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린다. 한때 진정한 보수로서 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반면에, 경쟁 자본주의 체제에서 승리한 기회주의 정치인의 전형이란 견해도 존재했다.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힘을 탈당한 정치인 이준석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이탈한 세력과 함께 제3지대 정치세력을 구축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10%대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락하자 평소 자신의 정치노선과 상충하는 태도를 보인 결과다.글쓴이는 그러한 견해들에 일면 수긍하는 점도 있고 동
흔히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바로 그 해 말 남북 만주 일대를 쓸어버렸다. 이른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경신참변이다. 만주 일대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마을 전체를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는 그 참혹한 장면이 세밀히 기술돼 나온다. 조선인 마을 소학교 교사를 잡아다가 피부 껍질을 벗겨서 죽인다.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2019)에도 그러한 대사와 처참한 광경이 나온다. 만주 일대에
이재명 대표는 2022년 대선 공약으로 위성정당을 방지하고 연동형 비례제로 한국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위성정당 방지법만 발의한 채, 더불어민주당은 여태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했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어느 유튜브 방송에선 “선거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병립형 회귀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재명 대표의 그 발언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둘로 쪼개졌다. 시민사회의 불안과 분노도 극에 달했다.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로 치를지 아니면 준연동형 비례제로 치를지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의 고민 아닌 고민이 깊었다. 국민의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상품시장뿐만 아니라 자본·노동·서비스시장까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 결과 이민자들이 북서유럽으로 대거 유입됐고 오늘날 다인종 다문화 현상, 인종 혐오와 차별, 그리고 극우 정치세력의 준동을 초래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서서 극우 세력의 준동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북서유럽은 극우 세력에 맞서 ‘적극적 시민’을 길러내는 ‘시민교육’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가장 먼저 독일은 70년대부터 논쟁성 짙은 사회 현안을 교실 수업으로 끌어들였다. 교사는 특
프랑스 시민교육은 1879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쥘 페리(J. Ferry)가 공교육에서 가톨릭 사제들을 배제하고 초등의무교육을 도입하면서 시작했다. 이른바 쥘 페리는 프랑스 공교육을 보통교육으로 대중화하고 세속화한 장본인이다. 나아가 프랑스 공화국 시민으로서 ‘국민통합’을 추구한 프랑스 시민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쥘 페리의 공화국 시민교육에 영감을 고취한 계기가 콩도르세(Condorcet)의 공교육 보고서였다. 콩도르세는 일반 보통교육을 역설했는데 말년에 저술한 책이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다.이 책에서 콩도르세는 “모든 인
20대 대선(2022. 3. 9.)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의 표 차이는 0.73%(24만 표)였다. 선거를 코 앞에 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모두 40% 동률을 이루거나 1% 차이로 아슬아슬했다. 정치인 이재명이든 심상정이든 아니, 수많은 국민은 선거 패배가 가져올 파국을 충분히 예상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갈등과 고통의 언저리엔 직접적으로 두 정치인의 잘못이 아주 크다.15대 대선(1997. 12. 18.) 당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과 DJP 선거연합을 통해 ‘공동정부’를 구성했다. 1.6%(39만 표) 간발의 차이
독일은 빌리 브란트 사민당 집권 시기인 1970년대 초반부터 ‘민주시민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독일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곧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가리킨다.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독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으로 규정했다.‘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란 표현은 독일, 오스트리아 정도이고 북서유럽 국가에선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1970년대 격렬한 좌우 이념 논쟁 속에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
검찰의 ‘썩은 꽃’ 특수부 정치 검사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공안부 정치 검사들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가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이다.2000년을 전후해 제도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극악한 간첩 조작을 구시대 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제도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시민권의 진전을 가져왔고 동시에 고문과 조작 수사는 통하지 않았다.일제강점기 시절부터 1990년대까지 수사는 곧 고문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 서울시 양천경찰서 형사들이 저지른 '날개 꺾기' 고문 수사를 끝으로 대한민국 경찰
