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봄, 그러니까 내가 일곱 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나는 그때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한글도 모르는 무식쟁이로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에 붙은 단칸방에 부모님과 형과 함께 참새들 처럼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아침인가 창밖 신작로가 아이들 소리로 시끄러워 나는 창문을 열고 그 아이들을 내려다 보니 옆집 세탁소 내 또래 아들이 대뜸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너는 꿈이 뭐냐?"

"꿈? 꿈이 뭐야?" 하고 꿈이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나는 그냥 따라서 반문하니 그 친구가 "너는 뭐가 되고 싶냐고~" 하며 친절하게 알려주며 다시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나? 나는 몰라~ 너는 뭐가 되고 싶은데?" 하고 나는 대답 대신 다시 물어보는 재치를 발휘하였다

"나는 대통령, 대통령 될거야~" 대답 하면서 하하하 웃으며 자기 누나와 함께 세탁소 집으로 뛰어 가는 등에 대고

나는 "대통령? 대통령이 뭐냐?" 하고 또 어리버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때 마침 멋진 양복쟁이 아버지가 출근을 하려는지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아버지, 대통령이 뭐에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다~" 무뚝뚝 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이 날아와 내 작은 귀에 꽃혔다

"제일 높은 사람?....."

나는 그날 짧은 아침 시간에 '꿈'과 '대통령'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대통령이 되어야지~'

그러나 그 옹골진 꿈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지워지고 말았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학교 등록금이 밀려 퇴학의 줄타기를 하던 시절에 나는 현실에 적응하고자 공업고등학교를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만 선생님이 나의 진로를 바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시켜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은행에 취업하여 오늘의 내가 되고 말았다

나에게 대통령의 꿈을 심어 준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우리 둘이 대통령 꿈을 향해 돌진 했다면 지금쯤 라이벌 후보자로 대한민국이 시끌벅적 했을텐데 내가 도중 하차 한 것처럼 그 친구도 오래 전에 대통령 꿈은 사그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소꿉동무로 곧잘 놀다가 어느 겨울 날인가 밖에서 놀다 세탁소로 들어가니 그 친구의 아버지가 다정하게 추위를 녹이라고 말씀하시며 가게 뒤에 있는 눈 쌓인 밭에 가셔서 얼어 죽은 참새를 주워다가 다리미 난로에 구워 다리를 찢어 주시는 것을 받아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는 참새고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우리 둘은 그러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줄곧 같이 다니며 한 두번 같은 반도 했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고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 친구는 6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동병상련 이었던가, 나의 아버지와 그 친구의 어머니가 서로 위로하며 한동안 사이좋게 지낸 사실은 내가 20대 중반에야 알았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어서 주말마다 시골집에 내려가곤 하던 중 어느 날 아버지가 그 친구의 어머니를 찾아뵙고 위로해 드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니 그 친구가 해양대학을 다니다가 졸업 실습으로 배를 타고 나가서 선원들에게 구타 당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랍고 난감한 소식이었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찾아뵙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머니를 찾아뵈니 누나도 함께 있었다

무슨 말을 할까. 그냥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되뇌이는 것 밖에 한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참 눈물지으며 하소연 하셨는데 나는 좌불안석 미안하여 어찌어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 온 기억이 어렴풋 하다

80년대 초반으로 인권 사각의 시대였기에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생떼같은 청운의 아들을 늙은 어미의 가슴에 평생 묻고 살아 가셨다

사실 우리 세대는 꿈 같은 꿈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살아 온 세대이다

다행이도 경제성장의 과실을 받아먹으며 호구지책을 넘어 약간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잠자는 자 꿈을 꾸지만 깨어있는자 꿈을 이룬다'는 명언도 있으나 자본주의가 고도화 된 치열한 경쟁의 요즘에는 아무리 깨어있어도 꿈을 이루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꿈을 내려 놓고 '소확행'을 즐기며 살아야 할까?

젊은 날은 오래 전에 지나갔고 꿈을 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지금 남북한이 서로 왕래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겸손히 기원해 본다 

▲ 2018. 4월 강릉 경포대 해변의 일출을 보며

 

편집 : 객원편집위원 김혜성(cherljuk13@nate.com)     

조형식 주주통신원  july2u@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