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에너지 자립 마을 제그 공동체를 찾아서

▲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은 자연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마음을 가꾸고 있었다.

2월 16일, 아침 8시 반, 베를린에 있는 파크 인 호텔을 출발하여 하멜른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ZEGG(제그) 공동체 마을에 들렀다.

독일은 날씨가 쾌청한 날이 드물다고 한다. 특히 겨울에는 더욱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가 매우 쾌쳥하여 힘들었던 시차 적응도 서서히 되어 가고 기분도 덩달아 상큼해졌다.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제크 공동체 마을에 도착하는데, 독일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무숲이 참 인상적이고 좋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간혹 눈에 들어오는 구릉도 전부 숲으로 덮여 있고, 간간이 넓은 초원이 초지로 조성되어 있어 목장 또는 채소(캐일 종류 같기도 하고, 유채처럼 보이는 작물) 밭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비록 우리가 달리고 있는 지역이 옛날 동독 땅이었지만 당시에도 산림은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드넓은 평원에 마을이라곤 간혹 나타날 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이다. 부러웠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다. 느릅나무과의 나무들, 또 다른 나무 종이 더러 있지만 유럽이라서 잎이 있어도 파악이 잘 되질 않을 판에 잎마저 없으니 더욱 구분이 가진 않았다. 다만 숲의 나무 수종은 단조롭다는 느낌이었다.

▲ <제그 공동체 마을의 안내도> 15ha(4만5천평)의 땅에 과거 동독 정보부 관련 건물들이 들어 섰던 마을을 사들여 평화, 자율, 생태의 가치를 내 걸고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동체 마을의 모습의 안내 지도

이런 감상에 젖으며 차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제그' 공동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하여 50대 초반의 자그만 키의 중년 부인이 나와 있었다. 이곳 주민이면서 세미나를 주도하고 탐방객 안내를 주로 맡아보는 분이다. 인상이 참 야무지게 생긴 독일 여성인데, 그는 독신이라고 한다.

제그 공동체 마을은 독일 통일이 되고 나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 전에는 독일 남부에 있었다고 한다. 제그 공동체는 1978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규모는 어른 100명에 아이들이 20여 명이라 한다. 이들 중에는 부부도 있고, 독신도 있고, 직종도 다양한데, 음악, 미술 등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한다.

▲ 옛날 정보부가 있었을 때는 마굿간으로 사용되었다는 건물을 개조하여 지금은 거주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건물들을 헐지 않고, 다 리모델링을 하여 재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지향 

이 마을의 모토는 ‘평화롭게 살자는 데에서 출발하였고, 함께 살자면서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헐뜯지도 않고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롭게 살기 위하여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고민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 어떻게 하면 더불어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공동체를 운영해 가고 있다고 한다. ‘자연으로부터 원칙들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가 만들어진지 30년이 넘었다.’

200만 유로를 주고 부지를 매입했으며 부지 면적은 15ha라고 한다. 은행 융자를 얻어서 부지를 매입했으며 이미 집이 있던 곳에 들어와서 그 집들을 대부분 다 살려서 리모델링을 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이 동독 시절에는 국가정보기관이 주둔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건물처럼 꽤 넓고, 건물의 길이도 길었다., 다 쓰러져 가는 가축 축사를 개량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있었다.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 마을에서 같이 탈핵 탐방을 간 이창국 선생과 한 컷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설립목적은 생태적인 삶을 홍보하고 120여 명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간디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스스로가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땅을 매입해서 올 때는 1ha에 4만 5천 유로를 주고 사왔다고 한다. 그리고 1.5ha는 유기농 농업을 하는 공동 경작지라 한다. 이 공동체에는 좋은 우물이 2곳이 있어서 자랑이고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이 우물이 있어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고 하였다. 유럽은 대부분 석회암 지대라 아무 물이나 마실 수 없는데, 이곳에서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고 한다.

질문을 통하여 확인한 상황인데, 이곳은 정보부 건물이 있던 자리이고 해서 과거의 역사 흔적들을 캐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이 곳에 커다란 슈퍼마켓도 있었다고 한다.

▲ 앞 사진의 건물 안에 이러한 여러 공간이 있다. 그 중의 하나인 공연장이다. 이 마을에는 음악가, 미술가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공연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공연할 기회를 많이 갖고 있었다. 벽에는 이 마을 화가들의 많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였다.

제그 공동체에서는 주택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 소유이며, 공동체에는 특정 종교를 인정하거나 배타하지 않으며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넓은 강당과 같이 잘 정돈된 공연장, 그 벽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마다 배치되어 있는 가구나 소품들이 상당히 예술적인 특징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창조적인 일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가를 하고 연극을 하고, 춤을 추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감정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제한이 없다. 이 말을 듣고 이번 여행의 한 축인 천주교의 양기석 신부님은 ‘도그마가 없는 것이 도그마’라는 표현을 써서 우리 일행을 웃겼다.

▲ 마을 사람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누구나 이 식당에 모여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따로 식사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동체 내에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신 준비하는 사람들은 별도를 급여를 받고 있다. 이 마을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는 목욕탕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없는 시간인데도 상당히 따뜻하게 온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탕 내부의 시설들도 오밀조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남녀 각각 다른 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유기농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식사를 다 해결하며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 내에는 수질이 아주 좋아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되는 우물이 두 곳 있다고 한다. 이 우물은 이곳 공동체를 지탱하는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 이 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독일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누구나 학교를 가야한다. 마을 인근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60km 떨어진 곳으로 학교를 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학교가 끝나고 오면 이 공간에는 아이들 돌봄 선생님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학습을 돌봐 주기도 한단다. 간식에서 학습 관련되 비용 일체는 다 공동체에서 제공된다고 한다.

