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화)일, 처음으로 에버랜드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몰고 온 슬픔과 애잔함이 가시지 않는 게 첫 번째, 과천에 살았었기에 서울랜드는 숱하게 다녔어도 에버랜드엔 가본 적이 없다는 아이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새파란 하늘에 선선한 날씨가 나들이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이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습니다. 비눗방울을 날리면서 아이들을 유혹하는 장사꾼, 같은 머리끈을 하고 사진촬영을 하는 커플들, 그리고 신나는 음악들이 놀이공원임을 상기시켰습니다.아이가 이끄는 대로
TV프로그램인 싱어게인을 보면서 ‘정말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구나! 그런데 나는 왜?’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래를 못해 음악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어도 좋아하는 가수들이 꽤 여럿입니다. 그중에 한 분을 꼽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굳이 선택을 한다면 나의 최애(最愛) 가수는 조동진입니다.2017년 8월 29일 일산병원으로 그의 조문을 다녀온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수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려고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선생님 영전(
일본 동북대학교 국제문화학 박사인 이선희 씨는 일본 동북 지방의 이주 여성들의 현황과 일본의 이민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이선희 씨는 “동북 지방은 일본 안에서도 식민지입니다. 만약, 후쿠시마와 같은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핵사고가 동북 지방이 아니라 큐슈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지금과 같이 침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북 지방은 오랜 식민지로서의 트라우마로 항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동북 지방 사람들의 일본 내에서의 ‘타자화’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선희 씨의 ‘타자화’
"눌재공께서 괴애 김수온공과 더불어 우리 저헌공과 문과 신유동방이라 시네."지난 토요일 용연(龍然, 정용택))과 함께 김포 양곡 대포리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 묘소와 대포서원(大浦書院)을 다녀와 우사(雨沙, 이덕훈)에게 카톡 보냈더니 우사가 나에게 보낸 답글이다.우사는 '우리 저헌공'이라 했다.여기 '저헌공'(樗軒公)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大學衍義輯要)를 저술한 연안인 이석형(李石亨, 1414-1477)을 말한다.또한, 여기 '辛酉同榜'이라 함은 세종 23년(1441) 실시한 진사, 생원 양과에 눌재공과 함께
고향 무정(故鄕無情) -이현 서 지음.”나의 일곱 번째 이름”을 읽고 나서그녀는 자유다. 고향의 정(情)이 남아 있는 이유는 굴레에 대한 향수다.세상은 여행이라는 테마도 있지만, 여행 자체도 사치가 되는 곳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최초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떠돌아다니듯이, 떠돌아 다니는 인생은 그 자체가 속박의 끈이다. 누군가의 서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감성 폭을 넓히는 것은 없다.사람이 사람 답게 산다는 것이 자유라고 하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땅이나 북한의 땅이나 자유하고는 거리가 멀다.사실은 냉정하다. 냉정한 만큼 비
숨 막힌다. 갇혀 있는 것은 절망이다. 로켓이 날아다니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날뛰고 있다.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수용소 장벽을 아는 자들의 형태가 하는 일은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일이다. 어리석음이 만리장성보다 더하는 것인가?평화를 깨는 것은 극우의 사명인가보다.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는 이유는 잊지 말자고 해서 하는 행위다. 무엇을 잊지 말자고 하는가, 예루살렘의 마지막 성터 흔적이 그들 역사의 평화를 위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안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것은 물리적인 힘밖에는 없다. 김구 선생이 일제강점기
별일이다. 나이가 들면 이제는 신경을 덜 써야 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그와는 2살 차이다. 내가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숫자로 파악할 뿐이다.세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변해가는데 변해가는 것을 거부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이번 글은 두 번째 작성이다. 완성된 글을 저장해서 확인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 사라졌다.첫 번째 글을 무엇이라고 작성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의 감정으로 작성할 뿐이다.고통은 항상 후회를 동반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후회가 나를 찾는 데 있다.처음부터 기대
일본에서 개최된 “제9차 한일 탈핵 평화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나고야 교구와 센다이 교구의 핵발전소를 방문하고, 그 지역에서 탈핵 운동을 펼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핵발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절규를 들었습니다.후쿠이현의 와카사만에 밀집되어 있는 쓰루가 핵발전소와 미하마 핵발전소, 오이 핵발전소와 다카하마 핵발전소를 방문했습니다. 일본이 꿈의 원자로라고 말하며 1조 엔 넘게 엄청난 돈을 투입했던 몬주도 방문했습니다. 몬주는 운영도 해 보지 못하고 폐로가 되었습니다. 몬주는 문수보살의 일본식 발음입니다.후쿠시마도 방
