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노동 갈취의 한 장면

지하철 3호선 종로3가 역에서 한 노인이 큰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 내 곁에 앉았다. 내 나이또래 되어 보였다. (내 나이 80)
 

▲ 지하철 3호선 노약자석에서

“아저씨! 그게 옷이에요?”
“예”
“가족이 아주 많으신가 봐요?  옷을 이렇게 많이 사 가시는 것을 보니.”
“배달인데요.“

어제 동묘시장에서 노인들이 옷가지를 가득 채운 검정 봉지를 들고 전철 타는 모습을 많이 본 터라 이분도 싼 옷을 많이 사 아들 딸, 손자나 이웃과 나누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배달이라 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소갈머리 없는지 부끄럽게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동대문 옷 도매시장에서 짐을 받아 다른 도매상에게 배달한단다. 하루에 평균 세 차례 정도 배달하며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게 되는 날도 많단다. 달력에 빨간 날도 쉬지 않고 주 6일 일을 한단다.

옷보따리 하나의 무계는 보통 20kg 이상이고 때로는 40kg가 넘을 때도 있다 한다. 배달료는 특별히 무거운 짐 삯에 고려되기도 하지만 주로 거리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일해서 월 얼마나 벌어요?”
“보통 40에서 45만원. 그래도 수급자로 국가에서 받는 돈 보다는 많지 않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요즈음은 불경기라 배달료를 깎아달라며 하는 말이

“아저씨는 전철이 공짜잖아요?”

보따리 2개는 방향이 비슷한 다른 집의 것이라고 했다. 내가 교대 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 아저씨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의 월수입을 시급으로 계산해 본다.
보통 하루에 3차례 배달을 하고 어느 날은 밤중에 집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하루 평균 10 시간은 넘게 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월 45만원, 주 11만 2,500원, 일 18,750원, 시급으로 셈하면 1,875원이 된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서두를 때 초등학교를 갓 나온 소녀들이 청계천에서 재봉질을 하고 소년들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기계를 돌리던 그 때 상황이 파노라마로 머릿속을 스쳐간다.

경제가 성장하고 OECD 선진국 대열에 오른 오늘날은 노령사회와 겹쳐, 노인들이 개발 당시의 청년들의 자리를 대체했구나 싶다.  이 아저씨가 하는 배달일은 외국 이주노동자도 하지 않는 일이고 품삯도 그렇다.

개발시대에 소년소녀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며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선진국 대열에 낀 오늘날 노인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면서 불경기를 극복하고 있는 모습,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최성수 주주통신원  choiss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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