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회 : 옥천군 '취약계층' 푸드 정책의 현주소
 2회 : 아동을 위한 서울시 집밥 프로젝트
 3회 : 먹거리권 보장, 새로운 대안 '마을부엌'
 4회 : 로컬푸드로 임산부·영유아 먹거리 보장하는 완주

  5회 : '굶는 시민 없는 나라' 브라질의 식량보장 정책

 6회 : 브라질 민중식당 정책 

1993년 식량권을 인권의 하나로 공식 인정한 벨루오리존치
독립 행정기관 ‘식품 안전 및 영양청’ 설립해 식량 보장 정책 펴
식량 소비·생산·교육·시장까지 책임지는 다각적 정책 ‘눈길’

[주] 브라질 벨루오리존치는 1993년 식량권을 인권의 하나로 공식 인정하고 '굶는 시민 없는 나라'를 위한 지속적인 식량 보장 정책을 펴 온 최초의 도시다.

이를 위해 벨루오리존치는 시조달국(SMAB)을 설치해 먹거리 공급과 영양·식품안전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시조달국은 연방 정부와 시로부터 약 50%씩 재정적 지원을 받는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현재는 그 이름을 식품 안전 및 영양청(SUSAN, Subsecretaria for Food Safety and Nutricional)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벨루오리존치의 식량 보존 정책은 수혜 중심의 취약계층 지원이 아니라는 데 의의가 있다. 좋은 먹거리 섭취를 모든 시민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단기적이고 사후처방식 지원을 넘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옥천군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먹거리 정책은 취약계층을 '구호'하려는 목적 때문에 제공되는 식품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영양 문제를 소비-식량 생산-교육-시장 접근의 측면으로 나눠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빈민층을 위한 식량보장 정책을 결코 '사회복지' 측면으로만 보지 않고, 전반적인 지역 발전의 차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 이번 5회 기획보도에서는 벨루오리존치시가 독립된 식품·영양 기관을 설립하게 된 배경과 이를 통해 실행하고 있는 식량보존정책 전반을 살펴본다.

▲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시는 1993년 식량권을 인권의 하나로 공식 인정하고 ‘굶는 시민 없는 나라’를 위한 지속적인 식량 보장 정책을 펴 온 최초의 도시다.

 

벨루오리존치, '시민식량권' 인정…식품안전 및 영양청 'SUSAN' 탄생

벨루오리존치의 식량보장 정책의 핵심은 식품안전 및 영양청(SUSAN)에서 시작된다.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의 초기 형태는 시조달국(SMAB)이였는데, 이는 1992년 벨루오리존치가 전 세계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시민 식량권'을 인정하면서 비롯됐다.

시민 식량권은 생존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식량에 대한 권리를 시민이 갖는 것을 의미한다. 벨루오리존치는 당시 만연했던 기아와 영양실조를 시장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이루어 내지 못한 현상으로 바라봤다. 그렇기에 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민들의 영양을 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흔히 지자체 차원에서 교육과 복지 분야에 예산을 세우고 정책을 실현한 적은 있었지만, 식품과 영양을 따로 떼어 독립적인 행정기관을 만드는 일은 드물었다.

초기 시조달국은 연방정부 예산과 시 자체 예산이 절반씩 투입된다. 총 207억이 지원된 것. 2019년 기준으로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은 276억여원을 연방정부와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는데 해가 지날수록 식량보장정책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벨루오리존치가 이처럼 시민 식량권을 선언하게 된 데는 도시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벨루오리존치는 1897년 미나스 제라이스 주 내 '오루프레투'라는 도시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계획도시다. 하지만 인구 급증으로 도시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이에 따른 빈부격차 역시 심화된다. 실제 벨루오리존치에는 슬럼지구가 다수 존재한다. 취약계층의 영양실조 문제가 대두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벨루오리존치 솔라 루비 시립학교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교육기관의 영양 급식 지원 정책은 대표적인 벨루오리존치의 식량 보장 정책이다.

