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선전 4.아버지 이름이 뭐꼬? 신경일입니다. 불합격! 국민학교(초등학교) 면접 시험에 본명인 신임섭은 모르고 친구들이 부르는 자(字)를 말했다가 떨어지고 이듬해 합격해서 다닌 다음 야간 중학교에 진학했다. 담임 선생님이 총명하다고 이뻐하자 질투한 반 여자아이가 가짜 연애편지를 써서 교탁 밑에 두었다가 난리가 났다. 나중에 알고는 마을 이장을 하는 그 아이 아버지한테 찾아가 "자식도 못 다스리면서 마을을 다스리냐"고 따지고 그 아버지는 싹싹 빌었다. '봉선이는 공부를 하면 시집 안 갈 거다'라며 외할배가 걱정하는 중에 남녀공학이
신봉선전 3.신임섭 우리 외할아버지는 사람들 이름을 지어 주고 날을 받아 주거나 묘터를 잡아 주기도 하였지만 선비로서 해야 할 도리도 다하였다. 일제시대 공사용역을 나갈 때 마을 사람 하나가 사정이 생겨 못 나가자 대신 나갔으며 콜레라가 창궐해서 한 마을이 거의 몰살되어 장례 치를 사람이 없자 가면 죽는다는 만류에도 "선비인 내가 안 가면 누가 가노" 하면서 장례를 다 치렀다. 그런 선비도 평소엔 일을 해야 해서 하루는 외할배가 어린 어머니를 데리고 소 등에 장작을 싣고 팔러 갔다. 사탕 사 먹으라는 돈으로 가게 앞에 섰을 때, 세
어머니 신봉선 전 2.어머니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시골의 선비로서 이름도 지어 주고 날도 봐주는 마을의 카운셀러이자 멘토이셨다. 어린 어머니가 밤에 화장실을 가다 보면 외할머니와 두 분이 시를 한 구절씩 서로 외워 가며 얘기를 나누셨다. 친구들과는 "향기 좋다 찔레꽃은 덕이 꽃일레라" "네모졌다 감꽃은 봉선이의 꽃일레라' 라면서 꽃이름 놀이를 하며 놀다가 누구에게 시집 갈 건가 얘기도 했다. 그때는 운전기사, 마도로스 등이 인기였는데 어머니는 "나는 다리 하나가 병신이라도 정신이 똑바른 사람한테 시집가겠다'고 해서 다들 놀라
어머니 신봉선 전 1.어머니 얘기가 나왔으니 내친김에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다. 신봉선. 1931년생 어머니는울산 오정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시골 선비의 딸로 남달리 부지런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을 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기쁘게 할까 하는 깜찍한 생각을 하는 아이.소를 먹이러 간 김에 나뭇가지를 주워 머리에 이고 치마에 싸서 오는 아이. 한 번은 외할머니가 어린 어머니에게 먼 산 너머에 심부름하고 오면 명태 대가리를 준다고 했다. 혼자 가는 먼 길.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다. 무섭다. 명태 대가리만 생각하고 앞만
투사의아내, 어머니아버지가 '무조건 다 사지 않으면 만화책을 주지 않겠다'는 초 갑질 합동출판사의 횡포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계속했지만 새 책이 아닌 헌 책으로 계속 싸우기가 힘들었다. 어머니가 나섰다. 출판사 시키는 대로 하는 만화구역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가셨다."여러 구역장님들 수고 많으신데 저는 남편도 환자고 또 오늘도 돈은 없는데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에게서 하숙비 보내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강 백사장에 혀를 꽂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에게 책 달라 소리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해 보십시오"
전포동의 투사 아버지아버지는 교사를 하시다가 전쟁이 나서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는데 부대가 괴멸되어 걸어서 귀가했다. 곧 이어 다시 영장이 나와 또 입대해서 복무하고 교사를 하였는데 군대 재교육과 과로로 폐결핵에 이어 간경화로 부산 병원에 오면서 만화가게를 하게 되었다. 만화책을 처음엔 여러 출판사의 책 중 골라서 샀는데 어떤 사업자가 출판사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초 갑질을 시작했다. 책을 무조건 다 사라 아니면 책을 주지 않겠다고 선포하여 모든 만화가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굴복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런 불공정거래는 용납할 수 없다며
요배제주도에서 온 요배는 보석 같았다. 그때만 해도 제주는 먼 곳. 요배는 산호초처럼 신비스러웠다. 그의 깊고 검은 눈을 우리는 모두 사랑했고 홍명섭 선배는 아주 요배에게 반해 버렸다. 그림도 보석처럼 강하고 아름다웠다. 학교 뒤편 산비탈에서 나랑 둘이 자취했는데 화투를 쳐서 진 사람이 밥을 했고 건너편 언덕의 배용균이 물김치를 담아서 갖다주곤 했다. 한 번은 요배가 지나가는 말로 제주 사람들이 "낮에는 경찰에게 당하고 밤에는 산에서 온 사람들에게 시달리고"라는 말을 어른들 곁에서 들었다는 얘길 했다. 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었고