어떤 모임이든 마음에 드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그 모임은 즐겁고 유쾌하다. 만약 그 모임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누군가 있어 불편하다해도 마음에 드는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참을 수 있다. 억지로 참을 필요도 없다. 참기는커녕 마음에 드는 그 한 사람에게 더 잘보이기 위해 불편한 사람과도 조화롭게 지내는 자신의 지혜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 모임에서 만나는 모두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그 모임은 더할 나위없이 복되고 은혜로운 만남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 모임에서 가을의 단풍을 만끽하며 해가 지
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346.가장 친절하고 진실한 친구는 자연이다.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은 자신의 어떤 언행과 태도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하지 않고 시시비비도 따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 함은 좋으나, 이 또한 이기심의 발로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天雲山風水地木草. 347.독서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해야 자신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현송, 그래 어제 하루 또 잘 보내셨는가?엊그제, 세 친구들 절두산 순교자 성지 걸었네.원래, 이 '절두산'이란 이름은 '蠶頭峰'으로 누에가 머리를 치켜드는 듯 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네.조선시대엔 한강의 최고 명승지로 중국의 사신들이 오면 으레 이곳에 와서 놀았다 하네.한데, 고종 3년(1866) 병인 양요때 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붙잡아 이곳에서 머리를 절단한 뒤 이곳 을 '절두산'이라 부르게 됐네.1966년 이곳에 성당과 절두산 천주교 기념관을 세우고 주변 지역을 공원으로 꾸며 현재는 천주교 순교자 성지가 되었네
오늘도 평소처럼 아침에 kbs FM 라디오를 켜고 주말의 오전 시간을 보내는데, 슬픈 애조(哀調)를 띤 여성 소프라노 곡이 흘러나와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아~, 평소에는 잘 들어보지 못하던 ‘아베마리아’( 카치니/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작곡) : 이네사 갈란테(Soprano) 노래) 선율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며 슬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 내일이 '이태원 참사 1주기' 이니, 이렇게라도 추모의 정을 표하며 비명횡사한 159명의 젊은이들의 영혼을 달래주어야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러한 대형 참사에 아무도 책임지지않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8월 14일 서울에서 한 ‘월요시국기도회’에 이어 10월 9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월요시국기도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부산은 월요시국기도회가 열리기로 했던 바로 전날에 갑작스럽게 연기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시작한 월요시국기도회의 출발지가 됐습니다.항일거리로 알려진 정발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부산 월요시국기도회에는 사제단 60여 명을 포함해서 신자와 시민 7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수도자들과 신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손에 손자보를 들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부
삶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요. 그래도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그날 시위에 참가하지 않아서 눈을 실명(失明)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가 하나, ‘동생들이 뭐라고 하든지 어머니를 육지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행복하시지 않았을까?’가 또 하나입니다.제주에 살 때 아버지가 폐암말기라는 전화를 받고 무척 놀랐습니다. 누군가 가까이서 돌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부모님을 제주로 모셨
왼쪽 것은 차를 우려내고 남은 녹차, 오른 쪽 것은 그것을 말린 것입니다. ‘우려먹은 녹차를 왜 말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아주 오랜 행위입니다. 혼인한지 수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아내가 마음고생 할 때의 일입니다. 한 매체에서 녹차찌꺼기를 버릴 게 아니라 말려서 아이의 베갯속으로 만들면 아이정서에 좋다고 했지요. 맞벌이를 할 때라 겨우 일주일에 한번 차를 마실 때니 그 양이 얼마나 됐겠습니까? 반년이 지날 무렵 아내가 임신을 했지만 말린 녹차의 양은 겨우 한 움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윤석열은 스스로민주진보 진영의 분열 덕분에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한다. 윤석열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도상관없다는 사람들에 힘 입어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힘 주어 말한다. 이재명이 되느니윤석열이 되는 게 낫다는 무리들 덕에대통령 되었다고 일갈한다. 자신의 속임수와 반란을 제압하지 못한 문통 덕도 크지만,윤석열보다 문통이 나쁘다, 문통이 일부러 윤통 만들었다는 갈라치기에힘 입는다 떠벌인다. 민주당 대통령 나와봐야 달라질 것 없다는 진보입네 하는 이들 덕택에왕이 될 수 있었다 웅변한다. 그리하여거짓과 속임수불의 불공정 몰상식으로 시작하여친
지연이, 답글이 늦었지?계절 탓이라네!ㅎㅎㅎ여기저기서 가을이 온다고 손짓해 마중하느라 늦었네.그래, 어디 다녀왔냐고?고향 땅 연천, 민통선 안 '태풍전망대' 다녀왔네.지난 9일 한글날, 친구들과 함께 한강 변 자유로를 따라 얼마쯤 가다 다시 임진강변 통일로를 따라 차를 몰았네.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푸르더군! 여기에 강물조차 맑으니 마음 또한 맑더군!天淸水淸又心淸!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얼마간 달리니 고지 위에 전망대가 있더군. 그곳은 행정상 연천군 중면 횡산리로 한국전쟁 전엔 안동권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던 곳이네.
