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공원에서 김장을 하다(Ⅱ)

난지도를 추억하다 박춘근 주주통신원l승인2019.12.09l수정2019.12.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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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蘭芝島)가 있었다. 구한말까지 꽃이 피어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꽃섬(中草島)으로 기록하고 있다. “샛강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수양버들이 늘어서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난초와 지초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이란 말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1978년 쓰레기 매립 이전에는 꽃•배추•무•땅콩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땅콩은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수확량이 많았고 개구리참외는 맛이 좋은데다 굵기가 어른 팔뚝만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1972년, 그곳에 세워진 서울상암초등학교 교가는 “샘물이 넘쳐흘러 시냇물 되고 시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뤘네.”로 시작한다. 수색에서 나고 자란 진미 아버지는 그 때를 회상하며 어릴 적엔 배타고 들어가 멱을 감고 고기를 잡았다며 장마만 지면 수색 앞까지 한강물이 올라와서 나룻배가 안 뜰 때는 여섯 시간이 넘게 걸어다니기도 했다고 말한다.

▲ 1970년 이전 꽃섬 난지도시절, 수수‧땅콩을 경작하는 사람들 모습.(서울시 제공) © News1

난지도 한복판에서 다시 만난 상암학교 아이들

90년대 초에 나는 그곳에서 근무했다. 서울이지만 상암동 종점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단 한 대. 종점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걸리는데 통학로는 찻길과 인도가 구분되지 않았다. 아예 인도가 없었다. 난지도를 오가는 차가 왜 그렇게 많은지, 지나갈 때마다 먼지는 춤을 추고 자동차는 물론 사람, 풀, 나무가 보이질 않는다.

나풀거리는 바짓가랑이 속부터 머릿속까지 그러훑듯이 먼지보라가 휘날린다. 그 때마다 옷깃 추켜세우고 눈•코•귀•입 닫고 쪼그리고 돌아앉는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그럴 때는 가로수 뒤로 숨는 게 대수다. 게까지 미치지 못하면 영락없이 길가 고랑으로 미끄러지듯 처박힌다. 짐차들이 지나갈 때면 성인인 나도 가로수를 붙잡고 서 있어야 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더 난감했다. 흙벼락 물벼락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천진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멀리서 차가 보이면 엄지를 추켜세우고 눈웃음을 지으며 다리 한 쪽을 들고 바지나 치마를 걷어올렸다. 그런다고 차가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도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돌팔매질을 하듯 신주머니를 휘돌리며 데굴데굴 웃던 아이들이 삼삼하다.

컨테이너는 차라리 대궐이다. 좁은 천막 안 캐비닛을 경계삼아 아비방과 아이방으로 구분짓는다. 하루 벌어 살아가는 삶들이 많다. 일복은 너덜거렸지만 맘까지 남루하진 않았다. 내외가 하루 넝마를 주우면 일주일은 버틴다고들 했다. 그날 번 돈 그날로 모래내 술집에서 탕진하는 이들도 있었다. 객기를 부리지 않고 알뜰하게 모태는 이들은 가양동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곳곳에서 시커먼 침출수가 마치 원유처럼 흘러나오던 곳이다. 아이들은 쓰레기를 베고 잔다. 아버지들은 쓰레기더미에서 나오는 가스로 버려진 개들을 꼬실렀다. 하늘도 땅도 시커멓고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래도 아이들은 해맑았다. 어쩌면 너나없이 없이 살고, 가진 자들의 삶을 알지 못했을 테니...

소민이는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다. 스승의 날, 내가 좋아하는 주스를 사드려야 한다며 용돈을 모아 봉봉 한 상자를 들고 온 아이다. 없는 살림에 돼지저금통을 열어 보이며 엄마를 조르고 떼를 썼을 것이다. 엄마는 하루 전날, 수색까지 가서 12캔(?) 들이 한 박스를 사 왔을 것이다. 소민이는 몇 번이고 주스를 만지면서 그걸 마시는 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겠지. 설레는 맘으로 난지도부터 학교 교실까지 들고 왔을 것이다. 누가 볼세라 가방 속에 꼭꼭 숨겨서 말이다. 김영삼 정부가 고통분담을 외치며 교문을 걸어잠그던 시절이다. 아이들 말고는 누구도 교문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땀 뻘뻘 흘리며 가방 속에서 봉봉을 꺼내던 짧은 머리 소민이. 같이 먹자고 하자 자기는 집에서 많이 먹었다며 줄행랑을 치던 아이. 그 아이가 수유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이듬해 내가 갈현초로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교무실로 뛰어갔다. 소민이 어머니였다.
“선생님, 우리 소민이가요.”
첫마디부터 울먹이는 소리였다. 사회시간에 선생이 무슨 질문을 했고 소민이는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 선생이 대뜸
“너, 어느 초등학교 나왔어?”
라고 물어서 영문도 모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상암초등학교’라고 말했단다. 그랬더니
“거긴 난지도잖아.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
순간 아이들은 웃음바다를 이루는데 소민이는 무슨 죄인처럼 눈만 끔벅거리며 주저앉았단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울면서 하소연하는데 덩달아 울었단다. 없이 살아도 함부로 손 벌린 적은 없다, 해진 옷을 입어도 결코 비굴하게 살진 않았다, 아픔을 어루만져 주진 못할망정 아이 가슴에 못을 박다니 그러고도 선생이 맞느냐는 것이요, 그런 못된 선생을 어떻게 혼내줄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하여 내게 상담을 한 건데 난 고작 “그 선생 찾아가서 속마음 그대로 전하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다. 그날 이후 송화초에 근무하던 어느 날 어찌어찌해서 날 찾아와 색싯감 생겼으니 곧 데리고 와서 선봬드리겠다, 조만간 주례를 부탁드리겠노라고 했는데 13년이 지난 입때까지 소식이 없다. 다시 만나면 삼겹살이라도 사 주고 싶다. 여전히 질박한 누군가의 남편이요 아비로 살아가길 빈다.

