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공기관과 조직, 민주적 통제 이루어져야

2019년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세계 167개국 중에서 23위라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1위로서 일본과 미국보다도 앞선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발표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에서는 선거 절차 및 다원주의 / 정부 기능 / 정치참여 / 정치문화 / 시민자유 등 다섯 부문을 평가해 점수화하였는데, 정치참여 분야는 비교적 낮은 점수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이는 일상의 민주화가 안 되고 있다는 뜻과 통할 것이다. 지난 12월 30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류영재(춘천지방법원 판사) 님의 ‘사법농단, 그 후 천일의 기록’은 이 원인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 글에서 류영재 판사는 사법논단의 원인을 재판독립이나 사법독립이 안 되서가 아니라 법원장에게만 오롯이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 사법행정 비공개, 판결문 비공개, 재판에 대한 비판마저도 재판독립 침해로 바라보는 배타적 자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집중이 사법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자치단체가 그렇고, 심지어 정당이나 NGO도 대부분 그러하다. 그러니 촛불혁명으로 새정부가 들어섰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아직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수첩에 받아쓰기회의'에서 '참여하는 회의'로 바뀌고, 정부가 일부 정책을 결정하며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고 그랬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이나 공무원들은 촛불혁명 이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보인다고들 말한다. 내 보기에도 그렇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지방정부에 자치권이 상당량 주어졌다. 그래서 시장 군수가 마음만 먹으면 축제도 하고, 청사도 새로 짓고, 농민수당이나 청년수당도 지급할 수 있다. 선진국에 비해서야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방자치단체에 많은 권한이 부여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치권은 시군청의 출입문에서 멈춘 듯하다. 자치단체장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업만 골라서 한다. 때로는 시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민들 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는 3권분립의 개념조차 무너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입법기구나 사법기구는 토착세력들에게 장악되거나 유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방 행정부를 견제할 지방 언론이나 시민단체들도 부족하거나 있어도 대부분 행정기관이나 토호세력과 유착되어 있다.

행정기관의 장은 인사권을 무기로 공무원 조직을 강권으로 장악하고, 자기 입맛대로 운영한다. 국민들은 투표에 참여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것처럼 여기거나, 말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여전하다. 각종 주민참여위원회가 있지만 공무원의 입맛대로 선별하여 참여시키고 거수기 역할이나 맡기는 정도이니 뭐가 바뀐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죽하면 자치는 주민자치가 아니라, 시장군수자치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나왔을까.

사법농단의 원인을 사법기관의 독립성 부족 때문이 아니라 기관장에게 집중된 권력에서 찾은 류영재 판사는 해결책도 거기서 찾는다. 류 판사는 사법농단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법의 민주적 통제를 실질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적 권한을 분산하고 개방해야 한다. 비밀리에 수직적으로 행해지던 사법행정이 투명하게 공개된 상태에서 수평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재판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필요하다. 판결은 공개되어야 하고 판사들은 재판을 통해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또한 모든 관료기구, 지방자치단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시장, 군수에게 집중되어있는 행정권한을 분산하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주요 사업을 결정하는 소위 간부회의를 공개해야 하고, 행정적 결정 사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주민의 투표에 의해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제왕적 권리행사를 하는 단체장을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국민들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일을 제도화할 수 있는 곳은 의회이고, 그 의원들을 뽑는 사람은 국민이다.

결국은 국민이다. 어떤 제도이든 그 제도를 실현하고 일상화 시키는 일은 국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 일을 국민 개개인이 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서울에서만 키워갈 것이 아니라, 기초자치단위인 시군 단위의 시민단체가 성장해야 한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모여서 토론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상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건강한 노동조합이나 사원단체가 행정집행을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이나 사원단체도 내부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를 통해 그런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피부에 와닿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국민이 가진 능력만큼 그에 맞는 정치체제를 가진다”고 했다. 국민의 민주시민의식과 참여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현종 주주통신원  hhjj5599@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