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시할 수 없는 홍콩사태, 뇌리 스치는 통킹만!

홍콩사태, 폭력선동의 배후 김승원 주주통신원l승인2019.10.22l수정2019.10.2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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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월 말에 예견했던 대로 미국은 홍콩 사태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언론은 미 하원에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최루탄 같은 시위 진압 장비의 홍콩 수출을 금지하는 법안도 함께 통과되었다. 이 보도에 의한 미국 정치권을 향해 홍콩 행정부는 물론 중국 주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외국 의회가 웬 내정 간섭이냐며 강력히 비판했다.

복면금지법에 대한 항의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가면을 쓴 의원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은 강력한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며 주권 안전과 발전 이익을 확고히 지키겠습니다.“라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통한 정부의 입장도 발표되었다. 이런 가운데 민간 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가 괴한들로부터 쇠망치 공격을 받아 크게 다치는 등 홍콩은 걷잘을 수 없는 폭력시위에 휘말려 들었다.

지난 6월부터 일어난 홍콩 사태는 게양된 중국 국기를 끌어내려 태우는 등, 시위대가 다시 격해지더니 요즘에는 방화까지 일어나 홍콩 정부에서도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다. 8월 마지막 주가 되면서 격한 반응이 가라앉아 이를 지켜보는 세계 시민사회가 안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선 케리 람 행정장관은 18일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섰다

  영국의 조차가 끝나고 1997년에 중국 본토로 환원된 홍콩민들에게는 잊었던 정치체제에 편승하고 적응하기에 적잖은 혼란을 맞았을 것이다.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굴복한 청나라와의 1941년에 체결된 난징조약부터 친다면 80년이 넘는 세월, 영국의 정치체제 속에서 문화를 비롯한 사회 전반이 총체적으로 영국화 되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식민지이기는 하나 자본시장의 개방 등으로 세계 유수의 도시국가처럼 폭발적으로 발전한 홍콩이 새삼스럽게 공산 체제 속으로 귀속된다는 것에 홍콩민들은 기본적인 반감을 갖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치와 문화, 경제를 비롯한 얼마나 많은 문제와 과도기적 현상들이 속출할 것인가. 바로 이때 홍콩에서 일어난 범인 본국 송환문제를 계기로 중국 중앙 정부에 눌러왔던 화를 폭발, 반기를 들면서 홍콩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발전 했던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 노력과 희생을 먹고 역사는 진보를 거듭하고 있으며 자유와 민주는 시민사회가 걸어가야 할 당연한 숙제이다. 시위와 궐기는 제안과 건의 대화로 되지 않을 때 건강한 시민사회를 존속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며 당위이고 그 구성원들의 의무이다. 정치권이 있다지만 고인 물이 썩듯이 우리들의 생명과 인권과 복지는 우리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쟁취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에는 따라올 수 없지만 홍콩도 어느 날은 50만이 넘는 인구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반정부 시위, 반 독재 시위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시민사회라면 언제든 결집된 시민들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민주사회이다. 중국이라고 정치체제가 다르다 한들 제 국민을 향한 독재와 과잉 진압 혹은 학살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지구촌 사회 속에서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고 나서 경제에 있어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가 하면, 변방 구석구석에 살고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다양성을 관광자원화 하는 바람에 중국 벽지 고을마다 그렇게 골고루 잘 살기는 유사이래 지금이 처음이라고 정작 중국민들 대다수가 시진핑 만세를 외치고 있다는데, 이번 홍콩 사태에서는 과연 궁극적으로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홍콩 사태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면서 국내외 언론 보도가 방점을 찍는 것은 한결같이 중국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시위대가 평화시위를 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변했다면 이를 저지하고 제압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관계 당국의 의무이며 임무이다. 대단위 군중은 실제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 아닌가. 폭력은 더 큰 폭력이어야 진압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보편적 논리이며 진압 경찰이 신변에 위협을 느꼈을 때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은 자기방어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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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누가 먼저 폭력을 시도했는가'이다. 홍콩 시민들이 처음에 선진국가의 시민답게 평화롭게 시위를 시작했을 때 정부 당국은 긴장했겠으나 진압은 없었다. 이번 홍콩 사태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은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나서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향해 간다 해도 폭력이 수반되어서야 궁극적으로 무엇을 쟁취하겠는가! 더구나 자유와 민주, 더 좋은 세상이란 무엇인가, 폭력도 전쟁도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소통이 잘 되는 세상 아닌가. 늦더라도 돌아가야 하고 평화적인 행진이어야 그대들이 꿈꾸는 바를 쟁취할 수 있고 그것이 인류사회가 역사를 거듭하며 쟁취하여 온 가장 의미있는 보편적 가치 아닌가.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침묵시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도의 왕권시대가 몰락하고 지방권력 분열의 틈을 비집고 침투한 프랑스를 따돌리고 인도를 점령한 영국은 면화와 차 재배로 인도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먹거리를 비롯한 생필품의 시장에서 당시 인도는 영국의 젖소가 아니었던가.

