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기행 - 얼치기선생이 사는 법

세상 참 좋아졌다

취중농담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알뜰살뜰 주워 담아 ‘국가 안위’의 제물로 삼았다. 수틀리면 옭조이고 가차없이 집어넣었다. 아직도 ‘막걸리 국보법’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예서 제서 헐뜯기에 광분한다. 대통령을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하나같이 숨죽이고 살더니만 지금은 개도 소도 목울대를 올린다. 제멋대로 18년을 해먹어도 하늘같은 나랏님인데, 아직도 2년이나 남았는데 끌어내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다. 같은 대통령인데 다른 대통령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래서 얍삽하고 흉흉하니 아이러니다.

이젠 집 앞에까지 쳐들어가 밤낮으로 확성기를 틀어놓고 조롱한다. 숫제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다가가면 돌아서고 손 내밀면 고개를 돌린다. 부산에 가도 무시하고 광주에 가도 멸시한다. 평양에 가도 닦달하고 미국엘 가도 윽박지른다. 나가면 흘겨보고 들어오면 삿대질이다. 도처가 악다구니판이다. 그렇게 해야 이 땅에 ‘빨갱이’ 씨가 마르고 그렇게 해야 이 땅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처럼 주야장천 꺽죽꺽죽 제웅놀음이다.

‘지진아 문재인’, ‘문재인 빨갱이’, ‘문재인씨 탄핵감’, ‘김정은의 아바타’, ‘정은이 수석대변인’이 그의 대명사다. 그의 지지자는 모름지기 ‘달빛 창녀’가 된다. 청와대 앞에서는 “때려잡자 빨갱이", “가짜 대통령 끌어내자.”, "문재인을 체포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문재인을 죽여라.”는 손팻말까지 등장한다. 죽창으로 MOON을 꿰뚫는 그림은 참으로 섬찟하다. 한 마디로 문재인은 히틀러보다 사악한 자요, ‘모가지를 떼야 하는’ 사탄으로 둔갑한다. 어떤 사람들일까? 굳이 광화문이나 국회 앞까지 갈 필요는 없다. 절간에도 있고 예배당에도 있고 내 주변에도 적지 않다.

▲ ▲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가 'Kill Moon to save Korea(한국을 구하기 위해 Moon을 죽여라)'와 'MOON'을 칼로 찔러 피가 흐르는 그림이 그려진 피켓을 참가자들을 향해 들고 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오월회라는 모임이 있다. 다섯째 주 월요일마다 모이는 고교동창 모임이다. 달랑 여섯이다. 시무장로 셋, 권사 둘, 그리고 필요할 때만 부처님을 찾는 나.

한 장로가 노무현 생전에 건배사로 ‘노무노무 이노무새끼’라고 했다. 크게 역정을 낸 친구가 있다. 지난 3월에 간 이 목사다. 죽기 전까지 그는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 원장이었다. 선친께서 ‘세상을 구원하라.’는 취지로 이름까지 세구(世求)라고 지었다. 그런데 신도들과 제주도에 갔다가 그만 불귀객이 되고 말았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그가 간 뒤로 난 부쩍 말수가 줄었다. 그날도 그랬다.

서초동 촛불을 5만 명도 안 되는 잡것들로 폄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줌도 안 되는 것들이 짖고 찧고 까부는 게 가관이라고 했다. "백만 명에 가깝다는 주최 측의 발언을 도드라지게 보도한 한겨레, 경향, MBC는 가짜뉴스의 본거지다. 조국은 사기꾼이요, 그를 감싸는 문재인은 매국노다. 박근혜가 나쁘다고 하지만 탄핵감은 아니요, 머잖아 듬직한 황교안 장로가 이 땅을 구원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명성교회 부자 세습이 도마에 오르자 세상의 눈으로 교회법을 재단하지 말라며, 천성을 향해 가는 십자군의 대열에서 부디 이탈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막걸리 잔을 내려놓고 한 마디 했다.

