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나라 대한민국은 '고졸 중산층 만들기'로
 

대한민국을 희망찬 나라로 만들 '고졸 중산층 만들기'에 힘써야

2019년 9월 우리는 드디어 ‘고교무상교육’을 맞이했다. 이제 그 참뜻을 새겨본다. 요즘 제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에 위기가 오고, 출산율이 어이없다고 할 정도로 떨어졌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시대 흐름이 바뀐 탓도 있겠고 다른 요인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고교평준화’로 한국 경제의 기초를 만든 주력들인 상고나 공고 출신들에 견주어 ‘대학진학’한 일반계 고교생들에게 더 많은 특권을 누리게 한 데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나라 경제는 어떤 모습인지를. ‘대졸 실업자 대량 생산’의 틀이 아니라면 '고졸 중산층 만들기'가 아닐까 싶다. 1인당 국민소득 6~7만 달러 넘어가는 나라들은 고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하고 집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회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움직이는 방식을 빌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의 상태가 나아져야 그 사회의 상태가 나아진다는 '맥스민(max-min)'을 새길 때다.

우리 모두가 마치 ‘스카이 대졸’ 병에 걸린 듯 ‘노동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예전 봉건 사회로 되돌아 간 듯 특권을 누리고자 하지 않는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 지상주의’의 승자가 되고자 하지 않는가? ‘내로남불’식 각개 약진 이기주의에 빠져 ‘말과 함’이 어긋난 채 제대로 살고 있다 장담하기 어렵지 않은가?

 

학생들이 ‘살맛나는 배움’을 누릴 때 희망이 생겨

이젠 ‘참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참배움’으로 가는 밝고 빛나는 길,일상에서 꾸준히 ‘본’이 되어 ‘참배움’을 실천하는 교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새롭게 역사를 떠맡아야 한다. 그래서 교사, 학생, 부모가 모두 살맛나는 참배움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바래온 ‘교육’에서 희망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애초에 ‘교육’이 지닌 속성 때문이다.

왜 이제라도 ‘교육’이 아니라 ‘배움’의 눈을 지녀야 할까? 참배움은 묻고 답하는 일로 비롯한다. 무엇이든지 묻게 하고 함께 답을 찾아보는 배움이 필요하다. 글을 읽는 일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궁금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찾아서 읽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읽으면 또 말하고 싶어진다. 글로 쓰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독서-논술-토론의 참배움이다. 다만 가장 먼저 바탕에 놓인 것을 놓쳐선 안 된다. 앎이란 배움의 바탕에는 몸으로 겪은 뒤에 얻는 느낌이 깔려 있어야 한다. 저마다 호기심에 바탕한 질문 없이 ‘주어진 물음에 답하시오’란 획일화의 주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묻고 함께 더 나은 답을 찾고자 서로 듣고 읽으며 제 이야기를 말하고 써야 한다. 창조와 창의를 바란다면 마땅히 ‘주어진 글을 읽고 저마다 생각을 말하고 쓸 기회’를 누려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느끼고 깨친 누구든 드넓은 세상에서 어떤 것을 마주쳐도 흔들림 없으리라. 늘 배움의 보람을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어느덧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고등학교’에서 맞춤배움으로 살뜻을 지니고 스스로 깨치는 늘배움으로 나아가야 

희망 찾기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추어 학생들이 ‘살맛나는 배움’을 누릴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살맛은 어디서 비롯할까? 사람이 짐승과 달리 ‘뜻’을 지니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저마다 살뜻을 일깨우고 스스로 깨침이 일어나도록 돕자. “열심히 살며 때때로 살맛을 느끼고 고마운 마음을 지니도록” 하자.

고등학교에서 지난 4~50년 간 모두가 소질과 적성, 재능을 살리도록 하자고 하고선 정작 ‘근대식’ 삶의 방식으로 누구나 똑같이 지내온 ‘고교평준화’였음을 성찰하자. 교사는 정답이 있는 문제를 내고, 학생은 주어진 문제를 풀면서 정답을 찾는 ‘똑같음의 길’로 가르치고 배울 것이 아니다. 이제 ‘다르게 됨’을 지향하며 고등학교에서 저마다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도록 하자. 배움의 거리(감)야말로 여러 가지 모습일 것이고 실험하고 생각하면서 풀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배움이 ‘틀림’을 ‘바로잡음’이란 틀에 얽매여야 할까? ‘다름’이 또다른 ‘다름’을 낳을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똑같은 것을 되풀이 하여 의식과 지성만으로 ‘~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됨’의 되풀이로 새로운 앎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넘쳐나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제대로 된 맞춤배움을 누리게 돕자. 삶과 따로인 ‘교육’ 틀에서 삶의 과정에 스며드는 살림형 ‘배움’ 틀로 바꾸자.

다행히도 마을에서부터도 지자체와 교육지원청, 평생교육기관, 마을교육공동체 운동들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하며 갖가지 모습의 배움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돈’이나 ‘점수’를 쌓아 놓기가 아니고 살만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느끼며 사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복 누림’이며 ‘살맛나는 배움’이 아닌가? (4352.11.22.)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두루한 주주통신원  duru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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