18세기 중엽부터 수탈을 시작, 드디어 산업혁명을 일구어낸 영국은 대량생산한 면직물을 저가에 인도에 들여옴으로써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폭망하게 만든다. 한때 면직물 노동자들의 뼈가 인도의 들판을 하얗게 뒤덮었다는 한 영국 관리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는 처절한 기록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은 드디어 20세기 초, 인도민들로부터 소금 생산을 중단케 했으며 소금전매권을 독점하고 소금세까지 부과하지 않았던가. 영국으로 인해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이 계속 되어 오던 터에 인도민들은 소금 사태 앞에서 드디어 총 궐기하기에 이른다. 이때 아쉬람에서 70명의 동지와 행진을 시작한 간디 일행이 단디(dandi), 소금이 생산되는 바닷가에 24일을 걸려 도착했을 때 행진에 합류한 시민은 6만이 넘어있었다.

  “그들이 염세를 부과하면 우리가 소금을 만들어 먹으면 될 것 아닌가. 실을 뽑는다는 것은 전 인도인을 위한 것입니다. 물레를 돌리십시오. 인도인이여, 자기 손으로 자기 옷을 만드십시오. 우리의 몸을 영국의 직물로 가리는 것은 수치입니다.”  간디의 절규는 헛되지 않고 인도는 드디어 1947년 8월 15일에 독립을 맞으며 인도의 민족주의 운동은 전 세계인에게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

  그러나 인도보다 훨씬 앞선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있었으니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정오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이다. 이 기미년 3.1 운동은 중국으로 가서 같은 해 반제국주의, 반 봉건주의 혁명운동이었던 5.4 운동의 모델이 되었으며 1930년 인도로 건너가 소금행진에 영향을 미쳤던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2016년 12월 10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의 기록]

  그뿐인가.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는 바로 얼마 전 광화문 촛불 혁명을 직접 완수하지 않았던가. 연인원이긴 하지만 일천칠백만이라니 우리 겨레 삼 분의 일 인구 아닌가. 일천칠백만이 모이는데 그 광장에 쓰레기가 한 잎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천칠백만이 모였는데 폭력은커녕 작은 소요 단 한 건도 없었다니 믿을 수 있겠는가. 외국인 기자들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세계인들이 어찌 믿었으리요. 우리는 그 여러 달 동안 초지일관 비폭력이었다. 유모차를 밀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광장으로 나왔다. 아이들 무등을 태우고 삼삼오오 온 가족이 참가했다. 청춘남녀는 민주를 외치며 그들의 사랑을 꽃 피웠다. 춤을 추면서 쇠붙이가 번뜩이는 가슴을 달랬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다 함께 이 고비를 넘기자고 다짐했다. 씻김굿을 하듯 그간 당했던 착취와 갈취를 풀어 축제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서진 건물의 잔해 한 점도 없이, 한 사람 정강이 깨지는 일 없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의 깃발을 다시 꽂았으며 평화의 행진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단 천 명이 모여도 폭력이 전제되는 것이 시위요 궐기의 마당이다. 우리 민족은 전 인류사에 없는 세계사를 새로이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임을 인류를 향해 증거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용납하지 않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다. 머리 또한 세계 제일로 좋은 민족임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열 또한 세계 제일 아닌가. 그리하여 한류와 더불어 세계인들이 우리를 모두 흠모하고 있으며 정의의 구현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처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세계인은 학습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도 큰일이 날 뻔하지 않았던가. 파렴치하고 악한 전 정권은 200대의 장갑차와 250대의 탱크를 준비시키고 궐기한 민중을 밀어버릴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짜놓고 있었다니 간담이 서늘하다. 속속 드러난 자료와 물증으로 그들의 실체를 온 국민은 확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시위 초기를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 대규모 집회 첫날, 저 미친 정권을 다 때려 부수자고 차체로 올라가 선동하는 그룹이 분명 있었다. 그것을 지나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내려 와! 내려 와-” 연호를 외쳐서 막았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휘말렸더라면 어쩔뻔 했을까. 그들의 각본에 낚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작은 폭력이라도 발견되면 그것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흥분한 민중을 밀어버리자, 는 것이 저들의 시나리오였다니.

