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련

박춘근 주주통신원l승인2019.10.31l수정2019.11.0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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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선생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건 예전에 보이던 것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고 그런 송화가 보고 또 보아도 뉘나지 않고, 보듬고 또 보듬어도 물리지 않게 된 것은 숫제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사 손잡아 주고 이끌어 주며 모자란 것 보태주고 부족한 것 채워주신 선생님. 유난히 큰 사랑 독차지해서일까? 송화에서 함께한 6년이 왜 그렇게 빨리 갔는지 모릅니다. 선생님께서 퇴직한 뒤로도 처와 함께 종종 ‘달뜨는 기와집’에 들러 채소와 들꽃을 손보아 드렸지요. 그때마다 얼마나 반기고 좋아하셨는지 제 처가 글쎄 친정엄마 같다고 했잖아요. 임용고시에 합격한 진이를 얼싸안고 마치 내 일처럼 좋아하시던 선생님, 기뻐해 주세요. 진이가 다음 달엔 엄마가 된답니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보고 싶은지…. 그나저나 저를 기억하기나 하시는지 참으로 무심합니다.

선생님.

금대봉과 만항재의 여름을 잊지는 않으셨지요? 전 직원이 나들이 갔던, 천상의 화원 말씀입니다. 병아리난초, 참좁쌀풀, 진범, 범꼬리, 제비동자, 자주꽃방망이, 물싸리, 큰제비고깔… 비가 오던 날, 두문동재를 걸으며 우리가 보았던 들꽃들입니다.

그날을 떠올리며 지난 9월, 금대봉을 다시 찾았습니다.

등산로 초입에서 바라본 산목련 때깔이 하도 싱그러워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섰습니다. 엳아홉 장이나 되는 유백색의 허연 속살을 숨김없이 드러낸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함빡 웃고 있었지요.

아무 속박 없이 한껏 제멋을 자랑하던 함박꽃나무!

어쩌면 모진 세파가 싫어 깊은 산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철 지난 꽃 한 송이를 드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화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샛말갛고 무던하며 질박했습니다. 하필이면 그제사 빗속의 함박꽃 위로 당신의 얼굴이 덧놓였는지…….

곁부축하는 이 하나 없이 얌심부리고 배스듬한 사람들 틈새에서 겨워하던 당신의 얼굴이 삼삼합니다. 오늘도 송정초 가는 길에 당신과의 추억을 반추하며 일부러 송화 쪽으로 에둘러 돌아갑니다. 어디 계시든 청초한 선생님의 청복(凊福)을 기원하며 노래 한 편 띄웁니다.

구천 심궁(九泉深宮)에 또아리 틀고

사랑의 포로 되어 갇혀 있던 너

부처님의 부름 받아 승천하던 날

용왕님 애원으로 물 위에 뜨다.

널따란 이파리에 얼굴 가리고

심청의 넋이 되어 추원(追遠)하더니

용녀의 시새움에 뭍으로 밀려

금대봉 자락에 뿌리내리고

어쩌다 님도 없는 나목(裸木)이더냐

그리도 무구(無垢)한 목련이더냐

밤마다 그리는 님 생각에

부처님도 가련타 시멸(示滅)하시니

저미어 오는 이 아침의 애절함이여!

활짝 핀 순결함이 외려 부끄러

살며시 오므린 그대의 입술

때 묻은 손길에 더럽힐 새라

먼 발치 숨죽이고 합장하는데

가슴 속 스며드는 그대의 향기

나비마저 앉을까 봐 두근거린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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