어느 날 교계의 목사들이 모여서 이 분이 살고 계신 열여덟 평 단층집을 찾아갔대. 좋은 말씀 한마디 해 달라는 그들에게 그는 한참 생각하다가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했다는 거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에게 예수를 잘 믿으라니… 이거 누가 한 말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두가 묵묵부답이다. 아니 우리 모교를 세우신 분도 모르냐고 핀잔하자 “아, 그분이셨구나. 어쩐지…” 하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얼마 전에 손석희가 뜬금없이 한경직 목사님을 소환했다. 법 위에 군림하는 교회법과 세습을 정당화한 명성교회를 에둘러 비판한 앵커브리핑이었지만 저들이 손석희를 시청할 리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없다. 땅 한 평, 집 한 칸이 없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남기는 것은 없지만 너희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는 육성 유언을 남기셨다는 한경직 목사님은 남한산성 기슭 작은집에서 98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평생 통장 한번 만들지 않은 분이 유족에게 남긴 것은 40여 년 사용한 일인용 침대•안경•헤진 양복 몇 벌, 그리고 낡은 성경책이 전부였다니 감히 함자를 입에 올리기조차 부담스럽다. 온화한 눈빛, 그러나 나직하고 차가운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가?

‘예수를 팔아 사복을 채우고 하나님 이름으로 상대방의 재앙을 비는 사악한 자들아, 너희가 정령 하나님의 진노를 그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 한경직 목사가 기거하시던 남한산성 우거처(한경직 목사 홈페이지)

 

 

같은 침대, 다른 침대

아들 친구의 아비들이 있다. 어미들이 초등학교 어머니교실 회원이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아비들끼리 만나 술벗한 지 35년이 흘렀다. 그들과 함께 화진포에 있는 이승만 별장에 들렀다.

‘이승만이 재임시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 건립, 1961년부터 방치되던 것을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한 단층 석조 건물’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침대가 눈에 띈다. 이승만의 유족이 기증했음을 밝히고 있다. 좁은 방 한쪽에 놓였는데 요즘 같으면 필시 폐기물로 내놓아도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을 듯싶다.

앞서 가던 그가 한 마디 하며 씨익 웃는다.

“거 봐요. 우리 각하께서는 참 검소한 분이셨다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건국하시고도 남지. 쥐뿔도 모르는 새끼들이 국부도 몰라보고 입만 열면 지랄 발광 네굽질이라니까. 빨갱이 새끼들 확 그냥 쥑여야 혀.”

뒤따르던 1인이 여지없이 맞장구를 친다.

“맞습니다. 이 대통령 아니셨으면 우리는 지금 정은이 좆밖에 더 빨겠습니까? 정신들 차려야합니다. 문재인이부터 정말 큰일입니다. 아새끼가 줏대가 없어서, 쯧쯧.”

▲ 화진포 이승만별장(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다섯 중에서 둘은 유난히 죽이 맞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터득한 처세술(?)이 있다. 애써서 색깔을 감춘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웃어넘긴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무색무취족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자칭 얼치기 박선생이다.

별장을 나서는데 마침 길가에서 엿을 팔고 있다. 이에 붙지 않는 울릉도 호박엿이란다. 가다 말고 되돌아갔다. 예전엔 폐백이나 이바지 음식으로 엿을 준비했다. 엿으로 시집 식구들의 입막음을 하겠다는 의미도 숨어 있다. 두 팩에 5천 원이라고 했다. 달게들 먹었다. 다섯이 네댓 조각씩 집으니 금세 동이 났다. 엿 먹고 입 닫으라는 계산은 오산이었다. ‘이승만’은 온종일 귓전을 맴돌았다.

이어서 들른 곳은 김일성 별장.

가파른 언덕에 있는 견고한 성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다. 화진포의 성은 1938년 독일 건축가 H. 베버가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다가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다.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 간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48년 8월 김정일이 그의 동생 김경희와 앉아 사진 찍었던 곳이라는 동판과 함께 사진이 보인다.

▲ 소련군 제25군 정치사령관 리베데 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김정일

별장 2층 창가에 섰다. 화진포 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인다. 경관이 그만이다. 그 옛날 김일성은 화진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승에서도 뒤숭숭하겠지. 당신 손에 스러진 이른바 평생 혁명 동지들의 원혼이 가만두지 않을걸. 아사한 기백만 명의 백성은 또 어떻고? 그러고도 ‘인민’을 숭배한다고 추어주더니...

