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교장자격증제는 반민주적인 제도

2017년 5월 촛불정부가 들어섰다. 누구는 문재인 정부를 '민주정부 3기'라 불렀다. 촛불시민혁명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며 역주행한 이명박근혜 정부를 종식시킨 세계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민주정부 3기'라는 표현은 이전 김대중 국민의 정부(1기) - 노무현 참여 정부(2기)를 다시 잇는다는 뜻이리라.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든 '민주정부 3기'든 지금 정부는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는 사실이다. 그런 취지에서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민주시민교육'을 국가정책과제로 설정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가운데 하나로 「민주주의와 시민 교과」를 교과목화 하여 정부가 추진할 사업으로 설정한 것이다.

▲ <국민주권시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2018. 10. 27)

(출처 : 하성환)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역시 「시민교육」교과목 신설과 「민주시민교육진흥법」 제정, 그리고 민주시민교육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민주시민교육위원회」와 「민주시민교육연구원」 설치를 제안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생긴 일이자 민주시민교육 내실화와 제도화로 촛불 정신을 현실화 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초대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교육부 조직 내 '민주시민교육과'(2018년 1월)를 신설했다. 그리고 2018년 하반기'민주시민교육정책 중점연구소'가 국가 수준 교육과정 마련을 위해 출범했다. 연구소는 민주시민교육 기본원칙과 내용 요소 등 공통기준 탐구에 이미 들어갔다. 더불어 현행교과서 분석 작업과 해외 민주시민교육 교육과정 및 교과서 분석에도 착수했다.

단기적으로 주제별 통합학습(초등학교), 자유학기제(중학교), 통합사회(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적용할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론 2022 교육과정 전면 개정 당시 민주시민교육 내용요소를 모든 교과에 강화하고 민주시민교육 핵심교과를 별도로 창출할 방침이다. 물론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적용할 토대를 구축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할 환경 정비에 들어갈 것이다.

모두 학교현장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의미심장한 활동이자 한국현대교육사에 큰 획을 그을 중차대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촛불 정신을 교육 분야에 구체화하는 실천적 모습이라 한편으론 학교현장에 작지만 변화의 조짐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모든 고무적인 현상과 변화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학교민주주의는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유는 앞서 제시한 국가 차원의 모든 노력과 정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학교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과정을 새로이 도입하고 교수-학습방식을 협력과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는 기구(가칭 민주시민교육원)를 국가 차원에서 설립하고 민주시민교육 가용 자원을 활용한 네트워크 내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령탑인 전담 기구와 네트워크를 통한 거버넌스 구축은 민주시민의식을 사회 저변에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민주시민교육 정책 기조에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빠져 있음을 발견한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고 학교민주주의를 현실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선결과제가 결여돼 있다. 그것은 민주시민교육 정책이 학교현장에 정직하게 적용되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빠져 있다.

즉 아이들에게 자주성이 자라날 심리적・물리적 공간이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가장 민감한 '학교권력관계'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학교사회를 수평적・인격적 관계로 변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사상누각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학교권력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시키는 게 시급하다. 그러할 때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현장에 견고하게 뿌리내릴 것이다. 그리고 학교민주주의 역시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의 삶 그 자체로 구현될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표현대로 학교사회에 민주주의가 흘러넘치는 풍경을 마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학교 권력관계를 수평적인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변모시키는 법적・제도적・환경적 변화가 최우선적으로 선결될 필요가 있다.

비유하건대 밭(학교권력관계)이 엉망이고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척박한 사막이라면 아무리 좋은 씨앗(민주시민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을 뿌리고 물을 준다 한들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훌륭한 농사꾼(민주시민교육 선도교사)을 투입하여 유기농에 따른 거름(교육생태계 변화)을 준다 한들 좋은 열매(민주시민)를 맺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실천적 방안 가운데 학교권력관계에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함은 자명한 진리이다. 민주시민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할 연구과제가 잘못되었거나 부실한 것은 없다. 모두 학교현장에 필요한 것이고 언젠가 반드시 요청되는 필수적인 연구과제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학교현장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가장 절실한 과제는 아니다. 교육과정의 변화도 필수적이지만 가장 급선무는 학교권력관계의 변화이다.

기존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무소불위의 권력을 해체하고 수평적 권력관계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지시와 명령, 복종과 순응이라는 순치된 신민(臣民)형 학교문화 속에선 자랄 수도 꽃 피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 국가주의 교육 가치를 아이들 뇌리 속에 집단적으로 주입한 국민교육헌장. 박정희 정권 국민교육헌장은

신민(臣民)형 교육의 전형이다(2018. 11. 13) (출처 : 하성환)

민주주의는 7살짜리 어린아이나 60 넘은 교장 선생님이나 대등한 관계에서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때 실현 가능한 혁명적 이념이다. 실제로 루소의 교육사상을 실천하는 섬머힐 학교에서 학교권력관계는 매우 수평적이다. 누구도 아이들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자율성은 존중해야 할 가치이고 아이들은 존중해야 할 대상일 뿐 누구도 자율적 인격을 가벼이 하거나 짓밟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의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주성을 지닌 주체적 인격으로 성장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원인으로 통상 ①분과학문 중심의 교과운영, ②일방적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 방식, ③학교 여건에 따른 민주시민교육 지역별 편차, ④민주시민교육 수업 시수 확보의 한계,  네 가지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원인일 뿐 민주시민교육이 학교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학교민주주의를 저해하고 민주주의가 학교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막는 가장 근원적 요인은 학교장 1인을 핵심으로 층층이 서열화한 인간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 학교장-교감-수석교사-부장교사-평교사-기간제교사-시간강사-학생으로 서열화한 구조 속에서 동등한 인격적 관계 맺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요컨대 학교민주주의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근원적 원인은 비정상적인 학교권력관계에 있고 비정상적인 학교권력관계에서 파생된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에 있다.

따라서 국가적 과제인 민주시민교육에 현장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최우선적으로 학교권력관계를 해체하고 동등한 인격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꼭대기에 서서 군림하는 1인 지배체제가 아니라 구성원 다수의 결정에 따라 학교사회가 운영되는 명실상부한 학교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점수관리와 승진을 통해 학교장이 되는 현행 '교장자격증제도'를 폐지하고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해야 마땅하다. 학교장이 계선조직의 맨 꼭대기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학습환경을 지원하는 참모조직으로 주변부에 있어야 한다. 그게 교육학의 정석이자 교육행정의 ABC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거꾸로 돼 있다. 교실 한 칸을 교장실로 떡 하니 차지한 채 성찰도 없고 부끄럼도 없다. 한국사회 '교장자격증제도'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산물이다. 나아가 학교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선적이고 반교육적인 제도이다.

민주주의가 학교현장에 흘러넘치도록 하는 것은 구호만으로 될 수 없다.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학교권력관계를 변모시킬 때 학교민주주의는 저절로 찾아오는 과실이다. 동등한 인격적 관계의 토대 위에서 민주시민교육과정을 도입해 실천한다면 능동적 시민을 길러낼 수 있다.

그러할 때 사회문제,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려는 아이들의 시민성(citizenship)은 물 흐르듯 자라날 것이다. 학교 또한 아이들에게 자기성장을 경험하는 행복한 공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 바로 학교민주주의는 그렇게 가야 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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