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이 일으키는 바람이 거침없고 매섭다. 전국 가는 곳마다 자발적 시민들로 가득하다. 조국 당대표의 손을 잡아 보고자 몰려들며 ‘조국 파이팅’을 외친다. 거대 양대 정당이 영호남 특정 지역에서 외면받는 현상과 사뭇 다르다. 조국혁신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세대를 넘어 진보 대중정당으로서 전국 정당이 되었다.그러자 여기저기 조국혁신당을 공격하며 비판이 들어왔다. 주류언론의 왜곡 보도나 기성정치권의 비난은 금도를 넘어섰다. 수구 언론들은 ‘정치로 사법을 뒤엎어 보려는 뻔뻔한 정치범 코스프레이자 사법 농락’(조중
정치는 모든 걸 빨아들이고 모든 걸 뿜어낸다. 그만큼 정치는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정치는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뭇 생명체에도, 나아가 햇빛, 바람, 구름, 바위를 비롯해 생태계 전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후 위기 시대! 훌륭한 정치인이자 위대한 정치가가 필요한 이유이다.기후 위기 시대! 석탄, 석유 화석연료에 의존하거나 원자력에너지를 맹신하는 지도자는 필요 없다. 아니, 위험하다. 불행하게도 RE100도 모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 나라가 우리나라다. RE100은 기후 정의를 넘어서서 국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린다. 한때 진정한 보수로서 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반면에, 경쟁 자본주의 체제에서 승리한 기회주의 정치인의 전형이란 견해도 존재했다.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힘을 탈당한 정치인 이준석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이탈한 세력과 함께 제3지대 정치세력을 구축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10%대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락하자 평소 자신의 정치노선과 상충하는 태도를 보인 결과다.글쓴이는 그러한 견해들에 일면 수긍하는 점도 있고 동
흔히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바로 그 해 말 남북 만주 일대를 쓸어버렸다. 이른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경신참변이다. 만주 일대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마을 전체를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는 그 참혹한 장면이 세밀히 기술돼 나온다. 조선인 마을 소학교 교사를 잡아다가 피부 껍질을 벗겨서 죽인다.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2019)에도 그러한 대사와 처참한 광경이 나온다. 만주 일대에
이재명 대표는 2022년 대선 공약으로 위성정당을 방지하고 연동형 비례제로 한국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위성정당 방지법만 발의한 채, 더불어민주당은 여태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했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어느 유튜브 방송에선 “선거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병립형 회귀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재명 대표의 그 발언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둘로 쪼개졌다. 시민사회의 불안과 분노도 극에 달했다.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로 치를지 아니면 준연동형 비례제로 치를지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의 고민 아닌 고민이 깊었다. 국민의
지난해 11월 22일에 개봉한 『서울의 봄』이 새해 1월 3일 1,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쿠데타를 꾀하는 전두광 정치군인들과 그에 맞서 분투하는 참군인들의 열연이 압권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는 해를 넘겨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한 80년 5·17 비상계엄으로 완성된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길고 긴 쿠데타였던 셈이다.박정희 18년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서울의 봄’(1980년 3월~5월)은 영화 속 전두광 정치군인들의 교활한 사적 욕망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마땅
프랑스 시민교육은 1879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쥘 페리(J. Ferry)가 공교육에서 가톨릭 사제들을 배제하고 초등의무교육을 도입하면서 시작했다. 이른바 쥘 페리는 프랑스 공교육을 보통교육으로 대중화하고 세속화한 장본인이다. 나아가 프랑스 공화국 시민으로서 ‘국민통합’을 추구한 프랑스 시민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쥘 페리의 공화국 시민교육에 영감을 고취한 계기가 콩도르세(Condorcet)의 공교육 보고서였다. 콩도르세는 일반 보통교육을 역설했는데 말년에 저술한 책이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다.이 책에서 콩도르세는 “모든 인
20대 대선(2022. 3. 9.)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의 표 차이는 0.73%(24만 표)였다. 선거를 코 앞에 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모두 40% 동률을 이루거나 1% 차이로 아슬아슬했다. 정치인 이재명이든 심상정이든 아니, 수많은 국민은 선거 패배가 가져올 파국을 충분히 예상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갈등과 고통의 언저리엔 직접적으로 두 정치인의 잘못이 아주 크다.15대 대선(1997. 12. 18.) 당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과 DJP 선거연합을 통해 ‘공동정부’를 구성했다. 1.6%(39만 표) 간발의 차이
