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삭 장군 공적 증거 자료를 찾아서 (2) - 록권의 역사적 가치와 공인의 인정

∎보성군과 지역민의 인정
보성군에서는 1917년 7월 11일 보성군 향토문화유산 12점을 지정 고시했다.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기에 유명 전문가를 초빙하여 심사가 이루어졌고 심사 발표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 중 전방삭 장군 후손(전종실)이 소지하고 있는 선무원종공신록권이 보성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전에 말씀 드린 데로 보성군은 의향의 고장으로 타군에 비해 국난 때 마다 많은 분들이 목숨 바쳐 구국활동을 했다. 그러기에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품들이 많이 있다. 보성군은 의병사를 발행했는데 이곳의 기록을 보면, 의병 777명의 기록이 있다. 보성군을 의향의 고장이라고 자랑해도 손색이 없다.

▲ 보성군 의병사

보성군의 인물로 선무원종공신록권에 기록되어있는 명단을 확인한 분이 87명에 달하고, 족보나 기타 서적에 공신으로 되어있으나 미 확인자도 47명에 이른다.
공신에게는 록권이 하사되었으나 400여년을 흐르는 동안 분실되거나 훼손되어 실본이 없는 처지여서 더욱 귀중히 여겨지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임이 분명하다.

▲ 보성군 향토문화 지정서(전방삭장군록권)

보성군은 보성군수를 지냈던 방진(方震 : 이순신 장군 장인)과 보성과 인연이 깊은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군수 관사로 사용해왔던 곳을 리모델링하여 ⌜방진관⌟이라 이름 짓고, 보성군민들과 일반인들의 충무공 이순신 교육을 위해 이순신의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 전방삭 장군 선무원종공신록권을 전시하고 있다.

▲ 방진관
▲ 방진관에 전시된 전방삭장군 록권

이로서 보성군은 전방삭 장군의 애국충절과, 목숨 걸고 싸운 공적을 인정하고 추모 행사와 선양사업에 성의를 다하고 있다. 항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 2019년 8월 9일 보성군에서는 의병의 후손 13명이 79점의 유품을 남도의병역사공원이 유치될 때 사용하라고 아낌없이 기증하였다. 필자도 전방삭 장군 선무원종공신록을 선뜻 기증하였다.  

▲ 유물기증기탁식

∎공인의 인정
보성군에서는 2017년 7월 18일 KBS TV쇼의 진품명품 출장감정이 성황리에 열렸다.  필자는 전방삭 장군이 하사 받은 선무원종공신록권을 품에 안고 행사장에 참석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진동만 위원장님을 비롯한 3명의 심사위원이 참석하시어 감정 결과를 3개 분야에서 상위 작품 3점을 골라 발표하였다.  보성군은 예부터 내노라 하는 문인들도 많아 작품집과, 고서가 가득 전시되어, 필자는 마음의 위축을 받고 포기 상태에서 친구와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문용현 개그맨이 책을 한 권 들고 “이 책임자 누구세요”라는 것이었다. 힐끔 쳐다보니 내가 제출한 록권이었다. “여기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빨리 녹화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녹화를 끝내고 생각에 잠겼다.

광해군세자 스승이었던 분의 문집도 보였고, 전라좌도 의병장을 지낸 분의 문집이며, 조선중기 학자 문집도 보였는데 어쩐 일이였을까? 결국 역사적 가치와 애국충절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분들의 이름(9,060명)이 기록되어있는 공신록권 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명성 높은 학자의 글이라도 이 선무원종공신록권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선정 되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감정 평가 위원의 사사로운 점을 배제한 공인으로서의  품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선무원종공신록권은 역사적 가치가있고 지금까지 남아 소장된 가치를 인정받아 그 동안 여러 가지 수난을 겪으면서 보존해온 보람을 느껴 흐뭇했다.

▲ 진품명품 심사(진동만위원장)
▲ 진품명품에 출연한 필자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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