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에 현장응급의료지원을 위해 출동했던 재난의료지원팀(DMAT·디맷) 의료진들이 당시 응급의료 대응의 문제점과 건의사항을 담은 활동 보고서를 냈다. 디맷은 참사 당시 재난의료 컨트롤타워 부재와 통신 장애를 문제로 지적하며, 보건소장에게 집중돼 있는 응급의료소장 권한을 분산하고, 경찰·의료·소방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통신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7일 가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수도권 14개 병원·15개 디맷의 활동보고서를 종합하면, 당시 디맷은 현장응급의료소의 지휘 부족으로 현장
정부가 이태원 참사 이튿날인 10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압사’라는 단어를 빼고 ‘이태원 사고’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은 ‘대통령실이 참사 수습보다는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더불어민주당 용산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위 위원인 신현영 의원이 7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10월30일 오후 복지부와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소방·응급의료기관·지자체 관계자 등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모바일 상황실’)에 “오늘 대통령 주재 회의 결
1. 2022-12-6[영상] "국가는 뭘 했는가" 이태원 참사 후 아버지의 한 달[고 송은지씨 유족 인터뷰] "놓아주지 못한, 놓고 싶지 않은 딸"... 아버지의 편지 2. 2022-12-7 깨발랄 지현, 하늘의 별이 되다... "넘 슬퍼하지 마 난 행복했어"[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27살 김지현씨의 삶, 꿈, 바람 3. 2022-12-7[영상] 딸의 빈방에 선 아버지 "대한민국 어디든 안전해야죠"[고아무개씨 유족 인터뷰]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는 아버지가 목소리 낸 이유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장
열아홉 살 가영은 ‘옷으로 엮어내는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목원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2학년 박가영. “엄마, 나 패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어. 그러려면 옷을 알아야만 할 것 같아.” 잊혔던 독립운동가가 21세기 도시 한복판에 재현되고 발달장애인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들이, 옷과 패션 무대를 통해 가능하다고 가영은 믿었다.학원에선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했다. 엄마도 미술 말고 공연기획을 권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가영은 옷을 향한 자기 마음을 믿었다. 패션디자인과가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하려고 친구들이 3시간씩 받
상은은 1997년 6월29일에 태어났다. 올해 스물다섯. 어릴 때부터 밝고 예쁜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잘 웃었다. 사진 찍을 때면 으레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상은과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2014년 상은과 같은 나이의 단원고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뒤로.잘 웃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 날잘 웃던 상은이 펑펑 울음을 터뜨린 날이 있었다. “아빠, 나… 합격했어!” 합격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상은은 휴대전화를 붙들고 하염없이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정치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려 빌었다. 아들이 돌연 세상을 떠난 이유와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특히, 여당 지도부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이름을 부르며 간곡히 호소했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의 울음 위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이종철씨는 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와 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미안해, 기억할게 신청,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어릴 때 지연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지연이 중학교 3학년 때 일부러 연기학원에
9월 말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드디어 방콕 대도시권에 들어섰다. 오랜 역사를 지닌 농업국가 태국 민중의 따뜻한 성원을 받으며 걷는 재미도 착실히 누린 시기다. 라오스에서 국경을 넘어 행선지를 방콕으로 잡기 이전부터 추진했던 국제세미나 플랜이 있다. 의 내용을 리뷰하고 보완할 점이 없는가 하는 종합적 검토의 기회를 갖는 세미나였다. 여기에는 2017년 초 서울에서 가졌던 세미나에 이어 헌장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뜻도 실려 있다.그리하여 순례도중인 10월 하순, 방콕에서 태국 불교 인사의
