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제정하여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과 역사 재조명 필요

지난 1월 20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여순사건 희생자 재심 재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72년 전 내란과 국권문란 혐의로 기소되어 처형된 고 장환봉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 출처 : 한겨레. 1월 20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장환봉씨의 재심 선고에 출석한 유족들 중 부인 진점순(97), 딸 장경자(75)씨

여순항쟁은 1948년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군인들에게 제주 4・3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14연대 남로당 조직원들이 주도하여 동족상잔의 회피와 경찰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여수시내를 장악하고 이어 순천, 구례, 광양, 보성, 고흥 등 전남 동부 5개 지역을 순식간에 장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순천에 있던 일부 군부대가 동참하였고, 지역주민들도 호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미 군사고문단은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조직하고, 이승만 정부는 여수, 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발효하여 진압작전에 나섰다. 진압군은 장갑차, 박격포, 항공기, 경비정까지 동원하여 총공세를 펼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인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통계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1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가족은 그동안 무죄를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쉽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맡은 부장판사도 피고인들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음을 전제로 집단 희생사건으로 분류됐다가 뒤늦게 판결집행 명령서가 발견돼 재심이 진행됐으며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장기간을 들여 일일이 관련 기록과 증언을 모으도록 한 다음 유족과 목격자들이 그 당시에도 알지 못했던 공소사실을 복원한 이후에야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면서 국가의 의무가 더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동안 유가족과 함께 해온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이하 재심대책위)는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여 지난해 5월에는 「여순항쟁과 군법회의의 실체」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였고, 12월에는 「민간인 군법회의 이유」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와 검찰에 제출하여 무죄를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번 판결은 3명의 민간인 희생자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지 7년 5개월만에 이루어졌는데 그동안 2명의 유족은 숨져 절차를 종결할 수 없어, 장경자 씨의 부친인 고 장환봉(당시 29, 순천역 철도원) 씨만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 “국가권력에 의한 억울한 피해를 형사 절차를 통해 개별적으로 바로 잡으려 는 것보다는 특별법을 제정해 일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이에 재심대책위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유족을 비롯한 지역사회와 국내외에서 무죄 판결을 간절히 바라고 기원한 국민들과 함께 크게 환영한다.”고 밝히고, 1948년 당시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받은 분들이 최소 3천명에서 5천명에 이른다며, 사법을 가장한 국가권력의 폭력에 신음해야 했던 분들을 구제하는 일이 지역사회의 책무로 남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심대책위는 불법・위법에 의해 학살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이번 사법부의 판결을 계기로 하여 행정부와 입법부가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족회와도 공조가 필요하다며 함께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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