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조국 논란을 보며

「20 vs 80의 사회」(리처드 리브스, 김승진 옮김, 민음사, 2019.9.5.)를 읽고 이현종 주주통신원l승인2019.11.29l수정2019.12.03 11:5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국민들 사이에서도 조국 장관을 임명한 것에 대해 ‘잘한 일이다’ ‘잘못한 일이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잘못한 일이지만 지지한다’ 등등 의견이 엇갈린다. 조국에 대한 판단에서도 ‘특권층이다’ ‘피해자다’ ‘특권층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 등등 의견이 엇갈린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고, 계급이 세습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조국은 분명 상류층이고, 상류층으로서 세습을 위한 여러 시도들이 서민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문제될 것도 없는데 검찰과 야당세력과 언론에 의해 의혹 부풀리기가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 일은 강남좌파로 대표되는 진보상류층의 민낯을 일부 공개한 꼴이 되었고, 이로 인해 진보세력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준 것도 사실이며, 진보세력에게 한 단계 높은 성찰을 요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조국 사태의 본질은 계급투쟁이 아니고, 권력투쟁의 부산물이다. 그래서 그 비판은 진보세력에게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조국을 앞장서서 비판하는 세력들에게도 조국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나라 전체 상류층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물론 그 상류층의 범위는 1%의 초상류층이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의 상류층일 것이다.

▲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

「20 vs 80의 사회」에서 리처드 리브스는 20%의 상류층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20 vs 80의 사회」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자. ‘소득격차’, ‘계급재생산’, ‘불공정한 교육’ 등이 화두로 나온다. 그런 불평등 구조에서 밀려난 수많은 중산층과 노동자들, 특히 백인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큰 지지 기반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조국 사태에서 국민들이 보인 반응의 원인과 현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해서이다.

본질은 불평등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 담론은 상위 10%의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지다가 최근에는 상위 1%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나머지 99%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인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간다. 하지만 이번에 서민들은 99%가 다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불평등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며, 그 불평등은 세습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조국의 불법행위가 있는지 없는지보다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고 우리와 다른 기회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그게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변한다. 그 말은 맞다.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 사회가 진보할 수는 없다. 글쓴이 리처드 리브스는 ‘굉장히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거울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도록 이끌려 하지 않는다.’라고 진보적 지식인에게 충고한다.

글쓴이가 중상류층으로 규정한 부류는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프로듀서, 교수, 논객과 같은 공공 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류이며 그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다리의 위쪽에서 대물림이 견고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물림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상위 1퍼센트의 소득 증가폭이 크기 때문에 상위 1퍼센트를 빈부격차의 타깃으로 삼지만 그 아래 19퍼센트가 현재 미국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중상류층인 19퍼센트도 불평등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인 것이다.

그들이 상류층의 계급 영속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장에서 인정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는 것이다. 특히 고등교육은 그런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되고 있다.

기회 사재기 메커니즘으로 특히 두드러지는 세 가지는 첫째 타인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인 토지용도 규제, 둘째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셋째는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자리 분배다. 이것은 중상류층 아이들에게 하향 이동을 막아주는 “유리 바닥”이 되고 있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매우 다르게 자라며, 이러한 불평등한 환경은 계층 간 불평등을 영속적으로 세습시키고 강화시킨다.

리처드 리브스는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회 사재기를 막고 능력 육성의 기회를 평등하게 조성하기 위해 인적 자본 개발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런 조치를 취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상당 부분 중상류층이 지불해야 하며, 중상류층은 충분히 그럴 여력이 있다.

또한 계층 하향 이동성이 더 많이 필요하며,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더 평등해져서 아래로 떨어져도 큰 문제가 아니게 된다면 사람들은 하향이동성에 대해 더 느긋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가 하향이동성과 평등 지향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향 이동성이 낮으면 재분배 정책에 대해 사람들의 지지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 시장이 더 능력 본위적이고 경쟁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골적으로 경쟁을 저해하는 기회 사재기와 경쟁에 잘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불평등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그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능력 육성의 기회를 평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뜻대로 기회만 평등하면 경쟁이 공정해지고 사회가 정의롭게 될지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경쟁은 본질적으로 정의롭게 이루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정의로운 경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긍정의 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런데 결코 긍정적이지가 않다. 경쟁은 본질적으로 악마성을 부추기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하더라도 경쟁의 최소화를 통해 경쟁의 악마성이 억제되도록 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즉 결과의 평등을 지향해 사재기와 같은 불공정한 경쟁의 욕망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주장하려는 의도는 순수하고 단순하다. 그는 첫째, 시장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준비할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했다는 전제에서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둘째, 그런 경우라도 시장 경쟁의 승리자가 그 승리의 결과로 획득한 것을 전부 차지한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 세대에게 경쟁을 준비할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현 세대의 승리자가 획득한 것을 재분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불평등 구조와 계급 재생산 구조에 대한 분석은 탁월하다. 또한 불평등의 구조가 1퍼센트의 최상류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19퍼센트의 중상류층이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은 큰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에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강남좌파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다. 생각은 진보적이지만 실제는 기득권층이 가지는 이익은 그대로 챙기는 태도에 국민들은 많은 좌절감을 느낀 듯하다. 그럼에도 아직 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글쓴이가 비록 시장주의와 경쟁을 옹호하지만 그의 현실적 처방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의 말을 다시 인용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 중상류층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의사가 있느냐,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싶어 하느냐 일 것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현종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동호, 김태평,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미경, 김혜성, 안지애, 유원진, 이미진, 이호균, 최성주, 하성환, 허익배
Copyright © 2019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