용균이 3배용균이는 공부를 무지 무지하게 많이 했다. 촬영 공부 완벽. 현상 공부 완벽. 조명 공부 완벽. 음향 녹음 공부 완벽. 모두를 대학 시절에 마스터했다.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완벽한 감독이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의 주인공 제의에 내가 잠수를 탄 것은 용균이를 만나서는 도저히 거절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사를 꼬드겨 큰스님으로 만들고 길 가는 아이를 설득해 주인공 동승으로 출연시킨 용균이가 아닌가! 후속작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이제야 유튜브로 보았다. 보기가 편한 연출은 아니지만 한국전쟁
7.27 평택, 개벽일꾼 250명을 구합니다.우리 땅 평화 찾으러 가자! 100년 하고도 수십 년 전, 조선 민초들의 삶은 팍팍했다.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통해 평등 세상을 말하며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설파할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신인(神人)이 나타났다며 수운의 집으로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수운의 아내와 여종(후일 하나는 며느리, 하나는 딸이 되었다.)은 쌀을 씻느라 팔목이 떨어져 나가듯 아팠다고 했고, 손님들이 가지고 온 곶감 꿴 싸릿대 버린 것이 문밖에 산더미처럼 쌓여 동
앞뒤 못 가리고 돌진하는 무식, 무능력, 무대책, 무책임, 무자비, 무모함에 국민은 죽어간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국토의 위기, 국가의 위기최근 십오년간 국토의 운영과 관련되는 여러 문제들이 등장해서 국가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위시하여 4대강, 원전위험과 에너지, 부동산문제, ‘지속가능한 농업’ 문제 등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과 관계되는 문제들입니다. 아직 이에 대한 해법과 비전이 부재한 상태이지요. 비전은 둘째 치고 방향을 제대로 잡는 담론의 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방치하면 자본의 논리대로 흐르기 십상이고, 국토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떠내려 갈까 우려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여, 객관적이면서도 진취적인 담론의 장을 만
상석이 2방학. 시험도 거르고 부산으로 뛰어간 나는 어머니 품으로? 아니다. 상석이 집에서 밤새 회포를 푼 다음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에게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도 친하게 지내니까 상석이 어머니께서 내 한복 한 벌을 해서 우리 어머니를 찾아 오셨다. 어른도 인사를 해야 한다시면서. 그렇게 꿀 같은 방학이 끝나고 기어코 이별의 날이 왔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기 싫은 상석이는 기어이 그냥 고속버스를 타버렸다. 서울까지 내내 '친구야 친구야 내 친구야 어화 둥둥 내 친구야' 노래를 부르면서. 전화도 없었던 시절 그냥 행불자로 서울
갑배형갑배형은 부용형과 동기인데 나보다 한 학년 위다. 디자인 전공이었지만 가진 도구라곤 말라비틀어진 포스터칼러 몇 개. 꽁지 다 빠진 붓 두 자루가 전부였다. 비밀은 여학생 작업 도와주고 물감을 얻어 쓰는 것. 나하고 한 방에 하숙하였는데 신비의 궁합이었다.둘 다 절대로 방 청소를 하지 않는다. 담뱃재를 비닐 장판을 들고 안에 털고 꽁초도 거기 버린다. 방에 발 디디는 좁은 길이 하나 있을 뿐 사방이 다 쓰레기다. 그러나 마냥 행복할 뿐이다. 이런 인연이 다시 있을까? 갑배형은 지금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멋지고 깔끔한 작
열혈 청년 박재동언제나 한군데는 늘 바다가 보이는 부산에 살다가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산으로만 막힌 서울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도 답답해 기말시험도 거르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 고교 미술부 후배들에게 주겠다고 손수 태극기를 그려 가슴에 품고 고속버스를 탔는데 '브루라이트 요꼬하마'란 일본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꺼!" 하고 소리치고 안내양에게 다가가 다시 "꺼!"라고 소리쳤다. "손님들이 찾아서요" 나는 손님들을 둘러보며 "해방된 지 26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정신이 썩었으니, 나라를 뺏기지!" 하고 소리쳤다. 아무도
