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북방의 나라 러시아 국경을 넘는 버스 창문을 뚫고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이미 수명을 다해 사망신고가 내려졌을 버스가 이곳에서 환생해서 한국 학원광고가 그대로 남아있는 채 패어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낯설다. 국경을 통과하고 끝없이 펼쳐진 갈대 우거진 벌판을 달릴 때 버스 안에서는 영혼의 끝자락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 같은 러시아 음악이 감미롭게 흘러나온다.단둥에서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마음이 못내 착잡하다. 분단의 나라에서 태어나 그곳 뒤틀린 환경에서 자라고 나이 들어간 사람에
뛰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몸을 길거리에 내달리게 함으로써 통일의 염원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었다. 뛰는 것을 통해 나와 우리 모두의 소망을 한데 모아보자는 것이었다. 동아시아가 앞장서는 평화시대를 활짝 열기 위해 아시아적 세계관으로 세계를 직접 몸으로 경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역사의 필연성과 희망의 간극을 좀 더 선명하게 보려면 맨몸 부딪침이 중요하다. 진주목걸이를 꿰고 지나가는 가는 실 가닥처럼 보석 같은 작은 평화의 마음을 꿰고 싶었다. 이제 마지막 구슬을 하나 더 꿰면 보석이 될 터인데 보석 하나가 땡그르르 굴러서 그만 장롱 밑
내가 1년여 전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할 때 내가 과연 내가 단둥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단둥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분명히 신의주를 통과하여 평양에서 멋진 밤을 며칠 보내고, 판문점을 통과해서, 내가 마치 큰일을 한 사람인양 의기양양하게 광화문으로 들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내 안에 있는 모든 기를 다 쏟아 부어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오는 것은 성공했는데 오히려 자신했던 북 통과가 압록강가의 안개 속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압록강 앞에서 울보가 되었다. 저
나의 발걸음을 유혹해서 1만 4천여km를 달려오게 한 푸른 강물은 묘한 여운을 머금고 시치미를 뗀 체 흘러 흘러간다. 한번만 더 내게 살가운 미소를 보내준다면 난 그대로 뛰어들려 했었다. 압록은 아침이면 푸른 안개 피어올라 새 신부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태인 양 신비스럽고, 햇살이 비치면 푸른 정장을 갈아입은 여성처럼 당당하다가, 붉은 노을 속에서는 이브닝 가운을 입은 여인처럼 매혹적이다. 압록은 사랑스런 여인처럼 아침, 점심, 저녁, 어제도 오늘도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고 또 내일도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울 것이다.붉은 가을을 품은 푸
나의 달리기가 기대한 것이 나비효과다. 그러나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한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녀린 날갯짓에 수많은 가녀린 나비들이 동조하여 태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평화의 나무를 한그루 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심으면 숲을 이룰 터이고 통일은 그 숲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가녀린 날갯짓 한 번하고, 나무 한그루 심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일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큰 꿈을 꾸는 것이다.나는 이곳 단둥에서 멈추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입북허가가 나오면 돌아
백두가 외로운 눈물 흘리니두만이요 압록이로세.두 줄기 눈물 한반도 감싸 안고한라로 한라로 흐른다.남몰래 띄워 보낸 애타는 사연들슬픔 품어 안고 흐르는 강 압록내 젖은 마음도 강물에 뚝뚝 떨군다.유라시아를 달려온 지친 내 두 발 담가마지막 남은 온기를 더한다.보라! 푸른 안개를 헤치고백두에서 시작하여 한라까지달려가는 저 도도한 흐름을!뜨거운 민족의 열망찬란한 아침햇살로 솟아희망의 물결로 퍼져 오르니이 땅의 모든 강물이여한라에서 뭉쳐 함께 우렁찬새 평화의 시대를 노래하자!한라에서 다시 대륙으로 박차고 나가자!함께 손잡고 두런두런 흐르며
펭귄은 휴식을 취할 때 바다 밖으로 나온다. 얼음 위에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놀다가 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펭귄 무리들은 뒤뚱뒤뚱 줄을 서서 바다로 걸어간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순간 펭귄들은 멈칫한다.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많아 금방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범고래, 상어, 바다표범, 물개 등 천적들도 많기 때문이다. 바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한 마리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이기고 잇따라 뛰어든다.