 

■ 식량 공급을 넘어서 영양관리·교육까지 고려하다

계획도시로 출범한 벨루오리존치가 급속도로 팽창하며 도시 빈민 문제를 야기하자, 시는 식품안전 및 영양청을 독립 행정기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영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에 이른다. 빈민들에게 구호와 수혜 형태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 소비, 생산, 교육, 시장 등 4가지 분야로 나눠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세운 것.

교육기관의 영양 급식지원은 대표적인 식량소비 정책이다. 벨루오리존치에는 총 558개의 공립형 학교들과 121개의 민간 기관들이 존재한다. 시는 보육원과 유치원, 초등학교 뿐 아니라 노숙자 쉼터, 노인정 등 공립형과 민간 지원형 기관들에 급식 지원을 하고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급식비 지원을 넘어서 체계적인 영양관리를 실행한다. 매월 학교들에게 영양 균형이 잡힌 식단표를 제공하고, 식단에 따른 식재료도 공급한다.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이 품목별로 업체와 계약을 맺어 학교에 일괄 공급하고 있는 것.

급식 지원을 받고 있는 솔라 루비 시립학교 루지밀라 교장은 "식품 안전 및 영양청 소속 영양사가 일주일에 한 번 학교를 방문해 공급받은 식재료를 잘 사용해 식단을 짜고 있는지, 위생적인 문제는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며 "시의 지원을 받는 기관들은 모두 메뉴가 똑같기 때문에 자율적인 부분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체계적인 식단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아이들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 식품 안전 및 영양청에서 지원하는 푸드뱅크 정책은 싱싱한 채소와 과일 위주로 필요 기관들에게 공급된다. 다음은 올 푸에르토리코 푸드뱅크 시다 이사벨라의 모습.

 

식품 안전 및 영양청에서 지원하는 푸드뱅크 정책은 싱싱한 채소와 과일 위주로 필요 기관들에게 공급된다. 보관이 용이하거나 유통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가공식품을 공급하는 한국의 푸드뱅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같은 공급이 가능한 이유는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이 슈퍼마켓과 시장, 도매업자들로부터 식자재를 기부받을 뿐 아니라 추가 예산을 투입해 소작농들과 계약을 맺어 농산물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기관들에 신선한 농산물을 제공하고 소작농의 판로 확보로 현지 농업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다. 현재 벨루오리존치 내에는 8곳의 푸드뱅크가 자리잡고 있다. 해당 정책에는 연 6천900여만원이 지원된다.

올 푸에르토리코 푸드뱅크 시다 이사벨라 담당자는 "고정적인 기부 단체는 24개이며 이를 통해 물품을 공급받는 단체는 500여개에 달한다"며 "물품을 공급받는 단체들이 1년에 4회 식자재와 저소득층 지원, 인권 등에 관한 의무교육을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푸드뱅크 차원의 정기적인 점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민간판매 시설을 운영하는 소작농의 모습. 시의 허가를 받으면 일정 요일과 시간대에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

 

■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다

벨루오리존치의 식량 보장 정책은 식량 공급을 넘어서 시민들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 역시 마련한다. 소작농들이 시에 인가를 받아 직접 운영하는 민간 판매 시설이 대표적인 예다. 민간 판매 시설은 소작농이나 유통업체 등이 일정 요일과 시간대를 정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해당 판매시설 운영자와 시가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소액의 자릿세(연간 41만원)를 받는다.

