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는 열쇠가 없다 - 스스로 일어서는 나라의 꿈 젊은 사람들이 다 늙어가지고젊은이들이 노인이 되어서세상 탓이야어려서부터 중간만가라나서지말고 중간만가라그래서 병들고 병들어젊음은 다 사라져버린한반도 남녘의 불쌍한 청춘들모두 다 어쩌라고 어쩌라고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그렇게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흘러지금일제 시대 후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조선놈들은 안된다고 우리 입으로 말하며 살아온 세월어긋난 해방 이후에는다 미국 덕분이라고 하고 살더니이제는 미국이 하라는데 어떻게 하냐고자주파도 민족주의자도 그냥 그냥 살살 살자고우리가 어쩔
우주의 아이어느날 아침 아이의 울음소리 우렁찼네.장대비 속에서도 우렁찬 울음소리에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네.그리고 세월 속에 하루 이틀 사흘 날들이 가고...어른이 된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고엉엉 울었네.세상 참! 세상 참!속으로만 울려퍼지던 울음이 그친 날그 오래된 아이가 지구를 들이 받아버렸네.우주를 받들며 단단히 뭉쳐진 아이는 왜 그렇게 지구를 깨부수고 싶었을까?사람들은 가끔 지구를 들고 놀지.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밟고 선 지구를 부둥켜안지.그리고 끝끝내 지구가 되어버리지.어제도 한 시인은 지구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영혼을
내리는 비를 살피며 사는 일이 모두가 살피는 일이었으면사는 일이 모두가 보듬어 안는 일이었으면사는 일이 모두가 그저 바라봐주는 일이었으면아니 그래도 좋은 일이었으면사람들은 서로 하나 둘 각을 돌아둥그렇게 둥그렇게 방울처럼 하나되었으리.사는 일이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처럼너 나 없이 내려놓는 일이었으면너도 나도 웃음 가득저 빗방울 속 둥그런 물방울따라부드럽고 보드란 비단결 같은 웃음을 함께 할 수 있었으리.그저 장대비를 살피며 바라보는 이 마음처럼지금 이후 아니 오늘 이후 또 그렇게 맞이할 수 있었으면, 편집자 주 : 김형효 시인은
지나고 보니 말로 다져지는 진실은 허망하기 일쑤더라지나고 보니가벼운 진수성찬의 말이 시가 된 사람들도 있더라지나고 보니실천과 흉내낸 실천의 입은 다르더라지나고 보니 알게 되는 것이 있더라침묵을 품고 하는 말들이 무겁게 실천하는 진리의 말인 경우참으로 많고 많더라지나고 보니뜻없이 지나친 침묵은 없더라굳게 다물고 눈빛으로 전해온 귀한 인사가 많고 많더라시인들에 심중에 갇힌 말들이 무겁게 날 감싸온다.지나고 보니 덧없이 흐른 세월 속에서 강고히 지켜온 말들이우두커니 날 바라봐주더라내게 말없이 건네는 무거운 말들이 눈빛들이나를 살게하고 나
조개무덤 모든 것을 비워낸 것그 몸뚱이를 움직였던 삶은 사라졌어도여전히 자기 종족이 살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무덤 하나끝끝내 바다를 떠돌다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뭍에 올라도여전히 자기네 종족이 살았던 곳바다를 안고 사는 무덤인 채다시 생명인 네가 참 귀하구나.무덤인 채 살면서도종족의 땅을 맑히며 생명을 불어넣는 소라하물며 사람인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우리가 사는 땅 곳곳에 철심을 박고 죽을 약을 치는못난 치세에 말이 막히고 눈을 감으면 죽음의 동산만 하나 둘 줄지어 서는구나.편집자 주 :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나마스떼!