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있는 코펠 공장에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자 6월 말에 후임을 뽑으라며 12월 말까지만 근무를 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월경에 등산장비판매점 아리랑산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만 바이어가 코펠을 찾는다며 공장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안면이 있는 아리랑산맥 사원은 대만 보따리상으로 소개했습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세련된 비즈니스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요. 다행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솔한 인간은 아닙니다. 특히 대만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친한 친구나 형제처럼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했습니다.

原野登山行 상호에 伍惟堅이라는 이름이 박힌 명함을 받았습니다. 제가 건네준 카탈로그를 받더니 구매하고자 하는 코펠이 이른 봄에 대만 王子로 수출한 것과 동일한 품목이었습니다.

제가 이 품목은 王子란 회사에 수출한 품목이라고 하였더니 안다고 합니다. 저는 대만 시장이 좁은데 똑같은 물건을 갖고 경쟁하면 결국은 둘 다 손해를 본다. 비록 王子에게 독점권을 주지는 않았지만 저는 대만 시장을 보호하고 싶고 보이지 않는 신용도 지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미스터 우(伍惟堅)가 묵묵히 듣고 있더니 王子가 수입하지 않은 다른 코펠은 줄 수 있냐고 했습니다. 그거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두 종류의 코펠을 크기별로 오더를 하더군요. 거래가 성사된 후 우리는 비즈니스 이야기는 안 하고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말이 거의 없지만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한마디 물으면 전 다섯 마디 열 마디 대답을 하고, 나중에는 역사, 철학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고맙게도 한국 물건을 사주러 왔으니까 성심껏 대접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술도 안 마신다고 하니 저는 고맙기만 했고요.

그다음 달에도 한국에 왔습니다. 코펠 말고도 다른 한국제품을 대신 수출해달라고 했습니다.

미스터 우는 제가 사장 아들이나 친척인 줄 알았더군요. 그동안 한국에서의 경험은 어느 회사를 가도 사장 얼굴 보기 힘들고, 직원들은 어떤 결정도 직접 하는 경우를 못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장 경험이 없다 보니 눈치도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가 사려는 물건을 못 주겠다고 말한 한국인도 처음이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 공장에 방문했을 당시는 王子에서 수입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대만 전역에 총판을 하면서 독점권을 달라고 하려고 했답니다.

▲ 原野登山行 내부. 미스터 우는 현재 4명의 손주를 거느린 할아버지가 되었다.

타이난(臺南)의 유명 국립대학인 청꽁(成功)대학 부근에 등산용품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과거에는 등산장비를 직접 제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한국에서 물건을 수입했지만, 항상 실망만 했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는 남대문 아리랑산맥에서 물건을 보고 오더를 하면, 당시에는 무역업 등록자만 수출입이 가능하기에 다른 무역회사에 의뢰해야 합니다. 통상 판매가의 절반이 매장 이윤인데 할인을 받고 사도 무역회사이윤과 수출부대비용, 국내운임, 선임, 대만에서는 관세와 국내운임을 주고 수입합니다.

한국에서 들여온 물건이 시장에 풀리면 다른 매장에서는 한국에 놀러 갔다 등산장비판매점에 가서 들고 올 만큼의 물건만 사서 비행기에 싣고 오니 자신은 번번이 경쟁에서 밀렸답니다. 그해 여름 한국은 마지막 걸음이라고 생각하고 남대문 아리랑에 갔다가 저를 소개받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미스터 우에게 올해 말까지만 이곳에서 일하고 무역회사를 만들어 독립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위해서 걱정했습니다. 내가 회사를 차리면 당연히 저에게 오더를 주겠다. 하지만 자기가 수입하는 양으로 회사를 유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대만은 12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만 등산장비가 판매된다고 하며 비수기가 길다는 점도 우려했습니다.

저는 미스터 우가 제조공장과 직접 거래를 하지 않고 매장이나 도매상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한 경쟁력이 없다. 나 역시 나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회사를 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확신이나 성공 자체가 마음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나의 가장 큰 무기는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이 없다. 바닥에서 시작하니 올라갈 일 밖에 없다’는 단순 무모함이 모티브였지요.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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