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김태평 편집위원l승인2020.01.09l수정2020.01.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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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소라초등학교 홈페이지. 소라국민학교시대의 학교 명패.

필자는 60대 중후반이다. 가끔 고향을 찾는다. 진한 향수를 풀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은 물론 젊음과 꿈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산천엔 그런 것이 묻어 있다. 몇 년 전에 구입한 여수의 낡은 아파트도 한몫했다. 구봉산 중간 능선쯤에 위치한 집 베란다에서 보는 여수 앞바다는 막힌 가슴을 확 터준다. 인접한 곳에 해수사우나를 겸한 찜질방도 있어 방문 시 숙소로 안성맞춤이다. 숙소 입실 전에 보통 해변을 거니는데, 정박해 있는 배들과 바다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는 필자를 진한 옛 정취속으로 끌어들인다. 추억에 젖어 무아로 빠지기 일수다. 그러다 언 듯 쓰다 만 <나의 서사>가 생각났다.

아직 유초등시절도 마무리 못 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아름다웠고 행복했던 시기가 유초등시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났다. 나선 김에 출신 초교를 방문해 생활기록부에 나타난 나를 한 번 볼까? 보고 싶었다. 타인에게 어떻게 비쳤고 공식 기록은 어떠한지도. ‘나의 초등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비친 내 모습은 어떠했을까?’불현 듯한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출신 초교로 향했다.

2019년 10월 중순 모교인 소라초등학교를 찾았다. 교문 가까이 가자 확성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축제 중인가? 하필 오늘? 가을 운동회일까? 그러면 행정업무도 쉴 텐데...’ 다소 우려는 되었지만 일단 방문하기로 했다. 주변 골목에 주차한 후, 교문에 들어서니 운동회가 맞았다. 그런데 학생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요즘 학생이 감소했다고 하더니 역시나 이구나. 학교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지역문화센터도 겸하는가 보지? 특히 시골은 더욱 심하다고 하더니... 마침 개보수 공사까지 하고 있어선지 혼잡하고 어수선하였다. 건물 출입구를 겨우 찾아 들어갔으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했더니 역시나 휴무가 아닌가? 그래도 행정실이나 교무실에 들려 문의를 해봐야지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쭉~ 지나가는데 한 사무실의 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열린 틈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행정실이 어딥니까?”라고 물으니,

“여기입니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라고 답한다.

“아 예~ 제가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생활기록부를 발급받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십니까? 담당 직원이 출장 중인데...” 말끝을 흐린다.

“그러신가요? 그런데 제가 광주에 삽니다. 여기 온 김에 발급받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예~ 그러십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하더니 캐비닛을 열려 하자 잠겨 있었다. ‘어? 잠겼네?’ 독백 후 담당 직원의 책상서랍으로 가더니 열쇠를 찾아서 캐비닛을 열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고 잘됐네’라고 안심이 되었다.

“신분증 좀 주세요, 그리고 몇 회이십니까?”라고 묻는다.

“예, 45회로 입학하여 1년 정도 다니다가 먼 통학 거리로 인해 그만두고 다음 해에 다시 다녔습니다.”

“알았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담당 직원은 관계 서류를 한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찾았다. 하지만 좀체로 찾지 못하더니 20여 분 지난 후에 직원이 말하길,

“졸업 대장에는 있는데 생활기록부가 없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45회는 2학년 7월 30일부로 제적되었습니다.”

“아, 예~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45회로 입학하여 1년 정도 다닌 것 같았지만 확실치 않았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1학년은 마치고 다음 해에 다시 1학년으로 재입학해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1학년 기록이 없었다. 이는 정말 난감하였다. 그리고 약 7개월간 46회 1학년과 45회 2학년이 중첩되었다.

직원이 계속 찾고 있는데, 중년 여성 한 분이 들어 왔다. 목례를 한 후 동선을 보고 있는데 행정실장 좌석으로 향했다. 그분에게

“실장님이십니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니,

“예, 어떻게 오셨어요?” 한다. 그간의 과정을 요약 설명하면서,

“같이 좀 찾아 주십시오. 전산 작업이 되지 않았네요?”