이 공동체에서는 자연 소재들을 많이 쓰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학교를 독일의 법에 의하여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이곳 이린이들은 이웃에 있는 학교나 심지어는 60여 km 떨어져 있는 곳의 학교로 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학교를 다녀오면 마을 공동체에 마련되어 있는 공동 육아 방(공부방)에서는 간식, 학용품 등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다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돌봄 선생님의 도움도 받고 있다고 한다.

▲ 정보 관련 기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은 이 안에 독신자는 방 하나를 쓰고, 가족이 있는 가구는 여러 방을 쓰는 등 형편에 맞게 방을 나누어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를 위하여 각 개인은 어린이를 제외하고 누구나 405유로를 내고 있고, 식비로 따로 186유로를 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약 600유로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90만 원 정도 내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 중 65%는 나가서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고, 35%는 공동체 내에서 공동체 운영을 위한 관리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여자분은 1960년생이며 28년째 이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와 먹을거리도 전부 자연에서 얻어 쓰는 삶의 공동체

▲ <난방 연료로 사용되고 있는 팰릿> 공동체 마을 안의 숲 등에서 쓰러져 있는 나무나 삭정이 등을 이용하기도 화고, 가로수를 전지하고 남은 가지들을 이용하여 슬릿을 만들어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모든 에너지는 자연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태양광발전 시설이 되어 있어 전기를 생산하여 팔고, 필요한 전기는 사서 공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생산하여 직접 사용하는 데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건축 리모델링을 통하여 벽, 바닥 등 단열을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20년 전보다 40%의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보일러실을 둘러보았다. 난방용 연료는 폐목을 파쇄하여 만든 펠릿과 태양열, 가스 등 복합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태양전기는 80%의 마을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900KW를 생산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4개의 태양발전기가 가동이 되고 있으며, 100% 그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팰릿은 5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추울 때는 하루 화목 1.5t을 때며, 6시간 만에 다 탄다고 한다. 그 열로 하루 48t의 온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등도 에너지 절감을 위하여 LED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자연에 철저히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부자들은 먹을 것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원에는 과일이 열리는 나무보다는 관상수나 꽃으로 정원을 만들지만 그들은 손이 닿은 곳에 다양한 과일나무를 심어서 과일을 따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히 정원을 가꾸거나 주변을 정지하는 일들을 따로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 공동체 내에는 5개의 워킹 그룹이 있으며, 그룹마다 2명이 대표가 있어 이 분들이 중요한 회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일이 많다. 매니저들은 공간과 재정에 관하여 모여 논의를 하고 운영을 해 나간다고 한다. 자원봉사 활동은 1주일에 4시간 정도 하고, 1년에 4번의 큰 행사 준비를 위하여 봉사를 하며 그 외는 자유시간이다.

▲ 쓰러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건물 2층에 올라갔더니 명상을 하는 공간이 있었다. 방석이 있고, 내부 분위기가 동양적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저절로 여기에 앉아서 명상을 하면 마음이 참 차분해지고 맑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유연애가 가능한 공동체

사람들도 지극히 리버럴한 것이 특징이고, 이 공간 내에서 자유연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함께 살다 이혼하여도 이 공동체 내에 그대로 살 수도 있다. 독신자들은 독신에 맞게 작은 방을 제공 받고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큰 공간을 제공 받고 있었다. 둘러보다 보니 요가 시설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방석이 줄지어 놓여 있고, 방도 아늑하고 따뜻하여 명상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에서 쉬다 가고픈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집의 겉모양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이 황량한 분위기였지만 내부는 전혀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보니까 모텔도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숙박을 하면서 공동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 받을 수 있다는데 그걸 못해 본 것이 아쉬웠다. 컴퓨터도 여러 대 마련되어 있어서 인터넷도 30분 이용료가 1유로일 정도로 저렴한 것도 특징 중의 하나였다.

▲ 이 공동체 내에서는 구성원들 간 자율적으로 생활하면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연애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단다. 이혼을 하여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마을 안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이곳 독일에 와서는 PC방을 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조그만 동네에도 PC방이 있을 정도로 게임 중독이 문제인데, 이 곳에서는 오히려 인터넷 이용이 불편할 정도였다. 베를린에서는 투숙하고 있는 호텔이라도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시간 당 6유로나 내고 이용해야 했다.

이곳 플레잉이란 지역에는 4개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런 코뮤니티가 늘어나면서 지역을 바꿀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동체의 좋은 점은 ‘친구들이랑 함께 살 수 있는 것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우리를 안내하는 분이 정리를 하였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유와 생태가 이 공동체의 모토인 것이다.

▲ <제그 마을 입구에서의 기념 사진> 독일 탈핵 현장을 찾았던 모든 참가자들이 마을 입구에 모여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독일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 마을이 활발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동체 마을 운동을 많이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동체 마을 운동이 크게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처음 시도할 때 의욕은 좋았지만 지내다 보면 서로 간의 이해관계의 차이나 한국인 특유의 문화의 차이, 사회적 배경과 분위기 등 공동체 운동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몇 년 전 남인도 여행을 가서 오르빌 공동체를 잠시 들른 적이 있다. 인도의 오르빌 공동체는 명상과 수련을 중심에 놓고 자급자족의 경제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와 살지만 오르빌 공동체도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의 한계 등 경제 자립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고 한다. 제그 공동체 마을처럼 잘만 운영이 된다면 얼마나 이상적이겠는가? 그런 공동체라면 나도 기꺼이 함께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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