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열단과 약산 김원봉,100년을 기억하다' 국회 학술회의 열려

'김원봉 서훈,무엇이 문제인가' 김삼웅 발제 이요상 주주통신원l승인2019.08.23l수정2019.08.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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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조선의열단과 약산 김원봉, 100년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안민석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주최하는 국회 학술회의가 열렸다.

 

▲ 발제에 나선 김삼웅 전 독립관장과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윤경노 전 한성대 총장과 김주용 원광대교수와 손염홍 교수

안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6월에 토론회를 준비했다 연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을 서훈을 언급하고 나서 이념 논쟁으로 번져 6월에 예정한 토론회를 겁이 나서 못했다. 그러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취임한 후에 용기를 내서 이렇게 토론회를 열게 됐다"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약산 김원봉에 대해 국회에서 토론회 한번 여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많은 정치인이 이런 역할을 하고 앞장서서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주최자 안민석 문광위 위원장과 김원웅 광복회장과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 참가자들

안 위원장에 이어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윤경로 전 한성대학교 총장은 기조강연에 나서 약산이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설명했다. '한국독립운동사상 가장 불행한 인물이 바로 약산 김원봉'이라고 했다는 원로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김원봉은 환국 후 친일경찰로 “의열단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며 악명 높았던노덕술에게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고 여운형까지 암살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북을 결행했다"라고 덧붙였다.

발제에 나선 김삼웅 전 독립관장은 약산이 북으로 간 이유에 대해 "단정에 반대하다 미군정 경찰에 쫓긴 것"이라면서 "1947년, 여운형 암살 이후 거듭되는 테러 위협에 불안을 느꼈고, 미군정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정책으로 중도·좌파세력 입지가 좁아지자 예전 동지들인 조선의용대 연엔파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북한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삼웅 전 관장은 '약산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약산의 북행은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흐지부지되고 좌우합작이 실패한 데 따른 단원들의 이탈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어 "북한 통치 이데올로기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서 북한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의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황장엽이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국가정보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상임고문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는 2010년 황장엽이 사망하자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고 1등급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주체사상가 황장엽에 대해서 최상의 예우를 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독립전쟁의 영웅 김원봉은 용납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이고, 주체사상가 황장엽은 무궁화장을 받은 애국자로 추앙하는가”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김삼웅 전 관장 발제에 이어 토론에 나선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대표는 "이시대의 의열단인 촛불시민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김원봉 선생의 서훈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썼다"며 준비한 별첨 토론문을 읽었다.

 

*약산 김원봉 서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발제에 대한 토론문*

토론자: 이요상(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토론에 앞서 학술적으로 문외한인 제게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김삼웅 선생님과 주최 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부족한 저를 불러주신 까닭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시대가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의 시대임을 감안한 까닭이라 생각된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염치없이 이 자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허술하기 그지없는 토론일지라도 거리의 소리를 가감없이 드러내 보이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시작에 앞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김원봉!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갖춘 사람이라면 되물을 필요도 없는 문제를 토론에 붙여야 하는 오늘의 이 현실이 참담하기 그지 없음을 먼저 밝히는 바이다.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는 대한민국이 강도 일제를 징치하고 광복의 길에 가장 치열하게 앞장서 걸었던 약산 김원봉 선생의 서훈을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하고도 네 해가 지난 오늘까지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그 흘러버린 햇수만큼의 지체된 정의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과거 친일 부역의 반민족적 범죄를 덮기에 급급한 자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지배층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그들은 오히려 일제를 찬양하고 적반하장의 억지로 약산의 삶을 왜곡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정의로운 서훈을 훼방하고 있다. 오늘의 이 같은 현실에 다시 한번 후손된 사람으로서 약산 김원봉 선생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게 한다.

존경하는 김삼웅 선생님의 발제에 따르면 해방 후에도 약산은 남북 분단을 예견하고 이를 막고자 매우 진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약산은 누구보다도 죄우합작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좌우 합작의 구상은 그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온 몸으로 수용하고 실천하였던 기본 원칙이었다. 따라서 이념대립으로 분단을 향해 나아가던 당시의 한반도 정세는 약산에게 해방의 기쁨은 단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약산의 일생을 통한 사상과 이념은 압제에 대한 항거와 민족의 해방이 그 핵심이었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은 좌우의 이념이 중심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대동의 세상이었다. 일제에 대한 항거와 해방 후에는 미군정에 의한 남북분단을 막기 위한 투쟁이 그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약산은 대한의 광복을 위한 길을 걷는다면 누구라도 벗이 될 수 있고 함께해야 한다고 믿었던 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중경의 임시정부가 좌우합작 정부였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반드시 청산되었어야 할 적폐 무리들이 선생의 서훈을 반대하는 주요 논지가 월북 인사며 이북 정권의 수립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평생을 이념보다도 피가 진함을 강조하며 대동단결을 외쳤던 선생께서 지하에서나마 통탄하고 계실 것이다.

실제로 약산은 김삼웅 선생님의 발제를 통해 보듯이 남쪽 미군정과 이승만을 안은 일제 부역세력의 모욕과 살해 위협을 피해 북으로 간 것이지 결단코 북한 체제를 흠모하거나 동조해서 월북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물론 약산은 북 마저도 품기 어려웠던 거인이셨지만.

오늘 이렇듯 저들이 선생의 서훈을 반대하고 훼방하는 억지를 부리는 까닭은 약산의 민족 해방과 광복을 위한 삶이 서훈으로 재조명될 뿐 아니리, 그를 통해서 약산의 삶과 반대로 외세에 빌붙어 반민족 행위를 자행한 세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약산의 서훈은 곧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고 진정한 광복이 실현됨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저들은 기를 쓰고 억지 논리로 그것을 막는 것이다. 반드시 저 허망한 논리를 무너트려야 한다.

올해는 3.1혁명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아울러 오늘 이 토론의 자리를 펼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의열단 창단 100년을 기리는 뜻깊은 해이다.

일제의 압제 당시 저들이 가장 두려워한 단체가 곧 의열단이었다.

그런데 그 의열단의 의백이신 약산이 서훈의 자리에 안 계신다.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는 대한민국이 말이다.

오늘 아베의 일본이 대한국 경제보복이라고 일컫는 망동의 바탕에는 저들이 그리도 두려워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도 일정 정도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적국 일본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약산에게 서훈도 못하는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숨어 놓은 우리 안의 친일세력들. 그들을 믿기 때문에 오늘의 오만방자함의 극을 이루는 것이다.

조선이 일제에 의해 망할 때를 상기해야 한다.

조선은 결단코 일제의 무력 까닭에만 무너지지 않았다.

조선은 조선 내부의 분열로 그리된 까닭이다.

오늘 우리는 불 보듯 뻔한 옳고 그름에도 해괴한 논리로 억지를 부리는 폐단으로 인해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고 있다. 적폐들의 억지를 일축하고 약산 김원봉 선생의 정당한 서훈을 시행하는 것으로부터 이 땅의 역사와 민족혼을 좀 먹은 적폐를 청산하는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거칠게 표현했으나 너무도 상식적인 문제이기에 다듬어 표현한다 하여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김삼웅 선생님께서 약산이 일제하에 행했던 좌우합작의 노력에 대해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시면 그가 결코 공산주의 이념에 물든 인물이 아니었음이 명백해 지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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