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고민하며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미국에 온 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와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감사의 편지를 드린다는 것이 이렇게 늦고 말았습니다. 무모해 보였지만 언제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던 이동구 팀장님, 노력파 김미경 선생님, 기발한 생각으로 유머러스하게 가르침을 주시던 심창식 선생님, 묵묵하게 모든 일을 하시던 박효삼 선생님, 마음 따뜻한 똑똑이 양성숙 선생님, 스윗 가이 최호진 선생님, 한국에서보다 더욱 열심히 활동하는 대만 특파원 김동호 선생님, 취재의 절대 강자 김종선 선생님, 말장난 대마왕 이상직 선생님, 언어를 사랑하신 허익배 선생님, 멋쟁이 화백 정병길 선생님, 내유외강 김진희 선생님, 많이 친해지지 못한 느낌이지만 마음이 가던 이요상 선생님, 김진표 선생님, 김태평 선생님, 유원진 선생님, 김종근 선생님, 김혜성 선생님, 권용동 선생님, 최성주 선생님, 지정부 선생님, 그리고 문화공간 식구들까지......한겨레가 이어준 인연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리고 이 인연을 만들어준 한국에서의 추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인연도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쉬운 법이기에 가끔씩 저도, 선생님들도 글로나마 서로의 소식 전하며 소중한 인연 계속 지켜나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이곳 켄터키 렉싱동(렉싱턴이지만 우리끼리는 렉싱동으로 하면 어떨까요?) 소식 자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렉싱동 일기 1 : 교육을 고민하며

오늘은 영진이 아이스하키 수업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스하키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마이너 스포츠이기도 하고, 워낙 장비나 레슨비가 비싸 진입장벽이 높은 운동 중 하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태권도 한 달 레슨비보다 쌉니다.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는 경우, 아이들을 위해 한 달 레슨비만 받고 장비를 무료로 주는 과정도 많습니다.(무료 하키 안내 https://www.nhl.com/predators/community/youthhockey/little-preds)

▲ 렉싱동 아이스 링크장에서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는 아이들

하지만 축구나 농구처럼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기에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시범 수업 후 아이스하키가 재미있다는 영진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번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영진이는 아이스하키 말고도 얼마 전부터 농구도 시작했답니다. 미국은 저렴한 가격에 많은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유치원생 때부터 보통 수영, 농구, 축구, 야구, 미식축구 등의 다양한 스포츠를 배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한국 초등학생들도 수영과 축구 정도는 많이 하는 편인데 와서 보니 한국과 미국의 스포츠 수업에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 동네 농구레슨

먼저, 미국은 학부모 참여를 권장합니다. 그렇기에 학부모가 팀에서 코치나 매니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진이가 속해있는 아이스하키팀은 부모들이 8시간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못하면 돈으로 내야합니다. 봉사는 점수판 담당부터 경기 타이머 세팅까지 다양합니다. 사실 한국 체육수업은 학원 개념이라 일 년에 한두 번 시합에 나갈 때 보러 가는 것 빼고는 부모가 참여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이 부분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두 번째로 미국은 못하든 잘하든 팀에 들어가면 매주 경기를 나갑니다. 농구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동네 다른 팀과 경기를 하는데 아이스하키팀의 경우 이 도시는 나이별로 한 팀만 있기에 다른 도시에 가야하는 일도 많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경기를 위해 오하이오 신시네티라는 곳에 다녀왔고, 지난주에는 오하이오 데이톤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경기에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 부모들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경기에 참여하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세 번째로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팀에 들어가면 선수의 고유 번호가 국가 시스템에 등록되어 다른 팀에 들어갈 경우 고유 번호를 이전해 등록해야 할 정도로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또한 그렇기에 프로 선수처럼 스포츠 리그를 경험하며 시즌 전체를 뛰게 됩니다. 가을 시즌에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던 영진이는 이번 봄에는 라크로스를 경험해볼까 고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리그를 뛰지 않고 매달 등록해서 배우는 스포츠도 많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남자친구들끼리 결성했던 축구팀이 계속해서 축구를 배우고는 있는데 보통 고학년이 되면 운동 학원은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저학년때 그만둔답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면 공부에 집중해야 되기 때문이랍니다.

한국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 한편으로 불안감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벌써 한국에 있는 영진이 친구들은 4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4학년 수학을 다 훑었다고 하고 친구들의 형과 누나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벌써 중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입학한답니다. 6학년 때 정석을 공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니 그에 비하면 보통 늦은 게 아닙니다. 영진이는 생일이 늦은 관계로 미국에 와서 한 학년 늦게 입학해 아직 3학년인 데다가 미국은 워낙 수학 진도가 느려 이제 2학년 수준의 수학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간 동현이 형은 가자마자 영어학원을 등록했고, 이제 6학년이 되니 아이스하키를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나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한국의 어떤 초등학생들은 공부와 아이스하키를 병행하기 위해 학원을 끝내고 밤 10시에 하키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고민이 되고 불안할 때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수학을 몇 년 선행해 초등학생이 고등학생 수학을 해도 나중에 다 까먹어서 쓸 일이 없어질 것을...... 부러워하지 말자. 수학과 갈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영어 학원 하루에 두 세시간 다니는 친구들보다 영어단어도 모르고 작문도 못하지만 부러워하지 말자. 영어 통번역가로 키울 것도 아니고.

그래도 영진이에게 강조하며 지키려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도 돈도 아니고 주위사람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목과 행복을 위해 서로 예의를 지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는 잊어버리면 안 되니 한국책을 꾸준히 읽고 일기는 한국어로 써라.' 이 두 가지는 계속 기억하고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 사이언스 페어

영진이의 영어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얼마 전에는 과학축제(Science fair)에 나가 상도 탔답니다. 4학년부터는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지만 3학년은 원하는 아이들만 나가는 과학대회인데 과학이 재미있다며 대회에 나가더니 영어로 설명도 하고 상도 타서 반 아이들의 축하를 받아 자신감을 좀 얻은 눈치입니다. 또,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친구들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친구가 집에 놀러 오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겠지요.

영진이도 저도 미국 생활에 많이 적응했지만 한겨레 식구들과의 추억은 여전히 그립고 소중합니다. 올해에는 6월 정도 이사가 계획되어 있는데 이사를 마치면 바로 한국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려 합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고 또 이렇게 가끔 미국 소식 전하겠습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안지애 편집위원  phoenic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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