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만약 어떤 서열을 정해놓고 각자의 인생이 서열대로 움직인다면 아마도 이 땅의 살아있는 생명 절반은 삶에 그다지 미련을 갖지 않겠지요.살면서 미운 놈 망하는 꼴도 보고, 훼이 꾸냥(灰姑娘: 신데렐라의 중국어)의 유리 구두가 현실이 되는 걸 볼 수 있기에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었을 때 우공이산이라고 합니다.우공이산의 고사는 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주(冀州)의 남쪽, 황하를 바라보는 언덕에 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나이가 90이 되었지요. 집 뒤
시원하고 쾌적한 몬트리올 가을이 지나갔다. 나는 추위를 몹시 타서 몬트리올 겨울이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11월부터 이른 겨울이 시작되었다. 11월 내내 눈과 비가 반복해서 왔다. 영하 16도 이하로 떨어진 날은 집이 따뜻해지질 않아 숨구멍은 내놓고 방풍 비닐을 치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처음엔 매섭게 느껴졌던 캐나다 추위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견딜만해졌다. 번거롭게만 느껴졌던 눈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기후에 살아남게 된 거다. 실험실 생활도 익숙해지고 지난 6개월 동안 얻
回頭是岸(회두시안)의 직역은 ‘머리를 돌리니 바로 언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원래 원나라 때 불교소설인 ‘도유취(度柳翠)’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월명(月明) 나한이 기녀 유취(柳翠)를 불도로 이끄는 내용입니다.‘속세의 인간들은 서로가 길다 짧다 다투고, 너 죽고 나 살자 싸움이 그치지 않는, 끝이 없는 고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 하지만 지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면 바로 피안이다.’라는 의미의 '고해무변(苦海無邊), 회두시안(回頭是岸)'이라는 글에서 따온 사자성어입니다.젊은 날 난생 처음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빛을 따라가는 소녀가 있었다.빛을 따라가긴 쉽지 않았다.눈이 부셔 눈을 감을 때도 있었고먹구름에 가려 헤맬 때도 있었다.그래도 저 너머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제 넘어져도 오늘 달려가고오늘 지쳐도 내일 또 일어나 빛을 향해 달려갔지만, 빛은 늘 그만큼소녀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소녀는 빛이 원망스러웠다. 빛이 늘 소녀를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빛이 늘 소녀를 지켜주는 줄도 모르고. [편집자주] 이지산 통신원은 한겨레창간주주의 딸이다. 1988년생으로 돌 때 한겨레주주가 되었다. 글을 쓰는 과학자가 되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어떤 선택은 큰 후회로 남기도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선택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떠올리는 성어가 새옹지마입니다.대만 사범대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시절, 우언(寓言, 우화)책에 塞翁得馬(새옹득마)라고 나왔더군요.옛날 북쪽 변방에 말을 잘 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새옹이라고 불렀지요. 어느 날 새옹의 말이 마구간을 뛰쳐나가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달려와 위로를 합니다. 새옹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20대 중반이 넘어갈 무렵, 본인의 희망과 주변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꽃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1983년 겨울, 뚜렷한 계획도 장래 희망도 없이 달랑 천 달러(백여만 원) 들고 대만으로 갔습니다. 젊음 하나 믿고, 지금 시도하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막연함으로.김포공항에서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 후, 지금은 대만에 머물며 대만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당시의 나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잠 못 이룰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고속도로를 달려 한 대학을 찾았습니다. 2016년 5월에 쓴 ‘
수년전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자리에 누웠던 적이 있습니다. 신경협착으로 오른쪽 종아리까지 통증이 오면서 힘들게 일어나 벽을 붙잡고 화장실에 가야하는 암울한 시기였지요. ‘이대로 가벼운 산행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맛집을 떠올리지 않은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습니다.약 2년 동안 이런저런 치료와 민간요법을 하던 중, 중국 심천의 어떤 중의원(中醫院,한방병원)에 가서 한달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꽤 규모가 큰 병원으로 현대적인 물리치료도 받고, 20여개의 안마 침대가 있어 중의학
9월이 되면서 몬트리올 날씨가 선선해졌다. 맑았던 여름과 달리 몬트리올 가을은 비도 많이 왔고 나에겐 무척 바쁘고 힘겨운 계절이었다.9월 초부터 나는 연구비 신청을 위한 계획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9월 말 어느 바쁜 날 오후, 실험실에서 정신없이 막바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이 지나가며 물었다.“지산, 지난 주말에 힘든 일 있었다며... 이젠 좀 괜찮아?”.나는 그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응?? 나한테 힘든 일이 있었다고??”그랬더니 그 친구가 오히려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10월 1일부터 30일 까지 문화공간:온에서 대만작가의 한국 민화가 전시된다. 작가는 한국인과 결혼한 대만출신 샤오팅팅(蕭婷婷)이다.샤오팅팅(蕭婷婷)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시에서 자랐습니다.대만의 화강(華岡)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양화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금융계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장래성과 취업을 고려해 전문대학(實踐大學)에 들어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힘들고 지친 사회생활을 벗어나 잠시
