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탔다. 시민은 흥분했다. 숭례문 보수·복원 작업이 엉망진창이었다. 국민은 분개했다. 그런데 요즈음 왠지 조용하다. 적막하다.

얼마 전 삼층석탑을 보러 경북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를 찾았다. 대한민국 보물 제510호인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5.2m의 화강암재 석탑이다. 1971년 도굴범들이 한바탕 훔쳐먹은 ‘인난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길옆 벚꽃 가로수는 마치 하얀 강줄기 같았다. 팔공산 자락은 봄꽃 나들이 인파로 인산인해였고 오가는 차량에 차도는 주차장이었다. 마을의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석탑에 대해 물어봐도 잘 모르셨다. 물어물어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개울가 간판 아래서 나는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석탑 위치를 알리는 푯말은 깨끗했는데, 막상 탑 쪽으로 건너가기가 힘이 들었다. 임시로 만들어놓은 어설픈 다리 아래로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 바닥에 깔아놓은 양철판과 합판은 거의 삭아 너덜대 밟고 가기가 겁이 났다. 막상 다리를 건너가도 저 아래 밭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석탑까지는 길이 없었다. 시골의 흔한 오솔길과도 이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난 보물이다’ 하고 듬직하게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냥 외롭고 처량하고 멋대가리가 없어도, 그 누가 뭐래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온갖 부귀영화 주지육림이 유혹해도 난 나야’라고 외치며 서 있는 듯했다.

문화재보호법에는 ‘국보, 보물 등 문화재들은 민족문화를 보존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라고 돼 있다. 유·무형의 문화재는 물론 기념물인 절터, 옛무덤, 조개무덤, 성터, 궁터, 가마터까지 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물로 지정된 기성리 삼층석탑은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다리 난간을 덮어놓은 합판이 모두 썩어 너덜너덜한 것을 보면 한동안 출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답사하기 전 경북 칠곡군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선조의 피와 땀이 밴 호국의 고장’이라 나왔다. 선조의 피와 땀이 밴 문화재 앞에서 나는 몹시 민망했다.

이칠용 주주통신원  kcaa08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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