‘민주시민교육’과 직접 관련 있는 사회과와 도덕(윤리)과, 그리고 국어과와 역사과를 중심으로 각 교과에서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성과는 현실적으로 매우 미약하다. 무엇보다 각 교과 내용 속에 ‘민주시민교육’ 내용 요소가 어느 정도 녹아 있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다.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정문성 외, 2018)에 따르면 실제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선 80% 가까이 ‘’학생 자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86.48%가 ‘민주시민교육’을 ‘준법 교육’ 내지 ‘질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보 정당의 정치력이 미약한 외적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인 ‘분단 상황’이다. 분단 상황은 극우 정치 세력이 언제든 준동할 수 있는 유익한 토양이자 자양분이다.대한민국 정당 정치가 거대 양당제 대결 정치로 치달으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따라서 보수를 참칭하며 자유를 오용하는 극우 정치 세력을 거세하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 세력(보수 정당)이 집권할 때 진보 정치 세력이 탄압받지 않고 싹을 틔우며 성장할 수 있다. 50년대 말 진보당 탄압과
2020년 5월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사태’ 당시, 조중동 수구 언론을 비롯해 한국 사회 다수 언론이 보인 행태는 기레기 수준을 넘어 참혹했다. 심지어 과거 사회 운동으로 명망을 쌓았던 진보 인사들조차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의원의 ‘위선’을, 나아가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정대협 후신) 활동가들의 ‘도덕성’을 의심하며 질타했다. 그러나 ‘윤미향 사태’는 검찰의 불순한 의도(?)와 언론이 조작 날조한 혐의가 짙다.사건의 발단은 이용수 피해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검찰 수사 자체는 기획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제2의
냉전과 분단 상황은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 국가에서 끊임없이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집권 12년 동안 인권을 유린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김원일이 쓴 『마당 깊은 집』(1988)은 전후 50년대 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어린아이의 눈으로 묘사한 소설입니다. 군경을 앞세운 이승만 철권통치의 민낯을 관찰자 시점으로 빼어나게 잘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피난 온 시민들을 항시 감시하고 새벽녘에 느닷없이 군홧발로 집안으로 쳐들어와 때리고 연행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습니다.올해 작고한 최일남 작가가 쓴 『거룩한 응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 신문은 모두 친일파들과 관련된 신문입니다. 적어도 세 신문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김성수, 방응모, 홍진기)이 세우거나 관련된 신문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이 자행되던 1970년대 중반 사건 당시 200명 가까이 양심적인 기자들(대부분 『동아일보』 기자들)을 해고했던 신문입니다.그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87년 6월 항쟁 이후, 7만여 국민을 주주로 받들어 만든 신문이 바로
아나키스트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고 비극은 반복됩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더 나아가 역사를 모르면 도덕적인 삶이 어렵습니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분별하려면 그들의 과거, 바로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면 됩니다. 욕망하는 삶에 갇혀 지혜를 향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그리고 지혜의 눈을 닫지 않도록 매 순간 성찰이 필요합니다.왜 사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문학이 세인의 관심을 받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2000년대 들어 북서유럽 국가 내 극우 정치 세력이 급부상하였다. 2022-2023년에는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이탈리아 각국에서 극우 정당들이 원내 제2당으로 의석수를 확보하며 빠른 속도로 정치세력화하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현실이다.이 점은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형 복지국가인 북유럽도 마찬가지다. 2023년 4월 2일, 200석을 두고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선 집권당 산나 마린의 사민당이 우파 정권 국민연합당(48석, 20.8%)에 권력을 내어주게 됐다. 사민당은 득표율이 2019년(17.7%)에 비해 2023년
1981년 9월 1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밤늦게까지 교육학과 동기와 서로 생각을 나누었다. 그 친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졸업 후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해 목회자가 되었다. 그날 주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엔 다방이 오늘날 카페 구실을 했다. 밤늦은 시각까지 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발현하는지 각자 자신이 품었던 평소 생각을 주고받았다.친구와 헤어져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밤 12시 자정이 다 되었다. 누님이 놀란 표정으로 형사들이 찾아왔었다고 전했다. 정보과 형사들은 온종일 나를 뒷조사하고 다녔다. 사범