떠나 있어도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더 사무치게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오지보다도 더 오지 같은 곳,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달려왔어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곳이 있다. 모험심 많은 이조차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엄두도 못내는 곳이 있다. 몽환의 세계처럼 지척에 있어도 갈 수 없는 곳, 대를 이어서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가보지 않은 곳 그러나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강이지만 잘 모르는 강 요하를 건너면서 아버지의 고향과 아버지의 타향살이, 아버지의 그리움을 떠올렸다. 만날 수 없는 것들은
중국의 시 중에 ‘달은 고향의 것이 더 밝네’라는 시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고향이 있고, 고향마다 달이 있지만 사람들이 고향의 달만 사랑한다.” 랴오닝 성의 진저우 지역을 달리고 있는 지금, 중국 하늘에도 달이 휘영청 떠오르니 고향의 달이 그립다. 작년 추석에 이어 올 추석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그러나 지금 마음속에 보름달처럼 꽉 차오르는 꿈을 안고 달리는 발걸음엔 힘이 붙는다. 좀 늦어지겠지만 이 길은 난생처음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 성묘길이다. 나는 1만5천km를 달려서 성묘
9월 19일 그 날, 뜨거웠던 여름의 사나운 열기는 가셨지만 처처히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나의 조국. 할머니로부터 아버지, 나, 대대로 이어진 그리움 반쪽에 가까워지면서 내 가슴속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 거침없는 내 발길이 만리장성 동쪽 끝 관문 산해관을 경쾌하게 통과한다. 이 가을에 익어가는 것은 들판 곡식과 과일뿐이 아니다. 평화와 통일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불가역적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 평화시계와 나의 평화발걸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간다는 것은 기적과 같이 기분 좋은 일이다.친황다오로 들어서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어머니 양수처
다시 넘어졌다. 왼발이 못에 걸렸다고 느끼는 순간 넘어지기까지 0.5초나 걸렸을까?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뒤쪽에 있는 오른발을 빨리 앞으로 끌어 착지를 하려했지만 늦었다. 평소 체력 같았으면 충분히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 순간 길 옆 포플러 가로수에서 이 가을 첫 낙엽이었을 잎 한 장이 나뭇가지에서 바람의 파문을 따라 휘청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감지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해결 능력이 없이 당하고 말 때 생기는 쓴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이제 0.5초 사이에 내가 넘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절절하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 더 곡선의 시간,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모든 욕심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온전하게 나의 두 다리 근육에 의존해서 완주하는 일에 더 집중하다 보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베이징에서 오랜만에 휴식도 취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고 친구도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베이징의 그 유명한 볼거리들을 보지 못했다. 지금 내게 구경하는 시간보다
베이징 입경을 앞두고 원불교에서 대규모 응원단이 찾아왔다. 1년여 홀로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길에는 갖은 역경이 다 찾아오지만 가장 힘든 것은 가뭄에 논바닥 짝짝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는 마음의 건조함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끌어내주는 기쁨을 맛보았다. 고독이란 언제나 자신의 몫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가져다주는 든든함과 따뜻함으로 새로운 힘을 얻는다.끝없는 사막을 한여름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 지나고 나서 찾아온 응원단은 단순한 기쁨이나 위안을 뛰어 넘는 가뭄의
어쩌면 오래달리기가 이 병들어가는 나약한 사회를 바꿀 최선의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바쁘게 사는 것 같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건강염려증에 빠져 의료비나 건강보충제, 비타민제에 돈을 쓴다.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가히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지경이다. 사람들이 모두 오래달리기와 손을 잡으면 더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고 그러면 국가는 메말라가는 국민건강보험 기금이 남아돌기 시작하는 축복을 누릴 것이다.만약 국가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때마다 완주 메달과 함께 장려금 백만 원씩 지불한다면 우리나라는
애당초 내 머릿속에는 제 2안은 없었다. 오로지 하나. 그것은 북을 통과해서 신의주에서 시작해서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통과하여 남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하여 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1년 동안 나는 1만 3천km를 달려서 이제 중국 심장 베이징을 코앞에 두고 있다. 단지 남북의 막혀버린 체증을 뚫고자하는 열망으로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고난도 두 눈 부릅뜨고 맞서서 이겨냈다. 그런 내게 처음부터 제 2안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내 거침없는 발걸음은 이제 산시 성 마지막 도시 광린에 도착했다.