뉴스타파 기사 1. 2022-11-24일 기사 이태원 참사, 산 자의 눈물과 국가 / 자세히 알아야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2. 2022-12-01 기사 "사랑하는 우리 딸, 널 위해 싸울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의 의무 / 꿈 많던 20대 청년의 죽음 오마이뉴스 기사 1. 2022-11-29 기사 바리스타·간호사·5월의 신부 꿈꿨던 삶...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태원 희생자 85명의 삶①] 20대 희생자 35명의 이야기2. 2022-11-30 기사한국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카자흐스탄 유학생의 죽음[이태원
“윤석열 대통령 사저 집들이에는 참석하시고 왜 우리는 외면하십니까.”1일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특위위원들과 유가족들의 간담회.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는 맞은편의 빈자리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사 희생자 67명의 유가족들이 모인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국조특위 위원들과의 첫번째 상견례 자리가, 국민의힘의 보이콧으로 ‘반쪽짜리’에 그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이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게 상식이냐. 이게 우리한테 패륜”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정
내 아들 박해명에게!너 그렇게 가고 처음으로 불러보는 나의 아들 해명아-!칠흑 겉은 밤에 그렇게 흉하게 갔다만착한 우리 새끼 아무런 죄 읎는 것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아시리라지금 네가 사는 하늘나라에는 늘흰 쌀밥에 괴기 국도먹을 만치 먹을 수 있는 그런 나라문 좋겄다 좌도 읎고 우도 읎는 나라, 보도연맹도 빨갱이도 읎는 나라 소름끼치던 게다짝 닥닥 끄는 왜 소리 떠나가는 줄 알았더니내 아들까지 잡아먹는 코쟁이 세상 올 줄이야세상 천지 돌아댕겨도 내 아들 해명이, 너 만치 잘 난 놈은내 여태 보질 못했어야! 하늘을 올려다 보문 별은 총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대로변에 경찰 두 명만 보였어요. 도로 쪽으로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만 했어요.”(저녁 8시30분 사고 골목 앞)“이태원역부터 세계음식거리까지 걷는 동안 경찰은 못 봤어요. 100명 넘게 투입됐다는데 도대체 어디 있었냐는 말이에요.”(저녁 8시30분~9시 세계음식거리)2022년 10월29일, 158명이 숨진 그날. 하루 동안 이태원을 찾은 사람만 13만명에 이른다. 그들이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확보해 모아보면,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던 전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영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 연재리스트 “사랑하는 마음 있다면, 서로 지켜줄 수 있어요” [생존자의 기록] “당신이 누구든, 이곳에선 안전해요”…이 말을 하고 싶어요 [생존자의 기록] 현장을 보고 들은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생존자의 기록] 그날, 함께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생존자의 기록] “레모네이드 만들며 웃고 고통에 지지 않을 거예요” [생존자의 기록] 도와달라 요청에도 무서워서 집으로…‘저, 생존자인가요’ “내 편에 서는 사람과 연결…트라우마 극복의 열쇠” “‘나 여기 있어, 언제든 연락해’ 문자…핸드폰을 붙들고 울
기사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를로 들어갑니다. 경향신문 : 하나뿐인 딸 잃은 이성환씨 “‘상은이가 없다’ 소리에 지옥이 펼쳐졌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한 달, 희생자 부친 이성환씨 인터뷰)국민일보 : “사망신고 못해요, 진짜 사라질까봐” 멈춘 유가족의 삶(이태원 참사 한 달, 유가족의 삶. 생업 포기한 채 추모공원만 찾아, “시간 지날수록 더 힘들어지네요”오마이뉴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보람의 치열했던 35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보람씨 이야기] 그의 아버지가 조용히 장례 지낸 기막힌 이유..."국가는 과연 뭘 했나")
라오스 국경을 넘어서 원래 가려고 했던 코스는 태국 경유 미얀마 방향이었다. 유명한 역사의 중심지인 수코타이를 경유해서 미얀마 수도 양곤으로 향하려 했지만, 변경 되었다. 미얀마의 정정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군부의 민중탄압이 불거지기 전이었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비인도적 탄압 등 긍정적 마인드로 걸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그리하여 방콕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위 지도의 메콩강 유역을 위주로 남하하면서, 아래 지도 루트를 따라 주요 사찰을 경유하면서 걷기로 했다. 구글 지도로는 비엔티안에서 방콕까지 대략 636km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했다.이름없는 죽음은 사람의 죽음으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름이 없으면 영혼도 이름 얻지 못하고구천을 떠도는 것. 용대실 옆 참사엔이름이 없었다.영정은 커녕이름 쓰인 위패도 없었다. 무도한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용대실 철통 경호사저, 관저 기동대 경호,시위로부터의 방어에만 매달리고 사무라이의 검 휘날리는굥거니정권 위력 과시용 마약 단속 함정의 그물 펼치는 데 집중 했을 뿐 전과 같은 안전관리위험관리 기동대 요청은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 이상은!고 이민아!고 이남훈!고 송은지!