시민들은 이를통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 육류, 생선 등 필수 식자재를 일반 슈퍼마켓보다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소작농이 직접 판매해 유통비가 발생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작농들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 판매장을 열면서 물류비를 절약하고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민간판매 시설을 1년간 운영한 마리아·제시카 모녀는 "농사를 지은 지 20년 정도 됐다. 지난해부터는 유기농 제철과일과 엽채류, 유정란 등을 팔고 있다. 보통 월~목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장사를 한다"며 "유통 마진이 없기 때문에 시중가보다 싸게 제공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만원 정도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 벨루오리존치의 신선식품 매장. 시는 부지를 제공하고 도매상들은 매장을 운영한다. 일반 슈퍼마켓에 비해 30%가량 저렴하게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벨루오리존치는 이와 함께 공개 입찰을 통해 선정된 업체가 신선식품 매장을 운영할 수 있게 부지를 제공한다. 민간 판매 시설이 개인 소작농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면, 이는 도매상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공개입찰을 통해 들어온 업체들이 최소 300m² 이상 규모로 신선식품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것.

해당 매장은 일반 슈퍼마켓보다 30% 이상 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제공한다.

운영업체들은 매년 시로부터 재허가를 받는다. 시청에서 제공하는 농산물 품질과 매장 청결 기준을 3번 어기면 영업정지 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시가 대규모 농산물 유통에도 관여하면서 시장가격을 조절한다는 이점도 있다.

벨루오리존치 가족농장과 에우똔 마갈랴잉스 담당자는 "도매 가격으로 농산물을 싸게 제공하기 위해 정책이 시행됐다. 20가지 품목에 대해서는 비슷한 판매 가격이 형성돼 있는데 이를 통해 시장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향후 도시 외곽 쪽에 3곳 정도 더 생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 식품 안전 및 영양청 바노 딕스 담당자. 벨루오리존치의 식량보장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도시농업 장려, 생산력 증가까지 고민한다

벨루오리존치 북부지역에 위치한 '이지도라(Izidora)'는 시와 이주민간 토지 분쟁이 5년간 지속된 지역이다. 이지도라는 본래 미나스 제라이스 주 소유의 버려진 땅이었지만, 2013년 8천가구가 해당 지역에 정착해 생활 터전을 꾸리면서 시와의 갈등이 시작됐다.

주거권을 놓고 끊임없는 사투를 벌인 이지도라와 시는 지속적인 논의 끝에 지난해 9월 극적인 협의를 이뤄냈다. 이에 따라 이지도라 이주민의 70%는 해당 지역에 180m²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또 해당 지역은 시 계획에 따라 점차 도시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은 해당 협의를 계기로 농업 기반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광업을 기반으로 서비스 산업이 발전한 벨루오리존치에 농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이주민들은 농업으로 자체적인 생산력을 키우는 동시에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셈.

현재 이지도라 내 140가구가 식품 안전 및 영양청의 도시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시는 유기농 농법에 대한 교육으로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생산력 확보 이후 판로 개척을 위한 지원까지 이어갈 전망이다.

이지도라 주민 왈라씨는 "바나나, 파파야, 상추, 파, 호박잎 등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판로는 아직 많지는 않고, 매주 금요일 열리는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며 "처음 도시농업 교육을 받을 때는 유기농법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농사를 짓다보니 확실히 더 싱싱한 걸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구성해 농업에 관한 정보 교환하면서 생산량도 늘려가고, 판매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식품 안전 및 영양청 바노 딕스 담당자는 "식량보장정책은 이처럼 소비·교육·시장·생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실행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정책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수치적으로도 참여자들의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됐고, 생산자들도 만족한다. 앞으로 도시 농업을 더 활성화 해서 농업 기반을 더 발전시키 예정이다. 벨루오리존치의 정치 상황이 바뀌어도 전 시민들의 식량권 보장이라는 목표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 벨루오리존치 북부지역에 위치한 ‘이지도라(Izidora)’에서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수행 중인 주민 왈라(왼쪽)씨의 모습. 도시농업 담당자 아담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벨루오리존치 북부지역에 위치한 ‘이지도라(Izidora)’에서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수행 중인 주민 왈라씨의 모습. 과일 껍질 등으로 만든 비료를 보여주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글은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해윤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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