요새 자주하고 있는 실험은 ‘면역염색’이라는 실험이다.이 실험은 뇌조직을 잘게 썰어 슬라이드를 만들고 특정 세포를 잘 볼 수 있게 시약을 사용하여 염색하는 것이다. 특정 파장에 반응하는 형광물질을 달아 특수 현미경을 사용하면 뇌조직 세포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염색 시약에 따라 같은 뇌세포라도 실 같이 보이기도 하고 청색, 흰색, 노랑, 핑크, 에메랄드색 등 여러 색으로 나타난다. 사진을 보면 다양한 세포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이런 조화 덕분에 우리 신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생
왕양명(왕수인)은 주희와 동시대에 심학을 창시한 육상산의 뒤를 이어 심학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왕양명은 명나라 때 사람입니다.젊은 시절 왕양명도 과거를 보려고 시, 서, 역, 춘추, 예기 오경을 공부합니다. 유학의 경전이지요.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주희의 해석인 격물궁리(格物窮理)를 보고 실행에 들어갑니다.격물궁리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그 나름의 이치가 있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만물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송나라 유학에는 이미 불교와 도교의 이론이 가미되었습니다. 격물궁
몬트리올 생활도 익숙해지고 날씨도 따듯해질 무렵, 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사촌동생 연서를 방학기간 동안 나에게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연서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같이 보낸 시간은 별로 없지만, 가족모임이나 명절에 만날 때면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살갑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눠서 그런지 정이 가는 동생이라 단번에 보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연서가 몬트리올에 올 시간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얘기를 해줄 기대감과 함께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실험실에
모든 학문은 시대가 변하면 도태되거나 새로운 후계자가 등장하여 더욱 발전시키지요. 성인이나 종교를 창시한 인물도 처음에는 인간이었지만 후대로 가면서 신격화과정을 거치고, 나중엔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배교자 혹은 조사능멸이라는 해괴한 죄로 처벌받게 됩니다.공자는 약 200년 후 맹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제자백가의 한 사람으로 기록될 인물이었습니다. 맹자가 활약할 당시 중국 천하는 도가사상이 단단하게 뿌리내렸고, 묵자의 겸애사상이 시대조류였습니다.맹자는 치열하게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공격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천하에 널리 알
인간 유전자는 약 2만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전자는 30억 개 DNA 염기쌍으로 구성된다. 이 DNA는 여러 단계를 거쳐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유전요인, 외부 스트레스 등에 의해 D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특정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은 인간 질병 원인을 찾기 위해 D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연구하고 있다. 나 또한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내가 하는 연구는 뇌질
인류사에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칭기즈칸. 가장 잔혹한 정복자. 파괴와 학살의 사신. 절대적인 무력으로 이긴 전쟁, 감히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게 하여 이룬 대제국의 평화. 이집트를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전 이슬람세계를 정복하고 동으로는 고려를 복속시킨 원나라.청나라 강희제에 의해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가 됩니다. 청나라가 쇠약해지자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고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국호를 정합니다.몽골리아(약칭 몽골)는 1992년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였고, 현재는 3백여 만의 인구가 사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정적에 싸인 깊은 밤, 어머니 어깨에 기대 누워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노라니 잠은 멀어져갑니다. 가을비인가? 빗소리가 행여 어머니의 잠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살며시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져봅니다. 어머니의 눈매가 마치 내게 말을 하는 듯합니다. “가을비가 오고 나면 추위도 한 발짝 다가온단다. 추위에 상할라. 조심하고 이불 잘 덮어라” (어머니는 언어기능상실로 말을 못함)저는 대답합니다. “엄마, 걱정 마! 엄마 체온이 나를 따뜻하게 해줘. 이불보다 좋은걸! 내년 겨울에도 얼음 같은 손발을 이불속에 넣으면 엄마가
