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약간의 통증과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병원에 가보아야 하는데도 그냥 괜찮아지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나중엔 의사도 아닌 사람이 ‘이거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끝내 안정제를 찾게 되고 청심환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효가 다 되면 또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그제야 병원에 갔는데, 자기가 뭘 안다고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촬영을 해보았으나 심장에는 아무 이상이
배는 고픈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아무리 오래 걸려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기다려야지......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우리는 일상에서 직업을 속일 수 없다. 는 말을 자주 쓴다.요즘 세상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직업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해석한다는 느낌이 든다.우리나라 직업의 수는 대략 12,000.여 개라고 한다.옛날에는 자동차 길을 신작로라 했고, 비포장이어서 차가 지나가는 자국 때문에 도로가 패이기도 했다. 또 많은 비가 오고 나면 노면이 아주 거칠어져서 차량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게 될 때가 흔했다.그럴 때면 사전에 마을별로 구역을 정하여 보수를 하던 때였다. 전날도 비가 많이 와서 소위 울력이라 하
아래 사진은 필자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일제 강점기 때 사진이다.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일본인들은 완도까지 밀려와 정착하였다. 완도가 어장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완도 신기리를 이 지역에 자리잡고 살던 일본 사람들은 가마구미(駕馬仇味)라 불렀다. 이곳에 터를 잡고 16세대나 되는 연립주택을 짓고 생활하면서 고기잡이를 하였다.사진에 보이는 초가집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일본인들이 떠난 후에 지어진 것이다.일본 사람들은 긴 세월이 지난 70년대 초반에 자기들이 살던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산행 아침 하늘 하도 맑아하늘에 더 가까이 가보고 싶어해발 644m 상왕봉(象王峰)에 오르기를 시작했다. 깔끄막 오르내리고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면서넘어지고 미끄러지가 몇 번이던가정상 봉수대에 오르니 그 맑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높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어사방은 뿌연 날씨아스라이 보이는 섬을 보려니미간이 찡그려지는구나아침 날씨 좋으면 울고 가고아침 날씨 흐리면 웃고 간다는옛 어른들 말이 생겨났나보다 편집, 사진 : 양성숙 편집위원
청해진대사 장보고 비가 일본 延曆寺 文殊樓(大津市 坂本本町 220) 옆에 세워졌다. 한.일의 역사와 문화, 경제, 외교에 있어서 청해진대사 장보고와 일본 연역사 圓仁 스님의 관계는 오늘날 재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 완도군이 사단법인 장보고연구회에 의뢰하여 세운 것이다.장보고는 서기 820년 경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 교민들을 규합하여 중국 동해안과 산동반도, 대운하변, 장강하류, 절강성에 이르는 거대한 해상상업 세력을 구축하였다. 824년에는 무역선단을 일본에 파견하였고 당시 동아시아 해상에서 횡행하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하여 82
해추선(海鰍船) 크기는 약 6m다. 김, 미역 등을 채취하는데 사용한다.해추선이란 이름은 1610년 나대용이 남해 현령으로 있을 때 배를 작게 만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에 배들이 무척 컸기에 좁은 곳을 사이사이 끼어 다니게 작은 배를 만들었다. 마치 미꾸라지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모습처럼 빨랐다. 해추선은 미꾸라지에 비유해 지은 이름일 것이다. 이후 토선(吐船), 농토선(農土船), 해채선(海菜船)등으로 불렀다. 현재는 해조류 등을 채취 하는데 사용한다고 채취선(採取船)이라 한다. 하지만 본래의 이름은 해추선이다.아래 사진은
쉬는 날 홀로 농사 짓는 시어머니 댁에 온 며느리.고추를 조금 따 말리면서 뭐가 그리 좋은가.울 밖까지 웃음 소리 들린다.길 지나다 환히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찍어 보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내가 사는 마을 바닷가의 바위다. 밭이랑처럼 생겼다. 오래 전 화산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긴 건지 아닌지 몹시 궁금하다. 공룡 발자국처럼 생긴 곳도 있다. 전문 지식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명사십리 모래 우는 소릴 누가 들었기에명사(鳴沙)라 했는가신지도 송곡에 위리안치 당했던조선의 왕손 경평군 이세보 모래 우는 소리 들으며신세 한탄했던 곳모래밭과 십리 거리이세보에 한이 서린그 이름 완도 명사십리(鳴沙十里)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밤에 선창에 나갔다.