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가 촛불에게-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을 그리며 권말선나는 오래전부터 이날을 기다려왔소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기 그대와 함께 있소나라가 식민의 굴레에 떨어졌을 때나는 광야를 내달리며일제를 향해 한 발의 총이라도 더 쏘려독립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라도 더 쓰려했소독립은 나의 몸부림, 나의 전부였지만그날을 안아보지 못한 채일제의 그물에 갇혀 죽음을 맞았소독립을 이뤄줄 영웅, 속박을 끊어줄 초인을 기다리며해방은 되었으나 독립은 이루지 못해대통령이 매국노, 반역자이길 몇 번이요그러니 다시 독립을 외쳐야 하오나도 죽음에서 일어나 다시 독립을
단풍은 왜 권말선 단풍은 왜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나봄엔 따순 바람이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지단풍은 선물봄바람 북으로 날아가여름 한 철 같이 뛰놀다손잡고 데려 온 동무알로록달로록고운 단풍 보니봄바람 얼굴도저리 고왔겠구나우리도 너희처럼고운 것 어여쁜 것만서로 나눠야겠네그렇게 살아야겠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무등이왓에서 권말선아이가 무등 타고 춤추듯엄마닭이 고이 알 품 듯사랑스럽고 따스한 자태의 무등이왓그러나 4.3항쟁 때학살의 불길에 150호 그 큰 마을전부 타 없어지고 이제는표지판과 쪽대와 팽나무만무성한 바람 안고간간이 밭을 일구는 곳무등이왓에서 나고 자라 11살에 4.3항쟁 겪으며토벌대 학살 피해 겨우 살아난 86세 홍춘호 할머니그때 이야길 들려주신다무등이왓 팽나무 지금 한 500살쯤 됐을까옛날엔 나뭇가지가 길을 다 덮을 만큼 자랐고뿌리가 땅 우로 얼마나 높이 솟아났는지층계 오르듯 놀고 곱을락*도 하며 놀았지여름엔 멍석 깔고 앉아
당신은 마루타다 권말선 당신은 생체실험 대상,일본의 마루타다일본 정부든 도쿄전력이든원전 마피아(IAEA)든괴랄한 과학자 혹은 정치꾼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돈에 눈먼 작자들이 내뿜는방사능 오염수에 이제 곧 중독될당신은 마루타다동그란 지구 안에서바다와 숲과 하늘은한 몸방사능 오염수 투기라는 만행에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으니실은 전 지구가일본의 마루타다동아시아 이웃나라에 전쟁침략 하던 자들전쟁 틈에 마루타라며 생체실험하더니쪽발이 야만의 습성 여전히 못 버리고세슘과 삼중수소와 플루토늄이름도 낯선 수 천의 방사능 찌꺼기로모양만 바꾼 생체실험
지구여, 분노하시라 권말선 풀과 꽃이 만발한 들판위를 달리는 사슴곁을 흐르는 강그림자 드리우며 나는 기러기날갯짓 받쳐주는 하늘기운차게 솟은 산비우고도 채운 사막감싸 안은 채 넘실대는 둥근 바다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온갖 생명, 수십 억 인류그 모두를 위해어머니여, 지구여이제 분노하시라다함없는 갸륵함으로 넘쳐흐르는 사랑으로부디 분노하시라인내하고 극복해야 할 불행이건만오히려 무기 삼아어머니지구의 목숨 통째로 위협하는일본 원전마피아들의 야만 앞에 안전한 생명은 아무도 없나니떨쳐 일어나시라분노의 회초리단단히 드시라어머니지구의 배꼽 속으로핵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권말선‘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실은우리 민중은오욕에 물든 역사한시도 잊은 적 없다그러나 저 민족반역자들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인간이길 바라며반성하길 바라며 두루뭉술 넘겨온 탓으로시대는 안타까이거꾸로, 거꾸로만 흐른다과연 지금이 2023년의 대한민국인가?