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시민'이 '깨민사회'를 일깨운다.

필자가 3년전 교직에서 정년퇴임하면서 이사하여 살고있는 곳은 서울 동남부의 가장 외진 곳이라 할수있는 송파구 마천동 LH아파트 단지이다. 하남시와 경계를 이루고있는 곳이어서 공기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워낙 궁벽진 곳이라 행정적으로는 낙후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우선 교통체계 행정과 공원의 시설관리적 측면에서 몇가지 불편사항들을 느껴, 이를 시정하고자 나름 고군분투한 과정을 피력해보고자 한다.(~그렇다고 '개인 무용담'처럼 보이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님)

이사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차를 운전하여 시내에서 볼일 보고 밤에 귀가하던 나는, 오금동에서 마천동에 연결되는 도로 2차선에서 빨간불 신호에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내차는 이미 횡단보도를 반쯤 지나 멈춰 있었다.
내가 반사신경이 무딘편은 아닌데 이게 이찌된 일인지 자세히 주위를 살피니, 횡단보도 표식은 많이 지워져 잘 보이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는 신호등이 횡단보도 전방이 아니라 후방 7~8미터쯤 뒤에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러다가 사고나지 않겠나' 싶어 다음날 서울시 민원지원센터 '다산120'에 전화하여 송파구청 도로관리과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담당자에게 어제 운전하다가 불편을 느낀 내용을 말하고, 우선 횡단보도를 잘 식별할수 있게 새로 페인트칠하고 신호등 위치도 횡단보도 앞쪽이나 바로 위에 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교통시설은 변경이 쉽지않다는 둥 변명으로 일관하는 담당자에게 나는 한마디로 일침을 놓았다.
"만일 이곳에서 자동차 인명사고가 나면 분명히 말하지만, 모두 당신 책임이니 구청장 찾아가서라도 시정을 요구할거요. 글구, 지금 이 통화내용은 다 녹음되고 있어요"(~사실은 녹음 안됨)
그러자 잠시 뜨악해하던 담당 공무원은 요구한대로 힘쓰겠다며, 그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꼬리를 내렸다.
(이후, 몇주 지나지 않아 산뜻하게 칠해진 횡단보도와 앞쪽으로 설치된 신호등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는 자신을 발견함)

다음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중간을 가로질러 설치된 왕복 4차선도로 횡단보도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양쪽에 설치되지 않아, 출퇴근 승용차와 마을버스나 인근 공사장 트럭이 60키로 이상으로 도로의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현장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몇차례 전화하여 과속방지턱 설치를 건의했으나, '백년하청'이었다.
그래서, 마침 1단지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마천동 주민자치회 환경분과 총무 일을 새로 맡아서 안내메시지를 보내온 분에게 전화를 하여 만남을 제안했다.
그리고 방이동 근처 생맥주집에서 만나서 신임총무 축하 덕담을 건넨후, 과속방지턱 건을 이야기하니 그렇잖아도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면서 힘써 설치되도록 관계 담당부서에 진정해보겠다고 약속하는게 아닌가?
우리는 당일 의기투합하여 생맥주잔을 몇번 부딪히며 건배를 하였다.(이후, 한달 조금 지나서 도로 양쪽에 도드라지게 칠해진 과속방지턱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는 자신을 발견함)

마지막으로, 주중에 가끔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 및 산책을 즐기는 인근 성내천공원 천변 산책로의 지하보도 조명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지상보다 낮은 위치의 천변 산책로이다보니 지상의 8차선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는 80미터 정도의 왕복 지하보도가 설치된 곳이 있게 마련이다. 작년 어느 봄철 날씨가 흐린 날에, 이곳을 걸어가는데 좌우의 조명이 모두 꺼져서 보행인들은 출입구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지하여 천천히 더듬더듬 걸을수 밖에 없었다.
겨우 밖으로 나오니, 출입구 쪽에 시설관리담당부서 전화번호가 녹슨 금속명판에 적혀있었다. 그런데, 전화를 해도 불통이라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거의 10년전 지하보도 설치 당시의 전화번호로 추정되었다.
그래서 114에 문의하여 송파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다. 이곳 위치를 알려주고 지하보도에 조명이 꺼져서 불편하다고 했더니, 담당자는 공원 내 도로는 주간에는 조명을 끄도록 되었단다.  나는 조금 화가 났지만, 이내 차분하게 설득했다. "혹시 이곳에 주간에 나와서 지나가본적 있나요?  지금 날씨가 흐려 그런지는 몰라도, 입구쪽에서 저쪽 출구쪽을 바라보면 통행하는 사람들 모습이 전혀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해서 보행에 어려움이 있어요. 그러니 직접 나와보시고 판단해서 시정해주세요." 
이번에는, '책임 운운'하며 구청장 찾아가서 시정을 요구하겠다는 말도 안했다. 다행히(?) 몇주 뒤 점심을 먹고 그곳에 산책 나갔다가 지하보도에 조명이 켜져 환하게 불이 밝혀진 모습을 보고 보행자 안전확보에 나름으로 힘쓴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하찮은 일에 자잘구레 신경쓰는게 아닌가?  그래봤자 뭐가 그리 바뀌고 변하겠나?"
~ 그러나, 이말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으리라.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과 '우공이산'이라는 옛날 고사성어처럼 주변의 작은 일부터 관심을 갖고 '깨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며 다같이 힘을 합치다보면, '깨민사회'가  저만큼 성큼 우리 눈앞에 보이는게 아닐까요? 

[ 주(註) ]
- 깨시민 : '깨어있는 시민'의 줄임말 (주의: '깨알같이 시시한 사람'은 아님)
- 깨민사회 :  '깨어있는 민주사회'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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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허익배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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