너 나 할 것 없이 주고받는 인사가경계 없이 우러르는 히말처럼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있네.바람과 구름, 하늘과 땅,지상과 천상을 잇는 사람과 새천상천하 그 모든 것이 영혼의 씨가 되는나마스떼! 나마스떼!너 나 할 것 없는 입소리와 말로피고 피네. 너도 꽃이 되고나도 꽃이 되는그런 세상을 만나는 일너도 나도 서로 축복이 되는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며 걷는 길사람도 하늘도 땅도 구름도 바람도 별도 새도그렇게 영혼의 눈을 뜨는 길걷는 동안 사람은 서로의 안부로서로에 사랑이 되네.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이좋은 안부가 되어 살아가시길맑
산다는 것사는 것 참 쉽지 않다.산다는 것 그리 어렵지도 않다.흔히 무엇을 하고 사느냐 묻고답하며 살고 있다.내 것이라 챙겨 볼까?아니 내 삶의 유익을 구해 볼까?그러고 있으면 저만치 달아나는 것들그것은 나를 애달프게 하고아니다.이것은 사람들에게 좋아이것은 많은 사람이 행복해할 일이다 하면나보다 먼저 손내밀어 나를 돕는 사람들참, 이상했다.처음 그 경험을 할 그때는그러나 지금 너무 모자라다 믿고나를 좀 더 살찌게 하고나를 좀 더 넉넉하게 하자니자꾸만 삶이 벅차고 버겁다.왜일까?아직도 답은 멀다.그래도 미리 여러 차례 보았던 것들로난
에베레스트(사가르마타:하늘바다)를 걸으며 사색하다 - 들어 가는 말모든 여행은 낯설음을 즐기면서 시작된다.낯섦이 두렵거나 낯섦이 어색하거나 걱정된다면 여행은 무의미할 뿐이다.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절대 여행을 성공적으로 할 수 없다.때로는 멍청하다고 소리들을 만큼 생각없는 사람처럼 낯선 길을 무모하게 가야할 때도 있다.그런 모든 것들이 여행이 가져다 주는 만족이다. 지난 2008년 4월 19일 오후 2시쯤 나는 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에 일곱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여행은 한국화가의 네팔 전시회와 일행 네 명을 가이드
개와 고양이 나는 때로 개가 되고자 한다.그 날카로운 이로 물어야 할 때물어뜯고 흔들고자 하는 것이다.나는 때로 고양이가 되고자 한다.예지가 있는 고양이 수염으로살짝 헛디딤발을 사뿐히 옮겨 딛고날카로운 이빨로 놈들을, 것들을 물고날렵하게 날선 발톱을 세우는그런 고양이가 되고자 한다.어느 날엔가누가 묻는다왜 물었는가?어느 날엔가누가 묻는다왜 날선 발톱을 세웠는가?그것은 비밀이다.물어야 할 때 무는 것물고, 찍어 물고 흔들어야 할 때날선 발톱으로 할퀴고물고 발톱 세울 때그때를 말하는 것은 비겁이다.미리 말하는 것은,그것은 비밀이다.언젠
인간 - 사색하는 일상 손을 내밀었습니다.잡히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며한 걸음 옮겨 딛었습니다.멀고 먼 길 위에 슬픔을 올려놓고가까운 곳에 슬픔을 걷어내며 길을 갑니다.그것이 인간입니다.멀고 먼 길 위에 기쁨을 얹어놓고가까운 곳에 기쁨을 길어 올리며 길을 갑니다.그것이 인간입니다.어제도 울었습니다.오늘도 울었습니다.내일도 울고 싶습니다.슬픔도 아닌 기쁨도 아닌살아있음으로 울고 싶습니다.어제도 웃었습니다.오늘도 웃었습니다.내일도 웃고 싶습니다.슬픔도 아닌 기쁨도 아닌살아있음으로 웃고 싶습니다.편집자 주 : 김형효 시인은 1997년
나는 빨갱이다 길을 걷다.문득 통일을 떠올리는 것이 불온하다면나는 빨갱이다.내가 북녘땅을 그리워하는 것이북녘동포도 한 민족이라 믿는 것이그것이 불온한 것이라면나는 빨갱이다.일제 잔재를 청산하고미국군이 한반도를 떠나야한다는 사유가참말로 불온한 것이라면나는 빨갱이다.길을 걷다.개성이나 평양으로 가서 백두산을 오르고 싶은그런 사색이 불온한 것이라면나는 빨갱이다.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로 문단에 나왔다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