노고시모와 백수건달

마포구는 노을공원에 축구장, 풋살장, 다목적구장 등 1만여 평 규모의 생활체육시설 건축을 계획한다. 이 때 ‘난지도 쓰레기 산이 인간 중심의 체육공원이 아닌, 생명이 함께 하는 생태공간으로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한 단체가 있다. 바로 노을공원시민모임(애칭, 노고시모)으로 오늘 행사를 주관했다.

어제 온종일 활동가 네 분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갓•파•미나리 등을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받쳐 놓고, 무는 채와 섞박지용으로 나누어 함지박에 담아 놓았다.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소금, 액젓을 담은 통이 보인다. 커다란 찜통 절반 분량의 찹쌀죽도 보인다. 공지할 때부터 1회용품 없는 행사로 진행한다고 협조를 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이컵을 비롯하여 1회용 접시•수저•포크•이쑤시개•용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빗물을 모아 저장하고, 야생동물을 위해 작은 습지와 물굽이를 만든다. 이제는 고라니, 너구리, 꿩, 산개구리 등 많은 야생이 목을 축이고, 몸을 씻고, 쉬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나무심기 씨드뱅크’로 흙과 씨앗을 보태면서 새로 생긴 고욤나무군락지를 보면서 쓰레기산도 천이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확신하고 있단다.

▲ 김장거리는 물론 추위 대비 각종 비책(?)들이 숨어 있는 노을공원 캠핑장

오늘을 위해 모두 4개 단체가 모였다. 그린에듀를 비롯하여 시민들의 삶터로서의 한강을 꿈꾸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조각과 조각이 만나 분단을 직시하고 평화를 정착하려는 탈북자 중심 여성 모임 조각보, 청년봉사자모임 사초롱, 그리고 공원관리소 근로자 등 74명이 참석했다. 그 중에서 특히 자칭 '백수' 세 분이 동참했다. 백수의 의미가 궁금했다.

백수건달(白手乾達)이란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을 말한다. 그런데 노고시모의 백수건달(百樹建達)은 다르다. 즉 100개 숲(百樹)을 책임지고 가꿔주는 건달(建達)을 의미한다. 그들은 흔히 ‘백수건달이 백수(百獸 : 야생동물)와 더불어 백수로(百樹路 : 100 개의 숲을 연결하는 풀•꽃•평화길)에서 함께 놀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쓰레기산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건강한 숲을 통해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 연중 실시하는 씨드뱅크. 좋은 흙 한 줌과 도토리 씨앗 한 줌 보태기 운동이라니 그 취지가 그만이다. 짬날 때 ‘백수로’에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어쩐지 나도 백수를 좋아할 것 같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강덕희 활동가를 따라 행사장을 돌았다. 공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을 비롯하여 요청하는 단체에 김장을 나눠준다고 한다. 그는 세제 대신 쑥과 천연 수세미를 준비했으니 김장 마치고 꼭 한 번 써 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안위(?)를 위해 특별한 비책들 – 손수 빚은 막걸리, 마가목주, 칡술, 영지차 – 까지 마련했음을 은근히 과시했다. 이 밖에도 맛난 콩떡과 두부, 도토리묵, 어묵, 버섯채소국, 무농약 인증 귤을 준비했으니 맘껏 즐기라고 했다.

주방(?)은 수돗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릴 잡았다. 세 개의 대형 국통과 가마솥 한 개가 보인다. 오랜 숙원이었단다. 안성명품임을 강조한다. 누군가 액수를 물었지만 큰돈을 들여서 구입한 재산목록 1호라고만 했다. 부뚜막 지름이 줄잡아 1미터쯤 돼 보인다. 쌀 한 가마를 담을 수 있는 대형 가마솥이란다. 한 마디 보탠다. 생애 가장 맛좋은 밥을 드실 행운을 안겨드리겠다며 애써 웃음을 짓는다.