오십을 넘기면서 '더 늦기 전에 악기 하나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기타를 구입할지 망설일 때 주민센터의 강사가 말했습니다. 보통 입문용으로 10만 원 안팎의 것을 많이 구입하는데 이왕이면 조금 좋은 걸로 구입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6개월 쯤 지났을 때 입문용기타는 새것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지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아무튼 오래도록 갖고 놀 장난감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괜찮은 기타를 구입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몇 달 배운 뒤로는 그냥 혼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기타를 잡은지 수 년이 지
~ 며칠전 일이다. 점심을 먹고 수지천변을 산책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영어로 대화를 하는 말이 들렸다. 옆으로 지나가는 젊은 여성과 예닐곱살 되어보이는 딸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었다.일상적인 초보 영어회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꼭 저리 티를 내며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라는 생각이들면서, 몇달전 대형식품판매점에 들어가다가 보았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초등학교 1~2학년쯤 돼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마치 미국 애들처럼 영어로 일상회화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것이었다.나는 (직업병처럼) 그 애들에게 한마디 타일러주려고 하다가, 이미
제20차 반핵아시아포럼은 서울과 부산, 울산 일정에 이어 경주와 울진, 삼척으로 이어졌습니다.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9월 22일 경주 나아리에 있는 공공연대노동조합 강당에 빼곡히 모여 2시간 동안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이 월성 핵발전 단지의 현황과 이주대책위원회의 활동 그리고 환경부의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법무법인 민심의 서은경 변호사가 갑상선암 공동소송의 쟁점과 판결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해외 참가자들은 수많은 질문으로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1김사라는 무명 작가이다. 2017년 촛불정부가 들어 선 뒤 필자 등이 중심이 되어, 촛불혁명의 계승 발전을 위해 만든 촛불시민들의 책 [촛불혁명 시민의 함성]촛불혁명 시민의 함성 : 네이버 도서 (naver.com)에 다음과 같은 작품을 실었다. 황룡 촛불 김사라황룡이 일어났다! 노랗고 붉밝은 촛불들이 모이고 모여비상하는 용처럼 크고 힘차게촛불혁명 이루었다. 2서울 출신 김사라 작가는 성인이 된 어느날 부터인가,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끌려 연고도 없는 경주에 내려 갔다. 거기에서 그녀는, 알에서 깨어난 신라의 건국 시조 박혁거세
고양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농장에 저장한 농산물을 지켜주던 아이들이다. 하필 우리가 풀어놓은 틈에 밖에 나가 죽은 채 발견됐다. 해마다 여름에 거둔 감자며 옥수수, 호박 따위 농산물을 농장에 저장해 두는데, 생쥐가 갉아 먹는 것을 막느라 기르던 고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뒤 몇 날 며칠 들어오지 않더니, 농장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에 죽어 있는 아이들을 남편이 찾아 묻어 주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생쥐들은 신나게 농산물을 갉아먹고 있다. 아무래도 어디서 고양이 한 마리 얻어와야 하겠구나!' 하던 차에, 옆집 할머니께서 희소식
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시면 좋겠다. 여러 차에 걸쳐 싣는다. 341.역사를 통해보면 사람은 대체로 물질부족과 심신구속 상태여야 천재성을 발휘한다. 물질적 곤궁과 정신적 근심걱정은 그를 극한 세계로 이끌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케 한다. 그 과정에 천재성이 작용한다. 고통과 고난, 번뇌와 번민은 그의 생각깊이를 높고 넓고 깊게 한다. 반면 풍요롭고 자유로우면 심신은 처지고 정신도 폐쇄된다. 342.자신의 노동 없이 남의 피땀으로
명절은 힘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름진 반찬이 나와서 좋았던 유년기를 제외하곤 늘 그랬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부터 설이나 추석에는 깜깜한 새벽에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그럼 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안 큰집에 가야했지요. 셀 수도 없을 만큼 절을 하고나면 늦은 아침을 먹고, 어른들을 꽁무니를 쫓아서 성묘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어린아이가 걷기에는 만만치 않을 만큼 멀었습니다. 특히 많은 눈이 내린 설이면 춥고, 미끄러워서 애를 먹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나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보배와 마린이인데, 어머니 댁에 가게 되면 문앞에서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달려드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서로 짖어대며 아웅다웅하는 건 여전하다. 이 모습을 보면서 문득 50년 전으로 기억을 되살려본다. 대학 1학년 교양과목으로 오발탄으로 유명한 작가인 이범선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글짓기 과제를 주시며 의미가 있는 이름을 떠올리면서 원고지에 적어오라신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집 마당에서 기르던 강아지 이름을 제목으로 몇 자 끄적거려서 원고지에 옮긴 후에