내가 진정 두려운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내 자신에 분노해왔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나를 길 위에 나서게 하였다. 길 위를 달리는 시간, 오직 심장 박동 소리만 들리는 이 순간 내 안의 연탄불 같은 뜨거움이 밖으로 분출되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푸르붉은 뜨거움이 나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지배한다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밖이 어디든 이제는 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래 알 속에 갇혀있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더 준비해서 떠나라고 했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옆에 종잇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눈의 동공이 더 크게 열리며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5위안짜리 지폐이다. 그것을 집어 드는 손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5위안이면 시원한 콜라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마오쩌둥의 초상이 새겨진 작은 돈이지만 그것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중국의 돈은 1위안, 5위안, 10, 20, 50, 100위안 모든 지폐에 마우쩌둥 초상이 새겨졌다.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신사임당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다 골고루 들어간 것과는 다르다.옌안이라는 도시
나는 고집스럽게 내 길을 달리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길 위를 달리면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있다. 아스팔트에 박힌 나사못에 걸려 넘어져 하루 쉬고 아침에 일어났지만 다친 부위인 무릎이 부어올랐고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나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루 더 쉴까 했지만 하루 더 쉰다고 바로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길 위에 나서서 뛰지 못하면 걷고 정 그것도 못 하겠으면 그때 다시 숙소를 찾아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절뚝거리며 한 5km쯤 걸으니 몸이 더워지고 모공이 열리며 하늘의 정기가 그리로 들어온다
8월 들판에는 온갖 곡식들이 익어간다. 벌판에 메밀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무더위 속에서 곡식이 익어가듯 평화마라톤도 알차게 익어갈 때다. 지금 초심을 잃고 흔들리면 뷔페 상 위에서 아무도 손이 안가는 음식처럼 버려질지도 모른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장인이 한땀 한땀 심혈을 기울여 명품을 만들어내듯 한걸음 한걸음에 더욱 마음을 기우려야 할 때다. 이제 저 멀리 대동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비린내가 바람타고 아련히 다가오는 듯하다.메밀밭 저쪽으로는 숫염소 두 마리가 삼각관계가 벌어졌는지 머리통이 터지도록 들이받으며 싸움박질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웬만해서 중국말에 외래어를 섞어 쓰지 않는다. 중국에 들어와서 가장 큰 문제가 소통이었다. 섞어 쓰지 않으니 기본적으로 만국 공용어쯤으로 여겨지는 단어도 못 알아들어 아예 소통을 포기해버리다시피 했다.내 여정을 설명하려고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독일 체코를 거쳐.... 이렇게 이야기 해봐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네덜란드는 하란(荷蘭), 독일은 덕국(德國), 오스트리아는 오지리(奧地利) 등으로 표기하니 처음부터 소통 불가이다.지난번 우루무치를 지날 때 잠시 우렁각시 노릇을 해주었던 휘족 영어 선생님 도도를 만나서 같이