가로등 불빛이 그림자를 그린다.사진기를 들고 내 그림자를 찍는 모습이다.나란히 선 두 개의 가로등이 내 그림자 두 개를 만들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울타리에 열린 갓끈동부.콩이 하도 길어서 갓끈이란 이름이 붙었다네요.알맹이는 작지만 외형상 보기 좋아울타리에 많이 심는답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더울 때는 그늘을 만들고 바람 불면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가을이면 나무 열매를 떨구어 어린이들에게 팽이 놀이감을 주면서도 대가는 바라지 않았다. 이제 생명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보기 좋다고 하는 인간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바람아 불어다오너 아니면내 종족 번식을 못 한단다.내 소원이니 꼭 들어다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성 (兄 ) 곱게 물든 저녁노을 뒤로 하고내일 이 맘 때 돌아온다고고기잡이 떠난 성약속 시간 지난 다음 날경찰 전화 무슨 일인가 온 동네 사람 동원되어성(兄)의 배 있다는 곳 가 보았더니빈 배만 침몰 직전이었네 아무 소식 없는 성 생각에온 동네 술렁인지 열흘다시 못 올 먼 길 가셨는가 달 가고 달이 또 가도영영 소식이 없는 성아다 잊으시고 편히 잠드소서 이 글은 어느 해던가 이웃에 사는 형 뻘인 사람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길을 가셨기에 그 형을 생각하면서 적어본 것임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수수를 심었는데 새가 와서 수시로 쪼아먹어 수확이 어려워지자농민들은 애써 가꾼 수수를 새에게 줄 수가 없어수수에 망을 씌워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 두 상호가 참 재미있다.' 바글바글' 횟집 상호는 손님 많이 오라는 뜻일 것이고'웬수 같은 내 술' 은 술의 폐단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 술이란 말?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나는 아이들이 넷이다. 모두 성장하여 결혼도 하였고, 아이들도 있고, 직장도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다 쓴다면 책으로도 수백 쪽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바르게 욕 안 먹고 살아 준 것으로 우리 부부는 만족하다.이제 나의 생을 마감할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많이 남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다행스럽게도 자식들이 아직은 남에게 욕먹지 않고 살아 준 것은 정말로 고맙다. 앞으로도 절대로 남에게 욕먹을 일은 하지 말고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삶은 법에 앞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즐겨 읽고
넙치(접어,鰈魚)도다리를 두고 국역 제5권 만물문(萬物門) 접역에는 鰈魚(比目魚·加魚;가자미)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넙치를 접어(鰈魚)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를 일컫는 물고기란 뜻이 담겨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접역(鰈域)이라고 불렀다. 접어는 '동쪽의 물고기', 즉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물고기란 의미다.정약전 후한서(後漢書) 변양전주(邊讓傳注)에 '비목어(比目魚)를 일명 접어(鰈漁), 강동(江東)에서는 판어(板魚)라 한다'고 적었다.넙치는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불리기도
기다림 날이 밝아 가게 문 열려는데갈매기가 우는구나밤새 안녕하신지수족관 들여다 보고안녕 확인하고 장 봐 와서청소하고 찬 만들어손님 맞을 준비하여 놓고기다려도 오시지 않는 낮 손님 그래저녁에는 오시겠지마음 속 찬바람 일어도스스로 다독이며 기다려 보건만 황혼이 깃든 서산 마루 곱기만 한데기다려도 오시지 않는 저녁 손님이러다간 기린 목 되겠네. 편집 , 사진 : 양성숙 편집위원
큰 바람 바람이 분단다큰바람이 온단다이웃 친구 고기잡이 나갔는데바람아 불지마라큰바람아 오지 말거라 바람아이웃 친구 고기 많이 잡아 오거든그때나 불거라 그래도 바람아 오지 말거라내 친구 고기 많이 잡아 돌아와도다 낡은 배 상하면 어쩔거냐바람아 큰바람아 오지를 말거라 편집, 사진 : 양성숙 편집위원
쥐고기(鼠魚)쥐치는 와 에는 서어(鼠魚)로 소개하고 서유구가 1820년경에 쓴 어류박물지에도 쥐치는 ‘서어(鼠魚)’로 나온다. 쥐치는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식용한 식재료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쥐치는 돌출된 주둥이에 넓적하고 끝이 뾰족한 이빨이 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쥐치가 물 밖으로 나오면 쥐처럼 찍찍하고 소리를 내어 쥐고기라 부른다.쥐치를 서어(鼠魚)라고 함은 낚시 미끼를 잘 물지만 입이 작아서 삼키지 못하고 옆에서 갉아먹는 것이 쥐
문어(文魚) 문어는 지능이 매우 높다고 글월 '文'자를 붙였다고 한다. 위기 탈출을 위해 뿜어내는 먹물이 글께나 하는 지식인들의 상징인 먹물로 간주되고 큼직한 머리까지 있어서다.문어는 한자어로는 주로 팔초어(八梢魚)가 쓰였고 장어(章魚), 망조(望潮), 팔대어(八帶魚)라고도 하였다. 우리말로는 예전부터 문어라 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장어(章魚)라고 쓴다. 그러나 에는 장거어(章擧魚)라 기록하고 있다.5권에는 문어갱(文魚羹)이 올라있고 문어는 팔초어(八梢魚)다 라고 한 기록으로 보아 문어를 가지고 다양한 먹거리를 만