지난주에 스위스인들이 조직한 웨비나 회의가 있었다. 주제는 A Neutral Korean Peninsula: A Solution for Peace and Security in Northeast Asia?(한반도 중립: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대안) 이 웨비나는 우리 대표단이 스위스 투어를 준비하는 것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스위스 인들이 조직한 것이다. 멜라니 고마가타(Melani Komagata)가 앞장섰고 호스팅을 했다. 멜라니는 제네바 대학원에서 한반도의 중립화에 관한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받은 경력이
지난 5월 5일 철원 국경선평화학교 완공식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내리고 교통이 좀 불편한데도 예상 인원을 크게 넘겨 12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남이랑북이랑 교실 기부자는 4명 참여했습니다. 철원 국경선평화학교 준공식과 합창제를 맞아 다음과 같이 철원 소풍을 엽니다.1. 준공식 일시 : 6월 6일(화) 11시2. 합창제 일시 : 6월 6일(화) 15시 3. 장소 : 국제선평화학교 : http://borderpeaceschool.or.kr/main# (033-910-2012) / - 찾아오는 길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 691
용균이2용균이는 처음 만났던 대학 1학년 때부터 준비하는 영화가 있다면서 줄거리랑 연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었다. 용균이는 거기 주인공 젊은 구도자를 나로 찍었으니 나중에 출연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웃기만 했다. 15년쯤이 흐르자 "재동아 펀딩이 되었다. 영화 찍자"라고 하였는데 나는 잠수를 탔다. 이 영화에 출연하면 영화도 뜨고 나도 숀 코너리 정도로 유명해질 것 같아 피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영화는 역시 훌륭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나는 시사만화가가 되었고 용균이는 지
용균이1나는 듣는 수업이 재미없으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나가 뒷동산 연못가로 갔다. 그러면 거기 또 한 명이 와 있는 것이다. 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란 영화를 만든 배용균이다. 둘은 죽이 맞아 심심하면 거기서 만나 용균이는 영화 이야기 (벤허를 80번 본 얘기. 고등학교 때 벤허 감독 윌리엄 와일러와 펜팔 한 이야기 등등) 나는 라이파이, 약동이와 영팔이 등 만화 이야기를 했고 늘 그렇게 늘 친해서 붙어 다니다가 하루는 내 방에서 날 보고 자기를 그려 보란다. 내가 슬쩍 "내 모델이 아무나 되는 줄 알아?
무꽃밧줄 당기는 남자의 땀에 짝짝 붙은 러닝의 등짝을 그리고 싶었다. 또 하나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꽃과 배추꽃이었다. 흙과 땀의 역사가 아프고 이쁘고 서럽고 사랑스럽게 한들거리는 이 땅의 흙의 노래. 우리 할머니의 노래. 나는 학교 뒤편 무꽃 밭에 이젤을 놓고 앉아 유화로 무꽃을 그렸다. 그때 요배 등 내 친구들이 와서 응원해 주었는데 특히 멀리까지 가서 물을 떠다 준 성진이의 정성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얀 무꽃 그림이 한동안 휘경동 작업실에 놓여 있었으나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리고 싶었던 등짝만 스케치로 남아
휘경동여관방 자취를 돈이 없어 못 견디던 중. 요배, 운봉이, 성진이 등이 자취를 하던 휘경동 건물 방에 같이 지내게 되었다. 바로 앞에는 돈이 없어 학원에 다닐 수 없어 혼자 흙 조소를 이미지 트레이닝으로만 연습하여 시험을 봐서 합격한 윤구가 살았고, 청량리에서 휘경동 갈라지는 언덕의 홍명섭 형 작업실에 가서 김민기 노래 '우리 부모 병들어', '가뭄' 그리고 '하루살이 이내 신세' 등을 들었다. 그런데 언덕길이라 밤새 달리는 시끄러운 트럭 소리에다 옆집 맥주홀의 싸우는 소리. 오직 밥 한 그릇에 마가린과 간장만 비벼서 먹어서 그
