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에서 부처님이 해탈(득도)하신 보드가야로 가는 한 달 동안 줄곧 인도농촌을 관찰하면서 걸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낙후된 겉모습만 눈에 띈다. 하지만 한 꺼풀 깊이 들어가면 다르다. 현대적 기술시대의 문법이 아닌 수천 년의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그 순환적 삶이 보인다. 이를 필자는 2019년경에 미디어오늘에 "인도농촌의 '순환형 삶'을 눈여겨본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139필자는 2017년
인도 인구는 13억으로서 남한의 26배인데, 면적은 32배이다. 상대적으로 평야가 많으니 평지의 인구밀도는 훨씬 낮은 편이다. 이제 캘커타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대도시이지만 방글라데시 난민들이 넘치는 등 아직 시가지의 삶의 환경은 척박한 편이다. 캘커타시내에서 하라상과 다시 만났다. 거의 3주만이다. 그는 스리랑카에 머물면서 필자가 인도에 오기를 기다렸다. 하라상은 필자와 달리 매일 걷지는 않는다. 걷지 않는 날에는 짐을 옮기는 등 필자를 도와 순례의 진행에 많은 도움을 준다.힌두교 사원으로 유명한 Kalighat Kali Tem
이태원 참사 현장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찾아와 놓고 간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이태원 광장 분향소와 용산구청으로 옮겨졌다. 앞서 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추모글을 356장의 사진에 담았다. 메모가 덧대어지거나 훼손된 것을 제외한 3584개의 추모글을 추려 특별 웹페이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합니다’(hani.com/itaewon/message)를 열었다.이밖에 한겨레 이태원 참사 관련 기획 보도는△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미안해, 기억할게’△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 △타임라인 ‘그날의 기록’△지도 인터랙티브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재난을 먼저 겪은 이들과 인권·재난전문가들이 곁이 되겠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채널(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전자우편(1029dignity@gmail.com), 유선전화(02-723-5300)12월25일 성탄절, 저는 합동분향소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재난을 먼저 겪은 이들과 인권·재난전문가들이 곁이 되겠습니다.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채널(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전자우편(1029dignity@gmail.com), 유선전화(02-723-5300) 이태원을 처음 가 본 건 2011년으
엄마, 아빠에게 스물일곱살 첫딸 지현의 별명은 ‘깜찍이’였다. 오랜만에 충남 당진의 집에 올 때면 지현은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며 김채선(55)씨에게 뽀뽀했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빠도 지현만 보면 “우리 깜찍이 왔어”라며 웃었다. 쉬는 날엔 외할머니, 이모까지 두루두루 챙겼다. 지현은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충남 대천에서 태어난 지현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고 나서길 꺼리지 않는 ‘여장부’ 같은 아이였다. 4살 때 교회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 3등을 꿰찼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열린 학예 발표회에선 전교생이 지켜보
야욕과 압박이 곁들여진 미국의 무역ㆍ기술전쟁요즘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려워진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올해 무역적자가 500억 달러 안팎에 이르고, 내년 경제성장률이 1.6-1.8%에 머무를 것이라는 보도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일자리가 줄어들며 서민의 삶부터 더 팍팍해지기 마련이다. 정확한 수치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 홈페이지를 뒤졌다. 통계 처리한 12월 20일까지 무역적자 490억 달러. 21세기 들어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33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자 대규모 적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에티오피아 청년 와제는 참사 이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자려고 누울 때마다 머릿속엔 한 20대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심폐소생술(CPR)을 도왔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생을 달리한 이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다시 본 곳은 지난 17일 늦은 밤 찾은 이태원 광장 희생자 시민분향소였다. 그는 희생자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그 여성의 영정을 봤고, 묻어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그를 붙잡은 건 그 여성의 어머니였다.서툰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하며,
12월 25일, “10.29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가 봉헌됐다.참사 현장 인근 녹사평역 3번 출구 앞,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현장에서 봉헌된 미사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각 교구와 수도회 사제단, 수도자, 신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그러나 이날 미사는 극우 단체 신자유연대,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 등의 방해로 원활하지 못했다. 단체 회원들은 미사 전부터 대형 스피커를 동원한 집회를 진행하고, 유가족들의 항의와 호소에도 미사가 끝날 때까지 발언과 음악으로 미사를 방해했다.추모