“아, 예~ 이제 시작하려고요. 아직 못했습니다.” 하면서 찾고 있는 직원 곁으로 가서 함께 힘을 보탰다. 그러던 중에 다소 젊은 한 직원이 들어와 동참했다. 서로 간에 대화하면서 찾더니 그 젊은 직원이

“46회 졸업자를 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맞아요. 46회로 졸업했으니까 그래야 할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직원이

“찾았습니다. 여기 있습니다.”라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약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 것 같았다.

“수고했습니다. 찾아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았다. 찾았단 말에 가슴이 설렜고 얼굴도 약간 후끈거림을 느꼈다. 어찌 보면 나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 6~7년이 저 속에 있을 것이다. 비록 간단한 기록이지만, 그것을 대한다고 생각하니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고 묘한 기분이다. 초등생활기록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출처: 소라초등학교 홈페이지. 학교 전경, 뒷산이 비봉산. 일면 맷돌바위.

㈎1학년 생활기록: 1학년을 두 번 다녔고 성적은 있으나 생활기록이 없다. 생년월일이 1년 빠르게 실렸다.

㈏2학년 생활기록: 성적은 있으나 생활기록이 없다. 45회는 2학년 7월 30일 제적되었고, 46회는 정상으로 다녔으나 기록이 없다. 서류상으로 45회와 46회가 한 학기가 중첩된다. 현재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시절에는 그래도 되었나 보다. 참 난감하다.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고 소중한 2년의 기록이 없다니.

㈐3학년 생활기록: 늠름한 성격이어서 항시 태연하다. 각 과목의 이해력은 좋으나 노력이 적다. 책상 걸상 정리정돈에 소홀함.

싹수가 조금 보이기는 했으나 무시당한 것 같음.

㈑4학년 생활기록: 온순한 편이며 책임은 일단 수행하나 적극성이 부족하다. 전반적인 성격은 보통이나 특히 산수과는 능숙하다. 더욱 노력하면 유망하겠다. 산수 계산진단평가 참가 결과 74%. 체육부.

존재감이 조금 나타남.

㈒5학년 생활기록: 침착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묵묵한 가운데 맡은 일에 임한다. 전 교과 성적이 좋은 편이며 특히 체육에 소질을 갖고 장래성이 유망하다. 육상부.

4학년에서는 산수과에서 유망하다 했고, 5학년에는 체육과에서 유망하다 했다. 생소하고 기억에 없음.

㈓6학년 생활기록: 침착하여 어른스러우며 학급에서 영감으로 통한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얻었음. 축구부- 볼 처리를 잘하며 리더격이다. 진학반(4학급 중 1학급이 진학반).

아이들이 영감이라고 한 것은 기억난다. 졸업할 때 우등상 수상. 초등시절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빛났다. 6학년 때 특이한 기억은 담임께서 같은 과목 교과서를 2권씩 사게 했다. 한 권은 검정 색연필로 완전히 지운 후 암기용이었고, 한 권은 생각나지 않는 구절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별 어려움 없이 모든 교과서를 외웠다. 지금 알고 있는 세계지도와 국가 이름 및 수도는 그때 암기한 실력이다.

입학시험을 통해 전남 동부 시군에서 명문이라는 순천 중학에 입학. 전교 1~11등(260여 명)까지 순천 중학에 응시하여 재수생 1등과 2등만 낙방하고 9명이 합격. 그중에 들었으니 빛난 것? 부모형제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필자 또한 담임의 명에 의해 응시했을 뿐. 합격 전후에도 좋은지 잘한 것인지도 감각이 없었다. 무덤덤. 어떤 학생은 응시 못 함을 아쉬워했다. 축구선수일 때 여수항에 입항한 군함을 견학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래서 군인의 길이 잠재했을까? 직업군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⑦당시 전교 재적생은 약 1,800명 내외였으나 지금은 80여 명이란다. 이럴 수가? 지방, 특히 농어촌의 미래가 걱정이다. 20세기의 현자 피터 드러커는 “많은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을 만났지만, 초등학교 1~2학년 담임이신 미자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지 못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초등시절이 인성과 인생을 방향지우지 않을까? 생활기록은 예상 외로 간단했다.