아니, 아니다거꾸로 거꾸로 흐르다 결국1909년의 하얼빈역까지 밀려왔다.열차가 멈추고 이토 히로부미가 내린다세상 다 가진 듯 우쭐대는 기름진 얼굴아니, 아니자세히 보니 윤석열이다아니, 아니다더 자세히 보니온갖 매국노들의 얼굴이 합쳐진괴물의 형상이다이게
촛불이 꿈꾸는 나라 권말선선생님!마른 잎 우르르 떨구는늦가을 나무를 올려다보며우리도, 우리 촛불도저 나뭇잎처럼 되면 좋겠다고그렇게 생각했습니다저 많은 잎새를 보셔요한 점 망설임 없이 땅으로 떨어지고새봄을 꽃피우기 위해 썩기를 마다하지 않는선생님, 우리도 지금 그 나뭇잎이어야 합니다한 장의 나뭇잎은 결코 거름이 될 수 없습니다한 줌의 나뭇잎으로도 턱없이 모자랍니다길고 매서운 겨울 다 덮을 수 있게모이고 또 모여야 합니다털어내고 긁어내고 짓밟아 없애려 해도끝내 어쩌지 못할 만큼 넘쳐나야 합니다그래야 새순 돋는 새봄을 만들 수 있습니다선
덕분에 사는 삶 권말선사람들 덕분에 산다쌀과 찬거리책과 꿀과 차 그리고잘 있냐는 전화 한 통그 따수운 사랑 덕분에무사히 하루하루를 산다사랑도 강물 같아서유유히 흘러야 더 아름다운 법그러니 그 맥을 이으며 살자사람들에게서 받은 정을누군가에게로 계속 흐르게 하자내게서 끊어지지 않게 하자세상 의지할 곳 찾지 못해홀로 떠나는 사람들 다시는 없어야겠기에36.5℃ 사람의 온기태어날 땐 그저 받았으나살면서는 정으로 지키는 온기오늘은 누구에게 나눌지내일은 무엇을 나눌지더 고민하고 더 궁리하자벗이여, 우리 그렇게 살자덕분에 살아온 삶이었듯더불어 살
내 감나무에게 권말선너랑나랑은동무였다어린 발돋움어린 매달림다 받쳐주고다 받아주던너는 내 동무였다너에게만은낯가림 모르던 꼬마늘 네 근처를 뛰놀던 아이우린 서로 만문은 ¹동무였다봄이면 왕관 같은 꽃을겨울엔 달디 단 곶감을여름엔 네가 툭 쳐서 떨궈준 옆집 살구를줘 먹으며 자랐다, 또네 긴 가지 그늘에 숨은딸기랑 무리 ² 도 따먹으며아무 때나 올려다보며홍시 달라 칭얼대던밟고 기대고 매달리며올라가겠다 졸라대던내게 너는보모였고놀이터였고또 선생이었다나이 오십 넘어서도여전히 너는 나의 동화고향집을 추억하노라면맨 먼저 떠오르는 갈망그래 나는 아직도
당부- 2022. 10. 29의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안타까이 떠나시는 그대여부디 울지 말고 가시라통한의 울음은 우리의 몫산자의 참회로 남겨 두시고그대여 부디아프지 않게 가시라그대 잘못이 아니다그대 잘못이 아니다그대 귀한 목숨 외면하고 만이 모순 가득한 사회 구조바꿔야지 바꿔야지 다짐하면서도기어이 여기까지 오게 한그대 나이를 훌쩍 지나 온나의, 어른들의 잘못이다그 날 그 참사의 자리그대가 당했던 희생의 자리그 혼잡함을 이용해권력의 끈을 더 동여매려던한 줌 권력 쥔 자들의 책임이다어쩌면 수십 년 세월 동안욕망에
아로니아 밭 농민에게권말선아침마다아로니아 밭지나며멈춰 서서 바라보며빈밭그니는 왜 오지 않을까?새까만 진주알 쪼아 먹다발자욱 소리에 놀란참새떼들 항꾼에 푸드덕날아가더라고어느 아침 바쁜 당신을 붙잡고떠벌떠벌 일러주고 싶은데탱글탱글 야물대로 야물어수확을 기다리던 열매들 하루 이틀 사흘…마침내는하나 둘 서이 너이…지쳐 떨어지는 동안도여전히 그니 오지 않네야속한 애석한 노릇이네가지가 휑해진 냥이눈에 띄게 는 날은아로니아 밭 앞에한참 서서내년 봄을 걱정했네잡초 무성해진밭아로니아 밭곁을 지나며나무와 나 사이세 걸음 정도빈 공간일랑 접어버리고손가