대물림의 사전적 의미는 명사로 사물이나 가업 따위를 후대의 자손에게 남겨주어 자손이 그것을 이어 나감. 또는 그런 물건. 그러나 그 속에는 정신도 대물림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우리는 너무나도 가난했으니까 가난의 대물림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애를 쓰면서 살아왔다.요즘 KBS에는 노포(老鋪)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있다.사전에서는 노포를 명사로 대대로 물려내려 오는 점포(店鋪)라고 정의하고 있다.꼭 한자를 쓰고 싶었으면 노포를 고포(古鋪)라고 했었으면 어떠했을까?분명 이러한 점포들은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징어(烏賊魚)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징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2005년 국내에서 소비된 수산물 416만 9천 톤 중 1위는 명태로 38만 3천 톤, 2위가 오징어 26만 6천 톤이라는 해양수산부의 통계가 있다.오징어를 에서는 까마귀를 잡아먹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오적어(烏賊魚)라고 하였다. 중국의 문헌에는 까마귀 烏자에 물고기를 뜻하는 즉(鯽)자를 붙여 오즉어(烏鯽魚)라고 하고 남어(纜魚), 묵어(墨魚), 흑어(黑魚)라 한 기록도 있다.오징어가 죽은 척하고 물 위에 떠 있으면 까마귀는 오징어가 죽
개불(海腸, 海陰莖)개불을 두고 에는 개불의 어원은 생긴 모양이 개의 불알(생식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불을 해음경(海陰莖)이라 쓰고, 생긴 모양이 말의 음경 같다고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는 하이장(海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조 20년 2월 11일의 기록에는 해장(海腸)을 해파리로 기록하고 있다.개불은 몸을 늘렸다 줄였다 하기에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대략 10~15cm 정도이다. 개불은 조간대(潮間帶 : 만조선과 간조선 사이)의 흙탕 속에 깊은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살다가 수온이 차가워지는
정어리(大鯫)계절 회유성 어종인 정어리는 바다의 쌀로 불린다.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난 정어리는 고등어, 명태, 방어나 상어 등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정어리는 청어과에 속한 바닷물고기로 몸 길이는 20~25센티미터 정도이며 몸빛은 등이 암청색, 옆구리와 배는 은백색이다.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7개의 검은 점이 나란히 있다. 산란기는 12~7월경이며 겨울철에 특히 맛이 좋고 고기의 기름은 마가린과 립스틱 등을 제조하는데 사용된다.에는 정어리를 먹었을 때 매운 맛이 나며 혀 끝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있을 때는 먹지 말아야
* 이 글은 제 딸이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나름대로 적어 본 것이다.고향집 고개를 넘어가면 대문 앞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 할머니는 그 의자를 방 안에 두고, 당신을 평생 지켜보며,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속마음을 바다에 털어놓는 것만 같았다.할머니 김향심은 1924년 완도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 땅에서 살다 지난 4월 완도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 잠드셨다. 그새 시간이 흘러 할머니 49재도 지냈다.하지만 지금도 할머니가 그 방 그 의자에 앉아 당신이 가장 예뻐하던 손녀를 두 팔을 벌려 반
상어(鯊魚,沙魚,鯋魚)상어를 한자권에서는 사어(沙魚)라고 쓴다. 이는 피부에 미세한 돌기 같이 생긴 것이 있어서 껍질이 모래처럼 거칠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한때는 상어 껍질을 말려서 사포로 쓰기도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제13권 병기(兵器)편에 '해사어피(海沙魚皮 바다상어 가죽)를 섞어 칼집을 만들었다'고 나온다.상어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0여 종이 있다. 우리나라 해역에는 괭이상어, 칠성상어, 수염상어, 고래상어, 강남상어, 악상어, 환도상어, 두툽상어, 까치상어, 흉상어, 귀상어, 돔발상어,
명태(明太)북어(北魚)라고도 하며 몸빛은 등 쪽이 갈색이고 배 쪽은 백색이다. 옆구리에 두 줄의 점선과 같은 흑갈색 가로띠가 있으며 몸은 작고 둥근 비늘로 덮여 있다. 아래턱에 아주 짧은 수염이 있다.서유구(徐有榘)의 에는 명태를 한자로 명태어(明鮐魚)라고 쓰고, 속칭 생것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 하였다. 수명은 8년이 넘고 8년생의 전장(全長)이 60㎝ 가량이다. 한류성 물고기로 경상북도 이북 동해안에 널리 분포하나, 함경남도 연안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명태는 지방, 크기, 내유(來游) 시기, 어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