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야당이란 말 들으면 궁금하다.보수란 말을 저렇게 마구잡이로 가져다 써도 되나 싶다. 일부 여당 의원과 몇몇 야당 의원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보수라기보다는 몰상식으로 똘똘 뭉쳐 사익만 밝히며 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에 가까워 보인다. 언론은 이들에게 ‘보수’라고 부르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작은 거리낌도 없다.인심이 좋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관례인지, 한통속인지 모르겠다. 보수란 말 톺아보고 우리가 보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보수’란 말뜻에 걸맞는 사람들인지 따져보자. 강도한테 시민이라 부르면 안 되듯, 공동
한반도 신문화 발상지를 개성이라 꼽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는 고려 말 중국 성리학이 개성을 통해 들어온 까닭이다. 흔히 서경이라 일컫던 평양은 고구려 때 도읍이었고, 시대가 변해 고려 당시에는 개성이 도읍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새로운 학설과 문화는 당연히 개성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근대문화 발상지는 어디라 해야 할까? 더러는 황해도와 평안도를 일컫는 양서와 개성, 강화라 말들 한다. 이런 문화의 유입처나 발상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이야기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역에 따른 문화 차별의식에 관한 것이다.
생각수첩은 말그대로 자신의 평소 생각들을 메모한 수첩이다. 순전히 필자의 것으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저 일독으로 족하면 좋겠다. 수차에 걸쳐 싣겠다. 1. 지식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의식을 이끌며 의식은 깨달음을 낳는다. 깨달음이 진실 된 삶의 길이다.2. 무슨 의도(意圖)로 무엇을 이루려 말자. 무상(無想), 무상(無常), 무념(無念), 무아(無我)로 삶이 참이더라.3. 먼 곳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기대하지 말자. 만사는 현상(現狀)이다. 현상을
어둠 속에 잠자는 그대여!장막을 거두고 어서 일어나시오우리가 하나였던 게 언제였던가요세월에 덮여 기억조차 희미하구려 밝게 빛나던 천중의 새벽달도밤새 기다리다 지쳐빛을 잃어가지 아니하오우리의 그리움도 사랑도그렇게 사라질까 두렵소 지금 가장 확실한 것은우리 아직 살아 숨 쉼이요본향으로 간다는 것이잖소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그대가 내 곁에 있는 것이외다 시간과 세월은 멈춤이 없고붙잡을 수 없음이 세상이치이니회한의 우수에만 젖어 있지 말고그대여!우리 기다림의 애절함을 저리하고헤어진 시간들을 이젠 끝장냅시다
서민들의 희비애락을 늘 같이했던 놀이이자 음악인 풍물, 그래서 풍물은 민중들이 억압받고 어려움에 부닥치면 늘 같이한다.허리가 두 동강 나고 전쟁의 비극과 오랜 분단에 신음하는 겨레의 아픔에 풍물인 으로서 그 극복을 위해 애쓰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작년만 하더라도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위기에 걱정이 커서 8·15 때 천북으로 전쟁반대를 외쳤었는데 올해 남북 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이 나오고 역사적인 북미 정상 만남 등 민족의 앞날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때 평화정착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개성공단이 다시 가동되고 금강산이 열릴 때 신
오늘 보니 어제 '식민지역사박물관' 행사 사진과 그에 대한 글로 한주회방이 차고 넘친다. 이런 저런 것들을 살펴보다 보니 어제의 일들이 물위에 던져진 차돌에 번져 일어나는 물결처럼 되살아나 뇌리를 채운다.가만 생각해보니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나는, 내 생애 가장 슬프고 무거운 떡 한쪽을 먹은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한은행 앞 기자회견 순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박물관을 돌아보고 오려고 갔었다.1층 내실 로비에서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이 행사에 침을 뱉으려고 왔냐고 따지는 이ㅇㅇ 부운영위원장에게
우리가 컴퓨터 배울 당시 선생님의 나이는 60대 중후반 이었다.예전에 선생님께서는 15년 정도 미군부대에 근무를 하셨고,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해서 500명중에 10명 뽑는데그중에 합격을 하셨다. 공인중개사 일을 10여년 하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은한 건 하면 수입은 많았지만,그 당시 부동산업을 하는 분들이 수입이 많다보니씀씀이가 헤퍼서 자신의 모습도 다른 사람들처럼마음이 폐허화 되는 모습이 싫어서그 업을 접으셨다고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 와중에...컴퓨터를 사용하시다가
"브사야에요. 친구들은 '비' 라고 부르지요. 당신은 일본인인가요?"늘 내가 앉아 데낄라를 홀짝거리던 자리에 오늘은 그녀가 먼저 앉아 있었다. 양주병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는데, 보관해 놓았던 것을 먹고 있는지 새 병을 땄는지는 모르되 혀 꼬부라진 소리로 보아 많이 취한 듯 보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보다 훨씬 작아보였다."한국 사람인데 . . .왜 일본인이라고 생각했어요?""여기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서 . . . 한국인은 당신이 처음일걸요?"태국에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그나마 위안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흑인남자(모건 프리먼 분)와, 백만장자지만 주위에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는 백인남자(잭 니콜슨 분)가 죽음을 앞두고 우연히 병원서 만나 우정을 맺고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같이 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돈은 매우 많은 데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돈이 없는 사람이 같이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관객을 웃게도 만들고 가슴 찡하게도 만들지요.에