아니다, 이건 아니다- SPC 노동자의 참변에 분노하며권말선자본가여, 그게 아니다네 침 묻은 돈으로우리 땀을 샀다고 해서우리 자존심, 인격까지우리 피, 목숨까지다 가진 게 아니다너희 돈에는 계산만 있지만우리 땀에는 정성이 있나니너희 돈보다 우리 땀은몇 배 귀하고 값지다그러니 돈을 쥐고 흔들며우리 목숨 노리지 마라자본가여, 거울을 보아라매일 자기를 닦고 돌리던노동자의 핏방울에 놀라기계도 멈춰 서서 꺽꺽 울었을노동자의 붉은 주검 앞에달랑 천조각 한 장 가려 놓고동료의 참변에 솜털마저 얼었을또 다른 노동자를 불러 세운 너는, 너는 사람이
반찬을 포장하며 먹음직하게 만든 반찬을 정성스레 포장하며 내일 가격표 붙여 대형마트에 진열되기 전 오늘 뜨거운 불 앞에서 열심히 볶은 내가 퇴근할 때 이 반찬을 가져가 가족과 한 상에 둘러앉아 맨 먼저 먹어볼 수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했지 그리고 이 지역 모든 노동자가 퇴근길에 원한다면 오늘 자기 노동의 대가와 우리 공장의 반찬을 바꿔 갈 수 있다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지 집을 짓는 노동자는 집을 빵을 만드는 노동자는 빵을 옷을 만드는 노동자는 옷을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다면 또 집으로 옷을 빵으로 집을 옷으로 빵을 바꿔 가질
이제 산딸기는 없네권말선여기 맨살의 흙언덕,초록이 커튼처럼 펼쳐진 위로새빨간 열매 오돌토돌 박혀예뻐라! 탄성이 절로 났던산딸기 무성했다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자리쌀은 돈이 되지 못해도돈은 쌀이 되는 세상에산딸기라고 별수 있겠나?쌀과 감자, 소나무와 민들레싹싹 뽑아내고 들어선 산업단지시뻘건 잇몸 드러내며‘내 땅이야!’ 외쳐봐도산딸기, 저 어린것이별수 있었겠나?지금보다 더 예전엔농사짓던 사람들이공장으로 쓸려갔지만지금은 공장들이점령군처럼 저벅저벅논밭과 야산을 밀고 내려오지쌀만 먹고서야감자만 먹고서야산딸기만 먹고서야어찌 살 수 있겠냐며공장
노동자 되기권말선 새로이 공장에 취직하고얼마 지나지 않아입사 동기 몇이 그만둔 뒤누군가 거긴 텃세가 심하다 하고 또 누군 여긴 텃세는 없다고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 하고 누군가는 돈 벌어먹기 힘들다 하고누군가는 전쟁터라 하고한 달 또 두 달나 자신 철새가 되지 않기 위해텃새의 무리로 들어가기 위해발버둥 치는 한 마리 작은 새처럼 느껴질 때때로 버거울 때어쩌면 나는지나온 내 삶은온실 속 화초였던가되짚어 보기도 하지만이것이 나의 전투라 여기며온몸으로 짜낸소금꽃이좋은노동에 지친 무표정 속에서간간이 건져 올리는웃음꽃이좋은나도 이제 노동자
전두환이 죽었다권말선 평소 미워하던 사람이라도설령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그의 죽음 앞에서는잠시 명복을 빌어주는게우리네 순전한 마음인데살인마, 군부독재자였던90살 놈의 죽음 앞에명복은 커녕 분노를 보낸다왜 죽였느냐왜 끌고갔느냐왜 짓밟았느냐물음에 대답도 없이무릎꿇는 죄닦음도 없이고개를 빳빳이 들고벼락도 맞지 않고왜 지금껏 멀쩡히 살아왔느냐고소리질러 본다화를 내본다왜 저놈을 사면해줬는가마지막 분, 초까지 감옥안에서 살며부끄러움이 뭔지 알게했어야 했는데저것도 인간이라고 경호를 해 주고착취와 은닉의 재산으로 대대로 뻔뻔하게 잘 살게 하느냐고삿