얼마 전에 아파트 거실 벽에 붙어있는 전등 스위치가 고장났습니다. 그래서 수리점 아저씨를 불러 새것으로 바꾸었는데요. 아저씨가 가고 난 뒤에 살펴봤더니 직사각형의 스위치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어요. 미세하지만 상단이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신경에 거슬리고 불편합니다.전같으면 끙끙대면서 뜯어내고 기어이 바로 잡았을 겁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스위치를 면벽하는 수도자처럼 바라봅니다. 익숙해질 때까지. 그리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저는 오랫동안 출판과 언론에서 잉크밥 먹고 살았습니다. 지난
자동차의 엔진이 멈춘 지 한 달, 그것을 폐차한지 3주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조금 더 친환경적으로 살아볼까?’생각하다가 퍼뜩 놀랐습니다.직장생활을 하다가 육아를 위해서 회사를 그만둔 게 1999년. 그리고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 자동차를 처분했습니다. 그때도 ‘이제는 조금 더 친환경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과천시민회관의 녹색가게에서 아이 옷을 구입해 오는 중이었습니다.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걷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요. ‘소나긴가?’하고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처마 밑으로 피했는데 비가
8월 31일, 8월의 끝자락!오늘은 손녀 세라와 은평역사 한옥박물관을 찾기로 했다.지금 그곳에선 국립한국문학관이 서울 은평구와 협력해 기획전을 열고 있다.이 전시는 분명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남겨지지 않은 것을 살핀 것이다.는 제목 '遺事'에서도 알 수 있듯이 '正史'에는 포함되지 않않았지만, 당시 세상에 남아 있는 글과 이야기를 모아 기록한 것이다.유학자의 시각으로 쓴 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이야기와 정치적 비주류였던 불교,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제외했
1923년 9월 1일, 관동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여파로 발생한 대화재로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역은 궤멸하다시피 큰 피해가 생겨났습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4만 명에 이르렀고, 이재민은 340만 명에 달했습니다.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대지진의 참변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민심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경찰과 자경단을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관동대지진을 관동대학살로 몰아갔습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습니다.그들은 폭도로 변한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했
목요일(7일)인 어제,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했습니다. 코로나 창궐 뒤로 막혔던 외출외박이 9월 1일부터 풀렸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도 외출했지만 병원에 갈 때나, 병원의 허락을 구해서 명절 때 잠깐 다녀간 게 고작이지요.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공원에 갔습니다. 왜 이렇게 멀리 가느냐로 시작해서 병실에서 돌아가신 분, 공기가 좋다, 다향이 출근한다니까 얼른 가서 밥 먹고 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집에 갈 땐 걸어가? 라는 말이 녹음기를 켜놓은 것처럼 반복됐습니다.삼사십 분 산책한 뒤에,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냐고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힘들어 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그것이 비난과 원망으로 돌아올 땐 더더욱 상처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연히 관심을 가졌구나. 그냥 모른 체할걸!’ 후회하게 됩니다.오래전부터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에 근거해서 얘기를 해도 말에는 감정이 실릴 수 있고, 그 순간에 사실과 관계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이니까요. ‘당신’이라는 3인칭 존칭이 어감에 따라서 시빗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말의 위험성을 인지한 다음부터는 글(편지)을 사용해서 소통을 꾀하기 시작했습니
지난 주중에 메시지로 받은 편집진의 권유로 '미리 쓰는 부고문(2)'를 써보려고 하니, 여러 생각이 엉켜서 쉽게 구도를 잡기 어려웠다.그래서 한겨레신문의 부고란(=궂긴 소식)에 실린 여러 사람들에 대한 부고문 형식을 일부 참조하고, 나름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어설프지만 제3자(者)의 시선으로 '미리 쓰는 부고문'을 작성해보았다.----------------------------------------------------------------------------------------~ 지난 주말 북한의 평양 대동강 다리에서 남한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