생활기록부를 쭉~ 본 결과, 1~2학년은 생활기록이 없는 것을 보니 존재 자체가 없었다. 그땐 오전반과 오후반이 있었다. 필자는 오후반이었다. 집에서는 그래도 아들이라고 존중? 받았으나 학교에서 전혀. 3학년까지는 주목받지 못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4학년부터 산수와 체육에 능했다고 적혔다. 의외다. 내 기억엔 음악에도 능한 것 같았는데... 산수나 체육으로 진출했다면 더 나은 삶이 되었지 않았을까? 좀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이 최상이겠지? 무지렁이 촌놈이 이만큼 되었으니 감사해야지 뭐~. 필자 기억에도 중고교와 대학 시절에도 수학 교과는 구태여 노트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에 기록되었으니까. 하지만 필자는 중고교 이후로도 학업중단이 많아 능력개발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초등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니 새삼스럽고 감회도 깊다. 예상치 못한 기록도 있었다. 어린 김태평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새롭다. 사실 초등시절 기억은 친구들과 놀던 것 밖에 없다. 등하굣길에 발을 딛기도 어려운 좁다랗고 비틀비틀한 논두렁 밭두렁 샛길을 지나고, 냇물을 건너 들길과 산길 및 고개를 넘고 또 넘어 불알이 떨어질 정도로 내달렸다. 보자기에 싼 책이 빠져서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오후반이라 싸간 도시락은 밥과 반찬이 뒤섞여 비빔밥이 자동으로 되었다. 김칫국물이 흘러 묻은 책에서는 큼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뛰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고 또 집으로 왔다. 집에 오면 숙제고 뭐고 공부하기는커녕 100여 그루가 있는 당산으로 곧장 달려가 뛰어노느라 정신없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거의 없고, 숙제하느라 머리 아픈 기억도 없다. 나무판자로 된 교실 마루 바닥에 초를 칠한 후 걸레를 밀고 다니던 것과 유리창 닦던 생각밖엔 없다.

필자는 약 5Km 정도를 걸어 등하교한 첩첩산중 두메산골 촌놈이었다. 부모님께서 학교 한 번 방문하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무슨 관심을 갖겠는가? 부모님께 그런 여력도 없었다. 존재 밖의 학생이었으리라. 이 정도의 생활기록도 선생님께 고맙고 감사드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았고 볼품없는 촌아이가 이렇게 잘 살아온 것에 감사드려야지 무슨... 또한 부모형제자매와 필자를 있게 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초등생활기록부를 통해 동심의 세계를 다녀왔다. 이 또한 고맙고 감사하다. 자세한 기록은 개인 비망이라 여기서 줄인다.

다음엔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봐야겠다.

<소라초등학교 연혁>

1921년 9월 17일 소라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
1938년 4월 1일 소라 공립 심상소학교로 개칭
1941년 4월 1일 소라 공립 보통학교로 개칭
1949년 9월 1일 소라 국민학교로 개칭
1969년 10월 1일 소라 국민 학교 봉두 분교장 설치
1981년 3월 1일 소라 국민학교 병설유치원 개원
1992년 3월 1일 소라 중앙 국민 학교 통합
1996년 3월 1일 소라 초등 학교로 개칭
1997년 3월 1일 사곡 분교장 관리
1999년 9월 1일 신흥, 달천, 여자, 송여자, 소라남 분교장 관리
2007년 3월 1일 달천, 송여자 분교장 폐교
2019년 3월 1일 제 42대 김준 교장 부임
2019년 2월 15일 제96회 졸업식 18명(총 8,784명 배출)
2019년 3월 1일 본교 7학급(특수학급 포함), 4개 분교장(10학급), 초등병설유치원 2학급운영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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