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문학기념비 제막식 및 제5회 세계작가대회 경축행사

천 년 후에

 

---김동리 문학기념비 제막식 및 [제5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축행사

 

 

◆김동리 문학기념비 제막식

하늘이 울먹울먹했다. 가신 지 오래된 한 분을 기리는 자리, 멀리서부터 참아온 울음인 양 구름이 강변을 향해 눈꺼풀을 내렸다. 김동리 선생의 대표작 ‘무녀도’의 현장인 예기청소가 바라다 보이는 강변이었다.

박완규 경주문인협회 회장님

 

김동리 선생의 제자 정민호 시인님

 

시비 건립을 기획하신 김종섭(오른쪽)시인님

 

시비 개막에 앞 서 성건동 주민 '추임새'의 놀이마당

 

사회자는 박혜선 경주시 문화산업팁장님

 

늦어도 너무 늦었다. 늦었지만 기쁜 일은 있다. 저 울울한 하늘도 막상 슬프지 않고, 아득한 감회로 설레었을 것이다. 반공이념에 막혀 폐쇄적 국가였다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외국에서는 유명 예술가들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잘 보았을 것이다. 문학관을 지어 기리지만 아직 우리의 문화의식은 개도국에 머물고 있다.

김동리 선생의 시낭독으로 큰 박수를 받은 주낙영 경주시장님
명상음악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홍순지 님 

이 지구별에서 돌만큼 단단한 미래는 없다. 천 삼백 년 전 첨성대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황룡사지 주춧돌은 늘 미래인 오늘을 꿈꾸며 만들었을 것이다. 참 아름답고도 처절한 인간의 삶을 그리던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며 우리는 먼먼 천 년 후에 어느 시간들을 다듬은 것이다. 선생의 작품 세계도 독보적으로 훌륭했지만 세계적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발굴하여 이끄신 일 또한 참으로 다행한 고마움이다. 이념의 논리를 잣대로 한 일부에서는 두 분을 각기 다른 진영에 놓고자 하지만, 막상 두 분은 모든 경계를 넘어 문학적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아름다웠다.

소프라노 김예슬님

 

대금산조 이성애 신라천년예술단장님

 

황명강 시인의 독창 김동리 시 '무제'

 

국민소득이 높아지자 전국에 문학비가 허다히 세워진다. 고인을 기리던 기념비가 아니라 생전의 문학비도 유행이 되었다. 김동리 선생의 문학적 성과에 비해 그를 기리는 후대의 성의는 늘 부족했다. 아직도 요원한 생가복원이 그렇다. 오랫동안 예산 관계로 미루던 문학기념비 건립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신속히 처리하신 주낙영 경주시장님은 예술 관련에 각별하시다. 본인이 남도 판소리 공부를 하여 한 대목 시원히 뽑으실 줄도 안다. 제막식에 앞 서 책장에서 김동리 선생의 대표작 ‘무녀도’를 다시 찾아 읽으셨다며, 연설문 없이 작품설명도 디테일하게 말씀하셨다. 이런 감동은 누가 써줘서 읽는 의례적인 판박이 인사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주말엔 더욱 바쁜 시장님이 시낭송이 끝나고도 행사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도 시민의 한 사람이어서 좋았다. 진실은 늘 진리에 닿는다. 그러나 누가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위선인지, 현재 대한민국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다.

하도 세상이 어지러워서 필자는 단풍 아래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일률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다들 푸릇한데 단 한 그루의 나무에 단풍이 곱게 들었다. 이렇듯 자연은 획일적이지 않아서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연임을 잊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툼을 선택하고, 우리는 우리끼리라는 경계를 만든다. 들판의 풀, 나무, 짐승도, 물풀도 물고기도 모두 어울려 잘 사는데 유독 동종의 인간만이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든다. 통상적 보편성에서 비롯되던 모든 도덕적 가치관이 경계에 의해 무너진다. 잔인한 적대감은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게 하여 역사적 오점을 깊이 찍고 만다. 성질 급한 이 단풍나무가 누구의 눈에는 진정성의 배신에 불타는 가슴색이며, 누구의 눈에는 배신의 분노로 터진 핏발로 보일 수도 있겠다.

판단은 자유지만 정의를 잃은 자유는 방탕이다.

시인에게는 시심이 곧 법이다.

◆[제5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축행사 ‘詩와 음악의 향연’

올해로 5년 째 [세계한글작가대회](2019년 11월 12일〜15일)가 경주에서 개최된다. [세계한글작가대회]는 국내에서 가장 큰 문학행사다. 작년에도 필자는 취재를 하면서 시간이 겹쳐서 모든 강의를 한꺼번에 들을 수 없음이 아쉬웠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는 예술이다. 삶의 지난한 내면세계와 언어의 관계에서 탄생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맨 앞자리에 문학이 자리한다.

 
 

 

 

현재 경주는 인구 30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경주의 시간을 거스르면 찬연한 문화의 신라에 닿게 된다. 장구한 서라벌의 시간에 지문처럼 남은 향가의 가락들은 시가 되고, 근대문명이 들어오기도 전 조선 초기에 발간된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시와 소설의 첫 산실이 되었고, 근대문학의 거장 김동리와 박목월을 낳은 경주는 뿌리 깊은 문학적 종가(宗家)다.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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