정전협정 폐기를 기대하며 트럼프도 하는데왜 우리는 그걸 못하나?트위터에 대고 갑자기오래된 연인을 그리움에 사무쳐나, 너 보고파! 잠깐이라도 좋아!우리는 왜 그걸 못하나?이제 좀 하자.우리 이제부터 자유롭게 왕래하자.우리 이제부터 그렇게 하자.우리가 하자. 가자.망설이지 말고열린 하늘만 보고 가자.70년 넘은 분단의 장벽을 거두러 가자.트럼프도 함께 가자.그 누구라도 손잡고 가자.갈 수 있는 길, 가야할 길이라면그 언제라도 가자.그 누구와도 가자.우리가 주인 되는 길에 당당히 가자.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얼마나 더 감격해야 올까?얼마나 더 벅차게 올까?통일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다.오늘만큼 또 7.4공동성명을 품고오늘만큼 남북기본합의서와 6.15를 품에 안고10.4공동선언과 4.27판문점회담의 정신과2차, 3차 정상회담의 온기를 품고왔다. 왔어.그렇게 오늘만큼 오고 있다.그렇게 오늘이 통일의 날인듯 새로운 오늘이 오고 있다.그렇게 오늘만큼씩 품고 온 지난 소중한 기억으로 왔다.왔어. 또 왔다.내일은 오늘만큼 간직한 온기로 가자.그날이 통일의 날이다.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길 이후의 길 김형효 어머니와 아버지가 땅에 섰다. 그 땅을 기어다니던 나는 어느날 두 발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섰던 땅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어느날 두 발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걷다가 어머니, 아버지께서 김을 매듯이 논밭을 살피듯이 이리저리 세상을 조금은 살펴볼 그때야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땅을 찾아섰네.그때야 겨우 알았네.김을 매며 논밭을 살피는 일이 농작물을 살피는 일만이 아니었음을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김을 매는 일도 논밭을 살피는 일도자식을 키우는 일이었음을세상사 시름이 쌓여 어쩌끄나 아슴찬허다야의 탄식이무슨 뜻인지
엄마의 봄 그리고 김형효 그리고 통일이 오것지야.그래 그래야 쓴디.어쩌끄나. 그리 되것지야.오매 살다봉께 이런 시상이 와분다야.오메 오메 얼마나 좋냐.인쟈 느그덜 사는 세상 걱정 없어야.그냥 다투지 말고그냥 급허게도 말고착실허게 사람 공갱험서 살먼 쓴다.긍께 인쟈 진짜로 정말로 걱정 없어야.오메 존거. 오메 존거. 참말로 잔치를 벌려야 쓰것다.참, 잘 왔다. 그래 참, 잘 왔어야.올해는 봄이 북녘에서 왔어야. 참, 좋다. - 4월 27일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기념하면서 -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사흘 전 엄마를 그리고 아부지를 모시러 고향집엘 갔다. 그리고 내일, 모레는 분당에 가서 다시 건강상태를 점검할 것이다. 등뼈에 40퍼센트만 남기고 무너져버린 상태를 접한 아들은 울지도 못했다. 그저 엄마의 얼굴에 가득한 어두운 그림자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슬픔을 동생들과 이야기하다 큰여동생이 분당에 모셨고 점검 결과 등뼈를 시술을 통해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러고보니 엄마도 아부지도 인사하고 안부로만 자식도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루만졌어야했다. 안아도 드리고 보듬어도 드리고 이제 우리