어제는 남편이 갑작스레 어릴 적 살았던, 겨우 초등학교만 다녔던 마을을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남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방에 도착하였습니다. 그이는 예전 이웃에 살았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던 어린 시절 친구 소식도 물었지요. 학교 박물관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시아버지 사진도 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이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듣고 있노라니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의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 여
대만의 딸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남북통일에 관한 뜨거운 이슈를 바라보며 고국 대만을 되돌아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남과 북의 통일을 주제로 희망어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떤 사람은 동서독의 통일을 거론하며 통일의 거울로 삼자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중국과 대만이 장차 통일을 하게 될 것인지도 이야기합니다. 저는 대만의 딸입니다. 제가 여러 한국친구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만이 중국과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의 견해입니다.많은 한국 사람들은 대만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과 중국 사이에
몬트리올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집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리나 교통방법도 익숙지 않아 관광객이자 외국인 느낌으로 지냈다. 두 달 지나니 몬트리올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롭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일까. 실험실 사람들하고도 실험 외에 다양한 얘기도 나누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 같다.우리 실험실엔 학생이 총 7명 있다. 7명 전부 캐나다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이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알제리, 두바이, 중국 그리고 한국의
대만의 지난 역사를 다룬 이야기는 ‘[대만이야기 5] 장보고와 정청꽁’, ‘[대만이야기 8] 대만의 슬픈 역사’에서 이미 언급하였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대만을 놓고 왜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지, 그 배경과 대만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서 청나라는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얻어맞고, 1895년 4월 23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 이홍장이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조약을 체결합니다.주요 내용은 1,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권을 영구히 포기하고, 조선을 완전한 독
몬트리올에 있는 한 대학 연구소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9월 학기를 희망했는데 지도교수님은 5월 학기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했다. 급하게 수속을 밟고 비자가 나온 즉시 집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는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집들은 언제부터 들어가 살 수 있는 지 등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없었다. 이멜로 수차례 문의해도 답변이 없었다. 간신히 연결된 곳은 몬트리올에 와서 직접 보고 계약하라는 거였다.할 수없이 임시로 일주일간 머물 숙소를 구하고 4월 23일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집을 빨리 구
유방이 팽성전투에서 항우에게 대패합니다. 도망치기 바쁜 중에도 유방은 장량에게 묻지요. 내가 천하를 차지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장량은 초나라 맹장 경포(주 : 원 이름은 영포, 죄를 지어 얼굴에 죄목을 문신하는 경형을 받은 후 경포로 불림)가 항우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 경포를 끌어들이고, 분봉시 대우를 못 받은 수적 출신의 팽월을 장군으로 삼으라고 하지요. 또한 한신을 중용하라고 조언을 하자 이를 충실히 따릅니다.한신이 북벌을 나가있는 상황에서 유방은 항우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든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일어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 장량!’이라고 한고조 유방은 이야기합니다.영웅호걸들이 수 없이 등장하여 한세상 큰 바람을 일으키지만 결말이 언제나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완벽한 삶을 살았다며 선시선종(善始善終)이라 부르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량이지요.장량이 없는 유방, 장량이 없는 한나라 건국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됩니다. 장량은 단순한 책사 혹은 모사의 개념을 벗어나지요. 유방은 장량의 건의를 묵살하거나 이의를 단 적이 없었습니다. 전쟁에서의 크고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초기에 배운 단어가 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을 뜻하는 ‘종신대사’입니다. 미루어 짐작해도 결혼이 쉽게 유추가 되더군요. 생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이 없지만,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지난 25일 결혼을 한 신랑은 30년을 지켜봤던 대만친구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선과 악의 양 극단에 카인과 아벨이 있다면, 친구의 두 아들도 거의 양 극단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고, 둘째는 부모의 걱정거리였지요. 10분을 한 자리에 앉아있지 못
