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세월호 정부시행령 폐기를 내건 농성장에 다가섰다. 몇 차례 맴돌다 주뼛거리며 엉덩이를 붙였다. 유성효(65)씨 옆이었다. 그는 유가족이 아니었다. 나처럼 잠시 들른 심정도 아니었다. 그는 작년 8월 30일 세월호 특별법 촉구를 위해 삭발했다. 단식 10일째였다. 이번에는 첫날(3월 30일)부터 동참해 매일 밤 11시경에 귀가한다. 상징적으로 416시간을 채우는 끝 날(4월 16일)까지 같은 일정이다. 그는 매스컴에는 오르내리지 않는 재야인사다. 그에 관해선 1985년부터
어느새 수많은 文人들과 映像作家들이 지나가고 이 시대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우 눈같이 소살소날 가을비 오는 아침에 아름다운 글들에 지극히 형식적이거나 큰 모양새 없이 있는 그대로 포출 되었다。Book。& e_Book & D_Book。어느 문학사에서 할 수 없는 모습이고 올해는 저작회도 등록할 예정이다。 文學的, 中國 五言 七口, 詩調, 現代詩 劇詩 敍事詩, 超現實主義 surrealism。Sonnet。記錄的 文學史 아름다움에 雪木처럼 하늘의 겨울나무 파랗게 물들어서 눈길로 시작하고 눈보라 바라보는
하도감 터일제는 왜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 서울 성곽을 허물면서 경성운동장을 만들었을까? 본래 이곳에는 조선 시대 훈련도감의 하급부대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하도감(下都監)과 화약 제조 관서인 염초청이 있었다. 고종 때 창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군 대인 별기군이 있던 자리도 거기였다.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1882년 임오군란을 일으킨 곳이 이곳이다. 이때 공병 소위 호리모토 레이조를 포함해 일본인 13명이 살해됐다. 분노와 상심에 찬 일본인들은 이곳을 없애려고 했을 것이다.이 자리는 1884년 12월 갑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배연옥 씨는 창간 주주였다. 나는 그녀를 처음 순간 시인 김영랑의 생가가 떠올랐다. 햇살 고운 마당가에 천상의 선물처럼 곱게 피었던 모란. 그러나 여름에 피는 모란처럼 따스함을 풍기는 외모와 달리 그녀의 이야기는 적확하고 단호했다. 당시 유치원교사였던 그녀는 암울한 시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민주적이고 삭막한 시대를 깊이 고민했다. 그녀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관을 실현할만한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침잠해 있었다.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길을 가다 말고 명동 한복판의 전봇대에 앞에서 걸음을
한겨레신문 주주총회가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신 모든 주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달 14일(토) 오전 10시부터 서울 효창동 백념기념관에서 제2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습니다. 이전 주총과 달리 올해는 문화행사도 열어 참석한 주주님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주총 의안 심의, 의결 후 경영진과의 대화 때에는 참석한 많은 주주님들이 질문과 의견을 주셨습니다. 한겨레는 주총장에서 접수 받은 질문 중 중요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겨레가 주총에서 받은 주주님들의 질문에 대해 개별적으로 답변 드리긴
갑자기 엄마가 발길을 끊으셨다. 하루에 한 번은 우리 집에 들러 살림을 챙겨주시던 엄마가 달라지셨다. 애들도 “할머니가 왜 우리 집에 안 오세요?”라며 궁금해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집에도 안 계시고 휴대전화도 안 받으셨다. 걱정이 돼서 길 건너 친정집으로 향했다.한참을 기다려 만난 엄마와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면 서운한 거라도?” 조심스레 묻자 엄마는 나를 한참을 쳐다보시다 한바탕 웃으셨다. “에구, 내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바빠서 연락을 못했네.” 그러고는 메일 주소를 가르쳐주시며 “하고