독일은 빌리 브란트 사민당 집권 시기인 1970년대 초반부터 ‘민주시민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독일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곧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가리킨다.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독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으로 규정했다.‘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란 표현은 독일, 오스트리아 정도이고 북서유럽 국가에선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1970년대 격렬한 좌우 이념 논쟁 속에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
‘민주시민교육’과 직접 관련 있는 사회과와 도덕(윤리)과, 그리고 국어과와 역사과를 중심으로 각 교과에서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성과는 현실적으로 매우 미약하다. 무엇보다 각 교과 내용 속에 ‘민주시민교육’ 내용 요소가 어느 정도 녹아 있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다.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정문성 외, 2018)에 따르면 실제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선 80% 가까이 ‘’학생 자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86.48%가 ‘민주시민교육’을 ‘준법 교육’ 내지 ‘질서
2020년 5월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사태’ 당시, 조중동 수구 언론을 비롯해 한국 사회 다수 언론이 보인 행태는 기레기 수준을 넘어 참혹했다. 심지어 과거 사회 운동으로 명망을 쌓았던 진보 인사들조차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 의원의 ‘위선’을, 나아가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정대협 후신) 활동가들의 ‘도덕성’을 의심하며 질타했다. 그러나 ‘윤미향 사태’는 검찰의 불순한 의도(?)와 언론이 조작 날조한 혐의가 짙다.사건의 발단은 이용수 피해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검찰 수사 자체는 기획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제2의
냉전과 분단 상황은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 국가에서 끊임없이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집권 12년 동안 인권을 유린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김원일이 쓴 『마당 깊은 집』(1988)은 전후 50년대 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어린아이의 눈으로 묘사한 소설입니다. 군경을 앞세운 이승만 철권통치의 민낯을 관찰자 시점으로 빼어나게 잘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피난 온 시민들을 항시 감시하고 새벽녘에 느닷없이 군홧발로 집안으로 쳐들어와 때리고 연행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습니다.올해 작고한 최일남 작가가 쓴 『거룩한 응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 신문은 모두 친일파들과 관련된 신문입니다. 적어도 세 신문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김성수, 방응모, 홍진기)이 세우거나 관련된 신문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이 자행되던 1970년대 중반 사건 당시 200명 가까이 양심적인 기자들(대부분 『동아일보』 기자들)을 해고했던 신문입니다.그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87년 6월 항쟁 이후, 7만여 국민을 주주로 받들어 만든 신문이 바로
아나키스트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고 비극은 반복됩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더 나아가 역사를 모르면 도덕적인 삶이 어렵습니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분별하려면 그들의 과거, 바로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면 됩니다. 욕망하는 삶에 갇혀 지혜를 향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그리고 지혜의 눈을 닫지 않도록 매 순간 성찰이 필요합니다.왜 사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문학이 세인의 관심을 받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해방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혔다. 식민지 조선에서 살던 일본인들은 재산과 목숨을 잘 보존해 귀국하는 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숫자는 미미하지만 실제로 해방 직후 조선 사람들에게 맞아 죽은 일본인도 있었다.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식민지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와 보물을 배에 가득 싣고 자기 부인을 그 배에 태웠다. 8월 17일 해방 이틀 후 몰래 출항한 그 배는 선적 과부하로 일본 구마모토현 앞바다에 있는 섬, 마키시마(牧島) 해상에서 멈춰버렸다. 결국 선적한 것의 절반을 바다에 빠트릴 수밖에 없었다. 귀중한 문
정의당 지도부가 우려스럽다. 정의당 창당 목적이자 존재 이유인 노동자(약자)의 권익을 강화하기보다 기후 위기에 편승한다. 지금 시점에서 정의당은 노동당과 통합을 추구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당명도 노동당으로 바꾸어 당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그런데 노동당과의 통합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녹색정치를 또 하나의 당 정체성으로 띄우면서 녹색당과의 통합을 시도했다. 통합이 여의치 않자 내년 총선을 위해 며칠 전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선언했다. 오는 11/19일로 예정된 정의당 「재창당대회」에서 ‘선거연합정당’을 추인받겠다고