분향소 가는 길 하늘, 바라볼 하늘도 없이바다, 수심깊은 바다처럼오늘 대한민국의 지상에는 바다의 나라에 머문 아이들처럼침몰한 사람들이 상심한 바다에서허우적대는 학살의 마귀들을바라보고 있네.침묵하는 바다와 하늘이 하나그렇게 지상의 눈물이 하나 되어울다가 울다가 지친 울음이 분노로 일렁이는 거리에서 너도 나도 상주가 되어 슬픔의 거리에서학살자들을 바라보네.우리는 그렇게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어숨죽인 우리의 아이와 어른과 청춘을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거침없이 보듬으러 얼싸 안으러 그렇게눈물의 거리, 영혼의 거리로 가네.아! 광화문에
세월호 304인 그리고 김형효엄마의 나라에서 엄마의 나라로 아빠의 나라에서 아빠의 나라로그러나 엄마, 아빠와는 이별한 나라그렇게 일시에 나라를 잃었다네.그대들을 기억하는 엄마, 아빠의 나라 사람들은여전히 그대들의 나라를 찾아 광장에 머물고 있다네.안녕을 잃은 나라에서 안녕을 찾는 나라로 가고 있네.그렇게 304인의 봄이 오면 안녕할까 하고 손을 모으네. __(())__오늘을 어찌 잊으랴!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로 문단에 나왔다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
304인의 봄 김형효 왔어요. 왔어요.물 속 세상에서 왔어요.내가 낳고 자란 지상에 왔어요.어머니의 나라가 된 아버지의 나라가 된나의 고국이 되어버린 지상에 왔어요.봄도 함께 왔어요.봄과 함께 왔어요.우리들의 봄날을 살았던 그날은 순간인 듯 찰나인 듯벌써 1072일이래요.이제 내 나라인 듯 물 속에서 보낸세 차례의 사계절은 멀고 먼 옛날로 억겁의 세월처럼 가고어머니의 통곡소리 파도에 실려 울어오던 날우리도 함께 거친 파도가 되어 울었어요.오늘은 지치고 지쳐봄비로 울어요.그렇게 지상을 찾아 왔어요.지상의 사람들에 인사하 듯 우리가 봄
한 번은 오겠지 김형효마른 눈물도 얼어서 흘러내릴 것 같은 날한 방울 슬픔이 내 삶을 다 담아내는 날봄이 와 꽃으로 내게 안길 세월이 한 번은 오겠지.그래 저 찬 바람 속에 열망을 품은 사랑이 있으니한 번은 그런 세월이 있겠지.언 땅처럼 가슴시린 사연으로 멍든 동해에서 서해한 번은 뜨겁고 찬란히 꽃 대궁 흔들어볼 춤추는 한반도그런 날 한 번은 보게도 되겠지. 얼마 전 지인의 출판 권유로 원고를 정리했다. 지금 보니 최근 시편인데 이 시는 빠트렸다. 아깝지 않은 시편은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 아까워서 다시 한 번 올려본다. 북미관계와
지난 3월 9일 토요일 민족작가연합 창립 1주년 '민족작가' 출판기념회가 서울시민청에서 열렸다. 3월 10일 대전역 앞 '사가르마타' 네팔인도 식당에서는 네팔마오이스트 정당과 네팔막스레닌주의 정당이 합당한 후 한국 대전지역 공산당합당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네팔 제1당과 제2당이 합당한 후 한국에 이주노동자 유학생으로 와 있는 당원들이 합당대회를 연 것이다.우리에게는 무슨 자유가 있을까? 경계와 한계가 가득한 나라에 살면서 너무나 당연시 되는 것들이 있다. 사회주의나 공산당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가 되어 있고 그 한계와 경계 안에
