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가졌을 때 전철을 타고 출퇴근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오래 갔다. 그 당시 노산(33세)인데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이 많이 약해졌다. 전철에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웠던 적도 많았지만, 한 번도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당시는 '양보 문화'가 거의 없어서 배가 불쑥 나왔을 때도 자리를 양보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로 꽉 찬 전철이었기에 앉은 승객들은 내 배가 나온 줄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앉았다 하면 눈 감고 자는 것이 장땡인 시절이었으니까... 

한번은 너무나 어지러워 나도 모르게 앞 사람에게 기댄 적이 있다. 앞 사람이 놀라며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양보해 달라 해서 앉아서 갔는데 기운이 다 빠졌는지 식은땀까지 줄줄 흘렸다. 자리를 양보해준 사람에게 고맙단 말도 못하고 간신히 전철에서 내려서도 바로 걷지 못하고 한참 의자에 앉아 있다 출근 했다. 이러다 길거리에서 정신을 놓으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겨웠던 적이 많았기에 비썩 마르고 약한 아이가 나올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3.4kg으로 건강하게 나왔다. 엄마가 못 먹었는데 뭘 먹고 그리 컸을까?

임산부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전철 임산부 좌석을 만들었을 때 박수를 치듯 좋아했다. 그런데 전철을 타면 임산부 좌석은 임산부 같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가서 '임산부 좌석이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싸움이 날까 싶어 참았다. 그런데 점점 비어있는 임산부 좌석이 눈에 보였다. 아.. 이제 우리나라 시민의식도 성숙해 가는구나 하곤 좋아했다. 지난주에도 전철을 탔는데 두 자리가 모두 비워져있었다. 마치 내가 임산부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어 정거장 지나 한 아주머님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좋다가 말았다.

 

아이들 신발 중에 걸어 다닐 때 삑~삑~ 소리가 나는 신발이 있다. 이것처럼 사람이 앉을 때 “삑~삑~ 이 좌석은 임산부를 위한 좌석입니다”라는 소리가 나면 좋겠다. 그럼 사람들이 앉으려다가도 깜짝 놀라고 부끄러워 멀리 도망갈 텐데....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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