이제 오아시스 마을이 아니라 황허를 따라 생겨난 도시와 마을을 지난다.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중웨이'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으로 개발된 조용한 도시이다.이곳을 달릴 때 서울의 청계천처럼 도시 한가운데 길게 뻗어있는 호숫가의 버들가지가 얼굴을 기분 좋게 때린다.주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한가롭다. 새색시의 얼굴만큼 크게 피어나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 연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초로의 남자가 한구석에 앉아 중국의 퉁소의 연주 소리가 애잔하여 내 발길을 잡아끈다.8월 초 벼는 고개를 곧추 세우고 한낮
"황하가 하늘로부터 떨어져 동해로 가나니, 만 리 강물은 가슴 한복판으로 쏟아져 들어온다(黃河落盡走東海, 萬里寫入襟懷間)"는 이백(李白)의 '증배십사(贈裴十四)'를 읊조린다.이백이 이 시를 황하의 어디쯤에서 보고 지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내가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사파토우 절벽 위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슷한 곳에서 바라보고 이 시상이 떠올랐을지 싶다. 지금 내게도 이 시상이 머리에 떨어졌는데 한 발 늦었다. 한 발이 아니라 늦어도 너무 늦었다.누렇다기보다 오히려 불그스름한 황금빛 강물은 아직 상류라 거대한 모습을 보이진 않지
슬픔에 옳고 그름이 없다. 눈물만큼 순수하고 빛나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유 없어도 우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남의 슬픔을 조롱하지 마라! 얼음을 부수고 길을 만드는 쇄빙선 같은 숭고한 삶을 살다가 한 순간 소용돌이치는 물결에 휩쓸려간 뜨거운 사내를 생각한다. 황량한 벌판에 내 눈물 몇 방울 떨어뜨려야 비옥해지지 않는다. 눈물이라도 흘려 떠나는 그를 마음으로 안고 보내야 했다.눈물을 흘리고 닦으려하니 또 눈물이 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숭고한 삶을 살다간 분만큼이나 눈물이 난다. 내게는 어머니만큼 숭고한
우웨이에서 하루 쉬었다. 이곳도 실크로드 중요도시이고 역사도 깊어 유적지도 많지만 나가서 구경할 기력이 없다. 하루 종일 잠자리에 누워있어도 도무지 몸이 상쾌하지 않다. 하루 푹 자고나면 좋겠는데 온 몸이 각성된 상태라 잠도 깊이 안 든다. 나가서 밥 사먹는 것도 귀찮아서 호텔방에서 아침은 라면, 점심은 지난번 교무님들이 사온 곰탕국물을 데워 먹었다. 한 일주일 쉬면 좀 나으려나 모르겠다. 이 장정이 끝나면 아마도 석 달 열흘은 쉬어야 좀 피로가 가실 것 같다.우웨이는 하서회랑의 주요길목이다. 이 길목을 장악하는 민족이 서역과 실크
어느덧 7월 말이다. 하루하루 피로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사막의 무더위 속을 몇 달 달리다 보니 이제 기력이 많이 쇠해졌다고 느낀다. 눈을 뜨고 길 위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진다. 오늘은 또 어떤 낯선 길에서 이 무더위와 체력의 고갈과 고독을 견디며 앞으로 나갈까?지금 무위(武威-우웨이)를 향해 달리면서 노자의 무위(無爲)를 명상한다.중국은 신 실크로드의 전략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일환으로 이곳 신장, 간쑤 성 일대의 도로를 선진국 수준으로 잘 포장해 놓았다. 도로는 선진국 수준인데 자동차문화가 오래지 않아 운전자 수준은 걱정스러
사막에서도 운이 좋으면 노랑나비를 볼 수 있다. 사막의 야생화 향기가 날아 나비를 유혹한 걸까? 아무도 노랑나비에게 사막의 삭막함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비는 사막이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인지 싶었나보다. 나비는 이곳에 진한 그리움을 찾아 날아들었다. 황량한 사막의 노랑나비가 애처로워 보이지만 외롭고 고된 여행길 길동무가 되어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언제부터인지 나는 저 노랑나비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건 아주 오래되었다. 아마도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인지 모른다. 노랑나비가 되어 푸
