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가 있는 K시에 도달한다.

질주하던 차들은 이제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고 있다. 마음은 조급하다. 신호등의 꼬리를 물고 짧은 공간을 치고 들어가며 빵빵거린다.

“태양 마차는 나 아니면 아무도 몰 수 없다. 네 힘, 네 나이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때가 되면 죽어야 할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아 자리를 지켜낸 ‘빛나는 자’ 헬리오스는 아들을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잠을 떨치고 일어나 터널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거대한 조립식 건물을 마주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은 하루종일 울릴 굉음을 준비하듯 침묵하는 적막감이다. 파에톤 Φαέθων 은 자신의 운명을 알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늘 나의 미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파에톤은 기쁨에 취해 마차에 올랐지만, 나는 그저 주차할 자리가 남았는지 둘러본다.

묵직했던 태양신 대신 가벼운 인간을 태운 말들은 그 가벼움에 폭주했다. 서툰 마부의 두려움 아래 물길은 말랐고, 바다는 끓어올랐으며 대지는 죽음같은 갈증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오랜 노동으로 공장의 기계는 삐꺽이며 검은 먼지를 내뱉는다. 보이지 않는 연기들은 폭주하며 세상을 덮는다. 물길에 배이고, 바다에 스며들며, 대지를 갈라지게 만들어간다. 멋진 정장의 스테이크, 기름 묻은 작업복의 컵라면도 보고자 하는 끝은 하나이다. 파에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전한다. ‘아버지의 마차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 유전자는 모계를 통해 전승된다. 기도하는 소녀는 그 열망의 투영이다.

삶의 쾌락을 추구하고, 가족을 지키고, 공동체를 이어가겠다는 나의 뜻은 가상하다. 목표물을 향해 질서있게 달려가는 흰개미 무리를 따라, 터널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나는 황금마차 앞에 섰다. 말들은 콧김을 내뿜고, 나는 잠시 아버지의 말을 되짚는다.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 났다.. 네 소원은 다른 신들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머리를 흔들고, 차문을 잠근 후 내려 걸어간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밖에는 없다. 그것은 내일도 그 내일도 계속될 것이며, 그것이 직진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 될 것이다.

* 이윤기, 그리이스 로마신화1, p156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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