서울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112상황실)이 10·29 이태원 참사 당일 저녁 근무일지에 ‘핼러윈 축제’와 ‘다중 운집’을 언급한 사실이 28일 확인됐다. 인파 집중으로 인한 압사 사고 위험 등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경찰의 제대로 된 대처가 없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가 윤건영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위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용산경찰서의 10월29일(참사 당일) 112상황실 근무일지를 보면, 이날 6시30분에 교대근무를 한 112상황실 박아무개 상황팀장은 근무일지에 “112신고시스템 모니터링
“이태원 오늘 핼러윈 축제하잖아요. 내 딸 친구가 사람한테 깔려서 죽어간다고 하는데 왜 출동을 안 해요? 딸이 신고했다는데 왜 안 가요? 119도 안 오고 경찰도 안 온다고 딸이 울고불고하는데….”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월29일 밤, 10시15분부터 11시까지 압사 사고를 알리는 120건의 112 신고가 이태원 지역에서 접수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비명과 살려달라는 호소, 말도 채 잇지 못하는 신고가 빗발쳤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밤 11시39분에야 압사 신고가 있다고 ‘윗선’에 처음 보고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스물여덟 살 경철은 엄마 박미화(51)씨의 이름을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엄마’가 이름이 아니잖아. 엄마도 이름이 있
편집 : 김미경 편집장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위안을 누리게 하고, 유가족에겐 참사의 진상 규명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는 용기를 주십시오.”(김영식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성탄절인 25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추모 미사가 잇따라 열렸다.이날 저녁 7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서울 이태원광장 합동분향소 앞에서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대축일 미사를 열었다. 미사에 참여한 유족과 시민 200여명은 각자 손에 촛불을 쥔 채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사제단은 미사를 마친 뒤 유족들과 함께 참사 현장인 지하
드디어 인도다. 이번 순례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다. 동쪽 끝 캘커타에서 서북쪽 끝 다람살라까지 거의 2천5백km를 걷기로 계획했다. 도중에 불교 8대 성지도 경유하여 이천오백년전 부처님이 오셔서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이제까지 8개국 약 3천km를 걸었으니, 그에 필적하는 거리를 이 한 나라에서만 걸어야 한다. 무려 5개월이 넘는 코스다.캘커타에서 한 달 가까이 걸으면 부처님이 성불하신 곳으로 알려진 Bodh Gaya에 도착한다. 여기가 첫 성지이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곳으로 알려진 Sarnath는 바라나시에 있는데, 이곳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누나, 용산에 살자. 엄마랑 아빠랑 형이랑.”전북 김제에서 20대까지 살았던 형주는 흩어져 사는 가족이 ‘서울’에 모여 사는 꿈을
나는 민족주의자이었노라9월 28일 여현이 생일날 아침!경찰 3명이 찾아왔다조사할것있다 소리에 튀었다옆집당장을넘었다나는쌍암국교육상선수조계산위로 시퍼런하늘흔들렸다출렁거리는황금논으로 총알이튈 때나는 지그재그로 뛰었다여현이 얼굴 떠올랐다연지곤지 초례청 새신부장경림이 순간 지나갔다아버지 어머니, 어찌합니까, 할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마을사람들같이뛰는발자국소리 승주를뒤흔들었다산빛을 머금은 장어가 튀어 오르던 5월의 아침찬란하게 눈앞을스쳤다어지러웠다봄이면 살구꽃복사꽃 뒤덮힌내상마을부락과부락들 다가왔다가는 휙-사라졌다첫아이를 낳던 아내가뇌리를스치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했던 열일곱 살 동규는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족의 품을 떠나 조그만 손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아빠는 아이가 어질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질 현'에 ‘펼 서', 현서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아빠 이호곤(48)씨의 바람대로
도로통제만 잘 했어도즐거운 할로윈 축제가 되었을 텐데그 기본도 안하고158명의 꽃다운 영혼을 무참히 압사시킨 정부가하는 일이라고는힘없는 아랫사람만 잡아 족치는 일 뿐심지어 망자의 시신에서 마약성분을 검취하겠다고 달려드는 저들은 인간인가 악귀인가악마적 검찰도 사망자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는데망자를 능멸하며 한 번 더 죽이는정부 쪽 사람들은 인간도 뭣도 아니다한 달 만에 어렵사리 출범하는'유가족 대책위'에 퍼붓는 갖은 악담은인간의 입이라면 담을 수 없는 독설 쓰레기들."세월호 처럼 소비된다""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이다""국정
■ 용기를 주소서 ■ 10.29 용산 이태원 참사 희생자49재 시민합동분향소 가는 길녹사평역 3번 출구 눈 덮힌 언덕매서운 북풍한설보다 더 원망스런 경찰기동대 버스 대오 그날 그곳에 단 한 대 경찰기동대만 있었어도158명 목숨을 지킬 수 있었는데,대한민국 국민을 지킬 수 있었는데,사랑하는 가족을 잃지 않고 유가족이 일상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아! 원한의 기동대여아! 통곡의 기동대여그 때는 어디에 있었나요?왜 오지 않았나요?아니 올 수 없었던 것은 아니였나요?누구를 지키기 위해서 올 수 없었나요?158명 국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
내 아내 하명선에게~광양과 우두리 오가던 매일선 뱃길 위에서사랑과 꿈으로 너와 나 깍지를 꼈지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던우리의 꿈 우리의 미래, 누가 통째로 삼켜버렸나!여기 묻혔으니 전해 달라고바람에 매달리고 구름에 발을 걸어 외친 세월 74년구름은 귀머거리 나라는 청맹과니이승과 저승이 달라 뭇소리 삼도천 빗겨 가지만딸을 망친 원수의 자식!당신의 어머니, 내 아들 상남이만 보면저주에 찬 말씀 뇌까릴 때마다 뼈마디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숲이 떨고당산나무조차 떨며 울던 것을 나는 보았네나를 사뭇 따르던 마을의 이쁜 누이야!정겹게 내 입술에서
