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뭐 보러 가니?” 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건축물 보러 간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만큼 시카고에는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들이 많다.

바로 이전 글에도 썼지만 1871년 ‘시카고 대화재’가 일어났다. 10월 어느 날 밤 27시간 동안 일어난 불로 9km²에 달하는 시카고 중심지역이 불에 탔다. 여의도가 8.40㎢이니 여의도보다 더 넓은 면적이 탄 거다. 나무로 된 건축물들은 모두 탔고 돌과 철로 만든 것들만 남았다. 이를 경험 삼아 시카고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닌 '나무가 아닌 돌과 철로 건물 만들기'로 대대적인 도시 재건을 시작했다.

14년 후인 1885년 강철골조로 ‘홈 인슈런스’ 빌딩이 세워졌다. 세계 최초 강철골조일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42m. 10층짜리 건물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지은 건물이라 하여 '마천루(摩天樓/초고층건물)'라 불렀다. 이후 시카고는 강철구조에 Curtain wall(무게를 떠받치지 않고 칸막이 구실만 하는 바깥벽으로 주로 돌이나 테라코타, 유리로 장식), 엘리베이터를 갖춘 매우 화려하고 혁신적인 초고층건물들을 계속 건설했다. 2017년 기준으로 1,315개 초고층건물이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 쉐드 아쿠아리움에서 본 시카고 중심부 스카이라인 / 비스타 타워, 푸르덴셜 빌딩, 트럼프 타워가 보인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시카고 건축물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대신 내가 본 가장 아름답거나 독특한 건축물 10개만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머문 숙소에서 5분만 걸어가면 DuSable Bridge를 가운데 두고 신고전주의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모두 1923~1928년에 지어졌다. 유명한 '트리뷴 타워'와 '리글리 빌딩'. '런던 개런티 빌딩', 'Jeweler's Building', '링컨 타워', '333 N Michigan 빌딩'이 그것이다. 내 귀는 구닥다리라 고전음악이 귀에 꽂히는데, 눈도 확실히 구닥다리인 것 같다. 이런 고전풍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트리뷴 타워'는 종합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이 창간 75주년을 기념하여 1922년~1925년에 걸쳐 지은 건축물이다. 36층(141m), 신고딕 양식 건물로 꼭대기에 탑이 있다. 건축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 공모’라는 공모전을 통해 당첨된 설계안으로 건축되었다. 트리뷴지는 해외, 미국 내 특파원들이 각자 머물렀던 곳에서 기념이 될 만 한 돌을 편집장에게 가져다주는 전통이 있었다. 트리뷴 타워가 지어지면서 이 돌로 하단 벽을 장식했다. 한국은 수원 화성 돌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 전통은 타워가 완성된 후에도 지속되어 계속 새로운 돌이 추가되었다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 그 돌들을 구경할 수 없다.

▲ 오른쪽이 트리뷴, 왼쪽이 리글리 빌딩

트리뷴 타워 건너편에는 눈에 번쩍 띄는 '리글리 빌딩'이 있다. 1924년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당시 높이는 130m. 추잉껌 회사였던 리글리사(Wrigley Company)가 건축했고 그 본사가 있던 빌딩이다. 지금은 매각해서 투자그룹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두 리글리 빌딩을 이은 3층 통로와 14층 통로

두 건물 중 남쪽 빌딩은 30층, 북쪽은 21층이다. 남쪽 빌딩 꼭대기에 시계탑이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사방에 시계 4개를 설치했다. 눈 같이 하얀 테라코타로 장식한 시계탑이 무척 아름답다. 2개의 빌딩을 3층과 14층에서 연결한 모습도 독특하다. 시카고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 런던 개런티 빌딩

DuSable Bridge 건너면 1923년 지어진 런던 개런티 빌딩이 보인다. 그 오른편에 Jeweler's Building과 링컨 타워가 있고, 왼쪽 길 건너 333 N Michigan 빌딩이 보인다. 모두 DuSable Bridge의 표지석과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다. 

런던 개런티 빌딩은 현재 런던하우스 시카고 호텔이 사용하고 있다. 꼭대기 종탑 모양과 종탑 아래 기둥과 부조가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

▲ 런던 개런티 빌딩

런던 개런티 빌딩 오른쪽 옆 건축물도 아름답다. 1927년 세워진 Jeweler's Building(=35 East Wacker)이다. 처음에는 보석상을 위한 빌딩이었다. 보석상의 안전을 위해 실내로 차가 들어가 리프트로 올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공회의소로 쓰인다. 로마 그리스 양식이 돋보이는 돔형 지붕과 외벽 테라코타 장식이 무척 섬세하다. 

▲  Jewelers' Building(=35 East Wacker)

런던 개런티 빌딩 바로 뒤, 하얀 탑을 가진 초고층빌딩은 1928년 신고딕양식으로 Mather Company가 세운 Mather Tower(현재 이름은 링컨 타워)다.  