1981년 9월 1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밤늦게까지 교육학과 동기와 서로 생각을 나누었다. 그 친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졸업 후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해 목회자가 되었다. 그날 주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엔 다방이 오늘날 카페 구실을 했다. 밤늦은 시각까지 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발현하는지 각자 자신이 품었던 평소 생각을 주고받았다.친구와 헤어져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밤 12시 자정이 다 되었다. 누님이 놀란 표정으로 형사들이 찾아왔었다고 전했다. 정보과 형사들은 온종일 나를 뒷조사하고 다녔다. 사범
지난 토요일(10/21)이 정의당 창당 11주년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 분당-통합-분당이란 몇 차례 진통 끝에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으로 출범했다. 이듬해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정의당은 창당 1년 뒤 국민 지지도가 평균 1%였다.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지지도가 올랐다. 2014년(3%) - 2015년(4%) - 2016년(5%)로 오르다가 2017년 5월엔 8%를 찍었다.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2017년 10월엔 급기야 10% 지지를 받았다. 당시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은 실제 6.17%(201만표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12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자신은 결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자신은 마음이 절대로 가난하지 않다”며 “삶에는 가격이 없다”고 역설했다.호세 무히카! 그는 젊은 시절 아나키스트로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고 공산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국민당 집권 시절 파시스트들이
오는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4월 총선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선거 결과와 득표율 격차에 따라서 지도부 개편 또는 정계 개편도 거론된다.덧붙여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선거제 논의 결과에 따라 진보정당의 운명도 갈린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에 따라 정의당을 비롯해 군소 진보정당의 운명이 결정된다.중요한 점은 사표를 최대한 줄이고 득표율에 따라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2023년 9월 14일 검찰이 『뉴스타파』를 전격 압수 수색했다. 같은 시각 『뉴스타파』 봉지욱, 한상진 두 기자 자택도 압수 수색했다. 지난해 20대 대선 투표일(3/10)을 나흘 앞두고 『뉴스타파』가 3/6일 보도한 내용을 문제 삼았다. 대장동 사건 몸통 김만배가 신학림에게 들려준 녹취파일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다.9월 4일 「국민의 힘」 장제원 의원은 국회 상임위 발언에서 “폐간을 고민해야 된다. 없애버려야 된다.”고 강변했다. 그러자 답변에 나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기 문란 행위이자 중대범
국군의 뿌리는 후기 의병 전쟁(1907-1915) 당시, 일제에 맞선 항일 의병들이다. 후기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와 연해주로 망명한다. 망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군과 교전했던 항일 빨치산 독립군들이다. 항일 의병장, 홍범도가 여기에 속한다.그는 망명 전에 함경도 삼수, 갑산, 혜산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의병 전쟁을 치른 항일의병장이다. 망명 후 게릴라식 유격전으로 일제 경찰주재소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친일파를 응징했다. 1910년 8월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창설된 항일 독립운동단체 「성명회」에 가입했다. 오직 대한
7월 18일 서이초 교사 비극이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그 50여 일 동안에도 교사들 죽음이 똑같은 사유로 계속됐다. 어제도 대전과 청주에서 40대 교사와 3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이젠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교사가 생을 달리한 소식을 접하는 건 아닌지 자못 두렵다. 학교를 떠난 글쓴이도 이럴진대 현장에 있는 교사들 마음은 어떠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양천구 S초교 교사는 두 아이 엄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족의 죽음은 가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지난 서
50도가 오르내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5차 추모집회에서 무대 위 특수학급 젊은 교사는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6차 추모 집회에서 고등학교 교사는 무대 위 대독한 호소문에서 학부모로부터 “교사 자격이 없다”, “쓰레기 교사”라는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을 울분에 찬 목소리로 토로했다.여기 6차 추모집회 무대 위에서 발언한 어느 초등학교 교사 또한 경찰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형사고발로 건강이 크게 무너져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며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의 교사들이 상경해 분노하며 절규
