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온 창간축하 기고] 안도현 시인

[편집자 주] 안도현 / 한겨레 주주 · 시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2004)에 담긴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다. 1981년「낙동강」으로 등단했고 같은 해 전북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지 5년만에 복직되었으며, 1996년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 전업작가가 되었다. 2004년 이후에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30년 넘게 시를 써 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 (중략) 시를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을 뿐, 나는 오래 시를 바라볼 것이다.” 그는 2년 전 한겨레를 통해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가 낸 시집으로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등이 있고, 이외에 <연어> 등 어른을 위한 동화와 많은 산문문집을 내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백석평전>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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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나는 스물여덟 살의 교사였다. 나는 전교조의 뿌리가 되었던 전국교사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고, 직원회의 시간에 벌떡 일어나 교장에게 대드는 날이 잦았고, 자주 분노했고, 그럴 때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생각했고, 뜻이 맞는 선생님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심각하게 사회과학 서적들을 공부했고, 퇴근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를 부어댔고,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아침 첫 시간에 나한테 수업 받는 아이들은 코를 싸쥐어야 했다.

그 무렵 한겨레가 국민주를 모아 창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이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것 같았다. 나도 한겨레의 창간 주주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 통장의 잔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잘 아는 분의 은행 보증을 잘못 선 탓에 그 무렵 내 경제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한겨레가 끌고 가는 역사의 강물에 발을 담그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침마다 한겨레의 강물을 빼놓지 않고 읽는 일뿐이었다.

▲ 안도현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언젠가 한겨레에서 독자배가운동을 펼칠 때, 가까스로 ‘평생 독자’로 등록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죽을 때까지 한겨레를 배달해준다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싶었다. 그동안 한겨레에게 덕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글쟁이에게 적지 않은 지면을 선뜻 내준 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하고 손을 잡고 평양 근교에 사과나무 1만2천주를 심은 일,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을 ‘절친’으로 맺어준 일,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두 권이나 내준 일 모두 내게는 빚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한겨레 주주가 되었다. 드디어 백만 원을 투자한 것이다. 나는 주식에 대해 아는 게 손톱만큼도 없다. 나는 주식에 대해 따로 공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백만 원이 천만 원이 되고 또 일억 원이 될 것이다. 한바탕 봄꿈이라 해도 좋고 개꿈이라 해도 괜찮다. 분명한 것 한 가지. 나는 한겨레라는 미래에 투자했다. 한겨레도 성공하고 나도 성공할 것이다.

안도현 시인 / 우석대학교 교수

편집: 이동구 에디터

안도현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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