 태평양을 건넜다네오가는 길은 그저 구토가 몇 번거기 광활한 만주벌판도거기 광활한 대륙의 기상 앞에꼿꼿한 배달겨레의 찬란한 기상이 있었다네나무로 깎아서 만든 한반도를 뱃전에 달고나부끼는 통일과 민족혼의 상징인 깃발들을 우러르
그냥 저냥 힘들어도 살겠더만김형효일상이 버거운 것은 내가 아니다일상이 버거운 것은 모두가 나라 때문이다일상이 버거운 것은 모두가 대통령의 막장 연기에서부터 시작된다나는 민주당 김남국 사건을 보면서 만년 민주당짓이란 생각을 하며 답답한 가슴을 쥐어 뜯는다아니 뗀 굴뚝이면 안될까? 민주당 만년지지자의 신세가 고달프구나?마음은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빌면서도현실은 멍청한 일상에 다행인 하루를 망중한처럼 즐기며 운다이 시대의 비극민주주의를 입에 담는 윤석렬의 5.18기념사는 내 생애 최고 망언 중에 망언이라는 생각이다5.18 43주년이다이 대
아이가 오고 있다 김형효아이가 오고 있다투욱 툭토옥 톡아이가 오는 소리어디서부터 어디로 오는가하늘과 땅 산과 바다와 들을 가로지른 바람이 되어 오고 있다소리 없이 부르고 불렀던 아이다엄마가 될 사람도 부르고아빠가 될 사람도 부르던 아이다오다가 오다가 오다가가고 가고 또 가버리기에엄마가 될 사람도아빠가 될 사람도이제는 부름을 멈출까삼라만상의 근심을 다 끌어다 놓고 둘이서 도란도란 고민하고 고민하다한 번만 더 불러보자고 하늘보고 땅 보고산과 바다와 들을 가로지른 바람 따라 그 뜻을 따르자고 한 번 더 불러보았다.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와
*오늘은 지난 2018년 민족의 분단선인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겨레의 염원을 풀어나갈 방안을 발표하고 공동의 지향은 평화적인 통일임을 천명한 역사적인 날이다. 지금 정권을 잡은 반역의 무리들이 오늘 워싱턴에서 굴종외교로 민족의 수치를 극대화하고 있는 이 참담한 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보다 먼저 일어났다.어찌 겨레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말과 몰염치한 역사인식으로 국민을 윽박지르며 허세를 부리는 자를 우리의 대표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이 맞이하는 반역의 아침보다 먼저 우리 겨레의 당차고 슬기로운 아침을 열어 나가야 하겠다
아내의 집으로 가는 길김형효나는 한반도 서해 반도 무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쩌다 밤 깊은 날은 초가집 서까래를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고 울며 지내기도 했던 가난했지만 가난을 모르고 살았던 나는 가난을 이기자고 어린 날을 고향에 버려 두고 서울 길을 가서 살았다 그러다가 채이고 밟히며 밟힌 줄도 모르던 날들을 깜짝 처럼 살고 지내다 제 가난은 못 보고 제 궁핍은 알아채지도 못한 채 세상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돕고 살자며 이리 저리 여러 나라를 떠돌다 돌아와 세계 최고봉 사가르마타가 있는 네팔에 가서 만난 네팔에 잘난 기자를 만
아래 글은 2015년 4월 8일 광화문에서 있었던 세월호 추모제에 다녀온 후 4월 10일 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렸던 글이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또 이 반역의 시대를 살면서 여전히 반역의 무리들에게 난도당한 민족사까지 겪어가는 참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찌 감당할까? 처참한 지경에 현실을 살면서 나를 옭죄이며 나를 되새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8년 전 오늘의 광장을 바라본다. 이제 광장의 역사로 광장을 살려 시대를 역행하고 민족사의 왜곡에 까지 모든 참사의 주범은 반역의 무리들이다. 거침없는 반역의 무리들이 저지르는 퇴행을