갱년기 권말선 처음 뵙겠습니다선배 언니들께말씀은 많이 들었어요언제 오실까 어떤 모습일까얼마나 머무르실까두루 궁금했는데막상 뵈니 초면이라 그런지살짝 당황스럽군요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서두르지 말고천천히 친해지면 좋겠어요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때때로 당신 탓을 하더라도또 때로 당신을 외면하더라도너무 서운해 마셔요시나브로 생겨난마음의 여백에 움찔 놀라긴장과 적응을 반복하며익숙해지려 애쓰는 중이랍니다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건즐겁고 뜨겁고 아픈 시간 지나오며나이 오십을 맞은 덕분인 듯해서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답니다우습겠지만..., 정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 기도 권말선*생전 처음 당신의 아파트를 갖게 되어설렘에 들뜬 어머니이사를 한 달여 앞둔 어느 날척추를 다쳐 몸져누우시더니이런저런 겹 쌓인 병마에그만 앓고 또 앓으셨다어머니는 숱한 밤낮을안개비 흩뿌리는 낯선 숲 속에서길을 잃고 마구 헤매는 듯한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다아득한 방황을 이기지 못하고길 찾기를 포기하실까 두려워어머니의 헝큰 잠을 쾅쾅 두드리며나약해지지 마시라고 기도했다 **세상 가장 무거운 몸으로세상 가장 두려운 꿈속에서세상 가장 어두운 귀로세상 가장 외로운 싸움을 마치고드디어 새 집으로 퇴원하신 어머니바
[격시] 전쟁은 가라!- 8월 한미합동전쟁연습 중단을 요구하며권말선우리가 원해서 된 분단이 아니었다우리가 원해서 한 전쟁이 아니었다교활한 강도, 미국이 원해서였다전쟁연습 또한 미국이 원하고 있다전쟁에 연습이란 말장난일 뿐그 자체가 이미 전쟁이다교활한 강도 미국에게또다시 전쟁을 강요당할 순 없다감자꽃 피는 순한 우리 땅에 오곡백과 익어갈 야문 우리 땅에꽃 한 송이 피우지 않을미국의 총알을 심을 순 없다한 알의 열매도 맺지 않을미국의 지뢰를 심을 순 없다우리의 산과 바다에 꽂힌피 묻은 미국산 쇠붙이 다 뽑아내고한 알의 감자라도 더 심으
과녁권말선‘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주민들은점령군에게 복종하라’는‘포고령’을 강요한 그 날부터 우리의 과녁은 미국이었다실은 그 전부터 미국은 제 스스로우리의 과녁으로 걸어 들어왔다해방 전, 조선의 완전한 독립까지40년 간 신탁통치를 하겠다며침략야욕 불태우던 그 때 이미,일왕의 항복선언 후에도 일제와 손잡고 조선의 자주독립투쟁 방해하던그 때 이미얼굴을 바꿔가며 표정을 숨겨가며듬직한 동맹이라 아양을 떨지만분단이라는 고통의 발단전쟁과 갈등과 독재와분열과 매국의 배후인 미국은팽팽한 분노의 조준점우리의 과녁일 수밖에 없다지금껏 우리에게 행한
다 멈추어라!- 미국, 일본 제국주의 것들에게 - 권말선그 손 멈추어라세 치 혀로 거짓말 늘어놓으며푸른 바다에 방사능 오염수 버리려는네 놈 손모가지확 잘라버리기 전에당장 멈추어라!미국과 일본 두 제국은서로 침략을 도모해주기로위선을 눈감아주기로 작당을 했다지,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사악한 네 욕심이제 멈추어라!생각할수록 치 떨리는 종자들,빼앗긴 나라 되찾으려밀림을 오가며 싸우던 항일의 날에총칼로 죽이는 것도 모자라우물에빵에소금에쌀에도독을 섞어밀정을 시켜 산으로 보냈다지,그 악랄한 일본 제국주의 놈들백 년 지난 오늘에는더 악랄한 미 제국