7월 18일 서이초 교사 비극이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그 50여 일 동안에도 교사들 죽음이 똑같은 사유로 계속됐다. 어제도 대전과 청주에서 40대 교사와 3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이젠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교사가 생을 달리한 소식을 접하는 건 아닌지 자못 두렵다. 학교를 떠난 글쓴이도 이럴진대 현장에 있는 교사들 마음은 어떠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양천구 S초교 교사는 두 아이 엄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족의 죽음은 가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지난 서
글쓴이가 박영신 선생을 만난 것은 용산고등학교 시절(1998-2001)이다. 첫인상이 시인 김수영을 연상하게 했다. 가치 판단을 할 때 눈을 크게 뜨며 단호한 모습이 영판 그러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화력이 높았던 것과 달리, 학교 비리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용산고 – 서울대 출신 교사와 과학고에서 전근해 온 서울대 출신 교사들로 구성된 '용산 마피아'와 맞서며 재임 기간 내내 학교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20년이 지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예나 지금이나 '모럴리스트 시인 김수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S초 새내기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 옆 보조공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겨우 스물네 살 2년 차 꿈 많은 교사였다. 비극이 발생하기 2주 전, 자신이 쓴 일기장엔 “숨이 다 막히고...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썼다.2017년 김은지 선생님은 경기도 의정부시 H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담임을 맡고서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밤낮없이 학부모 민원 전화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이 컸다. 2018년과 2019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아이들과 교
스물네 살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노조를 통한 동료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실에 공격적 성향을 지닌 학생”이 있었고 “학교 폭력 관련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교실에 들어갈 때 환청이 들릴 정도"로 새내기 교사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지난해보다 10배는 더 힘들다"고 동료 교사에게 토로했다.이런 사실이 일부 전해지자 전국 초등 교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다.어떤 선배 교사들은 새내기 교사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미안해했다. 교사를 향한 학교 폭력
운암 김성숙은 승려 출신 항일독립운동가다. 승려 신분으로 다른 스님들과 함께 3·1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중국 망명 후 의열단 선전부장으로 맹활약했다. 무명의 항일독립투사 김산(본명 장지락)은 운암에게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했다.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 “1922년~1925년 나를 공산주의자로 만든 사람은 김충창”(김성숙의 이명)이 바로 그 대목이다. 젊은 날 김산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운암 김성숙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도산 안창호를 꼽았을 정도로 운암은 김산에게 지대한 존재였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교육자 3인은 백남운, 이극로, 이만규 선생이다. 세 분 모두 코뮤니스트가 아님에도 월북 인사라 대중에겐 잊힌 인물이다. 세 분 가운데 이만규 선생이 해방 공간 펴낸 『조선 교육사』(상, 하)는 한국 교육사의 정초를 닦은 교육사학계 기념비적 역작이다. 한국 교육사 관련 어떠한 책도 『조선 교육사』(상, 하)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1946년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 사건에 맞서 「국대안 반대」 투쟁을 맨 앞에서 이끌었던 인물 또한 이만규 선생이다. 이만규 선생은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교육 분
짐승 세계에선 약한 자가 살아남기 어렵다. 어미도 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준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선 정반대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함께, 약자는 늘 공동체의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다. 모든 가정에서 튼튼한 자녀보다 허약한 자녀에게 부모는 더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갖는다. 학교 선생님도 스스로 잘하는 학생보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짐승 세계와 인간 세계의 크나큰 차이다.2021년 12월 3일부터 시작한 「전장연」(「전국 장애인 차별철폐연대」의 약칭) 출근길 시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
1993년 교육부에서 펴낸 『민주시민교육 장학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기술돼 있다.“만일 교육은 잘 되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 시민자질의 함양에 있다. 모든 것에 성공하고 이 점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육 전체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엔 교육의 목적을 인격을 갖춘 자주적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교육의 목적에 실패하고 있다. 대부분 시험형