사람도 자연 그대로 국경에서 바람이 분다.꽃이 피면 꽃바람 불어오고비 내리면 꽃비 내린다.새도 날아오고나비도 날아오르는 봄날땅 위를 걷는 벌레처럼사람도 걷고 있다.1998년 지금은 중국령인 도문, 북녘에 두만강 위 철교를 걸었다. 철교를 걸어 북녘과 중국을 구분 짓는 다리 위 국경선에서 살짝 발을 옮겨 북녘땅을 밟았다. 나는 그렇게 무비자로 북녘에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22개 나라를 잠시 잠깐 다녀보았다. 유럽을 여행하며 속울음을 울었던 적도 있다. 과거 원한을 품고 적대국으로 서로를 침략하고 할퀴고 상처 냈던 이민족들이 지금
세상은 날로 바뀌느라 바쁘고 낯선 나라 음식을 해서 파는 식당에서 바라본다서남아시아 네팔, 인도 식당을 하며 6년째한국 땅에 살고 있는 세계 각국 사람들을 바라본다 서남아시아 음식을 먹자고 찾아오고커리와 찌아를 찾는다이제는 케냐, 체코, 미국, 영국, 동남아시아까지 커리를 내놓으며 단무지, 야채셀러드, 이미 그들은 김치와 삼겹살 맛에도 익숙해진 사람들이다음식으로 통일을 이루어가는 듯하다오직 단일한 민족이라는 북녘동포와 남녘동포만 남남으로 딴 상을 차린 채 세계는 통일로 가는 중이다사람과 사람, 말과 말, 역사와 역사를 공동으로 간직
부모님이 계시는 집김형효 지쳤다몸도 마음도그래서 또 엄마 보고 아부지 보러 갔다먼 나라에서 날 보고 온 아내랑 함께 그렇게 또 일요일 밤길을 달려 엄마 보고 아부지 보러 갔다달도 별도 바라볼 새 없이 달려간 밤길 세 시간내가 본 엄마 아부지와 함께 한 시간 고작 1시간 남짓그래도 오성호텔보다 좋고 그래도 몸이 아파 찾는 대학병원보다 좋고 좋은 최고의 병원이다밤 11시가 다 되어 찾았고아침 병원 가시는 7시까지고작 8시간 한 지붕아래서 숨쉬었고고작 8시간 품에 안긴 듯 한데도60이 다된 아들과 50이 된 며느리도몸과 마음이 모두 맑고
끝없이 소리질러김형효 어디까지일까?언제까지일까?알 수도 없고알지도 못하지만소리라도 질러야 살 것 같아소리라도 질러야 살아 있음을 알 것 같아하는 수 없어서어쩔 수 없어서끝까지 끝 모르고 소리질러언제일지 어디까지일지그렇게 소리라도 질러그래야 살지그래야 외롭지 않을 것 같아외돌아 오는 내 소리가다시 나를 살릴 것도 같고다시 나를 무기력의 중심에서 꺼내 줄 것도 같아입 꼭 다물고 소리질러 입 꼭 다물고 소리지르다 보면더 큰 소리는 바윗돌도 깨부술 파괴력으로 일어설 힘이 될 거야민주라고 자주라고 통일이라고 민족이라고 평등 평화라고 그렇게
하나의 하늘김형효오늘도 걷는다저 수수만년의 하늘 끝에서부터바로 어제처럼 이어온 하나의 하늘그 아랫동네를 걷는다헤어짐도 모르는 하늘에서 하늘까지그토록 장구한 날들 세월들하늘은 숱한 상처들 보고 지우면서도 지금 순간까지다윗동네를 겨냥한 제국주의의 칼끝도그 하늘아래 나불대는 주둥이로 산다윗동네, 아랫동네 모두 한 동네인데무슨 이유 그리 많아갈라짐 없는 하늘 아래 갈라놓은 땅덩이들마치 바다 위에 뜬 부표 같다별것 없는 나라와 나라들제발 얼 차리기를얼빠진 그들이 우리가 빠져 나갈 곳은 없건마는저 하늘 수수만년 세월 속에 갇혀 살면서도 아는
오늘 우리 있었지.내게도 네게도 있었지.항상 내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모양으로그래 그런 모습으로 항상 그렇게있었지.있었던거야.내가 울면 우는대로네가 울어도 우는 그대로어느 날 웃음이 와 웃어주면함께 웃었지.항상 함께 있었던거야.항상 함께 웃고 있었던거야.바다하늘 땅너와 나의 숨길이 맞닿는 허공에서우리의 길을 열기 위해아궁이에 불지피던 어머니처럼솔잎가지를 지고 잔등을 넘던 아버지처럼그렇게 너와 나의 마음 속에 있었던거야.거기 하늘땅거기 하늘바다거기 우리가 살고 있었지.