지진과 태풍에 관한 제 경험은 ‘대만 이야기 21 지진과 태풍’에서 이미 했습니다.2월 6일 밤 11:50(대만 시간) 대만 화련에서 진도 6.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월 10일 현재까지 16명이 사망했고 290여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도 구조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므로 인명피해는 더 증가할 수 있습니다.고국의 많은 친지들이 저를 염려해주셨습니다. 걱정이 크실까봐 이젠 안심하시라고 이 글을 씁니다. 아울러 대만에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께서는 지진때문에 여행을 취소하거나 주저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저의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한신이 위나라에 이어 대나라를 정벌하고 조나라로 진격을 하려는데, 유방은 형세가 위급하다며 한신의 병력을 차출하여 초나라 항우를 막기 위해 데려갔습니다. 한신은 정예병을 보내고 새로 개편한 오합지졸 2-3만을 끌고 정형으로 진군하지요. 당시 조나라에는 20만의 군대가 대비하고 있었습니다.조나라 이좌거는 왕과 실력자 진여에게 청하기를, ‘3만의 군사를 자기에게 주면 수백리 길을 이동하느라 지친 군사들이 정형으로 들어오는 좁은 지형에 길게 늘어졌으니, 샛길로 가서 보급을 끊어버리면 열흘 안에 한신의 목을 바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류는 많은 세월을 이어오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동력은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더 크고, 더 높고, 더 화려한 꿈을 이루려는 선조들의 지난한 노력이었습니다.하지만 그들이 높게 쌓아올린 탑만큼이나 행복하였을까요?위진동은 30대 후반에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생각만큼 큰 행복을 주지도 않고, 오래 가지도 않더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위한 삶을 위해 17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그가 추구하는 삶은 『단순, 청정(고요)』입니다.“단순과 청정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정신이
예로부터 사내대장부라고 큰소리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기보다는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치기일망정 싸우다 죽기를 원했습니다.그렇지만 다른 의미로 제가 자주 언급한 인물이 한신입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펼쳐보고자 죽음보다 더한 치욕도 견뎠고, 찬밥 한 덩이도 기꺼이 얻어먹었습니다.한신은 살아서 평생을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놈’이란 욕(과하지욕,胯下之辱)을 먹었고, 역사에서도 개국공신이라는 미명보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놈’으로,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신이
지난 수천 년의 역사에서 항우만큼 탁월한 장수는 거의 유일무이합니다. 전술, 전투, 개인의 역량 모두 나무랄 데가 없는 용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지혜를 함께 주지는 않았습니다.전장에서 함께 싸울 때는 몰랐지만, 막상 논공행상에 들어가면 섭섭함이 생기지요. 항우는 객관적이지도 남들을 납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즉흥적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자리를 주다보니 불만이 거셌고, 이는 따르던 사람들이 쉽게 떠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비록 진나라에 망했어도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가되었던 환공 이래로 제나라는 강력한 나라를 유지했었지요.
대만이야기 34화 ‘한고조 유방’과, 35화 ‘논공행상’에 이어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초한대전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고조 유방은 초패왕 항우보다 15세 연장이고, 항우는 8년 동안 전장을 휩쓸다가 30살에 자살을 합니다. 항우가 죽고 유방은 45살에 한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 후 재위 7년만인 52살에 생을 마칩니다.항우는 초나라의 명망 있는 장군가의 후손으로 할아버지 항연은 초나라의 마지막 장군이었지요. 초나라가 망하고 작은아버지 항량의 손에서 자랍니다.항우하면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서 어원을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말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변명하지 마!’라는 말이 있지요. 변명의 한자를 보면 ‘변별하여(辨) 명확하게 밝히다(明).’라는 의미로 사용을 하여야 마땅하나, 현실에서는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말하다.’의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왜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싫어할까?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조급증은 ‘변명하지 마!’라는 한마디로 가슴속에 불신과 증오를 자라게
요사이 많은 한국 여자들은 자녀의 혼사를 다 치르고 나면, 젊어서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반면에 한국 남성들은 날마다 돈 버느라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야 돌아오는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퇴직을 하고 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가 되지요. 그저 매일 집에 들어 앉아 마누라가 주는 삼시 세끼나 기다리고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여자가 50세가 넘으면 갖추어야할 조건이 있는데, 이 네 가지를 충족하면 가장 행복한 여성이 된다고.1) 건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