나는 웃고 엄마는 웃는 나를 바라본다.사진에서도 아픈 엄마가 보이고 실제로도 아프시다.아무 것도 드시지 못한다해서엄마가 좋아하신다는 엿과 귤을 사서 병실에 놓아드렸다.다시 2주 후에 찾아뵙자는 아내의 말씀이 고마워 눈물이 맺힌다.엄마! 왜, 그럴까?난 엄마라 부를 때가 좋다.나이가 들어 어머니라 불렀지만 최근 다시 엄마라 부른다.그런 엄마가 다시 병원에 계신다.나는 어제 엄마 보러 고향에 갔다.아부지도 뵙고 고향도 뵙고 왔다.세월이 지나면 고향을 어머니, 아버지 뵙듯 하여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복받쳐오는 울음을 참느라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온 역사의 시간처럼길게 늘어선 선로를 따라 의연하게 녹색의 궤적을 만들며 고구려가 온다.조선이 온다. 고려가 온다.고조선이 온다.발해가 온다.장엄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웅크린 듯 침묵처럼 곧게 산 오랜 역사의 세월고구려가 걷고 있다. 고려가 걷고 있다.고조선이 걷고 있다.발해가 걷고 있다.그 누구도 거칠 것 없는 한 걸음 한 걸음고구려의 당당한 기상 앞에고려의 고조선의 발해의 기상 앞에틈 없이 불어오는 바람도 길을 비켜서고 있다.핵보다 무서운 민족의 단일대오 앞에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가는 제국의 깃발들나른한 봄날의
지난 2월 22일 우송대학교 학위수여식장에서는 네팔에서 온 두 명의 글로벌외식조리학과 유학생이 오늘 석사학위를 받았다. 직장에서 쌓인 불편이 많이 불편하지만 좋은 날이니 피곤함을 견디며 학위수여식장을 찾았다. 아내는 축원을 빌어주고 곧 식당으로 돌아가고 나는 남아 사진이라도 찍어주기로 했다. 저녁에는 두 사람을 위한 축하파티를 열어줄 생각으로 우송대학교 유학생들을 초대했고 네팔에서 온 한 학생의 어머니와 남편도 초대했다. 두 여학생의 장한 졸업과 석사학위수여를 축하하며..... 두 유학생과 우리 부부가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영상 편
1997년 첫 시집에 실린 한 편의 시가 가수 정진채님에 의해 살아서 돌아왔다. 살아온 시를 내품에 안겨준 정진채님. 이런 저런 인연과 함께였던 가수 박경하님. 그리고 새롭게 인연이 되신 김광순 시인과 어울려 네팔 술(꾸끄리 럼)과 보드카 8848를 마시며 자정을 넘겼다. 오늘도 즐겁게 하루가 갔다.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로 문단에 나왔다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 , 한·러 번역시집, 2011년
살아내는 일이 기원인 사람들.해발 3200미터 랑탕마을은 지난 2015년 4월 25일 네팔대지진 때 대형 눈사태가 발생해서 500여 명이 살던 마을이 삽시간에 사라지며 35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집은 한 채도 남지 않은 돌무덤으로 변해버렸습니다.저는 2016년 3월 현지를 찾았고, 빵을 만들어서 마을 재건에 힘쓰는 주민과 독일 건축업자들에게 제공하고 돌아왔습니다.그곳에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그 현장에 다시 집을 지으며 '그리움을 찾아가는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바구니 인 할머니는 랑탕 계곡에서 만난 분입니다. 편집
퇴근하고 곧바로 논산역에서 아내와 네팔이주노동자 부부를 만났다. 그리고 전주한옥마을을 향해 달렸다.두부공장에서 일하는 네팔이주노동자 신랑을 위해 한달 휴가를 주신 사장님. 더구나 그의 아내를 초청해주어 어린 나이의 부부가 축복받은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우리 부부도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자고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는 그들 부부를 위해 이벤트를 만들었다.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산책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점심은 전주비빔밥을 먹었다. 오늘은 그들 부부에게 행운이 넘치는 날이었으리라 믿어본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한복 입고