우리 아이들 잊지 말아달라”“50 평생 살면서 이태원이라는 데를 처음 와 봤습니다. 숨이 안 쉬어졌는데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들이 아이들 찾아 헤맬 때 용산구청, 경찰서, 행안부, 대통령실, 저 아이들 158명 얼굴 눈동자 똑바로 보십시오….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한파였지만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손수 들고 온 영정을 올린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절규했다. 14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 광장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나비넥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158분의 영령,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는 부상자, 그리고 그리움과 눈물로 하루하루가 고통인 가족에게 위로와 위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우리나라 선인들에게 가장 심한 욕설과 저주는 아마도 ‘나가 죽으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상객사야말로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려 했습니다. 밖에서 변사하면 그 영혼이 찾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객지에서 귀신으로 떠돈다고 믿었습니다.한때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망과 동시에 영혼이 육체에서
"자식의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 때 뜨는 해가 무서웠다"고 유가족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 비탄의 소리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10.29 이태원 참사로 인해 160여 명의 생명과 꿈을 앗아간 현대사의 비극 앞에... 사과 한마디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고발하고 싶었다. 너무도 뜻밖에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절규와 부모님들의 눈물과 피를 토하는 비통한 마음을 황톳빛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2022.12.19~2023.1.3 리얼리즘전 출품작이다. [편집자주] 작가 프로필 : 두시영 아리랑 미술연
방콕을 떠나 주된 순례지인 인도로 가기 전에 말레이시아 주요도시를 교통편을 이용하여 방문하기로 했다. 피낭과 쿠알라룸푸르다. 그렇더라도 도시 내에서는 시민들을 만날 겸 도보순례를 계속하기로 했다.말레이시아의 본격적인 역사는 항해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평범한 농업사회의 왕조로 내려오던 이 땅의 운명은 유럽 쪽 항해기술의 발달로 말라카해협이 해상통로 요충지로 부상하면서부터이다.길쭉한 반도로 내려오는 끝은 싱가포르이지만 말레이 반도는 모든 열강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열강의 침략이 있었고 식민지시대도 거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80여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된 ‘시민분향소’가 14일 다시 차려진다. 앞서 정부는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뒤 일방적으로 영정과 위패 없는 합동분향소를 운영한 바 있다.‘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14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시민분향소에는 참사 희생자 158명 중 유족 동의를 얻은 희생자 80여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일 예정이다. 아직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동의를 구하지 못한 나머지 희생자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그는 2018년 한국에 왔다. 이제 막 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한 스물한 살이었다. 어려서 친구처럼 지낸 두 언니를 따라온 한국에서 4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그날 이후, 엄마 김호경(58)씨 꿈에 처음 나타난 의현은 친구와 함께였다. “엄마, 세웅이(친한 친구)한테 내 검은 점퍼 줬어?”
좌가 무엇이여 앉을 좌 아녀??앞산에 산불만 나지 않았던들앞산이 민둥산이 되지만 않았던들묘목을 만들 일만 없었던들솔방울 채취하러 가지만 않았던들빳빳한 솔잎 가시에 안구가 다치지만 않았던들병원을 찾아 읍내로 가지만 않았던들서남물 쪽 대로를 놔두고후미진 땅고개재로 왜 들어섰을까?죄기 있다문 자갈밭을 갈아엎어 비단 거치 만든 죄내 고향은 상사면 오곡리병원도 약국도 문을 연 곳은 없어 헛다방 치고 돌아오는 길용수동 길로 가지만 않았던들육시랄 놈덜에게 다짜고짜 붙들려땅고개재로 끌려갔더니숨 돌릴 새도 없이 내게 총알을 박더구나내 죄가 무엇인지
Seoul crowd crush victims: An actor. A student. The ‘life of the party.’ Steven Blesi, 20 Choi Boseong, 24 Grace Rached, 23 Lee Ji-han, 24 Shin Ae-jin, 24 Anne Gieske, 20 Madina Sherniyazova, 26 Afagh Rastmanesh, 29 ‘How can I explain it in words?’: A mother
기사 : 실명, 사진으로 희생자 삶 조명하기 시작한 언론… 진정한 추모를 말하다기사 중 일부 참사 초기 한국언론은 피해자를 모두 익명으로 조각조각 처리했다. 한 기사 안에 여러 피해자들의 사연이 단편적으로 소개돼 개개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참상은 흐릿했고 감정선이 이어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언론보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한겨레 21 류석우 기자는 “아무래도 참사 직후에는 무리하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유족 취재보다 구조적 원인이나 이런 부분을 먼저 취재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