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우리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일본은 조선 민중의 동원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었다.

1920년에는 ‘조선정보위원회’를 설치해 독립에 대한 의식을 저하시키기 위한 정책을 펼쳤으며,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내각정보부와 연동하는 조직으로 ‘조선중앙정보위원회’를 설치하여 국책 선전의 다양화를 꾀했다.

신문 잡지와 같은 활자미디어부터 시찰단, 전람회, 각종 강연회와 행사 등, 국책에 적극 협력하는 신민을 만들기 위한 시국인식 교육과 미디어의 통제가 조직적으로 진행하였다.

그 중 문맹률이 높았던 조선민중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사상 교육을 위해 이용되었던 것이 ‘가미시바이(종이연극)’이다.

‘가미시바이’란 하나의 이야기를 주요 장면마다 그림으로 나타내어 그것을 순차적으로 제시하며 공연자의 설명과 대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미디어이다. ‘가미시바이’는 일본에서 관동대지진 이후 엿장수들이 엿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거리 예능으로, 가두(街頭) 가미시바이 교육, 국책(國策) 가미시바이 등 발전 단계와 종류에 따라 세분화된 명칭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가미시바이 종이연극, 종이광대 연극 등으로 불리었으며 주로 계몽과 사상 교육에 이용되었다.

당시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는 일부 계층에서만 가지고 있던 것으로 일반 민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으며 영화나 강연회는 장소에 제한이 있고 별도의 기기가 필요한 이유 등으로 소수의 민중이 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대응책으로 ‘가미시바이’를 택하여 도시가 아닌 곳에, 그리고 문맹률이 높았던 지역에서 오락성과 정보전달력으로 유용하게 이용된 매체였다.

근래 완도에서 발견된 ‘가미시바이’가 이목을 끈다. 이 가미시바이는 원본 그대로 완도문화원 고 김희문원장께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완도문화원에 기증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자는 <오빠의 개선>과 <아버지 돌아오다>라는 두 작품으로, 모두 호적신고와 개명과 관련된 선전물로 영웅 심리를 일으키기 위한 내용들이다.

▲ 오빠의 개선

<오빠의 개선>은 여주인공 복선이 특별연성소의 입대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이상하게 여겨 알아본 결과 호적이 잘못 제출되어 통지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선의 아버지가 귀찮아 호적정정을 하려하지 않자 복선의 교장선생님이 찾아와 호적신고의 중요성을 역설하여 호적정정을 마친다.

또 복선의 오빠는 제대로 된 호적신고 덕에? 일본군으로 복무하여 무훈을 빛낼 수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아버지 돌아오다>는 호적이 없어 육군에 지원하지 못하고 있던 조선청년 구니모토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온다.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구니모토가 받아들이지 않자 아버지는 자살을 하려하나 일본 경찰관이 제지하여 목숨을 구한다.

구니모토는 아버지와 함께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신고를 마치고 화해한다는 줄거리이다.

▲ 아버지 돌아오다

이 두 작품 모두 징병제를 실시하기 위해 정확히 개명 된 호적을 필요로 하는 일제의 의도가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본을 돕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심기 위한 방법으로 연극 등으로 세뇌교육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식자층은 일본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꾀했던, 나라까지 팔아먹는, 죽어서도 씻지 못할 죄를 진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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