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Maha Ganayon 사원-여행기 4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12.27l수정2019.12.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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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버마를 기억하는 분들은 아편과 비취를 떠올릴 것입니다. 전 세계 유통량 80%를 공급했던 마약왕 쿤사. 거의 남한 크기 골든 트라이앵글의 통치자였지요.

윈난성 국민당 군인 중에 공산군에 항복을 거부한 채 식솔을 거느리고 미얀마로 도주한 일단의 패잔병들이 태국 라오스 미얀마 접경지대로 모여듭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3,000여 명이 영국 통치시대부터 양귀비를 재배하던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자리를 잡습니다. 비적들로부터 아편 유통을 보호해주다가 나중에는 아편산업을 독차지하지요.

버마정부에서 12,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지만 3,000명의 국민당 패잔병에게 완패하지요. 이 소문에 힘입어 화교들이 몰려들자 거의 무장군인 만 명을 확보합니다. 그리고는 대만 장개석 정부의 무기 지원을 받아 독자적으로 통치를 하지요. 이들은 현지 여인들과 결혼을 장려하여 뿌리를 내립니다.

중간에 국제적인 여론이 안 좋아지자 장개석은 이들에게 대만으로 철수를 명합니다. 그중에 현지인과 결혼하여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명령을 거부하고 잔류를 결정합니다. 중국계 아버지와 셴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쿤사는 현지에 남아 골든 트라이앵글의 지배자가 됩니다.

1993년에 쿤사는 셴주의 독립을 선언하고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합니다. 1996년 미얀마 정부에 투항하고 2007년 사망했다고 알려졌습니다.

90년대 중국에서 들었는데, 미얀마 비취는 쿤사가 지배하는 지역 개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유통과정에서 몇 만 원짜리 돌이 몇 천만 원이 된다는 허황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현장을 이곳에서 구경했습니다.

▲ 비취를 거래하는 시장
▲ 가공된 비취 팔찌. 흥정하고 있는 팔찌 가격이 3만 5천불. 원화 약 4천 만원.

아마라뿌라 고성의 Maha Ganayon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 불교국가답게 사원 부근에서는 많은 불상들이 거래되고 있다.
▲ 전통방식으로 불상을 만든다.

230여 년 된 Maha Ganayon 사원에는 1,000여 명이 넘는 승려들이 공부하고 생활합니다. 4시에 일어나 아침 공양을 하고 우리가 방문한 10시경 사시 공양을 합니다. 승려들이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향하면 주변 관광객들이 발우에 먹을 것과 돈을 올리더군요.

▲ Maha Ganayon 사원에서 점심공양을 위해 이동하는 승려들.

미얀마의 고아들은 주로 사원에서 기릅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강하겠지만 사원으로 오는 고아들은 반드시 그 절에서 맡는다고 하네요.

▲ 고아들을 맡아 기르고 있는 사원 방문. 형편이 어려운 절을 찾아 몇 시간을 달렸다.

우리는 버스 기사 소개로 고아들을 양육하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그 절의 주지는 원래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출가하고 고아를 맡아 기르다 보니 지금은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2살부터 15-6세, 고등학생이 되면 절을 떠난다고 합니다.

▲ 주지스님과 고아들. 북부 분쟁지역에서 온 고아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기꺼이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맨발의 순진무구한 어린 영혼들이 고통 없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고학년 중에는 몇 명이 중국어를 구사하더군요. 화장실에 가는 여자 일행을 안내하던 한 여학생이 하얀 신발을 신은 일행에게 ‘신발이 참 예쁘다’는 말을 하자, 그 자리에서 벗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어찌할 줄 모르고 쩔쩔매며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일행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립니다. 자기 어릴 때 모습이라며.

▲ 사원을 나와 나무에 기대어 울음을 진정시키는 Meixia.

Meixia! 그녀는 중국 廣西省 壯族 출신입니다. 혹시 桂林에 여행을 가신 분들은 좡족자치구를 가봤을 것입니다.

▲ 캘리포니아에서 참가한 Meixia와 이른 아침 바간에서.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전염병에 걸립니다. 가난한 부모는 치료를 포기하고 버렸답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산에 가던 마을 주민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아기를 할아버지 집에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6살이 되어 부모 집으로 갔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어떤 남자와도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는 그녀. 자기도 어렸을 때 이곳 고아들처럼 맨발로 살았답니다.

그녀는 20살에 결혼하고, 22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약에 빠진 남편과 28살에 이혼을 하고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요식업을 하며 아들을 키웁니다. 다행스럽게도 똑똑한 아들은 고등학교 때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합니다. 국가에서 선발한 영재 미국 연수에 참가합니다.

귀국해서 엄마에게 미국 교육제도가 부럽다고 말하자, 영어 알파벳도 모르는 이 엄마는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재산을 정리하여 거간꾼을 통해 미국으로 갔는데, 말과는 달리 인구 3,000명 작은 마을에, 땅도 몇 십 평뿐이었다고 합니다. 막막한 상황에서 마트에 취직하고, 6개월이 지나자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때 암으로 부인을 잃고 혼자 사는 해군장교 출신의 남자가 딱한 이 모녀에게 도움을 줍니다. 법적으로 결혼을 해서 아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줬지요.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금융업 쪽에 고액 연봉을 받고 취직했고, 28살인 올해 좋은 신부를 맞아 결혼했다고 대견해합니다.

▲ 20살이 많은 법적인 남편도 대도시로 이사해서 가까이 지낸다고 한다. 결혼사진까지 제공한 Meixia의 행복을 기원하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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