한 바퀴 돌고 우릴 다시 부른다. 사람을 부리려면 먼저 입을 즐겁게 해드려야 한다면서 막걸리를 권했다. 우리는 모두 한 잔씩 냈다. 물을 많이 탔는지 싱겁고 텁텁했다. 그래도 간밤 늦도록 이를 거르느라 고생한 분들 생각에 단숨에 비웠다.

요셉 작가 지시에 따라 조리대 주변에 빙 둘러섰다. 집에서 갖고 온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구구 각색이다. 기념사진을 찍다 말고 영진 샘이 앞으로 나서더니 카메라를 잡는다. 표정이 왜 그러냐면서 그 큰 덩치가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막걸리도 한 잔 했겠다. 모두 웃으면서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앞치마 두른 모습만 보아도 빵 터지는데 곱사춤사위에 탱고춤까지 나오니 배를 그러안고 나뒹굴 정도다. 그래도 뻣뻣한 몸치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쭈뼛거리자 옆에 있던 한규칠 선배가 엉덩이로 밀친다. 절로 땀이 흐른다. 몸을 푼 우리를 기다리는 건 김장거리다.

20kg 들이 절임배추 7상자가 우리의 몫이다. 전체의 1/4이다. 지난해에 비해 할당량이 1/3로 줄었다. 그만큼 후원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몸도 맘도 팍팍해졌다. 지난해는 예닐곱 단체에서 100여 명이 참가했다. 김병환 샘이 파주 농장에서 배추와 무를 한 차 분량 싣고 오기도 했다. 그린에듀에서도 20여 명이 꼬박 해질녘까지 거들었지만 말끔히 처리하진 못했다. 한 입가심밖에 되질 않는 배추를 바라보니 착잡하다. 아무튼 우릴 너무 히피본 게 분명하다. 섭섭하고 야속하다.

먼저 3조로 나누어 배추를 씻고 날라 시렁에 얹는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양념을 버무린다. 자칭 막사모(막걸리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라서 어쩔 수 없단다. 최영취 샘은 배추고갱이를 연신 씹고 있다. 뭐라고 한소리 하자 감독님한테 대들면 엘로카드를 발급하겠다며 먹다만 배추고갱이를 들어 보인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영진 샘이 나선다. 양념 채소 할 것 없이 한꺼번에 김장매트에 쏟아붓는다. 고루고루 버무려서 소를 만든다. 예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옆에서 박수를 하며 하낫둘 구령을 부른다. 리듬에 맞춰 그 큰 엉덩이가 한층 더 커다란 동심원을 그린다.

속없는 배추와 시러베잡놈들

간을 보라며 무채를 넣어주는데 싱겁다. 평소 집에서 아이들한테 짜게 먹는다는 소릴 하도 많이 들은 터라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윤형 샘이 싱겁다 하고 귀자 샘이 김장은 으레 좀 짜야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덩달아 '삼삼하네.' 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입은 싱거운데 머리로는 괜찮다고 하니 얼간이가 따로 없다. 이 얼간아... 그러고 보니 제대로 절이지 못하고 대충 간을 맞춘 것이 ‘얼간’이다. 우리는 소금을 더 넣었다.

잘 버무려진 소는 일곱 무더기로 나누었다. 배추가 일곱 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추를 버무리다 보니 한 무더기가 사라졌다. 손이 큰 호성 선배가 양껏 넣았나 보다.  이웃집을 기웃거려도 소득이 없다. 별 수 없이 남은 양념으로 마쳐야한다.

“이 김치는 이 없는 할머니들이 드실 거여. 매우면 못 드시잖아.”
“맞아, 양념이 너무 많으면 시원한 맛이 없어.”
“아니, 백김치도 먹는데 뭘. 저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여?”
마지막 통은 결국 빨간기가 거의 없는 허연 김치가 되고 말았다.
“속없는 김치다!”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서로 질세라 한 마디씩 하는데 하회탈 없어도 구성진 마당극이 펼쳐진다.
“속없는 게 어디 김치뿐이여?”
“여의도 가 봐. 속창시 없는 놈들 다 모였어.”
“말은 바로 해야지. 그놈들은 속없는 놈들이 아니고 속이 탱글탱글 찬 놈들이라구.”
"시방 한 소리가 참말이여?"
“합수통이라고 그렇게 더러울까? 구정물•똥물•추깃물 다 고여 있다니까.”
“말해서 뭣해. 진짜로 속없는 놈들은 따로 있지.”
“누구긴 누구여. 죽어라 하고 그놈들 쫓아다니는 골•빈•놈•들!”
“혹시나 하고 한자리 해 볼 요량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들. 천하의 벌•거•지•떼!”
“그런 놈이 어디 있냐니? 그렇게 둔하니까 선생으로 정년했지. 서초동에 가봐. 죄다 얼굴 없는 검사•판사•변호사들, 거•시•랑•치!”
“아마도 속이 문드러질 때까지 그놈들 쫓아다니다가 골로 갈 때까지도 골이 비었다는 걸 모를 걸.”
“맞아. 그런 시러베잡놈들이나 매립하지 말이야.”
“안 돼! 그놈들까지 묻으면 시커먼 침출수가 밑도 끝도 없을걸. 한강 물고기 다 몰살시킬 일 있어?.”
“그런데 이놈은 왜 옆구리까지 터지고 지랄이야.”