오는 서이초 교사 49재를 앞두고 교육계가 정면충돌할 조짐이다. 교육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해임, 파면 등 중징계와 형사고발까지 운위했다. 명분은 ‘학생의 학습권 침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이고 실제는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7월부터 8월까지 주말마다 수만 명이 운집한 교사 추모 집회가 열렸다. 50도가 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은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절규했다.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보면서 교사들은 자신의 비극을 예견했기 때문이다.그 추모 자리에 교사 출신 강민정 의원이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최교진
글쓴이가 박영신 선생을 만난 것은 용산고등학교 시절(1998-2001)이다. 첫인상이 시인 김수영을 연상하게 했다. 가치 판단을 할 때 눈을 크게 뜨며 단호한 모습이 영판 그러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화력이 높았던 것과 달리, 학교 비리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용산고 – 서울대 출신 교사와 과학고에서 전근해 온 서울대 출신 교사들로 구성된 '용산 마피아'와 맞서며 재임 기간 내내 학교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20년이 지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예나 지금이나 '모럴리스트 시인 김수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S초 새내기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 옆 보조공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겨우 스물네 살 2년 차 꿈 많은 교사였다. 비극이 발생하기 2주 전, 자신이 쓴 일기장엔 “숨이 다 막히고...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썼다.2017년 김은지 선생님은 경기도 의정부시 H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담임을 맡고서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밤낮없이 학부모 민원 전화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이 컸다. 2018년과 2019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아이들과 교
90년대 중반부터 NGO 동아리 지도교사를 했는데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인권연대」와 「참여연대」에선 검찰 권력을 예의주시했다. 그 당시 「참여연대」와 「인권연대」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20년 전부터 못지않게 ‘검찰 공화국’을 예견하며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2019년 '조국 사태'는 조국이란 한 ‘개혁적 지식인의 위선(?)’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강남좌파가 안고 있는 계급적 불일치’가 낳은 문제도 아니다. 더군다나 '조국 사태'는 학종 전형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
S초 교사의 비극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제(8월 7일) MBC 보도에 따르면 2년 전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 두 명이 6개월 간격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20대 젊은 교사였다. MBC가 보도하기 전까지 경기도 교육청은 추락사로 처리했다. 모두 개인적 죽음으로 덮어버린 사안이다. 그러나 MBC 보도에 따르면 명백히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사회적 죽음이다. 잘못된 교육 현실이 교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S초 교사의 비극은 결코 새내기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노교사도 2016년 담임을 맡은 학
노회찬은 2018년 7/18일~7/22일 기간, 여야 원내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출국 전 드루킹 특검 별건 수사로 드루킹 김동원이 노회찬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고 언론에 크게 보도된 상황이었다. 노회찬은 정의당 대표 이정미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출국 전 아내 김지선은 남편 노회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여보, 내 계좌는 수십 년 전 것부터 다 뒤져도 걸릴 게 하나도 없잖아, 우리 그동안 쓰는 것도 버는 것도 별로 없이 살아왔잖아” 그러자 노회찬도 “나도 그렇지 뭐”라고 얘기하자
지난해 12월 화물연대노조 파업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역사상 처음으로 고강도 압박을 가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화물연대를 백기 투항시켰다. 노조 탄압 직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화끈한 대처’에 지지도가 크게 올랐다.그러나 하루 16시간 화물트럭을 몰아서 300만 원 정도 받는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절규와 고통에 대해 대통령은 ‘나몰라’라 했다. 올해 2월 대통령의 ‘건폭’ 발언은 노동개혁이란 미명 아래 ‘노조 때리기’에 대한 학습효과였다. 일용직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처
스물네 살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노조를 통한 동료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실에 공격적 성향을 지닌 학생”이 있었고 “학교 폭력 관련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교실에 들어갈 때 환청이 들릴 정도"로 새내기 교사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지난해보다 10배는 더 힘들다"고 동료 교사에게 토로했다.이런 사실이 일부 전해지자 전국 초등 교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다.어떤 선배 교사들은 새내기 교사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미안해했다. 교사를 향한 학교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