나의 출가는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연을 했던 'Bucket list'라는 영화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시한부 삶을 판정받은 두 주인공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List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이야기다.모든 사람이 이들처럼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자신만의 Bucket list를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List를 만드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관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인도로
사람 몸 보다 더 뜨거운 열기 가볍게 넘나드는이 무더위에 부채 들고 다니는 사람 찾아보기 어렵다.옛날엔 은행이나 회사에서 심심찮게 나눠주곤 했는데이제는 손선풍기에 밀려났나 보다. 더위 몰아내는 바람도 좋았지만 답답한 마음울화통 터지는 일 활활 쫓아내는 부채질 시원했는데.서울대병원 이리저리 맴돌자니 부채 닮은범부채꽃 한껏 모양내고 반긴다. 편집 : 김혜성 객원편집위원(cherljuk13@nate.com)
이 세상을 하나의 존재, 더 나아가서 하나의 '거대인간'으로 본다면 이 거대인간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인간도 없을 것이다. 이 인간의 부모가 누구일까는 궁금하지 않다. 빅뱅설이 유력하지만 창조설을 무시할 수도 없다.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도 눈에 보이게 검증할 수도 없거니와 창조의 주체가 스스로 '내가 창조했다'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거대인간의 나이가 몇살인지 수명은 언제까지일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그의 삶은 지구에 국한되어 있기에 지구의 역사가 곧 그
제발,이제는 제발죽지 마요살아서함께 살아내요 빛나는 얼굴의어여쁜 사람제발죽을 힘을 다해참아내요 어느 날 갑자기행운이내 앞에 떨어질 거란 생각 말아요행운은 없어요이 악물고 살아내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우연인 듯친절한 얼굴로 다가서는 사람은당신을 죽일 사람이지살릴 사람이 아니오. 큰 일 할 사람들 옆엔항상 친절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죠칼을 물고 독을 숨긴 채간도 빼 줄듯이,그 사람들을 조심해요 이 뜨거운 여름하늘을 올려다보기 힘들어도살아서살아내요제발 누군들 이 피비린내 나는 하늘을올려다 보기 쉬운 줄 아슈?그냥 그렇
장마 그친 후,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 아래 내리쬐는 햇살을 나는 좋아한다.강렬한 태양열은 계절의 변곡점임을 알리는 증표다. 강렬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서서히 하강하면서 겨울로 수렴해가는, 그러나 아직 겨울을 직감하기 이른 순간이다. 그 태양 아래서 미래를 망각한 채 우린 생명감을 만끽할 수 있으니. 최고의 영양 상태로 뭇 생명들도 한껏 싱그럽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겨울을 위해 저장하고 열매를 남기는 일에 열중하는 중이다. ‘맛있는 과일로 종족을 번식시킬까?’ ‘바람에 씨앗을 날릴까?’ 그 계절을 나는 즐기고 있다. 자연의
언제부터인가 기다림이 줄었다. 아니 거의 없어졌다. 기다림은 그리움이고 설렘이다. 기다림에 빠지면 낮에는 바람과 손잡고 하얀 구름 위를 둥둥 떠돌며, 밤에는 별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 기다림은 끌림이고 사랑이다. 하지만 인내해야 숙성(熟成)된다. 숙성되어야 참다운 멋을 보고 진한 맛에 빠진다. 삶의 활력소인 기다림이 없으면 삭막하고 희망이 사라진다. 심신에 삭풍이 불어 뼈까지 시리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팥 없는 찐빵이요, 김빠진 풍선이다. 허망한 날들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왜 왜 기다림을 멀리하는가?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는 하나같이 우리를 일깨운다.우리가 숭고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그리고 이세상을 떠날 때는 우리 모두는시간의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 Lives of great men all remind usWe can make our lives sublime,And departing, leave behind usFootprints on the sands of time ~“ - 헨리 워드워즈 롱펠로우 - 때로 구질구질한 일상에 매몰되는 자신이 싫어질 때, 앞서 살아간 인물들의 글이
- “아빠” 총 사주새요. 그러면 학교가서 공부도 잘할거고요. 그리고 동생도 매일 놀아달라면 놀아줄거고요 뿐만 아니라 도와주기도 할 거에요. 그리고 맨날 지금까지 총알만 주워 주었잖아요. 그리고 착한아이 둴께요. 이 말을 약속하깨요. 그러니 총 사주새요.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이렇게 썼다.다음 달이면 출국하는 큰 아이에게 접종을 증명할 산모수첩이 필요했다. 잦은 이사로 어딘가 사라져버린 수첩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뒤적거리다 이 편지를 발견했다.그때는 BB탄이 유행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플라스틱 총알을 난사하며 아파트랑