* 김영훈 한겨레 화백 소개 잠시 출판사에 의탁하다가 1988년 한겨레의 시대적 대의에 몸을 실었다.한국인의 심성을 빨리 빨리라는 단어로 함축해 표현하지만, 작금의 삶의 속도는 보다 ‘더’ 빠름을 추구하고 있다.조금만 뒤처져도 세상에서 낙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그러나 인간은 ‘생각’ 하는 동물이다.생각하는 동물이 생각을 멈췄을 땐 주체성을 잃고 타인에게 종속된다.‘생각하는 삶’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oon.kim.1800블로그: http:/
7월 중순 시행될 한겨레 테마여행 기획을 위한 사전 답사를 지난 3일부터 사흘 간 다녀왔습니다. 4월 몽골은 초원이 아니라 '설원'이었습니다. 답사여행 문의: 02-720-0051
우리 가족이 제주에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교래리’라는 산골 마을입니다. 관광지인 ‘산굼부리’와 토종닭으로 유명한 마을이지요. 이주하기 10개월 전쯤에 다향이랑 한 달 동안 제주를 사전답사했습니다. 아이가 학업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만한 학교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요. 그때 눈에 들어온 학교가 중산간의 납읍초등학교와 교래분교, 갯마을의 강정초등학교, 한림공원 안의 재릉초등학교입니다.네 마을 모두 살 집을 알아보았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오래된 시골 마을에는 당신들이 살 집 외에 여분의 주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집
● ‘중도정론지’로서 독자 기반을 넓혀 가길* 이상직(60세) 주주 : 기관·단체·기업 등 여론이 대부분 편향돼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언론을 열망하던 때에 한겨레가 창간됐다. 당시 대기업 대리 한 달 월급 금액의 한겨레 주식을 매입하고 큰 애착을 가졌다. 특히 당시 사촌 처남(홍순복)이 한겨레신문의 교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컸다.1988년에 올림픽 경기를 집에서 시청하고 있는데, 한겨레신문 관련자가 집을 방문해 구독을 권유하기에 그 열정에 공감해 신청하게 됐다.현재는 한겨레·조선·경향 3개 신문을 열독하고
[편집자 주] 백기완 선생한겨레 창간주주. 박정희ㆍ전두환의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ㆍ민중ㆍ통일운동의 상징.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0년 12월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서 쓴 시 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 창간 10년간 (주주총회에서) 싸움박질만 했다. 주총 끝나고나면 스트레스 받는다. 옛날같지 않아 10년 전부터 신문도 안 본다.* 연제철(62세, 남) : 10년 전부터 한겨레 안 본다. 주총 끝나고 나면 스트레스 받았다. 한 10년간은 주주들이 편을 갈라 싸움박질 했다. 거수로만 속전속결 일방통행식이었다. 당시 송건호씨가 (한겨레를 만들어 세상을 바꿀) 좋은 기회를 만들었는데 그를 쫓아내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별로 이익도 안 나는 회사에서 매년 임원 보수 한도액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한겨레 사정에
[기획의도]시대의 아픔에 등 돌리지 않겠다.채 피어보지도 못한 젊은 꽃봉오리들이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부모들은 절규했다. 왜 아이들이 영문 없이 이 세상과 작별해야 했는지.그 아픔과 고통은 몇 마디 위로로 해결되거나 치유되지 않는다.철저한 진상 조사가 우선이다. 모든 국민이 슬픔에 잠긴 부모와 함께해야 한다. 차후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김영훈 한겨레 화백 소개 잠시 출판사에 의탁하다가 1988년 한겨레의 시대적 대의에 몸을 실었다.한국인의 심성을 빨리 빨리라는 단어로 함축해 표현하지만, 작
“아빠, 심심해.” “그렇게 심심하면 우리 공부해볼까?”“아니, 학교공부는 재미없어. 그림을 그리다가도 종 치면 그만해야 돼.”“아빠도 학교공부를 시킬 생각은 전혀 없어.”“그럼, 무슨 공부를 하려고?”“그건 함께 정해야지.”“정말?”“당연하지. 네가 할 건데 아빠 마음대로 정하면 네가 속상하잖아? 하기 싫고.”“맞아, 아빠.”다향이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일주일에 한 번씩 극장에 가서 영화 보기 어때?”“음, 좋아.”다향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평소에 꾸준히 해온 일인데도 좋아했습니다. 다향이가 네댓 살 때부터 만화영화
