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악마와 생태계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19.12.31l수정2019.12.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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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구름이 악어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누군가를 쫓고 있다. 악마다. 도시의 악마. 악마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국물도 없다. 그러나 악마에게도 천적이 있다. 천적이 악마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악마는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악마의 욕망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천적은 악마의 끝자락을 노린다.

욕망의 끝을 보았다. 악마는 욕망을 품었다가 욕망이 생명을 다할 즈음에 토해낸다. 더러운 오물과 쓰레기들이다. 악마의 꼬랑지는 폐허더미로 이루어졌다. 그래도 악마는 욕망으로 온 몸을 감싸며 도시를 휘젓는다. 천적은 악마의 뒤를 노린다.

분노의 끝을 보았다. 악마는 분노의 불길을 품었다가 냅다 뿜어댄다. 타고남은 검은 잔재들이 보인다. 악마의 아랫도리는 불덩어리였으며 분노의 끝은 환멸이다. 그래도 악마는 욕망의 아가리를 끝없이 벌리며 분노의 불길을 뿜어낸다. 천적은 여지없이 악마의 꼬리를 노린다. 

악마를 주시하던 천적이 칼을 들었다. 칼이 번쩍이며 여기저기서 작은 악마들의 모가지가 뎅겅 날아간다. 큰 악마는 칼날을 잘도 피해간다. 천적은 총도 들었다. 총알이 여기저기서 악마들의 심장을 향해 발사된다. 악마의 새끼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지만 큰 악마는 여전히 건재하다. 큰 악마는 천적의 총과 칼을 잘도 피해간다.

악마와 천적이 드디어 만났다.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는 악마는 친한 척하며 천적을 껴안으려 한다. 천적은 악마의 포옹을 막지 않는다. 대신 악마의 뒤로 돌아가 악마를 포획하려 한다. 하지만 그 날이 오늘은 아니다. 악마가 생명줄을 놓는 날은 오늘이 아니다. 그 날은 내일도 아니다. 모레도 아니다. 천적은 악마의 뒤를 노린다. 천적이 악마를 포획하는 날은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악마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악마는 오늘도 시민들을 위협하고 욕망의 아가리를 벌리며 분노의 불길을 뿜어댄다. 그래도 천적은 악마의 뒤를 노리고, 악마는 여전히 천적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온갖 재간을 다 부린다.

욕망은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 악마의 욕망이 저지른 오물을 시민들이 치운다. 분노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든다. 악마의 분노로 황폐해진 거리를 시민들이 쓸고 닦는다. 악마는 오늘도 천적을 피해가며 욕망을 채우고 분노의 살기를 도처에 뿌려댄다. 천적은 여전히 악마의 후미를 노린다. 

과거에도 악마와 천적은 그런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악마가 끝없이 설쳐대는 이유이고 시민이 불안에 떠는 이유이다. 일찍이 천적은 시민들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바 있다. 악마를 포획해서 가두라는 것이 시민들의 뜻이었다. 천적은 시민들의 뜻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악마의 뒤를 쫓고 있는 게 아닌가. 시민들도 그런 줄만 알았다.

▲ 악을 물리치는 천사

천적이 왜 오늘 당장이라도 악마를 포획하지 않는지, 언제까지 악마의 뒤만 노리고 있을 것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사실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시민들은 깨달았다. 천적이 악마를 포획하지 않고 악마의 뒤만 쫓는 이유를 알아냈다. 큰 악마는 쫓는 시늉만하고 그 대신 작은 악마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체포 구금하며 정의의 사도인 냥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놀랍게도 천적은 악마와 공생관계였다. 선량한 시민들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천적이 악마의 뒤를 봐주고 권력과 황금을 악마와 나눠가지며 도시를 장악해왔다는 것을. 이는 실로 경악할 일이었다. 

천적은 그래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정의의 사도임을 자처할 것이다. 도시에는 늘 악마가 있기 마련이고, 악마를 잡으려면 천적은 필요하니 말이다. 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천적을 필요로 하고 있으나 이제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들이 악을 물리치는 천사이기는커녕 악마가 생존하는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2020년을 이틀 앞두고 드디어 온 국민이 열망하던 공수처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시민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을 요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오랜 적폐세력이 이제 제도적으로 자아성찰(?)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진실을 호도하던 수구보수 언론과 시대착오적인 수구정당과 작당하여 조국 사태를 일으키면서까지 공수처법을 막으려 애써왔건만 그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실은 조국청문회 초기에 조국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일 때 검찰조직의 부패하고 썪은 악취가 온 천지에 진동을 했었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공수처법을 극력 저지하기로 수구정당과 밀약을 맺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적폐세력의 큰 축이 철퇴를 맞게 되는 대쾌거를 맞이하여 경자년의 아침 햇살이 무척이나 밝고 따사로울 것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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