몽골 몽골 닫히는 입 김형효 세상을 살다가한 두 번 채이다 보면이제는 근성처럼 굳어이겨가는 것들이 있어세상을 살아보면이제는 근성처럼 굳어진 그 이겨가던 일들도 싫어질 때도 오지이겨본들 뭐하나그래 그만두고 보았더니저기 저만치서 가관이야이겨본들 뭐하나가 지은 죄인데나는 죄가 없나 싶다가또 입이 닫혀말은 해서 뭐하나저만치 입 닫고 쳐다보거나저만치 눈감고 듣고만 있거나그런 내게 세상은 지 멋대로 편을 갈라 세워이 편도 저 편도 아니라 믿고 산 나는이 편에도 저 편에도 모두 남의 편인 상태로길 잃은 짐승 마냥 갈 곳 몰라서저만치 강 건너가는
국내 최장기, 최다 공연, 최다 관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록돼 있는 대한민국 연극의 살아 있는 신화 !세계 속의 우리연극 한민족의 대서사시 가 2023년 2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42년 역사와 미래 "를 통해 재조명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1981년 첫선을 보인 이래 1998년 6월, 100 만여 관객을 울리고 웃기면서 4,000회 공연을 돌파, 1996년 ‘국내 최장기’, ‘최다 공연’, ‘최다 관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수록되는 쾌거를 이뤄온 다.는 일제
내 삶을 돌아보면 변변한 직장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다. 나는 16세 중3 때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변변한 직장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매우 오래전부터 이력서를 쓸 때 하루 이틀을 일해도 좋다. 사장을 내가 자유자재로 바꾸며 살면된다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날 이제 멀지 않아 환갑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으니 참 바보였던 것도 같고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니 행복했던 것도 같다.그렇게 살다가 2009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우키라이나에서 만 2년을 보내고 돌아와서 50세 이전에 결혼을
김형효 처음부터 자처를 해서 개도 새끼를 꼴 줄안다고 자화자찬에 열중하는 친일파 자제 정부어린 귀공자로 대접 받고 자라 되어 먹지 못한 버릇만 살아남아이웃한 벗들은 안중에도 없이 제 놈 친한 동무들과 거들먹거리느라 세월 무서운 줄도 모르고 깝치다가 큰 코 다칠 노릇에 국민들만 양치기소년 부모노릇하느라 밤낮없이 근심걱정이 날로 늘어만 간다제 놈이 개처럼 굴며 꼴 줄안다고 꼰 새끼줄이아무렴 사람이 꼰 새끼처럼 꼴보기 좋은 새끼줄 이겠는가?10월 29일 늦은 밤 대한민국을 아비규환의 슬픔으로 몰아넣은 가장 불안한 행정개판안전개판부가 있었
곱던 얼굴이 하나 둘어린 꽃송이 하나 둘서로 부둥키며 엉거주춤오락가락 흔들릴 때먼 손사래치네이제는 안녕이라고이제는 안녕이라고붉은 단풍으로 사그라지네꽃시절 서럽게 오색단풍이바스락거리듯 그리 가버렸다네엄마도 아빠도보드란 얼굴 부끄럼 붉히며활기차던 청년들이 보고픈 날아직 서리 내리기 전이 오색빛 찬란한 가을을뒤로 하고 가버렸네어쩌끄나어쩌끄나남은 한탄만 밤을 지새네안녕 안녕 슬픔도 갇혀버린 지상에서내 부끄러운 기성세대의 그림자를 보네어쩌끄나어쩌끄나잘가라고도편히 쉬라고도입 벌려 말 못하겠네 편집 : 김형효 객원편집위원
지난 2002년 불법체류하다 합법체류 자격을 얻은 뒤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네팔인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필자는 네팔인을 위하여 최초로 한국어 교재인 (THE TWO WAY GUIDE BOOK)을 기획해서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그 노동자와 첫 인연을 맺었다. 교재는 한국인은 네팔어를, 네팔인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훗날 그 노동자의 초청으로 네팔 현지를 방문해 한 달간 머물기도 했다.그 덕분에 뜻하지 않게 네팔어를 배운 나는 네팔인 아내와 결혼하며 깊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지
*26일 아침 막내아우가 전남 무안 고향을 찾아 아버지께서 폭설이 내린 마당을 쓸고 계시는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폭설이 내린 마당을 쓸고 계신 아버지를 사진으로 보고 있는데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길을 내오셨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길 김형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가고 또 오는 동안길을 내고 가는 아버지지금은 엄동설한 영하 10도를 넘긴 아침에도아버지는 그대로 길을 내고 있다대빗자루 꽁꽁 붙잡은 손이 얼어붙는 추위도 아랑곳없이사시사철 길이 되자고 사시는 아버지는 그렇게 툇마루에서 