동대문시장은 1905년 7월 5일 우리나라 최초로 대한제국 한성부에 등록된 민영 도시 상설시장이었다. 이를테면 요즘의 전통시장 제1호다. 본래 흥인문 주변에는 예전부터 이현 또는 배오개시장이라는 난전이 형성돼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실질적으로 일제가 주권행사를 장악하게 됐고, 일본의 경제 침탈이 본격화됐다. 그 한 예가 바로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남대문 시장의 경영권 장악이었다.일본의 경제침략을 막고자 종로 상인들이 시장 설립에 나섰다. 경제입국만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뭉친 것이었다. 1905년 11월에는
강정을 이야기하고 싶어 1년 전에 본 영화 ‘노예 12년’을 끄집어냈다.‘노예 12년’의 시대적 배경은 이러하다. 1840년대 미국은 노예 수입을 금지했다. 북부는 노예제도를 폐지했지만, 남부는 달랐다. 법이 유효하다는 것을 내세워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노예수입 금지로 남부에 노예를 공급하는 게 어려워지자 노예 상인들은 북부에서 자유롭게 사는 흑인들을 납치해 남부로 팔아넘겼다.바이올린 연주가 솔로먼 노섭은 뉴욕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섭은 백인에게 속아 워싱턴으로 연주하러 갔다 납치돼 노예로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세상 물정을 좀 익혔더니 이제는 익숙해진 단어 중 하나가 '월 마감'이다. 한 달을 마무리하려면 이 마감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한 달 동안 얼마나 벌고 얼마나 썼는지를 확인한다. 회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살펴본다. 입장객은 지난달·지난해 동일 기간과 비교하면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 가늠해본다. 월 마감은 다음 달을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지난 한 달간의 활동 성과를 의미 있는 숫자와 각종 지표로 나타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다.새해를 맞이한 지 석 달이 지났을 때 개인적으로
그림20-1, 20-2, 20-3의 명칭은 일본인들이 부르는 고유의 이름이다. 이와 같은 ‘쿠기사시노미’라는 명칭이 노미라는 말은 떼 내어 버리자 ‘구기사시’로 전해진 것이다. 쿠기라는 일본어가 구지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구지(傴扺)라는 본래의 우리 명칭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그림20-1처럼 구부러진 것을 목수들은 ‘누이스끼’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경상도 지방에서 말하는 누이 못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 중 구부러진 것은 맞대기 이음방식으로 못을 박는 경우 사
새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석이나 명품이라 불리는 제품에도 관심이 없습니다.꼭 필요한 게 생기면 느낌이 전해지는 물건을 구입합니다. 그것이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질수록 애정이 깊어집니다. 그래 목덜미가 늘어진 티셔츠나 해져서 소매가 너덜너덜해진 점퍼를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면 딸이 싫은 소리를 합니다. 그 소리가 빈번해지면 어쩔 수 없이 작별을 고합니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요즘은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어쩌다가 동네 목욕탕에 가봐도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세안제를 한 바구니씩 가지고
를 아주 재미있게 봤다. 일본판과 미국판 영화를 다 관람했는데, '나도 춤을 배워봐?'라고 생각 할 만큼 춤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 영화였다. 그런데 '쉘위복싱’이란다. 복싱 한 번 배워볼까? 재치 있는 이름이다. 서울 대학로의 한 복싱체육관이 한겨레신문을 본다 해서 찾아갔다. '쉘위복싱'은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서 베스킨라빈슨과 공차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1분도 안 돼 나타난다. 체육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테이블에 '한겨레'가 턱하니 놓여있다.