묻고 싶다.

당신이 세운 북조선은 과연 지상낙원인가? 당신이 연민하던 남한은 아직도 미제의 늪에서 신음하는가? 다 그만두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적인 대역죄인임을 자복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당신은 아마 상상하지도 못했을걸. 살아생전은 물론 죽은 뒤 입때까지 당신을 팔아 대대손손 입신양명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눈만 뜨면 당신을 팔아서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아귀들 앞에서, 속절없이 숨죽이며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빨갱이 아닌 빨갱이들을... 단군 이래 가장 사특한 당파주의자여, 그 잘난 입 좀 열어보시라.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사진 속의 정일이나 경희와 어디가 다른가? 무엇이 다른가? 왜 다른가?

물빛도 하늘빛도 쪽빛 한색이다. 초겨울 바닷바람 비릿한 냄새는 순전히 눈으로만 느낄 뿐, 그저 감미롭기만 하다. 파도소리가 솔바람소리와 화음을 맞춘다. 얘들도 공명을 이루는가? 갑자기 자지러지다가 제풀에 겨워 스러지고... 그 소리 따라 내 숨소리도 강약을 달리하다가 이내 멎는다. 멍때리고 있는데 그가 침대를 보더니 호들갑을 떤다.

“여기 좀 보세요. 싸가지 없는 새끼가 침대까지 썼네. 요기서 밤마다 정숙이랑 씨름을 했을 거야.”

예의 그 1인이 또 나선다.

“아니, 그 새끼가 정숙이 년만 붙어먹었겠어요? 반반한 년들 아마 죽으로 데려왔겠지. 그리고 솔직히 밤에만 그 짓을 했겠어요? 발정난 하마새끼처럼 낮거리 새벽거리 안 가렸을걸.”

▲ 김일성 별장에 놓여 있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아름드리 곰솔이 울창하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소금기 품은 해풍에 단련된 몸이리라. 어쩌면 죽지 못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험한 세상 누구도 쉬이 혼자서는 살지 못하는 법. 서로 나누고 보듬고 기대면서 물길 바람길 터 주다 보니 너도나도 어느 날 우뚝 설 수 있었을 거다. 그뿐이랴. 사람보다 지혜롭다. 같잖은 자기모순에 빠져 꼰대짓 서슴지 않는 인간은 죽었다 깨나도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무는 다르다. 자기가 부리던 수족마저 떨어뜨린다. 자연낙지(自然落枝)다. 실은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비움은 곧 채움을 위한 전략이요 버림은 곧 새것을 바라는 몸부림이다. 그 길이 사는 길임을 나무는 안다. 진정한 자기애(自己愛)다.

탐스럽다. 금표(禁標) 없어도 황장목 못지않게 훤칠하다. 팔도를 누비던 일제의 칼날도 어쩌지 못했나? 도도하기 그지없다. 그 무지한 저들도 감히 발들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묵직하다. 낮에는 해바라기 밤에는 별바라기, 물소리 바람소리 다 듣고, 땅내음 바다내음 다 맡았겠지. 삼팔선 품고 휴전선 바라보며 들을 말 못 들을 말 두루 새긴 채 입다물고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어느 한 구석 성한 데가 없지만 온몸이 정연하다. 덕지덕지 갈라진 솔보굿이 마치 거무튀튀한 피딱지 같다. 굳이 감추지를 않는다. 터진 등껍질 틈새로 보이는 속살이 참 붉다. 모진 세월이다. 언감생심 이를 말일까마는 나는 안다. 내가 얼치기임을. 그래서 이런 말도 속엣말이다.

‘비록 구부정해도 비루한 가지 없는 너처럼, 비탈에 서 있어도 나름 하늘기둥 구실하는 너처럼 서 있고 싶다. 나도 혼자 서 있고 싶다.‘

▲ 곰솔의 수피(국립산림과학원@nifos_news )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주주통신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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