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심보선의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다가 박효삼 편집위원l승인2019.12.28l수정2019.12.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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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책에서 단골 이야기가 나왔다. 나에게도 단골이 있었는데.... 첫 단골은 아무래도 동네 점빵이었다. 십환 동전이라도 생기면 늘 달려갔었다. 동전이 없어도 우린 점빵 앞에서 놀았다. 점빵 아저씨는 우리 식구를 다 알았다. 엄마심부름으로 가면 외상으로도 물건을 주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문방구가 단골이 되었다. ‘청구당’이란 간판도 멋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청구대학교 옆에 있어서 그런 상호를 가졌던 거 같다. 전과라도 사면 지우개, 사탕 같을 걸 덤으로 듬뿍 주었다. 살 것이 없어도 집에 가면서 꼭 들리는 곳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교회 앞 초등학교동기집이었던 슈퍼였다. 교회 오가는 길에 친구들이랑 여름에는 하드를 겨울에는 호빵을 사 먹었다. 무거운 걸 옮길 때나 큰 일이 있으면 도왔던 기억도 난다. 단골이니까.

대학 때는 ‘미성씨 났었요!’를 외치던 단골 당구장도 있었고, 대학 후문에 자주 가던 칼국수집도 있었다. 지난겨울 수다에서 한 친구가 ‘너 대학시절 도서관 사서 아가씨랑 사귀었지’했다. 자주 가다보니 대출이 잘되는 책은 미리 얘기하면 챙겨놓았다 주기도 해서 오해한 모양이었다. 단골이 되면 그랬는데 말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단골이 없어진 거 같다. 언제부터인가 구내식당, 편의점이 단골이 되어버렸다. 이젠 인터넷몰이 단골인 듯하다.

요즘도 대구에 가면 꼭 찾아가는 식당들이 몇 있다. 미성당, 둥굴관, 진골목식당 등이다. 동아백화점 앞 미성당은 골목 쪽으로 지금 반의 반 정도 크기였을 때부터 갔었다. 그 동아백화점이 먼저 없어진단다. 시청 뒤 둥굴관은 고등학생 때 엄마심부름으로 냄비 들고 가서 복매운탕을 사 오던 곳이다. 그 대구시청도 이제 달서구로 옮길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단골로 생각하지만 1년에 한두 번 가니 그 식당에서는 그렇지 않다. 단골은 주인이 날 알아 봐주는 곳이다. 얼마 전 송도에 사는 친구가 단골로 가는 포차에서 부추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단골집이었다. 자주 오는 손님끼리도 서로 다 아는 그런 단골집 말이다.

지난달부터 노량진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가는 길에 꼭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는 커피집이 있다. 며칠을 지나니 말을 안 해도 내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시럽도 알아서 넣어주고. 나에게 새로운 단골이 생기나 기뻐했다. 헌데 얼마 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알바생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얼굴을 익힐 만하면 다른 알바생으로 바뀌었다. 다들 힘든 세상이다. 학원을 마치면 국회도서관에 가서 점심을 먹고 복습한다. 근데 그 도서관식당에 단골 어르신이 계셨다. 식당 입구에서 배식구까지 굽은 허리로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어가셨다. 어느 날은 식탁에 앉으신 채로 주무시기도 했다. 근데 그 분을 식당 아주머니들은 다 아셨다. 식판을 대신 준비해 가져다주는 날도 있었다. 그 어르신은 과연 얼마나 이 식당을 이용하신 걸까? 구내식당도 단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어르신이다. 점심때 도서관 식당을 가면 그 어르신이 늘 앉으시는 쪽을 먼저 보게 되었다. 열람실에서 마주치면 괜히 반가웠다. 언제 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선현들의 경험을 책에서 배운다고 한다. 이제 나보다 어린 저자들 책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심보선 시인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는 나에게 단골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은 여러 지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낸 것인데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1부에서는 저자 개인 일상을, 2부에서는 시를, 3부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였다.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폈던 책이었는데 교수, 시인으로의 삶뿐만 아니라, 세월호 피해가족,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하는 삶의 이야기가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 책이었다. 이런 책을 또 만나고 싶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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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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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진 2019-12-30 23:02:28

    잘못 올려 없어졌어요, 우리때는 학교에 판자집 강의실이 있었으니 호랑이 담배예기가 나올듯해요. 맛갈 스럽게 단골집을 찾아 갈 수 있는것 만도 살아 있다는 삶의 원동력이됩니다 고향이 있다는것 또한 내 삶의 버팀목이 됩니다.
    61년전 학교 켐퍼스는 어수선환 시기 였고 알바하느라 공부 뒷전이 었던 서글픈 학생이 었지요 직장에서 화려한 변신으로 남이 격지 못한 경험을 누리며 살아 온것만도 추억입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곳에서 시사와 맥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집에서의 쉐이크도 이또한지나가리라, 감사드리고 자주 봅시다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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