  그런데 이와 유사한 광경이 이번 홍콩의 궐기 초기부터 민중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왜 홍콩 시위대 안에 영국기와 성조기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또한 미국과 영국이 홍콩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구호가 민중 속에서 들렸는지 모르겠다. 홍콩은 분명 중국의 한 개 도시이고 중국 관할 구역 아닌가.

끝까지 비폭력으로 가야 하는데 홍콩민들 왜 저럴까.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영국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는 그룹이 같은 그룹으로 앞으로 폭력을 선동할 것은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구와 함께 석 달여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드디어 홍콩은 폭력과 방화로 비화되고 그에 따른 희생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당국은 당연히 강경 진압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을 갈라치면서 영. 미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세력이 홍콩 민중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드디어 미국 의회가 홍콩 사태에 대한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미국은 과연 타국에 대해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 나라인가? 미국 본토에서는 시위대도 아니고 무장하지 않은 개인에게도 자위권 발동이라면서 경찰들이 마구 발포하지 않는가. 또한 제 2차 대전 중에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그간 미국 본토의 총기 소지로 죽어간 청소년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 아닌가.

수백만의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총기 소지를 법적으로 막아달라고 시위를 벌여도 이를 법제화 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미국 아닌가. 그런 나라가 폭력시위대를 향해 강경 진압했다고 중국을 향해 인권이 어쩌고 떠들 자격이 있는가. 누가 미국을 경찰국가로 임명했는가???

박정희 5.16 쿠데타가 미국 CIA의 가장 완벽한 공작이었다고 CIA 기밀문서가 말하고 있지 않던가. 1979년 12, 12사태로 등극한 전두환의 집권이 또한 미국의 시나리오였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번 홍콩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17세의 죠수아 웡이 미국 CIA 요원을 만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홍콩서 주말 시위 10주 연속...시위주도 관계자 살해협박 받아

추억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시점에서 베트남전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브란덴브루크 광장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하고 베트남 상륙을 반대한 직후 존 F. 케네디는 오스왈드에게 암살 당한다. 재선 출마를 위해 지지율이 낮은 델러스로 정치연설을 갔다가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이었다. 직후, 베트남 공산당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통킹만에서 자작극을 벌였던 미국이 생각나는 것은 지금 필자뿐 일까.

이후 그들은 베트남에 상륙하여 무엇을 했던가. 남한에 상륙한 미국이 그간 어떻게 했던가. 리비아를 어떻게 했으며 중동 여러 나라를 미국은 어떻게 했던가. 그처럼 그들은 국제사회를 향해 또 하나의 획책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홍콩을 삼키려고 시위대 속에 폭력 선동자들까지 박으면서 조직적으로 지금 홍콩을 가장 악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고 본다. 중국 정부가 강경 진압하도록 낚시밥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 자명해지는 지금이다.

홍콩민들이여, 끝까지 대화하라! 우리 대한민국의 촛불시위대처럼 폭력 선동에 낚이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평화행진이다. 폭력은 더한 폭력을 부를 뿐이다.

미국이여, 정신 차리라! 인디언이라는 토착민 씨를 말렸던 인종청소의 先國이여, 신의 진노가 가까웠음을 상기해야 할진저! 타국민 학살로, 남의 땅을 초토화하고 타민족을 흡혈하며 세를 확장하는 미국이여,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나니 패망의 선봉 미국이여, 지금이라도 각성할진저!!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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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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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문주 2019-10-22 10:21:37

    1.절박함에 성조기까지 들고 나온 이들에게 연대는 못할망정 훈수나 두는 태도는 부적절함.
    2. 저항운동에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경우는 오히려 드문 사례임. 우리나라의 탄핵집회가 평화롭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시민세력이 싸운 끝에 얻어낸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렸기 때문임. 홍콩의 경우 민주주의의 제도화 역사가 아직 짧아 경찰의 과잉진압이나 시위대의 요구를 묵살하는 정부 등이 나타날 수 있었고 그것이 시위대 폭력의 주된 원인이라 생각됨. 폭력이 반드시 악이고 부적절하다면 1980년 광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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