참으로 멋진 풍광에 반해 더 가까이 가서 보려다 고꾸라지고 자빠지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경우가 종종 있다. 조건없이 베푸는 자연도 때로는 가까이 옴을 허락지 않는다. 가까이 가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많은 사람들이 아주 훌륭하다고 인정한 어떤 사람도,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훌륭함 뒤에 감추어진 부끄러운 민낯을 종종 만난다. 그 다음부터는 존경보다 실망이 앞선다. 때론 만남도 거리를 둘 때가 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
복날(伏日)우리 날로 6월 5일(7월17일)이 초복(初伏)이다.초복을 시작으로 10일 후에 중복(中伏), 다시 10일후 말복(末伏)이다. 우리들은 복날이면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는다. 이러한 음식은 삼복절식(三伏節食)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복(伏)이란 음기가 일어나려 하지만 남은 양기에 눌려서 엎드려 있는 날이 복날이라고 지봉유설은 적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년 중 가장 더운 계절에 혹시라도 몸이 허해질까 날을 정하여 영양식을 먹게 하였던 것이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다. 더러는 혐오식품이라고 하지
무엇으로 살까?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어줄까? 꿈과 희망? 성공기대? 행복? 너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잘해보자. 좋아질 것이다’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무한하고 무차별적인 욕망이 구체성을 방해할까? 욕망은 뱃속에서 나온다 했는데 시커먼 뱃속 때문일까.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참 성스럽고? 착한 답이다. 과연 그럴까? 이 또한 선언적이고 구체성이 없다.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인가? 하느님의 사랑이
“그때 내 수업이 어땠어?”“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제쳐두고 딴 이야기만 하셨습니다....”“????...!!!”전교학생회장을 지냈던 나이가 50이 된 제자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전교조관련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1989년 고등학교 2~3학년이었던 학생이 나이가 50이 되어 우리를 초청해 만난 자리에서였다. 학급담임도 아닌 국사와 윤리 그리고 음악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보고 싶다며 6명의 제자부부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삼천포와 창원 밀양 드리고 멀리 광주에서 달려 온 제자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SNS를 통해 근황을
하나 뿐인 지구.지구는 하나뿐이다. 거대한 우주엔 무수한 별들이 있으며, 그 중에 어느 별인가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있고, 거기엔 지구에서와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지구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가 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을 것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히 생각하고, 잘 보존해야하는 이유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지구의 환경, 생태 운동에 주력했다. 전교조 해직교사 시절, 악화된 나의 건강을 되찾고자 산을 자주 찾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자연을
존경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미로 쓰인다.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처지에 있든 그를 존경하고 예우한다면 가히 그 자체로 존경받을 만하다.그러나 지나친 존경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중국을 대하는 사대주의가 그러했고, 현대에 이르러 미국에 대한 자세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어디 정치에서 뿐이겠는가?스포츠에 있어서도 그렇다. 월드컵 축구에서도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을 만나면 주눅부터 든다. 그들의 축구 실력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물론 발재간이나 공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그들
이 시사꽁트는 연합뉴스 16일자가 보도한 내용들을 텃밭에 있는 식자재처럼 생채로 가져와 토씨만 몇 개 바꾼 후, 미리 준비한 몇 개의 양념을 넣고 버무려 만든 것임을 밝힙니다.(주-글 쓴 사람) 소문대로였다. 손 등이 쪼그라들고 손가락은 으스러질 것 같았다. 15초 정도였을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손을 빼자마자 난 곧바로 공격 모드로 전환했다. 막걸리를 두 어잔 연거푸 마신 것은 준비태세를 확고히 하기 위해 취한 나름대로의 사전 조치였다.“김정은 위원장하고는 왜 그리 짧고 부드럽게 악수를 했던 겁니까?”그는 미소를
