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노모가 오지 말라하시니 이번 추석 안 간다. 대신 나의 집이자 스튜디오이며 신화미술관인 이곳 원주에서 제사를 지낸다.아버지는 삼 년 전 돌아가셨다. 술 한 잔 올리고 절을 하는 내내 두 마디 말만 떠오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마음 같아서는 친할배 할멈, 외할배 할멈까지 모시고 제사 올리고 싶었으나 못했어요. 새해 설날에 그리할게요. 절 올리다보니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하고 아버지도 제대로 섬기지 못한 지난날 때문에 불효자는 웁니다.그래도 화업 40년 해내고 기념전시까지 마쳤으니 대견하다고 쓰담쓰담 해주세요. 아버지 칭찬이 목말
민간인의 반대는 군인 공무원 공공사업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민간문화라 함은 관제문화가 아니고 주민과 시민이 이루는 문화다. 민간문화의 반대인 관제문화라 함은 문화를 공권력으로 통제 관리한 문화다.얼마 전에 사립박물관미술관 공청회를 연다기에 참가했다. 도에서 경제문화부지사가 주관하여 모이자 한 것이다. 50여개 뮤지움에서 참석했다. 미술관, 박물관이 다 뮤지움이다. 요즘 코로나시대 운영 고충을 듣고 타개책을 모색해 보는 자리란다. 가뜩이나 관람객이 없는 데 코로나 시대 맞이해서 특별한 지원이 있지도 않은 채 민간 스스로 운영하는 사정
한여름 뜨락을 정리하며 나온 돌로 야탑을 세웁니다. 보름간 애쓴 보람이 8.15를 기념하게 되었네요. 큰 돌은 밑돌이 되고 작은 돌은 웃돌이 되요. 꼬마 돌은 쐐기돌 되고 파쇠돌은 안돌이 되고 둥글고 넙적한 돌은 밖엣돌 되어요. 저마다 다 쓸모가 있는 채로 하나의 돌탑을 이루어요. 못생겼거나 예쁘게 생겼거나 버릴 거 하나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력을 지키고 둘레를 유지한다는 조건만 맞으면 되요.조선에는 절탑과 돌탑이 전해 내려와요. 절탑은 절 가람배치로 세워서 사리나 경전을 넣어두고 기리죠. 외벽에는 사천왕 조각도 하고 목조건축
오랜만에 글 씁니다. 재촉하는 글은 쓰기 싫고, 공부해서 쓰는 글도 쓰기 싫고, 쉬고 싶은데 그 시간 빼앗는 글도 쓰기 싫어서 안 쓰다가 이제야 한 글 써봅니다. 앞으로도 정기적인 글쓰기가 압박이 된다면 글 못 쓸 겁니다. 한적하고픈 소망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오늘입니다.나는 내 일상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코로나시대 비로소 한적한 삶이 오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 보니 내가 그간 가꿔온 내 일상의 쾌적함이 새삼스럽게 소중하다는 마음에 이릅니다. 평화를 세상 밖에서만 찾다가는 부지하세월이
6월 18일, 광주에 오랜만에 간다. 작년 5월 미술초대전을 치루고 강의 한번 하러 갔었고 올해는 처음이다.광주는 내게 특별한 곳이다. 나의 예술정신을 처음 잡아준 시민군의 혁명정신이 있는 곳. 난 이것을 비타협적 영혼이라 부른다.한국은 많은 혁명기를 거치면서도 이상하게 혁명가를 주목하지도 영웅대접하지도 않았다. 날개장수 신화처럼 초월의 날개를 싹부터 잘라버려 영웅신화가 생성하지 못하게 하는 패배주의 무의식이 있다. 오랜 전쟁과 식민지 트라우마 때문이다.ㅡ왜 우리는 혁명은 많았으나 혁명가가 없나. 혁명신화도 신화영웅도 없는가.ㅡ과연
기쁨도 슬픔도 감정이 다 말라버려 가는 늙은이가 된다는 건...세상만사에 조금씩 거리를 두다가 마침내 사라지고 싶어진다는 건...시빗거리를 몰고 다니는 삶마저 점점 성가셔 진다는 건...정말 늙어 간다는 거구나.그래도 소소한 재미 찾아 일상을 보내려하니 날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고. 산다는 게 다 뭔지 내 일상은 점점 더 다른 일상이 되어버리네. 이런 개성 언제 또 가져보나. 흙 물 불 혼자서 원형질을 만지작거리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보내고 보람되게 만들려하네. 내버려두라고. 난 운동을 싫어하지, 일상을 버리고 내일을 위해 오늘의
2020년 한국전쟁과 화천댐 희생자 합동위령제 및 화천평화여행 1. 취 지 : 한국전쟁 70주년(화천댐 건설 76년 화천 5월 전투 69년)을 맞아 화천댐과 건설과정에서 숨진 강제징용 조선노동자와 1951년 5월말 화천전투 희생자를 국적을 넘어 위령하고 해원상생과 화평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 산천을 여행하며 교류하는 자리입니다.2. 일 시 : 5월 21-22일(1박 2일)3. 집 결 : 21일(목) 오전 11시 10분(ITX 청량리-춘천 이용. 11:07도착) 춘천역 관광안내소앞4. 해 산 : 22일(금) 오후 4시 춘천역5
오월이 오면 나는 만감이 교차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올해 11주년이고, 광주민주화운동 40년 되는 무거운 달인데 오월의 산천은 생명이 힘차게 번창하는 녹색의 대지로 흐벅지다.5월이 오면 또 하나의 사건이 나를 무겁게 만든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화마을로 낙향 후 고향마을 살리기에 애쓰다가 2009년 5월 23일 갑자기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이런 급서에 난 기가 막혀 한 때 멍한 상태로 멘탈 붕괴를 겪었다. 노무현의 죽음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민을 참담하게 했다.정치검찰의 권력 남용에 민주적인 대통
