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85]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 (堅壘公司-1)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2.28l수정2020.03.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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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1월 회사 설립을 하고 첫 고객은 당연히 그동안 인연을 이어온 대만의 우웨이지엔(伍惟堅)이었습니다.

갓 30을 넘긴 경험도 일천한 젊은이가 사장 명함은 과하지 않느냐? 차라리 과장 명함을 새기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중에 바꾸기도 귀찮을 것 같고, 세상 물정 어둡다 보니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말하자’라고 정리했습니다.

당시 차가 없어서 우시엔성(伍先生, 미스터 우)이 한국에 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공항과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부족함도 거짓 없이 드러내고 판단은 상대방이 하도록 하는 것이 순발력 제로에 눈치도 없고 기억력도 뒤지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임을 일찍 깨달았지요.

나의 바이어로 처음 한국에 찾아온 우시엔성과 만나던 날, 앞으로 비즈니스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의 의견을 들어 룰을 정했습니다.

1. 업체를 공개하여 우시엔성이 생산 공장과 직접 가격과 수량을 정한다.

2. 커미션 프로테이지를 정하고 후에 물량이 늘어나 금액이 커지면 다시 정한다. (금액이 커졌어도 안 바뀜)

3. 커미션의 미니멈은 100만 원(한화)으로 한다.

우시엔성은 나보다 5살 연상이고, 예나 지금이나 거의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로 내가 떠들고 간혹 판소리 고수가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지요.

그날 ‘나보다 당신이 먼저 이익이 생겨야 물량도 많아지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저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도 노래를 나만큼 못하는지라 참으로 편했습니다. 또한 저의 경제 사정을 잘 알아 식사비 외에는 자기가 다 지불했지요.

몇 년 지나서 어디서 들었나 봅니다. 한국에 가면 야총회(夜總會,나이트클럽)가 유명하다고 가보자고 하더군요. 저는 음주・가무에는 태생적으로 젬병입니다. 호환 마마보다 두려워합니다. 대부분 이해를 못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한 노래방에서 순번이 가까워지면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입니다. 또 춤이라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설악산 수학여행 가서 친구 등쌀에 밤마다 억지로 배운 다이아몬드 스텝이 전부고요.

바이어가 성인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하는데 정보도 없고, 여기저기 찾아서 영동 나이트클럽이라고 하는 곳에 일찌감치 들어가 앉았습니다. 둘 다 술은 억지로 맥주 한 잔이라 기본만 시키고 부르라는 아가씨도 거절하고(내가 돈 내는 거 아니라) 둘이 멀뚱멀뚱 앉아 있었습니다. 음악은 시끄러워 대화도 할 수 없고요.

얼마 안 있어 마이크 잡은 남자 사회자가 우리 테이블을 가리키며 야유를 하더군요. ‘오늘 밤 우리 나이트클럽의 수준을 높여주시는 손님이 왔다’며 ‘저기 박 회장님, 김 사장님 즐겁게 노시라고’요. 물 흐리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의미라고 친구에게 통역해주고 나왔습니다.

▲ 지금도 대만 시장에는 나를 통해 수출한 한국 등산 장비가 팔리고 있다.

우시엔성이 원하는 등산용품 제조업체를 수소문하여 공장에 찾아가 담당자나 사장과 흥정을 하고 물량을 정한 후 달러를 저에게 주고 떠나면 저는 물건 인도와 동시 결제해주고 수출하였습니다. 첫 물건이 대만 우시엔성 창고로 들어가고 회사 겸 매장이 있는 타이난(臺南)으로 찾아갔습니다.

우시엔성은 아버지가 중국 소주 출신으로 장개석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하여 석탄 사업을 한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대학교 부근에서 등산 장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대만에 가서 알았습니다. 저의 소문이 엄청나게 부풀려졌더군요. 평상시 그렇게 말이 없는 우시엔성이 주변 친구나 친척 그리고 가족들에게 제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중국 철학과 역사에 관한 박사, 또 무지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더군요.

보통은 나이가 어리거나 친하면 이름을 부릅니다. 지금 만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냥 똥하오(東浩) 혹은 진거(金哥, 김형)라고 부르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만났던 가족이나 친척들은 나이도 많이 어린 저를 깍듯이 진시엔성(金先生)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대만에 있는 동안 여러 친척 집을 방문하고, 또 주변에 한국과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불러 식사 자리를 마련하여 소개해주었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도와주려는 이 친구의 마음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이 친구의 회사가 지엔레이꽁스(堅壘公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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