제주에서 빗 속 노랑노랑 제주 유채꽃을 주주님들께 소개합니다. 정석공항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동영상 맛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u-DRdlbEPI&feature=youtu.be
은평구(구청장 김우영)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은평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 2015년 4월1일 국내유일의 친화적인 도심 속 숲속 공연장이 새단장 되어 문을 열었다.문화예술관계 김을동국회의원, 은평구출신 이미경 국회의원 , 이재오 국회의원 부인등이 참석하여 오색테이프 10개를 주민 모두가 함께 당겨서 개관을 알리는 행사로 시작 하였다. 은평구 청춘합창단의 합창 유아마이션사인 과 옹헤야를 첫테이프로 끊었다, 이어서 사물놀이패의 신나는 공연이 끝나자 관중석의 어르신들이 사물놀이팀에 "애썻데이" 로 답례하는 행복한 분
NIE (신문활용교육)엔 단연 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진흥재단이 주관 시행하는 NIE 구독료 지원 사업에서 한겨레가 압도적인 배정부수를 기록하며 신문사 중 1위 사업자로 선정된 것입니다. 이 사업엔 한겨레를 포함해서 종합일간지, 경제지, 영자신문, 어린이신문 등 모두 18개 신문이 선정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선정된 200개의 NIE 선도 대상 초, 중, 고등학교가 스스로 구독희망 매체(학교당 최대 5부 이내)을 선택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해 1년 간 신문을 무료로 보내주는 방식입니다. 한겨레는 그동안 이 학교
문득 절밥이 먹고 싶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밥상 앞에서 순해지고 싶었다. 때마침 한겨레에서 소개했던 사찰 음식이 떠올랐다.[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55694.html단풍도 볼 겸 전북 진안군 천황사를 찾았다. 그렇게 현산 스님을 만났다. 작년 9월 말경이었다. 그 후로 그는 끊임없이 밥을 건넨다. 주리지 않을 만큼 적량의 불서(佛書)를 골고루 챙겨준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잘 하듯, 그의 책 선택은 탁월하다. 내 근기에
내가 시골 학교에서 일하고 있을 때만 해도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이런저런 시합을 하다 보면 갓난아기를 대신 보살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도 내가 안기만 하면 울음을 그쳤다. 마을 사람들은 “저 선생 총각이라고 했지만 거짓말 같아” 하며 좋아했다. 내가 결혼하고 10년이 넘도록 애가 안 생기자 “애를 너무 좋아해서 애가 없나 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그런데 마흔아홉에 애를 갖게 되었다. 입시학원에서 일할 때다 보니 ‘이 아이가 대학 갈 때면 내가
[기획의도]‘비닐’ 같은 사람, ‘옹기’ 같은 사람일에 있어서는 아무리 맑고 투명해도 모자란다.그러나 인간관계는 다르다.이성과 논리로만 대한다고 관계가 돈독해지지 않는다.감성이란 윤활유가 더해져야 원활해진다. * 김영훈 한겨레 화백 소개 잠시 출판사에 의탁하다가 1988년 한겨레의 시대적 대의에 몸을 실었다.한국인의 심성을 빨리 빨리라는 단어로 함축해 표현하지만, 작금의 삶의 속도는 보다 ‘더’ 빠름을 추구하고 있다.조금만 뒤처져도 세상에서 낙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그러나 인간은 ‘생각’ 하는 동물이다.생각하는 동
비행기를 놓쳤다. 지난주에는 배를 놓쳤다. 모두 안개 때문이었다. 덕분에 시간이 생겼다. 그것도 5시간씩이나. 글을 써야겠다. 바쁘다는 핑계는 이제 안 통한다.주주통신원이 된 뒤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글을 쓰는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세밀한 관찰력과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작업인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기계적으로 일에 매몰된 채 즉각적인 판단과 선택에만 급급하며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사람들은 왜 다들 바쁘게 사는 걸까? 이 모두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새 차, 큰집 등 개인의
모처럼 고향가는 길, 무심한 안개로 마냥 기다리는 마음 애타네.
인천 용유도 해변에서 포착한 바다 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