5.18 당신 덕분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이 40년 전 일이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어디서 올라오는 건지 모를 불안과 우울감에 접어든다. 내 깊은 심연에 침전되었던 부유물이 흩어져 떠오르는 듯 어둠에 휩싸인다. 이게 트라우마인 줄 나중에 알았다.나는 당시 광주에 있지도 않았고 시민군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오월이 오면 총칼에 찔리고 일그러진 얼굴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그래서 일부러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 초대장을 매년 받고도 안 갔다. 망월동 공동묘지도 잘 안 갔다. 자꾸만 떠올라 나를 혼미하게 만
권력의 칼을 쥔 자들아 두려워마라.ㅡ스마트폰이 낳을 치유살림문명ㅡ 사는 게 두렵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당선된 것이 두렵다고 하지만 우리네 서민들은 삶 자체가 두려워졌다. 어쩌다 이런 세상 되었나. 세상 살필 겨를도 없이 나와 가족의 목숨부터 걱정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듣도 보도 못한 인류의 강적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난 것이다. 이것보다 당장 코로나 사태로 붕괴된 우리네 살림살이가 위험하다. 수십만 실업자가 벌써 쏟아져 나오고 자영업은 가게 문을 닫고 시장은 무너지고 있다. "살려주세요."가 절로 나
덕분에 조용한 일상이 이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덕분이다. 가급적이면 외출을 자제하다가 요즘은 아예 집을 나가지 않는다. 이 두메산골만한 청정지역도 없는데 여기서 작업이나 실컷 하는 거다. 간절한 기원, 이 주제로 테라코타나 실컷 한다.그래도 세상과 단절하기 싫어 뉴스와 유튜브에 새 소식을 기다리지만 희망적인 소식은커녕 코로나19 확산 소식에 인류가 쩔쩔매는 세상을 매일 접할 뿐이다. 중국에서 시작했다지만 이제 서방세계가 제일 심각하다. 그들이 큰소리치며 리드해온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위기에 봉착했다. 의료 보건 복지가 시장주의에 밀려
위기의 시대. 국가가 위기여서 개인이 불행해지는 기나긴 시대였다. 3.1혁명은 빼앗긴 국가를 먼저 되찾자는 전민족적 혁명이었다. 백 년이 지난 오늘의 위기는 보이는 적국도, 독재권력도, 돈도 아닌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 침략으로 전혀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3.1혁명 백 년이 지나도 편히 행복하게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1919년 주권을 빼앗긴 채 일제폭력을 무릅쓰고 거리로 광장으로 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은 어떤 심리 상태였을까? 나는 그걸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두려워 하면서도 치를 떨며 저항한 제국폭력 앞 맞섬이었다.
어찌할까? 죽음의 바이러스가 지구적 재앙으로 번진다면.내일과 모레, 서울로 사람 만나는 약속들이 줄줄이 잡혀서 나간다. 산골에서 이 주만에 약속들인데 안갈 수도 없고 가자니 좀 찜찜하다. 나도 살짝 코감기가 생겼으니 경계심이 생긴다. 어찌할까?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정부는 방역경계를 심각단계로 올리고 공공 밀집공간이나 집회와 모임 등을 자제해달라고 한다. 도대체 천만 서울시에서 공공 밀집지역 안 거치고 어떻게 사람들 만날 수 있나? 버스, 지하철, 지하철 환승역사, 광장, 학교, 커피숍, 모임 사무실... 이걸 거치며 휘젓고
이 그림은 오 년 전 그린 유화다. 50호이고 제목은 이 그림을 그릴 당시도 3.1절을 맞아서 그 역사를 다시 생각했다. 얼마나 고뇌에 찬 결단이었을까?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땅에서 눈치 보며 자존심 죽이며 살았다. '말께나 하는 놈 감옥에 가고 애께나 나는 년 유곽에 간다'고 아리랑 노래를 바꿔 부르던 시절이다. 사회적 가면을 깊게 쓰고 민족의 본성을 억누르며 식민지 근대화에 내몰렸던 조상들이 1919년 3.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때 그 심정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래, 견디는 거다.최고의 투쟁은 견뎌내는 거다.자기 앉은 자리에서자기 선 자리에서자기 일상생활로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이다.남북평화의 길도 외부의 방해 앞에서,사법적폐 세력과 투쟁에서도어려운 경제 여건도집안 살림도내안에 싸움도 다 견뎌내는 싸움이다.저 고난의 식민지 시대 우리 할배 할매가견디며 자식 낳고 가정 살리며마침내 나라 해방, 비록 반쪽 나라지만찾았다. 아직도 반쪽 주권이지만견디며 여기까지 왔다.지금 작지만 강한 강소국 고지까지 올랐다.평화통일도 견뎌내며 가는 이 나라 살리기다.이 기적같은 역사는 말해준다.끝까지 견디며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