석이와 봄소식나는 서울로 와서 대학 생활을 하고 석이는 창녕으로 가서 당분간 지내게 되었다. 봄소식이 왔다.재동아. 들녘에 나가 걸었다. 갈아엎은 밭둑길을 걸으니 노란 봄이 내 바짓가랑이에 가득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보고 싶다. 석아. 봄의 생기가 그립다. 노란 꽃 이파리가 그립다. 내게 노새 한 마리라도 있다면 내 눈물로 노새를 목 축이며 네가 있는 곳으로 채찍질 채찍질하겠네. 우리는 멀리 떨어져, 그래도 손을 잡고 글을 쓰자고, 예술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다.상석이는 전교조 국어 교사가 되어 해직을 감수하며 아이들에게 제대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부용 형어느 날 부산 친구 지수가 하숙집에 왔다. 그때는 밥 한 끼가 무서울 때라 2인분이 나오면 다음 끼는 밖에서 해결해 가면서 밥을 축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하숙집 주인은 친구가 밥을 축낸다고 역정을 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하숙집을 나와, 중학교 미술반 선배이자 대학 선배 황부용 형과 함께 여인숙 같은 곳에서 자취했다. 부용 형은 캔버스 살 돈 없는 나를 위해 대학 창고에 안 찾아 간, 주인 없는 유화를 갖다 주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게 했고, 배고파 물을 퍼 마시던 시절, 회식 자리에 갔다 올 때면 남은 탕수육
출발했다! -5월4일 여성들이 시작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모습 지난 번 글에 예고한대로 5월 4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7.27평택인간띠잇기원탁회의가 주관하는 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모두 핑크색 가로줄 위 아래로 “7.27 평택 우리 땅 평화 찾으러 가자”, 강 : 강 대결? 공멸! 평화협정 or OUT!“가 앞뒤로 적혀있는 조끼를 입었다. 현수막 천에 가로로 핑크색 선을 그은 뒤 붓으로 글씨를 쓰고 어깨
이중섭 전화가 이중섭의 전시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현대화랑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이중섭의 그림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는데 나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 루오처럼 검게 그리는 조선 청년이 나타났다고 했다는데 내가 보기엔 루오보다 나았다. 루오나 서양에는 없는 '기운'의 흐름이 강력하고 매력적으로 생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삶과 요절 스토리. 그림을 보고 온 하숙집 선배들과 얘기. "예술가의 요절이라는 것이 본인은 안됐지만 우리에게는 삶에 여운을 주네요" 이에 즉각적인 나의 대꾸. "그건 관람자의 입장이고 당사자로서 나는
미팅꽃 피는 봄. 신입생들의 미팅이 시작되었지만, 미대는 원체 여학생들이 많아 누구도 미팅을 주선하지 않아 은근 아쉬웠다. 그런 차 미대 아닌 고교 동창이 멤버 한 명이 빠져 버렸다고 땜빵을 하라네. 얼싸 좋다고 갔더니 내 상대는 고려대 1학년이었는데 아주 귀여웠다. 첨이라 무슨 말을 해얄지 몰랐다. 그런데 친구 녀석들은 침을 튀기며 뻥을 치고 있지 않은가. 사기꾼 같은 넘들! 그러나 나도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스케치북. 나는 준비해 간 스케치북을 펴면서 이야기를 하고 여학생들은 쏙 빠져들었다. 성공이었다. 그리고 집에 갈
4월 21일 종합예술단 봄날의 첫 정기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큰 실수 없이 마무리 했다. 봄날은 길거리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노래로 연대하는 합창단이다. 이름처럼 봄날을 가져다주는 합창단이 되자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봄날의 햇살이 되자고 다짐하며 서로를 햇살이라고 부른다.봄날의 활동을 소개한 시민방송 영상 노래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좋은 곡을 찾아 편곡하고, 추모나 응원을 위한 창작곡을 만드는 등 정성으로 연대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평소 연대공연은 대체로 일정이 급하
한국의 아름다움 편집 : 김동호
서울 하숙대학 입학을 하고 명륜동에서 하숙을 했다.나는 생각보다 너무나 숫기가 없고 사투리도 신경이 쓰여 학교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특히 여학생들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꼭 해야 할 때는 말을 높였다. 나랑 비슷하게 말을 하지 않은 동기 제주도 출신 강요배가 오히려 나았을지 모르겠다.먼저 온 선배가 설명하기를 서울은 종로 충무로 퇴계로, 세 길로 되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청량리나 노량진은 서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나는 길눈이 없어 길을 잃으면 무조건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찾아왔다. 점심도 하숙집까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