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는 땅속에서 밤낮없이 주무시고 엄니는 요양원에서 십 년도 넘어부렀어. 아들인지 아잰지도 모르고 멀뚱멀뚱 누구요만 되뇌니 정말 환장하제.

그러다가 정신이 들어 한다는 소리가,

“오매, 영락없이 우리 아들이랑 똑같이 생겼는디 아니지라우? 그라고 본께 후정동 정심이 아부지구만. 그 동안 어디 댕겨와겠소. 한참을 안 보이드만. 애기엄씨는 또 모 심기러 갔구만. 우리 아들은 장에 갔는디 언제 올지 모르지라우? 뻐쓰가 끊기면 안 되는디. 뭔 귀신이 붙었을까? 썩을놈이 아침 묵고 나가서 뭣한다고 여태까지 안 들어오는지 모르것소. 미안허제만 아재가 전화 한 번만 해 주시요.”

손을 잡고 있는 놈이 그 ‘썩을놈’이라는 것을 모른다. 팔자 좋은 분! 당신 며느리가 몸이 안 좋아 3년째 안 보여도 걱정이 없는 분이다.

‘나도 엄니처럼 나 편한 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썩을놈’이 따로 없지. 당골네도 아닌 놈이 같잖은 푸념이나 하고…….

사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 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졸음쉼터에서 딱 한 번 쉬고 여덟 시간 넘게 내달렸제.

▲ 몇 년 전 시골집에서가족들과 함께 어머니랑 노래부르며...

친구야, 우리가 살던 고향은 어쭙잖은 촌으로 둔갑한 지 오래됐어. 면사무소 옆에 5층 아파트가 우뚝 섰어. 그 좁은 바닥에 다방이 2개나 생기고, 마트랑 고기 집도 서너 개나 돼. 마을 어귀를 돌아서면 도로 양 옆으로 으리으리한 모텔이 세 개나 보이고. 고개 너머 저수지 쪽에는 한정식 집이랑 매운탕집이 즐비한 명소(?)로 변하고 말았어.

신작로 위에서 질퍽거리던 소똥! 곤충채집을 한다고 그걸 헤집고 쇠똥구리를 잡으러 다녔지. 당글개로 가지런히 말리던 덕석 위의 나락은 또 어떤가? 나락맛을 보겠다고 덤벼들다가 여지없이 간짓대에 나뒹굴던 오리들, 덩달아 기어이 쫓아가 궁둥이털까지 죄다 뽑아놓던 강아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꼬리치며 깝죽거리던 우리집 누렁이, 벅꾸... 70을 바라보지만 날이 갈수록 더 삼삼하게 떠오른다.

자네도 알다시피 변변찮은 깨복쟁이 한 놈 없고 유년의 그림자는 지워진 지 오래일세. 고샅길 구석구석 드리운 유년의 추억도 덩달아 사라진 셈이지. 그러니 내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아니 될 말이지만 그리움도 때를 타는가 보다고 생각하네. 솔직히 도도한 물결에 밀려 때가 되면 엄니 보러 가는 놈으로 변하고 말았어. 천박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별 수 없네. 이제 ‘말’도 못하는 엄니마저 가시면 고향마저 잃어버릴지 몰라.

땡감이 먼저 떨어질지 홍시가 먼저 떨어질지 모르는 삶 아닌가? 떨어질 땐 떨어지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갈수록 자꾸 흔들리네. 아무튼 자네나 나나 축 처진 불알 두 쪽 말고 내세울 게 없잖은가? 모두 다 내려놓자구. 가벼워질 거야. 마음까지 비우면 유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모처럼 만난 형제자매 처남매부 눈 흘기지 말고 살갑게 보듬고 다독이면서 한바탕 크게 웃고 찬찬히 올라가세. 급할 것 없잖은가.

▲ 노래 부르는 어머니

※ '벅꾸'는 할머니가 지어 준 이름이다. 무슨 뜻일까? 나중에 유추한 말이지만 아마도 DOG를 그렇게 부르신 모양이다. 우리 고향에는 지프나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던 미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쫓아가며 ‘할로’를 연발한 덕에 던져 주는 건빵이나 양갱을 달게 먹던 기억이 새롭다. 누구한테 뺏길까 봐 동아실 솔밭에 숨어서...

아니라면 필시 '백구'를 그렇게 부르셨을 게다. '언문'도 몰라서 어머니 편지만 오면 우체부아저씨한테 소주잔을 부어주며 읽어 달라고 하시던 외할머니! 손주가 글을 깨친 뒤로는 편지지가 문드러지도록 숫제 보듬고 사셨다. 매캐한 봉초 냄새와 장죽의 담배통 두드리는 쇳소리가 아련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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