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마시는 술 예찬
홀가분한 행복이 언제이던가
나를 떠나 나를 잃어버릴 때더라
하지만 도인이나 성인은 모르겠으나
나 같은 범인에겐 산 너머 산이더라
평소 맑은 정신엔 가당치도 않고
오히려 나를 모으고 집중케 되더라
다만 술 몇 잔에 정신 줄이 오락가락해지면
그때야 비로소 떠나고 잃게 되더라
술을 왜 마시고 싶은가
이같이 나를 잃고 떠나기 위함이다
술 몇 잔 들이키면
몸부터 녹아 노글노글해지고
정신은 혼몽에 빠져 흐리멍덩해지며
심신은 갈 길 잃고 미약상태에 이르니
나를 얽맸던 모든 끈은 풀어지고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으로 떨어지더라
술이 해롭다고들 하지만
술은 몸과 맘을 이어주는 혈이요
심신과 영혼을 이끄는 동력이더라
해롭기만 한 것이 어디 있고
이롭기만 한 것이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는 것을
심신이 쾌청해야 영혼도 쾌청치 않겠는가
어찌 술을 마시지 않겠는가
홀로 마신 술은
천아지일체주(天我地一體酒)라
거나하게 취하니 몽롱하여 해롱해롱
정상 비정상을 따질 게제가 아니고
꿈인지 생시인지 가리고 싶지도 않더라
땅이 내 몸인지 하늘이 내 몸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지만
어줍지 않은 나를 떠나 잃게 되니
드디어 천지만물과 일체 되지 않는가
이 아니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가
경이로운 인생환희에 달하더라
술 몇 잔에 이 경지에 이를 터인데
어찌하여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으랴
내 여태 많은 이를 만나고 헤어졌건만
술아 ~ 너 만한 벗은 없더라
넌 언제 찾아도 이래저래 핑계치 않고
늘 환한 얼굴로 반겨주더라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아
이보다 좋을 수가 어디 있으랴
술아! 오늘이 가기 전에 한판 놀아보자
백호 임제는 황진이 무덤 앞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부어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이렇게 노래했다 하지만
비록 무덤조차 찾을 이 없어
나 홀로 마시는 술잔이라 해도
이 세상 어찌 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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