다혜의원에는 다 있었네 김형효다혜의원에는 세상에 세상에다 있었네.다혜의원에는 세상에 세상에다 있었다네.아버지도 있었고 어머니도 있었고빛나는 삶이라고 버걱대며 헛웃음에 묻혀 사는 도시에는 없는 것다 있었네.그 아버지를 그 어머니를 품고 있는 꽃 같은 다혜들이 있었네.내 아버지를 내 어머니를 품고 웃는 꽃이 되어 핀 다혜들이 있었네.다혜의원에는 세상에나 세상에나 찬 바람이 불어도 다 있었네.따뜻한 아랫목을 덥히는 이불 속에 고봉밥 같은 사랑이 다 있었네.21세기가 오고 또 다른 날로 어두워져 가도 다혜의원에는다 있었네.멀리 도시에서 시
그럴 것 같은 김형효일상을 벗어나 어메 아부지 보러 가는 길마음은 시속 100km보다 더 빠르고 빠르게일찍이 고향 노을 깊이 스며들었다.나는 노을이 막 시작되는 시간다니는 직장 논산에서 출발했지만...,아무도 몰래 고향에 이른내 마음따라 바람이 목메게 울어대고 있는 밤에어메와 아부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았다.면소재지에 모든 은혜로 가득찬다혜의원은 고요로웠고 거기 있었다. 살려온 세월, 아픈 세월, 무덤덤하게 지켜온 세월,천하태평을 이끌어온 지상의 모든 신보다 우월했던내 어메와 아부지가 있었다.바람도 기웃대지 못한 고요로 꽉찬 병
봄이 두렵다 김형효봄아봄아 동트는 겨울 곁에서 남 몰래 와다오.봄아봄아 언제부터인지 사랑스럽고 따스한 네가 무서워졌다.봄아봄아 아무도 모르게 와서 소리없이 물러가다오.봄아 봄아 어느 날 내게 두려움이 된 봄아봄아 봄아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곁을 그냥 몰래 지나가다오.봄아 봄아 내 부모님 곁을 뜨거운 여름날로 스쳐가다오....어느 날부터 나이를 느낀다.눈이 녹는 새 봄에 세월을 돌아보시는 어르신들은 그 길로 길을 내시고 우리 곁을 떠나시더라. 사실은 내 아버지 내 어머니께서 얼마 전부터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신다. 불효자식은 강 건너
민주와 아픔 그리고 함께내게 아니 우리에게는 많은 단어가 연대하게 했다.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로 엮어주던 매우 강한 무기가 있었다.그 단어들과 연대해왔고 그 단어들 속에서 평화로웠다.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망했던 여행이 있었다.이름난 시인들 그 안에는 그런 상징이 있었다.그러나 그 상징은 허구였다.어쩌면 매우 오랜동안 그런 상징의 노예였다.바보처럼 그러나 사람답게 그러나 내게는아주 멀고 먼 옛이야기처럼 사라진 꿈처럼내 가슴을 후비는 아픔이고 말았다.지금처럼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고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먼저 죽어가는 마치 그런 세상을
오늘도 죄인 김형효이 나라에서는 자주 죄인이 된다.이 나라에서는 자주 거리에 나가야 한다.이 나라에서는 자주 소리쳐 외쳐야 한다.사람이 사는 이 나라에서는 죽음이 멈추지 않고사람이 먼저인 이 나라에서는 주검을 자꾸 보게 되고사람이 행복한 이 나라에서는 구호만 넘쳐난다.나는 오늘도 거리로 나가지 못했고나는 오늘도 소리쳐 외치지 못했고나는 오늘 그래서 죄인이 되어버렸다.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나는 죄인이다.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사람들이 손잡은 곳사람들이 촛불을 밝혀든 그곳에 내가 없다.나는 오늘도 갇혀 울고 있다. [편집자 주] 김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