마당 끝까지마당 끝에서 자식들의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내가 사는 나라도 내 나라내가 태어난 나라도 내 나라며칠 전 내가 차린 남의 나라 식당 안에세 사람의 남의 나라 사람이 찾아왔다나는 생김새만 보고 내가 닮은 건지그들이 나의 누이들을 닮은 건지 알 수 없었다그래서 편한대로 네팔에서 시집온 몽골리안으로 생각했다모모라는 네팔 만두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주방에 아내에게 건네고 나도 주방 일을 거들었다그때 들려온 그녀들 웃음소리가 한없이 부러워 눈물이 났다흔히 말하는 또 다른 신분 다문화 가정을 이룬 여성들이다네팔,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시집온 또 다른 조국의
*88세 어머니께서는 나 어리던 학생 때부터 작고 큰 병치레가 잦으셨다. 우리 형제자매는 6남2녀로 다복하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뼈마디가 시린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키워 내셨다. 무난히 길러주신 덕분에 각자의 삶을 그냥그냥하게 살아내고 있지만 가끔씩 고비가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나이가 드신 부모님들께서는 모두 건강하신 편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과거처럼 식사를 잘 못하시니 항상 걱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더욱 어려움을 겪으시다 얼마전 병원에 입원하셨고 음료를 드시는 것조차 힘들어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은
나는 대전역 인근에서 네팔인도레스토랑을 하면서 많은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만나고 그들의 희노애락을 접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가능한 해결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나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들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며 지내고 있다. 때때로 지인들에게 그 불편을 하소연하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받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요청한 도움이라 결국 나의 빚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 나날이 빚을 청산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빚을 늘리며 사는
아버지 전상서.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1936년 9월23일(음력) 태어난 김종국님, 86살을 맞는 동안 숱한 사연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면서 글을 올리는 마음은 설레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합니다. 그나마 올 생신에 부모님 모시고 고구마 케이크를 올리며 네팔 출신 며느리의 축하 노래도 들려 드릴 수 있어서, 더없이 영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8남매 자식들이 번갈이 하듯, 때로는 모두 모여 축하의 시간을 보냈지만 오롯이 저희 부부와 함께 했던 시간은 처음이어서 정말 특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아버님 전상서’,
여기 있다. 통일 새벽 찬 바람 불어오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 얼이 서린 정화수 퍼 올려 흰 사발에 정성으로 담아 장독대 위에 올리시던 어머니의 치성으로 밝게 열린 아침이 있는 날이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밥상에 앉아 따뜻한 밥알에 김치, 나물, 김칫국, 된장국, 생선 한두 마리 따뜻한 눈빛 오가는 밥상머리 말 길이 밥이 되는 날이다.느닷없이 그냥목포역에서 쾌속열차표 끊어 쾌속으로 평양역으로 가 점심은 평양냉면이나 온면으로 먹고 신의주로 가 들길 좀 걷다가 압록강, 두만강 배회하며 사색을 즐기다여기 갈까? 저기
비가 오듯 그렇게김형효 그렇게 오셨으면 좋겠다.비가 오듯이 오셨으면 좋겠다.그렇게 기다리던 님이그렇게 그리던 님이 환한 미소로 오셨으면 좋겠다.가끔은 뜬소문이다가가끔은 헛소문이다가불현듯 찾아오시는 님처럼영문없이 찾아오시는 님처럼우리들에 조국이 낯선 모습으로우리들에 희망이 느닷없이밤낮 가림없이 멀고 험한 길 잇고 잇으며 개벽의 세찬 걸음으로봄날의 아침 비처럼가을 깊은 밤에 밤비처럼 그렇게 오셨으면 좋겠다.우리는 그날 헐벗은 몸으로길가로 나가리라.그날 하루 헐벗어 그 허름한 개벽의 기쁨을 찬란히 맞으리라.통일이 그렇게 오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