지구상에 가장 고독한 길! 신장 우르무치에서 감숙성 란조우까지의 길!그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달리다보면 희망에 부푼 꿈을 단번에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태양, 굳게 다짐한 초심을 사정없이 날려 보낼 것 같은 거센 바람과 마주 선 초라한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그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통증과도 비교할 수 없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무료함이 영혼까지 갉아 먹을 것 같다.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피운 야생화, 내 모습 같아서 발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삶은 사막을 건너는 일이다, 나는 지금 끝없는
젊은 배우와 노시인스산한 바람이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 내 사유(思惟)도 잠 못 이루고 혼돈 속에 뒤척인다.한 젊은 배우가/ 태양을 향해 나는 부나비가 되어/ 혼신의 연기를 하고/ 커다란 객석엔/ 초가을 처음으로 떨어진 낙엽이 되어/ 노시인이 땡그랑 홀로 앉아 있었다.어느 틈엔가/ 젊음의 애환을 불사르듯/ 신명에 홀린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는 밝아오는 조명과 함께/ 내가 되었고어렴풋한/ 젊은 날의 향수 속에/ 당신을 찾기라도 하듯/ 심오한 표정의 노인은/ 추억만큼 퇴색한 백발을 쓰다듬으며 내가 되었다.어느덧 마그
만리장성도 벽돌 한 장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이 그렇다. 한걸음부터 시작한 것이 벌써 만 천여km를 치달려 왔다. 마침내 다툼과 고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위대한 길’ 실크로드 첫 관문 자위관을 만났다. 이 길에서 동서양 문명과 문화가 만나서 소통하고 자극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왔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길 위에서 명멸하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며 끊어질 듯 하다가도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다.자위관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자 외부 세계로부터 중화를 지키는 최전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키웠다./ 양쪽 끝을 단단히 묶어/ 웬만하면 풀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대나무 숲 사이로 여울물은 흐르는데/ 슬픔 일어나는 대지를 쿡쿡 밟아 누르며/ 고통의 간이 벤 희망의 언덕을 박차고 달린다./ 진저리 쳐지는 절정의 속도로 치달릴 때/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너풀대며 걸리적거리고 나를 주저앉힌다./ 구름 한 점 없는데 먼지구름이 속절없이 덮쳐온다.바닥은 햇살 받아 달구어져도 늘 음습하고 천한 공간/ 넘어지지 않아도 뒤쳐진 길이 아득하기만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그곳으로 돌아가네그 구름 편에 편지 한 장 부쳐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돌아보지도 않네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타국은 서쪽 끝에 있네따뜻한 남쪽나라에는 기러기 오지 않으니 누가 계림으로 가 내 소식을 전할까?“이 시는 혜초가 남천축국에 있는 산속 절을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쓴 왕오천축국전에 남긴 5개의 시 중 하나다. 이 시는 단순히 시가 아니다. 이 시가 그의 여권이 되었고 사후 1300여 년 지난 후 한국국민들에게 보내는 부고가 되었다. 이 시가 그의 사
이제는 아무 것도 탓하지 않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야 꽃이 피고,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려야 과실이 익는다는 것도 알았다. 60이 넘으니 비로소 결단력이 생기고, 조급증이 사라지고, 조금씩 나아가도 끝없는 세상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이 되어야 비로소 여름이 온 걸 알게 되니, 60이 넘으니 비로소 삶의 뜨거움이 느껴진다.사막 길은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다, 내 지난 인생여정과 닮았다. 오아시스 마을과 오아시스 마을을 징검다리 삼아 달려가는 길이다. 사실 유라시아를 달린다는 것은 개인 도전정신이나 체력 문제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