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인 것과 교육 아닌 것

곧 11월 수능이 다가옵니다. 수능 전날 예비소집을 앞두고 매번 목격하는 학교풍경이 있습니다. 제자들이(선배들이) 시험을 잘 치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장행회(壯行會)’행사입니다. 1, 2학년 후배들이 2열로 도열해 서서 꽹과리를 치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장행회(壯行會)’행사가 과연 교육적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21세기에 과연 어울리는 교육행사일까 자기성찰이 필요한 대목이지요.

왜냐하면 고대 국가 정복전쟁이 일상이던 시대가 낳은 낡은 유물이자 학교군사문화의 잔재이기 때문입니다. 성문이 열어젖혀져 깃발과 함께 장군이 앞장을 서고 수많은 군졸들이 전장으로 떠날 때 무운장구를 빌면서 길 양옆에 도열해 선 백성들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입시‘전쟁’이라지만 아이들에게 ‘장행회(壯行會)’행사를 통해 요란하게 그것을 재현하고 강화시킬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고교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기관으로 전락했다고 우려 섞인 교육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게 어제 오늘일이 아닌 현실에서 더욱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담임교사와 교과수업 시간 선생님들이 ‘실력만큼만 잘 치고 오라’고 격려하는 것으로 조용히 끝낼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우리 교육에서 크게 강화하고 널리 퍼뜨려야 할 행사는 11월 ‘학생의 날’ 행사라 생각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자주성’을 기르는 데 있고 ‘학생의 날’은 아이들에게 ‘자주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더욱더 기리고 가슴에 새겨야 할 행사입니다.

▲ 올해로 90돌을 맞는 <학생의 날>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출처 : 하성환)

그러나 불행하게도 절대 다수 아이들이 <학생의 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실정이지요. 더구나 입시교육에 찌든 현실에서 왜 11월 3일이 <학생의 날>인지 그 역사적 의미를 묻는 것조차 수업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어버립니다. 실제로 질문을 던지면 답을 하는 아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게 매년 겪는 교실 풍경입니다. 성진회, 박기옥, 박준채는 물론이고 장재성, 허정숙, 박차정을 아는 아이들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교육기본법 2조에 명시된 교육의 목적은 ‘자주적인 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교육은 타율과 강제, 그리고 수동성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현실입니다. 심지어 자발성이 결핍된 강제 방과후 수업과 타율학습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립학교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걸 보노라면 교육인지 야만인지 혼동된 현실 앞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에서 교육운동이 가장 활발한 서울 강서남부지역 일부 중학교와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혁신학교 인헌고등학교에선 학생의 날 행사를 학생회차원에서 자율적으로 멋지게 치러냅니다. 그것을 보노라면 우리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함과 교사로서 자기성찰을 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교육에서 하루빨리 없애야 할 것 가운데 ‘유치원(幼稚園)’과 ‘교감(校監)’이라는 명칭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가장 앞서 강행된 장소가 부산입니다. 일본 공산품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일본 상인들이 가장 먼저 거리를 휘저으며 상권을 잠식해 들어간 지역이 구한말 부산입니다.

일찌감치 제국주의 침략에 발맞춰 부산에 쳐들어온 일본 상인들이 자신들의 어린 자제를 교육시킬 공간, 바로 유치원을 세웁니다. 그게 1906년경으로 읽었습니다. 한국사회 최초로 유치원이 탄생한 것이지요. 물론 프러시아제국 교육을 흉내 낸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에 이식시킨 것입니다. 수준이 낮고 어려서 유치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곳이란 뜻이지요.

서양교육사에서 유치원의 창시자이자 어린이 인격을 존중했던 프뢰벨이 들으면 기겁할 일입니다. 19세기 페스탈로치가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지요. 직장 단위 최초로 유치원을 세운 오언(R. Owen)이 들으면 껄껄거리며 웃었을 일입니다. 18세기 루소(J.J. Rousseau) 면상에 대고 그렇게 얘기를 했다면 혼쭐이 났을 일이지요. 당장 아름다운 우리말 <어린이 학교>로 바꿀 일입니다.

해방된 지 74년이 지나가는데 우리 선생님들이 변화의 조짐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게 1996년입니다. 실천적 교육운동가 이오덕 선생이 1993년부터 초등학교 명칭 바꾸기 운동을 시작하여 이뤄낸 결실입니다.

교감‘(校監)’역시 교사를 감시, 감독하는 지위와 역할을 가리킵니다. 21세기 민주주의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할 공적 기구인 학교 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자 직책이지요. 일본은 전후 군국주의 내용을 교과서에서 먹물로 지우고 교감 명칭을 바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74년이 지나가도록 제국주의자들이 심어놓은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성찰은커녕 부끄러움도 망각한 느낌입니다. ‘부교장’으로 하루빨리 그 명칭을 바꾸고 그 역할에 합당한 일을 하도록 교육환경과 학교문화를 우리 교사들 스스로 앞장서서 변화시키고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교육인 것과 교육 아닌 것! 교육의 이름으로 위장한 비교육적인 것들에 대해 교사 스스로 성찰하고 학교 현장에서 하나씩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교육에 대한 자기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면 내일 펼쳐질 교육은 오늘보다 더 나은 모습일 것입니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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