▲ Mather Tower(링컨 타워)

보는 것처럼 건물의 넓이는 작다. 완공 당시 이 건물 디자인이 상당히 독특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형적인 직사각형 24층 구조 위에 8각형 구조물이 18층이나 얹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시카고에서 159m로 가장 높으면서도 가장 날씬한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 333 N Michigan 빌딩

1928년 완공된 333 N Michigan 빌딩도 시카고의 랜드마크다. 운이 좋게도 오픈하우스 이벤트 기회를 잡아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 333 N Michigan 빌딩

맨 꼭대기 층을 공개해서 멋진 시카고 건축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맨 꼭대기 층은 건물 멤버십을 가진 회원들을 위한 회의실, 휴게실, 전시실 등이 있었다.. 

▲ 333 건물 내부 모습

복도에 낸 유리창은 방 하나를 건너 밖에 모습까지 볼 수 있게 연결되어 있다. 유리창 하나도 참 예쁘게 디자인했다. 작은 전시실에는 333건물을 그린 그림 등 작은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옛 양식의 건축물들 사이사이 현대적 건축물들도 눈에 띈다.

▲ 화창한 날의 트럼프 타워와 리글리 빌딩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드 타워'는 트럼프 소유 빌딩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2009년 완공된 이 건물은 92층 위 첨탑을 포함해 415.1m 높이다. 시카고에서 2번째, 미국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이라 한다. 상업 시설, 주차장, 호텔 등이 입주해 있다. 위풍당당 웅장함에 '잠수함'이 연상된다.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은 무척 화려하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해도 바로 옆 리글리 빌딩의 품격 있는 아름다움은 못 따라오지 싶다.  

▲ 날이 좋은 날과 흐린 날의 트럼프 타워.

트럼프가 자랑스러운지 'TRUMP'란 단어를 건물 외벽에 크게 붙여 놓았다. 시카고는 날씨에 따라 건물이 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안개에 싸인 트럼프 건물이 어디로 튈지 모를 트럼프 같이, 바다 속 알 수 없는 세상을 가진 건물처럼 보인다.

▲ 마리나 시티

옥수수를 먹고 남은 모양 같다 해서 '옥수수 빌딩'이라고 이름 붙은 '마리나 시티'다. 1968년에 완공된 65층, 179cm 높이 주상복합 건물이다. 이 안에 들어가면 없는 게 없다고 한다. 식당, 슈퍼, 영화관, 음악당, 헬스장, 아이스링크에 주거시설까지 모든 것이 갖춰진 작은 '시티' 같다 해서 '마리나 시티'라 이름 지었나 보다. 차 뒤꽁무니가 보이는 16~18층(?)까지는 나선형 주차장이 빙글빙글 돌면서 있다. 무서워서 어찌 주차하는지 모르겠다. 아주 독특해서 눈에 띄는 건축물이긴 하나 공장식 축산시설이 생각 나 살고 싶진 않다. 

다음으로 '비스타 타워'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카고 강가를 걷다가 우연히 이 건물을 만났다. 2015년 착공해서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365m 건물이다. 2020년 완공되면 시카고에서 3번째로 높은 빌딩이 된다고 한다.

중국자본이 90% 투자했다고 하는 이 건축물은 타워 3개가 연결된다. 동쪽 타워는 47층, 가운데는 71층, 서쪽 타워는 93층이다. 세 개의 타워에는 초호화 콘도 406개, 호텔 객실 210개가 들어간다고 한다. 얼마나 비쌀까?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묵어 보진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묵는 것 보다 밖에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것도 같다.

▲ 밀레니엄 공원에서 본 비스타 타워의 뒷모습

이 글 맨 처음에 올린 사진에도 나와 있는 '비스타 타워'는 멀리서 봐도 다른 건물들 보다 세련된 모습이라서 눈에 확 들어온다. 선이 굉장히 부드럽다. 늘씬한 여신이 서 있는 것 같다. 건물 벽도 은은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유리로 장식했다. 이런 스타일 건물을 본 적이 없어 건축가가 누구인지 찾아보았다.

▲ 비스타 타워

STUDIO GANG에서 디자인 했는데 여기 리더는 Jeanne Gang으로 여성 건축가다. 이 건물이 완성되면 여성이 건축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다고 한다.

▲ Jeanne Gang(사진 출처 : https://studiogang.com/)

그녀는 'STUDIO GANG이 추구하는 건축 디자인은 사람들과 커뮤니티와 환경이 서로 유익한 관계를 맺는 것에 최우선을 둔다’고 말한다.

▲ 아쿠아 타워

비스타 타워와 멀지 않은 곳에 그녀가 디자인 한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아쿠아 타워'로 82층짜리 아파트다. 물결 모양 디자인이라 ‘아쿠아’라 이름 붙이지 않았나 싶다. 새들이 빌딩에 부딪쳐 죽지 않도록 배려한 친환경건물이라고 한다. 

시카고 초고층건축물 1,315개 중 내가 자세히 본 것은 한 20개나 될까? 그냥 잠깐 스쳐 지나친 건축물까지 합하면 한 100개 될까? 그들은 비슷한 디자인인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르다. 시카고 시에서 같은 디자인 건물은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하니... 아래 아파트처럼 조금이라도 디자인 차이를 둬야 할 거다.

▲ 아파트 고층을 조금 색다르게 디자인했다. 귀여운 센스가 엿보인다.

시카고... 나쁘게 말하면 돈으로 도배한 건축물 도시, 그 돈으로 온갖 건축 디자인을 구현해보는 도시,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도시가 시카고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 참고자료 : 위키백과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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