24일 국회가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의 첫발을 내딛었다. 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되짚어야 할 10월29일 저녁 6시34분 112 첫 신고부터 30일 새벽 2시30분 첫 재난대책회의까지 절규로 가득 찼던 이태원 참사의 지옥 같은 8시간을 정리한다. 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함께 △경찰 특별수사본부 언론 브리핑 △소방·경찰·대통령실 등 정부 자료 △구조 상황 보고서 △현장 녹취 및 메시지(112·119 신고 녹취, 소방 무전 녹취, 모바일 상황실 메시지) △국회 요청 자료 등을 종합해 국
24일 국회는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의 첫발을 내딛었다. 는 국정조사에서 되짚어야 할 10월29일 저녁 6시34분 112 첫 신고부터 30일 새벽 2시30분 첫 재난대책회의까지 절규로 가득 찼던 이태원 참사의 지옥 같은 8시간을 정리한다. 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함께 △경찰 특별수사본부 언론 브리핑 △소방·경찰·대통령실 등 정부 자료 △구조 상황 보고서 △현장 녹취 및 메시지(112·119 신고 녹취, 소방 무전 녹취, 모바일 상황실 메시지) △국회 요청 자료 등을 종합해 국가가
락사오(Lak Sao)지방을 벗어날 무렵, 유역변경식 발전소를 만났다. 운치있는 인공수로 윗쪽에 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상단부에 Theun-Hinboun Dam 이라는 글씨가 있다. 수력발전소 산 너머에 강이 있고 댐이 있다. 이 댐에 있는 물을 이용하여 그 낙차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메콩강 지류인 Nam Kading의 물을 파이프로 빼서 높이차가 있는 아래쪽으로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 지도 중앙부 커다란 호수는 수력발전사업을 위해 인공호수다. 인공호수를 만들다 보니 아래 사진의 고사목지대와 같은
“8년 전 세월호로 친구를 잃으면서 그게 마지막 눈물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을 또 잃었다. 누군가를 잃는 것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길…. 보고 싶어 내 친구들아. 2022.11.04 REMEMBER221029”젊은 희생자들이 많았던 이태원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글 중 ‘세월호’를 직접 언급한 것은 26개였다. 10대 때 겪은 세월호 참사에 이어 20대에 다시 또래 청년들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주는 상실감과 함께, 그럼에도 이 사회를 바꿔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19살 때
이태원 참사 현장과 맞닿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는 참사 이튿날인 지난달 30일부터 하나둘 추모 메모와 편지가 붙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 참사 생존자, 구조에 나섰던 시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목격자, 안타까운 마음에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은 손바닥만한 쪽지에 모두 담기지 않는 마음 몇 줄을 남겼다.는 참사 이튿날부터 지난 7일까지 9일 동안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마음 3584개, 14만8398자를 흩어지지 않게 하나하나 글로 옮겨 붙잡았다.
“사랑하는 우리 딸 ○○아, 아빠가 많이 미안해. 사랑한다.” “아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곳에서 못다 한 꿈들, 그곳에서 자유롭게 이루면서 편안히 잘 가라. 미안하다, 미안하다.”이태원역 1번 출구를 덮은 수천장의 추모글 중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았을 유족의 글 7건이 있었다.“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녀딸 ○○야.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무서웠니…. 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미안하다. 갑자기 떠나간 너를 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엄마 아빠, 조금 덜 아파하고 조금만 우시고 잘 살
‘그날’ 한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 좁은 골목길에서 혼자만 빠져나왔다는 미안함. 3584개 메모 중 생존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28개 메모에는 참사 당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생존자들과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고백’이 적혀 있었다.이태원역을 다시 찾은 생존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혼자 빠져나왔다’는 미안함을 메모에 남겼다.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 있었다는 한 시민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나 혼자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을 다시 보고, 안을 수 있어서 마음이
K-Pop이 좋아서 한국을 찾은 젊은이가 있었다. 그녀는 한국이 좋았고 그래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왔다. 하루빨리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해 한국어학당을 다녔고 우리 문화를 찾아다녔다. 그날도 핼러윈 축제는 한국에서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어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어머니가 한국인인 어떤 젊은이는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유럽에서 조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찾았다가 스물다섯 살에 짧은 생을 마쳤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배우고 싶어 멀리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스무 살 청년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이후 처음 입장을 밝혔다.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연 유가족들은 그간의 심경과 요구사항 등을 밝혔다.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5명의 유가족이 직접 참석했다. 이들의 손에는 희생자들의 영정이 들려 있었다.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는 “무능한 정부와 어른들의 잘못”이라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민변은 지난 15·19일 두 차례에 걸쳐 민변 ‘10.29 참사’
“네가 태어나 아빠 가슴에 안겼을 때 따뜻했던 너를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됐는지…. 엄마, 아빠가 너를 보내줘야 네가 맘 편히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니 보내준다. 딸아 잘 가라.”이태원 참사로 스물다섯 딸 이상은씨를 잃은 아버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30여명이 참석해 참사 이후의 심경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 꺼냈다. 묵념이 시작되자마자 가족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저희를
편집 : 김미경 편집장
10월29일 저녁 6시34분. “압사당할 것 같아요”라는 112 첫 신고, 그 뒤 “대형 사고 나기 일보 직전”(밤 9시)이라는 현장의 잇따른 ‘경고와 요청’ 가운데 한번이라도 국가의 ‘응답과 대응’이 제때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이태원 현장 경찰의 교통 기동대 급파 요청을 용산경찰서가 받아들였다면, 서울청 112상황실 책임자가 규정에 따라 112상황실을 지켰다면, 그리고 참사 직후 소방·경찰 등 재난 지휘 기관들의 ‘보고·지시와 공조’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면…29일 저녁 6시34분 112 첫 신고부터 30일 새벽 2시30분 첫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