백두산은 자란다 - 권말선투명하고 마알간 두 볼에순한 웃음 함뿍 물고떠나는 버스 뒤를 달려오며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어 주던너는 다정한 동무작은 평양이었다넓은 무대의 한 가운데작고 당찬 바위처럼 서서깨끗하고 진정어린 목소리로고향을, 통일을 노래하던너는 우리와 닮은 모습작은 경상도, 제주도였다그때 나는 보았어라네 가슴에 움튼백두산을가, 갸, 거, 겨, 아, 야, 어, 여…교실을 울리는 또랑한 목소리《우리학교》에서 우리말 배우며차별이 으스대는 이역땅거친 탄압에도 주눅 들지 않고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는너도 날마다 느끼겠지네 청신한 가
송전삼거리 - 권말선 뽀얀 새벽안개종종 걸음으로 걷어내야비로소 아침이 열리는작은 동네 자그만 삼거리예닐곱 걸음이면 끝나는횡단보도숱한 걸음에 닳고 닳아맨질맨질하다100년 전에는 3.1의 만세소리 독립의 발걸음쏟아졌다던 곳지금은 오산, 안성, 용인으로서울, 분당, 수원으로아침엔 쫓기듯 떠나고저녁엔 말없이 모여드는 곳다방 꽃집 식당 미용실 사진관때로 간판이 바뀌기도 하며서로 옹기종기 기대 앉은느리고 조용하고 야트막한 삼거리지금은 저리 한갖지게차들이 더듬이를 켜고이리저리 굴러가는대로고요히 누워 흐르지만언젠간 떠나는 발걸음보다찾아오는 발걸음
시금치는 분홍색이다 - 권말선온라인 장터 에서황선숙 언니의겨울시금치 1kg을 샀다들에서 캔 냉이처럼긴 뿌리를 가진,뿌리채 내게로 온시금치는 분홍색이다꿀을 머금은 사과꽃잎처럼잠든 아가의 날숨처럼세상에나, 곱기도 하지뿌리는 발그레한 분홍색이다전남 무안에서 올라온 한 통의 편지 같은시금치의 겨울 이야기가분홍 뿌리에, 황토 사이에 묻어있다긴 겨울 개쑥갓, 비름, 까마중 틈에서더러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흰서리발에 까무룩해지기도 하고종일 찬바람에 떨기도 하며얼었다 녹았다 또 얼었다를묵묵히 견뎌내다 보니그만 발그레해졌단다가을의 씨
네가 없는 아침권말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네가 사라지고 없는 걸 알게 된다면어떨까 우린 오래고 깊은 속박의식의 지배자로 군림했던네가 사라지고 없는 첫 아침고개를 쳐들 수조차 없음에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태양을 오롯이 우러르는 마음은 기쁨에 겨워 어디로든 나가맨발로 사방을 뛰다닐지도동무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터진 말문을 주체 못할지도갓 알을 깬 젖은 병아리처럼탐색과 환희에 몸을 떨지도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텅 빈 네 자리를 확인한다면어떨까 우린 하늘과 땅을 뒤집어땅 속 울음을 쏟아내고다시 하늘과 땅을 바로 세워하늘의
제주 동백꽃 - 권말선 눈 쌓인 동백꽃사이로 난 빈 길저 멀리 아스라이 그대 사라지고 말았는가 딸 아들 손주들과기념사진 찍어도 좋을고운 풍경 두고 그대 어디로 갔는가 그대 없음으로시리고 아픈 길그리움만 붉어진 길 칠십 세월바람으로 눈발로꽃잎으로 울다 심장을 다친 채 뚝 뚝동백꽃무더기 속 어디맨발로 떨며 숨었는가 흔들리는 꽃잎으로떨어지는 눈송이로지금 거기 혹… 그대, 그대인가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거미줄처럼 - 권말선 억센 제주 바닷바람고스란히 다 맞으며펄럭펄럭 나부끼는 저것은깃발의 함성도나뭇잎의 숙명도옷깃의 그리움도 아닌거미줄한허리 쉬었다 불지도아침참은 잠잠하지도한밤엔 자는 것도 아닌사철 무시로 불어와*올오롯이 맞을 걸 알면서왜 거기다 지었을까거미는목이 좋아 몇 놈쯤이야쉬 건질 수 있어서인가하마 못 잊을 반려와절절한 언약의 그 곳인가출렁임은 탄성彈性만이 아닌저만 아는 탄성歎聲 있는 걸까아으아흐아둥-두둥둥실한 배 속 전설을 풀어긴 다리 두렁두렁 넘어가며피아노 혹은 거문고 아쟁현의 선율 중 고운 것만 따다너만 아는 접착의 끈으
