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큰아들 결혼식을 잘 치렀습니다. 가까이서 시간 낼 수 있는 분들에게서는 몸으로 축하받고 멀리 계시는 분들로부터는 맘으로 축하받고 싶다고 했는데, 멀리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따뜻한 정성과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 담쟁이 사랑                             사진 : 최호진 화백

2주 전 “아들을 장가들이며”라는 제목으로 본문 1쪽과 부록 15쪽 안팎의 긴 글을 단체 이메일과 카톡방, 페이스북 등을 통해 올리고 무수한 분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김천일보> 편집인은 이런 양식의 ‘이색적인 청첩장’이 널리 퍼지기 바란다면서 즉각 기사로 싣더군요. 예식장에서 제 아들을 처음 만나도 구면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는 등 수많은 격려와 축하 인사에 일일이 답하지 못한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인들의 장례식과 결혼식에 참석하며 언제부턴가 조금 부정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은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모른 채 조의금 내고 자식들 위로하며 밥먹고 가는 행사가 되고, 결혼식은 주인공을 거의 모른 채 부모들 축하하며 돈봉투 건넨 뒤 예식을 지켜보지도 않고 밥만 먹고 가는 행사가 돼버리는 문화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 거죠. 특히 결혼식에서는 부모보다 신랑신부가 주인공으로 진짜 ‘혼주’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작년 2월 미국에서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이색적인 부고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님을 보내며”라는 제목으로 고인이 어떤 분이었는지 저와 아내가 쓴 2쪽짜리 글이었지요. 단체 이메일, 단체 카톡방, 페이스북 등에 올렸더니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가 조의금을 거의 챙기지 못한 대신 장모님은 수백 또는 수천의 명복을 받으셨을 겁니다.

이번 큰아들 결혼을 준비하며 고민 좀 했습니다. 저와 아내 부모 넷 가운데 세 분은 수십년 전에 돌아가셨고, 작년에 돌아가신 장모님은 미국에서 장례를 치르는 바람에 조의금을 거의 받지 못한 터라 아들을 통해 축의금 좀 챙기고 싶다는 욕심을 억누르기 어려웠습니다. 속된 말로 지금까지 20여년 지인들 장례와 혼사에 투자한 본전 생각이 든 거죠. 그러나 자녀 결혼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알리더라도 축의금 받지 않고 예식을 치르는 고상한 분들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의 산물이 ‘이색적인 부고장’에 이은 ‘이색적인 청첩장’이었습니다. 종이 청첩장을 만들어 여기저기 보내지 않고, 아들을 소개하는 글을 이른바 sns에 올림으로써, 받아보는 사람들의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최소화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진정으로 격려와 축하를 받을 수 있고, 저는 초라하지 않은 예식을 마련하면서도 빚지지 않을 만큼 축의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죠.

결과가 참 좋았습니다. 나들이 철 토요일 늦은 오후 붐비지도 않고 썰렁하지도 않은 가운데 여유롭게 예식을 치렀습니다. 좀 특이하다며 적지 않은 분들이 칭찬해주더군요. 호텔 예식이지만 빚지기는커녕 며느리에게 용돈 좀 건넬 수 있을 정도의 축의금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다며 계좌번호 알려달라는 분들에게 정중하게 사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거듭 갖게 됩니다.

그래도 강원도나 경상도 등에서 4-5시간 달려와 축의금 건네주고 밥도 먹지 못한 채 황급히 떠나신 분들, 해외 여행중이면서도 무슨 특이한 방법으로 돈을 안겨준 극성스러운 분들, 너무도 부담되는 거액을 건네신 큰손들, 아직 취업이나 결혼하지 않았으면서도 봉투를 내민 학생들을 포한한 젊은이들, 제가 호화스러움이나 허례허식을 몹시 싫어하는 데도 식장으로 화환을 보내신 분들....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몇 년 후 준비하게 될 작은아들 결혼식은 고상한 분들 흉내라도 내야할 것 같군요.

신랑 이택호와 신부 최민지도 좀 특이한 예식에 만족하고, 멀리 미국에서 왔기에 별도의 신혼여행 필요 없이,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를 찾고 여기저기 일가친척을 방문하는 등 특별한 신혼여행도 즐기고 있습니다. 예식에서 제가 자랑삼아 소개한 대로 영화배우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온 큰아들과 참 이쁘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새 딸이 이쁜 얼굴뿐만 아니라 이쁜 맘을 갖고 이쁘게 잘 살아가도록 돕겠습니다.

거듭 감사하는 맘으로 재봉 드림.

[편집자주] 이재봉 주주통신원은 현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다. 지난 7월 9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재봉 주주통신원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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