김치를 담다가 비닐봉지가 터지는 바람에 마당극은 막을 내리고 다시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다.

▲ 김장을 마친 열 명의 그린에듀 단원들

토종이 견디기 어려운 땅

다시 ‘도라꾸’를 타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노을공원 주차장까지만 운행한다. 줄잡아 삼십여 분을 걸었다. 월드컵역까지 가는 동안 노랑 빨강 열매들이 탐스럽다. 곳곳에 들꽃이 제법 많이 피어 있다. 가을과 겨울과 봄이 섞여 있는 계절이다.

분홍억새로 불리는 핑크뮬리가 이제는 코스모스처럼 아주 흔한 풀이 되었다. 가히 광풍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지자체마다 심고 가꾸고 있다. 관광객 유치 차원이라는 말이 옳은 말일까? 아직은 그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라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뻐 보인다고 남의 세끼 덥석 집안에 들이면 집새끼들은 어쩌라구. 머잖아 안방까지 내주고 한뎃잠을 자지 않을런지... 어쨌든 지난해 10월, 하늘공원에서 처음 본 분홍물결은 가던 길을 멈추고 절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너도 나도 인증샷을 찍었다. 혼자 찍고 둘이 찍고 여럿이 찍다가 억새만 여러 장을 담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분홍억새는 지난날의 영광이 서러운 걸까? 앙상한 줄기 눕히지 못하고 하느작거린다. 애써 가꾼 이 아이를 다시 제거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어렸을 때 즐겨 먹던 곰밤부리나물도 하얀 별꽃을 자랑한다. 한길가로 나오니 아직도 세력이 꺾이지 않은 애기땅빈대는 보도블럭 틈새에 둥지를 틀고 있다. 홍조 띤 얼굴로 ‘안녕’ 하고 손짓하듯이 가을을 노래하는가 보다. 이에 비해 방가지똥과 사데풀은 꽈배기처럼 비틀린 이파리를 차마 떨치지 못하고 있다. 볼품없이 갈변한 이파리 새로 노란 꽃망울을 달고 있는 것이 아직은 갈 수 없다는 뜻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가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흰말채 더미 속에서는 산까치 두 마리가 숨바꼭질을 즐기고 있다.

풀밭 곳곳에 노랑 민들레가 제법 많이 눈에 띈다. 검질긴 녀석들이다. 왜 우리 토종은 그렇지 못할까? 토종은 봄 한철 꽃을 피우면 그만이다. 수정도 ‘우리들끼리’만 고집한다. 서양민들레는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우고 너나없이 결혼해서 잘 산다. 서양이는 가뭄도 잘 견디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많은 도시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 것은 발아율마저 턱없이 낮다. 별도의 휴면 처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에 서양이는 종자 휴면이 필요하지 않아 직파를 해도 싹이 잘 튼다. 게다가 우리 것은 한 포기에서 고작 500여 개의 씨앗이 맺히는데 서양 것은 무려 2천여 개를 넘게 생산한다. 그나마 우리 토종은 맛이 좋고 무슨 약효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희소가치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씨를 말리고 있다. 눈을 씻고 봐도 토종은 간데없고 서양이만 즐비하다. 김장할 때 맛본 핼퍼스 하이(Helpers High)는 고작 한 시간도 안 돼 차가운 현실 앞에 주저앉는가? 굴러온 돌한테 발등 찍힌 삶! 어디 민들레뿐이랴...

▲ 김장을 마치고 다시 '도라꾸' 타고 하산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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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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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규 2019-12-09 15:23:17

    넘 감동글입니다. 공감 가는 글감과 내용과 표현이 즐비하네요. '상암동' 하면 1978년 봄, 무논에서 개구리알 채집해서 교실로 가지고 가고,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 수초들을 채집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일이 생생하답니다.그후 너무 빨리 상암동 일대가 개발되어가더니~~~이제는 어딘가 어디인지 가늠조차 힘듭니다.상전벽해가 따로 없습니다. 이렇게 감미롭게 쓰는 기자가 또 있을까. 건필을 빕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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