가을나무에게 - 권말선지금 너는단풍은마지막 발산發散고-웁다아침나절하나 둘...툭 툭 떨어지는 잎은제 몸에서 떠나보내려입술 잘근잘근 물고눈시울 비벼가며긴 밤 앓아낸핏기 어린 고뇌일까어제보다 조금 더 해쓱하다찬연했으니 됐다고떨어지고말라가고밟히고바스라짐도 괜찮다고어느 차거운 날을 앞두고마침내 텅 빈미소만 남아도정말이지 괜찮다고그러다 담담히 흰 눈꽃을 이고 설 나무여고-옵다헛헛한 마음 대신연두빛 새봄을 꿈꾸자고발그레 웃으며하나 둘 또 셋 넷...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로케트와 달팽이의 시간 - 권말선그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꽁무니에로케트를 달아 발사 시키고 싶어그대가 내게 오는그 순간까지만 날아가는로케트 말이야그대가 나에게 오고나면달팽이의 꽁무니에 시간을매달아야지세상에서 제일 느리게 기는하릴없는달팽이에게허나 야박한 시간은로케트도 달팽이도다 무시해 버리고제 나름의 규칙대로 째깍대더니기다림에 애타던 순간도함께 있어 꿈같던 순간도모두 날려 버리고지금은 다시 혼자...그래도 투정처럼또 주문을 걸어 봐야지시간의 꽁무니에 로케트를 달아그대가 오는 순간까지날려버릴래그대가 오면 로케트는 사라지고 이번엔달팽이
부부 - 권말선실실 비 내리는 퇴근길막걸리 내음 슬쩍 풍기며한 남자가 건들건들 흥얼흥얼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통근버스 멈추고한 여자가 방긋 웃으며 내리니남자는히힛, 히힛! 거리며우산을 후닥 펼쳤고여자는누가 등이라도 떠민 듯쏙! 들어갔다.어깨를 두르고허리를 감싸 안고얼굴을 마주보며남자는히힛, 히힛!여자는방긋, 방긋!아름다운 뒷모습 남기고사라져갔다.그들 동굴 속으로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우리는 여성농민 - 권말선 사람들은 우리더러농사꾼의 아낙시골 아줌마라 부르지만우리 이름은 ‘여성농민’스물 갓 넘어 시집 와이십 년 넘게 농사지으며땅 한 뼘 씨앗 한 톨에애지중지 사랑을 쏟아 부었지바람과 햇볕이 함께 돌봐주고땀과 눈물로 키워 온 농사FTA에 빼앗기고 TPP에 휘청대도우리는 싸우고 싸우며 지켜냈어보아라, 이 땅이 어떤 땅인가우리 할머니 어머니 까매진 얼굴로일제 지주놈들에게, 자본가들에게피눈물로 지켜 낸 땅이거든우리 자식들 크면 물려주고젊은 사람들 모아 노나주고아가들 웃음소리 뛰노는 소리동네마다 골골마다 채워진다면우리가
풋고추 한 봉다리 - 권말선 안동풋고추한 봉다리 얻어 집으로 가는 길 가방 열 때마다 풀 냄새가, 고춧잎 냄새가 짭쪼롬한 쌈장 찍어 와삭! 깨문 듯 혀는 벌써 알큰함에 긴장하고된장찌개엔 역시나 쫑쫑 썰은 맵싸한 풋고추가 제격이지한 입 깨물면 입 안 가득 국물 흥건한 스읍 고추장아찌 가방 열 때마다 알싸한 내음 훅 훅 풍겨오고마음은 왜 그리도 흐뭇한가풋고추 한 봉다리 언제였더라끝도 없이 넓었던 친구네 고추밭비닐푸대 질질 끌며고추고랑에 허리 꾸부리고붉은 붉은 붉은 고추 똑 똑 따다마당에 산처럼 쌓았었지, 어린 날그 고춧가루어떤 반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