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관은 인격이 없다?

<2020. 01. 09.>

1997년경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의 말기이다. 많은 시간이 떠났다. 그때 가끔 뵙던 김 선생님은 몹시 언짢고 못마땅해하였다. 그분의 말씀은 이랬다.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왔다네. 다들 좋아하는데 나는 불쾌하네. 창피하네. 비서실장이 뭐 하는 사람인가? 비서실장은 인격이 없어. 그저 비서일 뿐이야. 차라리 장관을 해야지. 장관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잖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작성한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은 누구의 말이고 주장인가? 연설비서관이라고 응답하는 사람은 아마도 뇌 구조가 독특할 거다. 잘은 모르지만, 연설비서관은 자기의 영혼을 대통령의 영혼으로 바꿔야 한다. 속말로, 대통령으로 빙의(憑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연설문을 대통령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만일 연설비서관이 자기 인격대로 색깔을 드러내 작성한 연설문을 대통령이 받아들인다면, 우습게도 연설비서관이 대통령인 셈이다. 동일한 논리로 보면, 청와대 대변인(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의 언행은 사실상 대통령을 대변한다. 그의 고유한 인격의 발로는 통하지 않는다.

<“연설문 비서관은 과녁 맞추듯 대통령 생각 맞혀야죠”>

[한겨레가 만난 사람] 두 전직 ‘대통령의 펜’ 강원국씨

출처: 2009-09-0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4934.html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부시장이 시장을 대리하여 연설할 때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부시장은 시장의 대리인일 뿐이다. 어느 모임의 부회장도 마찬가지이다. ‘부’가 붙은 자리는 기분 좋은 지위가 아니다. “소꼬리보다는 닭 머리가 돼라"(계구우후; 鷄口牛後; 닭의 주둥이와 소의 꼬리)는 속담은 상당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말은 주둥이로 하지 꼬리로는 못한다. 꼬리는 흔들 때나 봐줄 만하다. 큰 조직의 비서나 부회장보다는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낫다. 자기의 꼴을 드러내려면 꼬리보다는 머리가 되어야 한다. 머리는 기획과 구상의 담당자이고, 꼬리는 머리의 대리자로서 집행과 실행을 한다.

최근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몇몇 비서관이 올해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를 이미 떠났고 또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잡스러운 말이 스쳐 간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한번 비서는 영원한 비서가 아닌가. 대체로 보건대, 청와대 비서관 경력을 자랑스러워한다. 명함에도, 자기가 선거 출마용으로 쓴 책의 저자 이력에도 그 경력을 빠뜨리지 않는다. 청와대를 떠나서도 그 사람의 영혼은 청와대 비서관이다. 그래서 ’한번 비서는 영원한 비서‘이다.

앞서 말한 김 선생님의 말씀에 근거하면, 청와대 비서관 경력을 들이미는 사람은 자기가 영혼 없이, 넋 나간 채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웅변하는 자이다. 마치 대입 수험생이 갖춰야 할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이 거의 바닥났다는 뜻이다. 자기 주도성 없이 자신의 영혼은 내팽개치고 자기를 비서관으로 기용한 대통령의 영혼으로 산다는 뜻이니, 사실은 낯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행위가 창피한 줄 모르고 몰랐기에 청와대에 들어가려고 엄마 젖 빨던 힘까지 다 쏟았을 거다.

청와대 비서관 경력을 디딤돌 삼아 국회의원을 해보겠노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꼴이 바람직한가? 일부에서는 이를 ‘문재인 팔이’로 인식한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대통령으로 빙의해서 살아오고 사는 그들이 행정부의 우두머리로서 정부수반(政府首班)인 대통령을 어떻게 견제하겠다는 건가. 태생적 제약이 크다. 견제는커녕 행정부를 추종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분립의 대전제는 분리이다. 그들이 입법부와 행정부의 일체화를 촉진하는 짓을 하지 않으면 불행 중 다행이다. 지나친 우려일까?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20여명 총선 도전장>

세종대로에서 바라본 청와대 모습

출처: 2020-01-05,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923243.html

이번 4월 총선 때 누가 청와대 비서관 경력을 들이미는지를 보려고 한다. 청와대 비서관 경력이 국회의원 꿈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좋겠다. 적어도 나의 한 표는 그렇게 행사하겠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님을 존경한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 '문재인 선생님'이라 부른다. 마치 베트남 사람이 초대 국가 주석인 호찌민(胡志明)을 ‘호 아저씨’(박호; 伯胡)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직접 뵌 적은 없으나 그분이 살아온 이력과 현재 실천하는 행동이 본받을 만해서이다. 그분이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고 먼 훗날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을 법해서이다.

바라건대, 일부 청와대 비서관 경력자의 ‘문재인 팔이’는 멈춰야 한다. 자기 주도성과 꼴을 내보여야 한다. ‘문재인의 비서’라는 영광이 한 평 넓이에서 두 평 넓이로 커지려면 그래야 한다.

’한번 비서는 영원한 비서‘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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