〚좋은 세상 연구소〛 산하 다섯 번째 강의 주제는 「‘근대 민주 인민’의 탄생, 동학사상, 동학 농민 혁명」이다. 지난 토요일(4/22) 「공익공간 삼각지」에서 열렸다. 강사는 박용규 박사(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로 독립운동사 전공자다. 그는 최시형, 전봉준을 위시해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한 농민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그는 70년 동안 야산에 방치된 독립유공자 이윤재 선생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활동한 참 지식인이다. 글쓴이가 알기로 일본
2010년대를 전후해 유럽 사회에 극우 정치 세력이 노골적으로 준동했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급부상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2013년 창당한 「독일 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은 EU 경제체제 해체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등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2010년 그리스가 IMF 구제금융으로 휘청거렸다. 2011년엔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등 유럽 전역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잔뜩 먹구름
80년대 신자유주의 사조가 유럽 사회를 강타하면서 노동시장 또한 국가 간 장벽이 무너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북서유럽 국가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형성돼갔고 동시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범죄가 증가했다.그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 증가와 함께 청소년 투표율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떨어져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설상가상으로 80년대엔 극우 정치 세력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북서유럽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고 90년대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온 시대
2022년 12월 8일 제2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과 화해위」)는 1989년 전교조 사태를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교사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527명 교사를 강제 해직시킨 사건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1989년 당시 노태우 군부정권은 교사가 노동조합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일부 교사를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었다. 1989년 3월 충북 제천 제원고(현 제천디지털전자고)로 초임 발령을 받고 일본어를 가르치던 강성호 선생이 대표 사례다. 1989년 5월 28일 전국교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8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저버리고 여전히 제국의 언어를 쓴다. 학급을 ‘반장’으로 부르고 을 ‘수학여행’으로 부른다. 를 ‘소풍’으로, 진급 를 진급 ‘사정회’라고 한다. 너무 익숙한 탓이다. 어디 그뿐이랴! 담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나 을 ‘훈화’라고 한다. 나아가 를 ‘결석계’, 를 ‘휴학계‘, 를 ‘간담회’라는 표현도 그렇다.학교 바깥도 예외는 아니다. 를 ‘무데
엊그제 서울시장 오세훈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했다.“1년 넘게 지속된 지하철 운행 지연 시위에도 시민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극도의 인내심을 보여줬다. 그러나 서울시장으로서 이제 더 이상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경찰력을 활용해 ”시위 현장에서 단호한 대처 이외에도 민⬝형사상 대응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법적인 조치를 다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극도의 인내심”을 언급하며 “더 이상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방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오시장의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1989년 전교조 탄압이 ‘국가가 자행한 폭력’임을 선언했다. 지난 2022년 12월 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보도 자료를 통해 1989년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 존재했고 노골적으로 자행됐음을 천명했다. 다시 말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노태우 군사정권이 저지른 탄압이 “국가폭력에 따른 인권침해”임을 분명히 밝혔다.전교조는 교사들이 ‘자주성’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공권력의 탄압을 뚫고 건설한 교사 노동조합이다.
1979년 10⬝26 유신의 핵이 제거되기 직전 가을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캠퍼스 풍경은 메마르고 스산했다. 강의가 없는 빈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중앙도서관에서 내려다본 장면은 충격이었다. 학생회관 옥상에서 사복경찰이 시위 주동 학생을 마구 구타하고 축 늘어질 때까지 발로 지근지근 밟고 있었다. 그 순간 그 모습을 도서관에서 함께 쳐다보던 어떤 여학생이 “개**들”이라며 분노했다.유인물이 흩뿌려지고 학생들이 학생회관 주위로 몰려들기도 전에 사복 경찰들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