‘지리산 산내’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을 지칭하는데, 필자가 인생 2막을 시작한 곳이다. 필자 또래의 은퇴자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귀촌을 원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데는 배우자의 반대 때문이다. 필자는 다행히 아내가 동의해서 시골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필자의 지인들은 시골생활이 따분하지 않느냐고 물어 온다. 그에 대한 대답이 될수도 있는 시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곳 지리산 산내는 여타 농촌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이곳은 90년대 말 도법스님이 주도한 귀농운동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이 새로운 바람을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생명들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간다. 모든 생명들은 그 스스로가 자연이므로 자연으로 살다가는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또 한다.한 생명이 홀로 살 수는 없다. 만물은 하나의 자연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고 인간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잊었다. 아니 잊기를 원했다. 어설픈 인간의 사고력과 지력이 자신을 자연에서 분리시킨 것이다. 그런 후 자신을 자연의 상위에 놓았다. 착각이고 오판이다. 잘못된 그 사고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로 확장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언제부터 그랬을까? 나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으면 모두 나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음식도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면 다 안심하고 먹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홈 플러스나 이 마트 등에서 팔고 있는 인스턴트식품이나 음료수도 믿고 마시며 하등의 의심도 없이 믿고 사 먹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는 수술을 세 차례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2008년 정년퇴임 후 내시경 검사 결과 대장암 2기 초라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환자가 결정하라는 의사의
그저께 목요일 오후4시 반쯤이었어. 종로2가에서 개인적 일을 끝낸 나는, 집에 가려고 5호선 종로3가 역 승강장 나무의자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계단 출입구 쪽에서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인가 살펴보았어. 그러나, 여러 사람들로 인해 시선이 가려지고 큰소리도 뜸해져서 다시 스마트폰 열공에 빠졌지. 2~3분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진짜 천둥치는 고함소리와 함께 신사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절모를 쓴 70대 후반쯤 되는 어느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고 이리 오고있는게 보였어.
며칠 전 일이다. 오후 5시 좀 넘어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금동 4거리 근처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우회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 빨간 벽돌이 반토막나서 뒹굴고 있었다. 슬쩍 피하며 천천히 차를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저거 그냥 두면 다들 불편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차문을 열고 나가 벽돌을 치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미 차는 4~5미터 앞으로 나가버리고, 뒤에 차들도 따라오고 해서 그냥 어정쩡하게 앞으로 가게 되었다. 한 100미터 가다가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옛날 한적한 시골에 한 유생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홀로 잘 난 촌뜨기 서생) 날이면 날마다 무슨 생각에 골몰하는지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옳거니, 바로 그거야’ 하면서 두 손으로 무릎을 ‘탁’치고는 곧장 신주단지가 모셔져 있는 신방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신주단지 앞에 냅다 무릎을 꿇고는 상제께 간곡히 아뢰기를 유생: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상제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평범한 시골 유생이옵니다.상제: (느긋하게 쳐다보면서) 그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실천 여성학자 손이덕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삶의 질곡에 빠져 있을 때였다. 내 삶에, 가정폭력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만남이 우연적으로라도 있을 수 있었겠는가. 가정폭력은 필연의 매개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소통하던 몇 달 뒤, 나는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 비 내리는 오늘처럼, 바람까지 더해 우산이 반쯤 날아가는 감동(?)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기동 이북오도 도청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청아한 목소리도, 빛나는 피부와 반짝이는 눈빛도 모두 존경스러운 마음에
22일 오후7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한겨레 창간(1988년5월15일) 30주년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기념 행사로 한겨레 주주 독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함께 부르는 진실의 노래 평화의노래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민주주와 진보 정론을 꿋꿋하게 지켜 나갈 것을 다짐하고, 관객과 출연진 모두 한마음으로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이라는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주주독자들의 마음이 하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